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수정주의 사고의 프런티어 1
다카하시 데쓰야 지음, 김성혜 옮김,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기획 / 푸른역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지난 2013년 국내에 출간되어 저역시 인상깊게 읽었던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 의 저자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의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를 이론적으로 분석 비판한 ‘역사/수정주의’를 접했는데요. 이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는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과 그 이후의 전후책임에 대한 명백한 책임의식을 갖고 있는 지식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일개 개인으로서도 요즘 일본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죄인의 자식 취급을 받아들이지는 않겠다는 취지로 2차 대전 당시 독일에 의한 홀로코스트를 부정한 독일인 에른스트 춘델을 먼저 소개하고 있는데요. 그는 캐나다에서 머물다 독일에 신병이 인도된 이후로 징역 5년의 구형을 받았고, 아직도 독일을 비롯한 몇몇 국가에서는 이러한 홀로코스트 부정과 관련해서 양심과 사상의 자유보다 우선해 중형의 판단을 내리고 있다고 또 밝히고 있는데요. 예를들어 난징대학살과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현재의 일본의 상황을 비춰보면 이 전후 역사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어떻게 다른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일본 법정은 위안부가 관련된 한국측의 여성 단체에 의한 이의제기에 일본 정부 스스로 법적 책임을 스스로 부인하고 있고, 사법 당국은 고소, 고발장의 접수조차 거부하고 있는 현실은 저같은 일개 한국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에 저자는 오늘날 일본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와 같은 역사 수정주의적 입장에 대해 여러 이론적 측면에서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비판을 가하고 있는데요. ‘오욕의 기억을 유지하며 그것을 계속 부끄러워하는 일은 그 전쟁이 침략전쟁이었다는 판단에서 귀결되는 모든 책임을 망각하지 않겠다’는 일본의 전후세대들의 양심이 필요하며, 이런 전후세대들에게는 전후책임을 완수하게 만들 책임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역사의 서사적인 기술적 방법으로 각각의 역사를 받아들이는 ‘이야기적 수사’에 대한 비판적 입장과 말할 수 없는 것을 다시 말하자는 일종의 일본 전후 역사에 대한 실제적 사실들을 일반 일본인들이 받아들이고 ‘이야기’해야만 한다고 꼬집어 밝히고 있습니다.

일본인들 자신이 전후에도 끊임없이 주변국 국민들이 말하는 일본의 책임에 대해 이전의 조상들이 벌인 일들에 대해 명확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것을 ‘기억의 되물림’을 통해 후세대들에게도 기억시키게 하는 것으로 사과와 인정 및 기억을 통해야만 이러한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들이 종결될 것이라고 다카하시 교수는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일본 국민들 사이의 이런 공감대가 형성이 되어야 정치권이 더이상 역사 수정주의적 입장을 국체로 여기는 행위가 근절될 것이라 여기는 듯 한데, 개인적으로는 지극히 온당한 주장들이지만 실제로 많은 일본 국민들이 한국과 중국의 ‘사과요구’에 어처구니 없게도 피로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고 동아시아 내에 커지고 있는 중국의 세력 확대에
두려움과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아 단순히 전후의 역사 문제가 역사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기란 어려운 현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다만, 3장에서 짧게 언급되고 있는 ‘도쿄재판’과 관련해서는 당시에 일본 일왕의 책임과 전범들의 죄값이 졸속으로 처리되어 오늘날 독일과 같은 책임의식을 일본인들에게 각인시키지 못했으며, 오히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 도쿄 공습과 같은 희생자들을 배경으로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인식적 결과를 가져오게 만든 것은 그것 자체가 모순된 행위이지만 일본내에서는 이미 거듭 재생산되고 있는 것은 또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저자도 이와 관련하여, ‘조선 침략 이래 적어도 70년에 이르는 일본의 아시아 침략의 귀결이었다는 점에서 아시아에 대한 가해 책임을 지지 않고서는 피폭 피해를 호소해도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한다’고 동일한 취지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결국 제가 이 책을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단순히 역사 수정주의적 역사 개변의 입정 뿐만 아니라 가해자/피해자, 이해/몰이해 등과 같은 양자 모순적인 해석까지 곁들여지고 있는 것이 일본인들은 과거의 역사를 단절시키고 현재의 표면화된 ‘번영의 일본’만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동아공영과 태평양 전쟁으로 희생된 2천만의 아시아인들 중의 한 가지로서 이러한 이웃을 두고 ‘교린’이라는 것을 입에 담아야 한다니 저로서도 이런 인식의 결과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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