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과 집단기억 RICH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총서 11
아키코 다케나카 지음, 박찬승 엮음,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기획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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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가 기획하고 한양대 사회학과 박찬승 교수가 한국을 비롯한 미국, 일본, 중국 등 2차대전의 공통된 주제로 당시 시대 상황을 겪고 또 후세대에 되물림이 되었던 소위 ‘집단기억’에 관한 아주 의미있는 글들로 엮은 이 책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세계 1,2차 양차대전에 관한 전쟁사론에 대해 관심이 있어 몇몇 관련 책들을 구해 읽어보기도 했는데요. 다만 이 책은 전쟁을 겪은 세대와 그 이후의 사회에서 그 기억들이 어떻게 ‘집단기억’의 형태로 남게 되는지에 대해 독자들에게 폭넓은 이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집단기억’이란 한 집단이 상징적 기호와 행위를 통해 가지는 특수한 기억이라 정의하고 있는데요.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의 측면이 아니라 2차대전 당시 전쟁을 통해 적지 않은 처참한 기억을 체험한 민족과 국가들사이에는 그 소속에의 특수한 기억들이 공통된 현상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세대를 초월해 이러한 기억이 학습되고 때론 구전되어 당시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이후의 후세대들도 그러한 전쟁의 기억을 자연스럽게 얻게됩니다. 다행히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 독자들은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미국, 독일, 영국 등의 그 밀도의 차이는 있지만 각각의 ‘집단기억’이 어떤 형태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는데요. 저는 특히 일본의 2차대전에 대한 집단기억에 관한 미국 켄터키대학교 역사학부 아키코 다케나카 교수의 글이 눈에 띄었습니다. 현재의 일본 내의 역사수정의 움직임과 관련된 해석을 담은 이 다케나카 교수의 글은 그가 일본 내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면 글로 나오기 어렵지 않았을까 추측이 들었는데요. 일본인들이 보기에는 절로 긍정하기 힘들거라고 여겨지고, 이러한 배경에는 아마도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을 하지 않는 일본의 역사 교육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오늘날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적 문제는 여러가지 상황이 혼합된 부조리한 결과라고 생각하는데요. 서구 제국주의에 맞서 일본을 중심으로 대동아공영권이 구축되어 대항했고, 거기에 참여했던 많은 민족들이 일본인들과 비슷한 입장이었다고 자위적으로 해석하고, 이에 진주만 습격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당위적으로 받아들이며, 도쿄 대공습과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이르는 일본 민간인들의 대량 희생들로 피해자 인식을 각인시켜, 난징대학살과 위안부 문제 등을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죠. 종전 이후에 미소간의 이념 대립이 점차 노골화 되면서 일본 자체가 전략적으로 중요해짐에 따라 당시 미국 정부와 군부에서 주축국이었던 일본의 죄과의 범위를 수정하고, 급격하게 일본을 보통국가화로 진행한 것도 이러한 왜곡주의적 현상에 원치않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2015년 아베의 종전 담화는 이 모든것을 담고 있습니다. 원래는 무라야마 및 고노 담화를 무력화 시켜 자신이 그토록 강조하던 ‘자학사관’을 극복하려고 했는데, 당시 워싱턴의 압력이 무시못할 수준이라 아베는 대상과 행태를 모호하게 갖고 가면서 피해를 입힌 행위와 사과에 대해서도 아주 적당하게 대처해 대내외적으로 비난을 받은 바 있습니다. 다케나카 교수는 이런 측면의 역사수정의적 입장이 피해자적 역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일본 헌법 9조의 존재는 그들의 과거 침략의 그림자를 묵인하고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며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자로 가치 전도시키고 이를 기존의 선명한 역사를 ‘자학사관’으로 규정해 도합 2천만이 희생된 태평양 전쟁과 대동아 공영의 피의 결과를 완벽하게 부정하는 것입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이스라엘 총리가 보는 앞에서 홀로코스트에 대한 독일의 책임을 최소화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거부한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습니다. 여기에 글로 인용된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 사학과 피터 프리체 교수는 독일인들의 전후 체제와 나치가 자행한 유대인들에 대한 인종말살의 증거들로 유대인에 대한 박해와 살해같은 혼란스러운 기억을 관리하려는 바로 그 노력을 통해 그러한 관리가 궁극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고 언급하고 있는데요. 이 독일인들의 사례는 과거 인간의 역사들중에 생생하게 남아 그것을 부정하고 외면하는 것이 얼마나 인간의 이성으로써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비슷한 사례가 될지는 르겠지만 미국 내에서 점차 희미해지는 태평양 전쟁에 대한 글을 쓴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역사학부 부교수인 커트 피엘러는 태평양 전쟁 시기 캘리포니아 주 등에서 미국 시민권과 영주권을 갖고 있는 일본인들을 간첩행위 문제 등으로 강제 수용소에 대량 수용한 역사를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보고 있는데요. 물론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 내에서 태평양 전쟁에 대한 기억이 노르망디를 비롯한 유럽 전선의 참전 보다 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일본과의 동맹 관계 때문에 가급적 간소하고 조용히 보내고자 하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미국인들조차도 위법한 일본인들의 강제 수용과 관련해 솔직한 평가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당시 일본인들에 대한 인종 차별과 관련해서도 대체로 숨김없이 역사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요. 중국이 장제쓰 국민당 시절의 항일 투쟁을 무위로 만드는 것이나 구 소련 시절의 수많은 민간인 희생들을 당면한 어쩔 수 없는 결과로 치부하고 오로지 정권의 합리화에 이용하는 것은 역사 문제에 이념과 정치가 결부되면 그것이 또 집단기억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겠죠.

일독을 하고 나서 드는 생각은 많은 분들께서 이 책의 제2장의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적 입장에 대한 배경과 그 이해를 다룬 글을 접해보셨으면 한다는 점입니다. 이 글과 관련해서 작년에 국내에 출간된 시라이 사토시의 ‘영속패전론’도 꽤 훌륭한 글이지만 아키코 다케나카 교수의 이 글도 같이 중요한 글이라 여겨집니다.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지도 않으면서 앞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에 같이 공동 대처하자고 뻔뻔하게 또한 한국은 너무 중국에 경사되어 있다고 자기들 입으로 거리낌없이 말하는 다수의 일본 지식인들을 보면 제 짧은 머리로 이 일본인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기란 문득 어려운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우리를 비롯한 참혹한 2차대전을 겪은 몇개의 민족과 국가들의 각기 다른 기억의 입장과 해석은 달리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군요. 각각 상이한 종전의 기억이 정치 논리화 되고 이념화 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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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아 2018-04-02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조된 기억으로 집단적으로 반복 학습하는 일본, 네, 저도 꼭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글 진심으로 감사히 읽고 갑니다~

베터라이프 2018-04-02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리아님/ 제가 짧게 요약해 많이 빼먹은 내용들보다 더 유익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오늘날 전방위적인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는 실로 심각한 상황 같습니다. 하여튼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