폭력적인 미국의 세기
존 다우어 지음, 정소영 옮김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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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의 역사학 명예교수이자 미국의 대외 관계와 일본의 근현대사 연구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존 다우어의 The Violent American Century, 즉 ‘폭력적인 미국의 세기’를 읽었습니다.

이 책은 2차대전부터 냉전을 거쳐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 이후 미국이 벌여온 폭력에 관해 객관적으로 가감없이 쓰고 있는데요. 이에 저자는 서문에서 “나는 세계를 그와는 다른 좀더 비극적인 방식으로 계량하고 군사적 폭력을 다양한 시각에서 검토함으로써 그것의 원인을 보여주려 했다”는 고백에서 이 글의 전체적인 성격을 짐작해볼 수 있었습니다. 좀 더 해석을 가미하면, 미국이 전세계의 패권을 유지하던 기간에 어떠한 정당성을 갖고 다양한 폭력을 수단으로 삼았는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로 인한 수많은 인명피해와 그 외에도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CIA와 미국 정부의 여러 사보타주와 같은 비밀 작전 등에 대한 저자의 비판이 글에 담겨져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미국의 지식인이 이러한 상식적인 태도를 보이며 단순히 집단해석과 같은 수준에 그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물론 미국이 세계 패권에 대한 노골적인 의지가 없었다고 밝히는 지식인들의 존재를 감안하더라도 자국의 안보를 위해 벌여왔던 일들이 어느정도 긍정적인 부분이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기도 합니다. 제가 이러한 입장에 도덕적 면죄부를 주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미국의 패권’이 양가적 측면이 있고, 명백하게 그 명과 암을 함께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을까 싶군요.

일단 여기에 나와 있는 내용들은 2차대전 당시 집단적으로 자행된 일본, 한국, 베트남 등지의 항공 폭격과 냉전 시기, 어느날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었던 핵전쟁의 공포, 냉전시기에 자행된 세계의 독재정부와 비민주 정부에 대한 비윤리적 상황의 지원, 마찬가지로 각종 은폐된 군사 작전 등과 9. 11 테러 이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하며 발생한 수많은 민간인들에 대한 ‘부수적 피해’ 같은 익히 알려진 것부터 민감한 내용들까지 저자는 여러 자료들의 분석을 통해 미국의 어두운 측면이 주된 내용인데요. 그레나다 침공이라든지 쿠바 피그마 침공, 니카라과의 콘트라 반군 지원과 같은 사료들도 빠짐없이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 미소 냉전시기에 소련에 의한 미국의 안보 위험은 대 공산권의 봉쇄와 핵무기 경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봉쇄작전이 현재의 전세계 미국의 패권에 대한 초기 이해로 여겨지고, 그로인한 해외의 미군 기지와 전세계 각지에 파병된 15만의 미군들의 존재가 그렇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9. 11 테러는 미국의 안보에 대한 민감하고 타협할 수 없는 관념을 주지시켰고 그 확장으로서, 네오콘과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 테러 전쟁이 귀결로 나타난거죠. 이러한 안보에 어떠한 타협과 대화는 전혀 필요치 않았고 그러한 전제로 자신들의 이익과 안보를 위해서라면 국제 기구나 협정 같은 공인된 체제를 이용하지 않고 물밑과 비선으로 합법과 비합법을 넘나드는 행태를 보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이러한 과거 미국의 행적을 절대 두둔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우어도 역시 공통된 인식으로 앞서 설명드린 대로 미국 정부가 벌여온 일들로 인한 특히 그 무차별적인 인명피해에 대해 날선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이죠.

이 책을 통해서 또 한번 느끼게 되는 것은 냉전 시기의 미소 핵무기 경쟁이 높은 가능성으로 전 지구적 파멸을 불러일으키는 ‘핵전쟁’으로 비화될 수도 있었고, 오늘날에는 인도와 파키스탄, 이스라엘이 핵무기 선제 사용이 가장 높은 나라들로 이 글에서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핵무기 자체가 전세계에 어떤 안정에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다시금 인식됩니다. 국제기구를 통한 NPT 체제 역시 이러한 안보에 명확한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고, 40여개국 이상이 언제든지 핵무기를 만들 능력이 있다고 보는 저자의 분석은 앞으로 인류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될 과제가 이 핵확산의 위협이 아닐까 판단해봅니다.

글 전체로 봤을 때, 존 다우어의 판단은 여러 안보론자들이나 전문가들이 미국의 패권이 불가피했다는 측면의 주장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시카고대 브루스 커밍스 교수와 비슷한 ‘미국의 패권’에 대한 역사주의적 비판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미국 내의 리버럴이나 보수주의자들 할 것 없이 자신들의 국익을 위한 일정 부분 불가피한 점과 그러한 미국의 활동이 전세계 안보에 부분적으로 도움이 되었다고 여기는 시각과는 분명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과 관련하여, “한국전쟁 자체는 1910년 부터 45년까지의 일본 제국주의 지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민족내의 심각한 분열에사 나왔다” 고 분석하고 이에 미소간의 한반도 분할 점령이 기폭제가 되었다고 보고 있는데요. 한국인들의 민족 분열과 같은 수사는 어디서 많이 접해봤던 익숙한 부분이라 거듭 읽는 내내 적잖이 불쾌하더군요. 물론 이러한 일제 식민지 시기의 한국인들에 대한 인식을 확대해석할 의도는 없지만 일본 근현대사를 연구한 학자 줄신이라는 배경이 무의식적으로 작용되는건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습니다. 약간의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잠시 언급한 것이니 이해를 부탁드려봅니다. 그렇지만 저자의 이런 연구는 충분히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고 여겨집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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