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격의 역사 - 끝나지 않는 대량 학살
아라이 신이치 지음, 윤현명.이승혁 옮김 / 어문학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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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소개해 드리려는 이 책의 저자 아라이 신이치 선생은 도쿄대 출신으로 스루가다이 대학 명예교수인데요. 그는 일본의 전후 책임과 전쟁에 대한 비판을 학자적 양심으로 평생동안 지켜왔습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지난 2017년 10월 11일에 별세했습니다. 일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도 타협하지 않는 양심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리를 빌어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끝나지 않는 대량 학살’이라는 부제를 갖고 있는 이 책은 일종의 전쟁사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양차 대전과 스페인 내전,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략 등의 배경으로 자행된 항공기에 의한 무분별한 폭격에 관한 신랄한 비판적 기록이라고 여겨집니다. 특히 군인이 아닌 민간인들의 무고한 희생에 따른 비윤리적 폭격이 어떠한 식으로 각국의 결정권자들로부터 군 수뇌부까지 이뤄졌는지 과정 또한 상세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일단 결론적으로 평가를 내린다면 ‘전쟁 상황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의도되고 계획된 민간인 다수에 대한 일종의 폭격과 같은 도살행위는 정당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의견이 타당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여기 글들을 읽으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몇가지 사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스페인 내전에서 독일과 이탈리아의 폭격 및 독가스 살포와 2차대전 당시 주축국이었던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무력으로 병합하는 과정에서도 사용된 독가스와 소이탄 등 유럽의 (자신들이 스스로 지칭하는) 문명국들이 상대방에게는 직접적으로 반격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민간인에 대한 살상을 자제하는 것으로 무언의 합의를 결정지었다면, 그렇지 않은 비문명국의 민간인들에 대한 무차별 살상은 전혀 거리낄 필요가 없다는 의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사례들이 앞에서 언급한 몇가지 말고도 추가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론에도 불구하고 저자 또한 글 중간에서 언급했다시피, 제1차 및 2차 세계대전은 그 특성상 민간인들의 노동력과 집중력까지 포함한 총력전의 형태였고, 미국과 영국의 수뇌부 뿐만 아니라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 등에서도 적성국 정부의 전쟁 의지를 꺾기 위해서 또한 효과적인 공업 시설과 전쟁 물자 차단을 위해서 항공기 폭격을 아주 적극적으로 사용해 왔습니다. 이 양자간의 치열한 전쟁 행위내에서 승리 수단의 적극적 고려와 이 수반된 행위로 인해 서로간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비윤리적 및 비도덕적 운운이 그 자체로 불행한 일이겠지만 상당히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로지 종전을 쟁취하기 위해 행해졌던 많은 수단들이 전쟁상황에서 미치는 여파를 사전적인 비판으로 해석하기에는 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항공기와 여러 군수 물자 생산에 종사하는 민간인들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그 일차적인 판단으로는 비윤리적이나 전략적인 측면에서는 심각히 고려해야만 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던 것만큼 좀 더 면밀한 전쟁사 연구가 필요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포인트로 생각한 2차대전 당시 미국에 의한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원폭 투하와 도쿄 대공습과 관련해 이 일본인 학자는 미국의 법적 책임에 관해 논하고 있는데요. 이와 관련해서도 1941년 일본 제국에 의한 진주만 습격과 일본에 대한 미국의 참전과 그 전쟁 수행에서 발생된 일왕과 일본 제국 수뇌부가 오키나와 방어전 등에서 민간인들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동원한 것을 봤을 때 일본 정부 차원에서 민간인 희생 운운하는 것은 뭔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반자이 어택’이라고 불리우는 일본 대본영의 전투상의 방침인 일본군의 절멸 공격은 미국과 일본의 군인들의 막대한 피해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았고, 이러한 측면에서 미국이 원자탄을 사용한 것은 완벽하게 악의 행위라기 보다는 수단의 대체가 희박한 어쩔 수 없었던 일면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상황을 전쟁 상황에서 전부 고려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기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고 어찌됐든 자국의 희생을 최소화하려는 의지를 보일 수 밖에 없는 양측의 전쟁 수뇌부들의 입장을 고려했을 때, 단순한 차원의 해석은 사건을 충분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오늘날에도 일본 내부에서는 자신들이 비윤리적 원폭 투하를 당한 희생자 내지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서슴없이 하고 있는데요. 정말로 원폭과 도쿄 공습 등으로 희생된 희생자들을 제대로 평가하고 추모하고 싶다면 일단 주변 민족들의 희생을 하잘것 없는 것으로 치부했던 ‘대동아공영’과 ‘태평양전쟁’에 대한 일본 정부 차원의 명확한 태도 표명과 진솔한 사과를 보이고 나서 국제 사회에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먼저 선행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전쟁으로 인한 가족들과 지인들의 희생을 입은 일본 국민들도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에게 법적 책임 운운하기 이전에 ‘비겁하고 지저분한 전쟁’을 수행했던 당시 일본 내각과 일왕에 대한 비판과 마땅한 처분을 요구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것은 지금까지도 중국의 난징 대학살과 위안부 문제 등의 2차대전의 종전이 반세기가 넘었음에도 해결되지 않는 역사 문제와 이런것들은 일단 부정하고 넘어가는 식으로 국체의 손상을 가하지 않는 것이 일본의 이익이라고 여기는 일본 정부의 몰염치부터 수정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약간의 번외지만 미국 정부와 영국 정부는 원자탄이 개발되는 즉시 신속하게 일본에 투하한다는 비밀 협약인 하이드파크 협정이 나오는데요. 전후과정을 고려해 봤을때, 미국과 영국은 종전 이후 사실상 소련의 견제를 전제했던 것 같습니다. 냉전은 아마도 예상보다 빨리 더 예정되어 있던 게 아닌가 곁가지로 추측해봅니다.

(끝으로 제가 구입한 책의 2페이지 정도가 통째로 누락되어 있었는데 추측하기로는 출간된 책 거의 전부가 이런 상태가 아닐까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찢겨지거나 잘라진 티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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