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의 위기 - 국제관계연구 입문
E. H. 카 지음, 김태현 옮김 / 녹문당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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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나라 출판계에 수많은 판본으로 무수히 출간된 ‘역사란 무엇인가’의 E.H. 카의 초창기 국제정치학의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 받는 ‘20년의 위기’를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하는 망설임과 함께 읽기 시작했는데요. 이 ‘20년의 위기’는 녹문당에서 2017년에 국내에 번역 출간을 했습니다. 다만 제 먼 기억으로는 1990년대 헌책방에서 이 20년의 위기를 우연히 접했던 것 같습니다. 상성당과 현대 판본으로 기억이 나기도 하는데요. 당시에 일본 판본을 판권없이 무단 번역 출판하는 것이 뭐 일종의 관례였으니 그런것과 아예 무관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은데요. 하여튼 저는 일찍이 일본 번역판이라도 접해볼 기회가 있었으나 당시에는 이 책에 별 관심이 없어 늦게나마 이렇게 이 곳을 통해 리뷰라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구입은 제법 되었는데요. 대략 3분의 1 정도 먼저 읽고 중간에 다른 일로 덮었다가 토요일 하루 아예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을 했습니다. 오늘날 국제정치학 분야를 본격적으로 학문 문대에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 한스 모겐소 역시 그의 여러 글에서 이 ‘20년의 위기’를 인용하기도 했는데요. 그만큼 국제정치라는 속성과 분석을 그 시대상과 연계해 제법 훌륭히 접목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지정학의 포로들’에서 저자는 제1차 세계대전의 위기가 당시 만연된 정치적 이상주의의 분위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는데요. 여기 카의 언급대로 아마도 19세기의 놀라운 자유주의적 분위기가 제 1,2차 양대전의 원인이 아니었나 저 개인적으로는 추측해보는데요. 거기에다 2차대전은 1차대전 당시의 결과로 학습한 무참한 살육 전쟁에 대한 공포, 영국의 체임벌린 등과 같은 당시 서유럽의 정치인들이 히틀러의 장담을 너무 순진하게 믿은 탓일 것입니다. 아니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랬을 수도 있겠죠.

바로 그러한 대전의 원인처럼 현실 국제 정치에서 이상주의적 태도를 제거하는 것으로 시작해 아주 완벽한 현실주의적 해법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통해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양 측면의 비교 분석과 그것을 통해 좀 더 현실의 부합되는 면밀한 결과를 도출시키고 있습니다. 즉, 국제 정치가 힘의 논리에 지배되고 있다는 것과 항상 강대국의 정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체가 합리적이라는 이상주의가 현실의 국제 정치와는 맞지 않는 것이고, 절대적 기준을 수립하는 일에 아무리 열심인 이상주의자라도 자국의 정부가 세계의 이익을 자국의 이익에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고 카는 주장합니다.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4장과 5장, 6장은 앞서 설명드린 대로 이상주의의 대척점인 현실주의도 몇가지 결점을 갖고 있는데, 국제 정치 무대의 각각의 개별적 주체들의 이익이 서로 일종의 ‘이익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고 이익 조화라는 사상은 특권 집단들이 그들의 지배적 지위를 정당화하고 유지하기 위해 주장하는 탁월한 도덕적 장치인데, 이처럼 국제 정치 자체에서 도덕적 주장을 관철시키거나 그 원칙적 입장을 이해시키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며 이른바 허울 좋은 명분으로써, 강대국들에 의해 적절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정치가들이 인정하듯 국내외 문제를 막론하고 특정한 이익에 대해 도덕적 원칙의 옷을 입힐 필요가 있는데 그러한 필요성이야 말로 현실주의가 실제로 맞지 않는다는 증거일 겁니다. 즉 오늘날 미국이 세계에 대한 자국의 패권 정당성을 민주주의 체제의 확대로 삼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특히 강대국의 이익에는 적당한 도덕적 이상이 덧대어져 있고 이 자체로만 봤을 때는 현실주의적 이론이 부정되는 상황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 이 책의 3부인 7장과 8장 및 9장은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정치와 권력, 그리고 도덕에 대해 이론적으로 열거하며 이것을 국제 정치와 관련하여 설명하고 있는데요. 정치와 권력은 서로 밀접하고 권력을 도덕과 조화시키거나 정치현실에서 권력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카는 언급하고 역시 이 딜레마를 완벽히 해소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딜레마를 4부인 법과 변경에서 국제 정치에서의 법의 역할로 다소 나마 질서와 규칙을 세울 수 있을지 않을까 싶은데요. 국가간의 조약이나 협정 혹은 국제 협약의 형태의 그러한 법적인 문제들은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민족은 마땅하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이유가 있으면 조약을 엄숙히 공식적으로 폐기할 권리를 당연히 보유한다”고 천명했지만 이것 역시 모든 나라의 권리는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불평등 조약이나 강박에 의한 조약들 역시 거부할 수 있는 도덕적 권한을 인정하는 경향도 있다고 보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거부할 수 있는 권리는 매우 상대적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대한제국과 일본과의 강제 합병 조약을 스스로 거부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죠. 그 기본적 이론들과 현실적 상황과 이해는 매우 입장이 상이하므로 이것을 최대한 교차점을 찾거나 하는 것은 명백한 딜레마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처럼 오늘날 국제 정치 현실과 점목시켜 본다면, 일정 수준의 군사력과 경제력이 수반되는 국가들만이 자신들의 이익을 그나마 주장이라도 할 수 있고, 이상주의나 현실주의 어느 한쪽의 이론으로만 국제 정치 전반을 해석하거나 평가할 수 없으며, 이러한 일종의 국제 정치적 무정부 상태를 다소 완화시키기 위해 법과 규칙의 원칙이 필요하지만 그것 또한 현실적으로 명백하게 돌아가기는 어렵다는 것이 사실상 결론일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국제 정치학에서 말하는 많은 이론들이 이러한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고, 국력의 차이에서 오는 각각의 행위자들의 배경을 무시하기 어렵고 그러한 힘의 논리를 비도적적이라고 매도할 수 없는 것이 베르사유체제의 시기부터 오늘날의 현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간의 이성적인 측면이 항상 올바른 사회의 일면을 답보하는 것이 아닌것 만큼 국제 정치에서 힘의 논리에 기반한 인식과 그러한 배타적 국가 이익을 추구하는 강대국의 행태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기란 어렵습니다. 세계 정치에서 법의 지배를 요구하는 것은 그만큼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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