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디아 드 람의 [중력이라는 아름다움]의 원제는 추락의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The Beauty of Falling]이다. 저자가 말하는 바는 실패하고 넘어지는 것(Falling)이야말로 결국 새로운 발견과 도약의 발판이 된다는 중의적인 위로 차원의 말이다. 우리는 흔히 '떨어지는 것(Falling)'을 실패나 두려움, 위험과 연결 짓지만 지구가 잡아당기는 힘에 온전히 몸을 맡기고 떨어지는 그 순간의 '무중력 상태'와 자유로움에 집중하며 추락 그 자체가 가진 순수한 아름다움을 느껴보라고 말하는 저자는 우주비행사 후보에서 탈락한 개인적 좌절은 물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조차 블랙홀 같은 한계점에서는 무너진다는 과학적 사실을 언급한다.

 

이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오늘날 대부분의 이론 물리학자들이 고민하는 것은 일반 상대성이론이 실패할지, 실패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지가 아니라 그 다음에 등장할 이론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AI에 물어보니 세 가지를 든다. 1) 루프양자중력이론, 2) 끈이론, 3) 질량이 있는 중력자(重力子) 이론이다.

 

클라우디아 드 람은 질량이 있는 중력자 이론 연구자다. 물리 자체가 쉽지 않은 분야인데 일반 상대성이론 다음의 이론이라니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지난 15일 루프양자중력이론을 연구하는 카를로 로벨리가 쓴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를 읽고 쓴 글자 수만 10000자인 내 서평을 읽고 구매에 도움을 받은 사람이 thanks to 버튼을 눌러 책 값의 1%에 해당하는 180원이 서평 작성자인 내게 적립된 이래 오늘 같은 책을 읽은 또 다른 분이 thanks to 버튼을 눌러 180원이 적립 되었다.

 

10000자나 되는 서평이고, 가장 앞서가는 물리학 분야의 책을 일주일 사이에 두 사람이나 구매하며 서평자인 내게 thanks to 버튼을 누른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클라우디아 드 람의 책을 읽은 후 구입해 둔 카를로 로벨리의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읽게 될 것이다. 올해는 물리학 책을 많이 읽은 해로 기록될 것이다. 어려운 부분은 다시 생각하고, 다른 책이나 유튜브 영상을 통해 알고자 한다.

 

올해 읽은 물리학 책 중 리언 레더먼과 크리스토퍼 힐의 [시인을 위한 양자 물리학]을 빼놓을 수 없다. E=mc²은 에너지와 질량이 등가라는 뜻이 아니라 멈추어 있고 질량이 m인 입자는 E=mc²을 만족시키는 에너지 E도 가지고 있다는 의미라는 글이 본문에 나온다. 아인슈타인이 특수 상대성이론에서 유도한 공식의 진짜 이름은 정지 에너지 공식으로 만일 두 개념이 완전히 같은 뜻(등가)이라면 질량이 없는 곳에는 에너지도 없어야 하는데 빛(광자)은 질량이 0이지만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두 저자의 설명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운동량과 위치의 관계만으로 생각하다가 시간과 에너지도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았다. 한쪽이 정밀해지면 다른 한쪽은 반드시 불확정해지는 두 물리량의 쌍을 양자역학에서는 정규 공액 변수(Canonical conjugate variables)라고 한다고 한다.

 

레로이 W. 두벡(Leroy W. Dubeck) 교수가 [과학, 영화와 만나다]에서 한 다음의 말도 새롭게 다가온 부분이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미래로부터 추가의 물질이 갑자기 과거로 더해지기 때문에 에너지 보존에 위배된다. 과거가 물질의 형태로 에너지를 얻으면 미래는 그만큼 에너지를 잃는다. 간단히 말하여 지금까지 알려진 과학과 논리의 지식에 근거하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불가능하다.“

 

일반적으로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불가능함을 예로 들 때 할아버지의 역설 같은 인과율의 오류를 들지만 우주 전체의 질량과 에너지의 총량이 변한다는 물리법칙을 예로 든 것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시인을 위한 양자 물리학]을 통해서 알게 된 디랙의 바다(Dirac sea)라는 개념도 흥미롭다. 디랙의 바다는 1930년 폴 디랙(Paul Dirac)이 이론으로 우주의 진공 상태가 사실은 음(-)의 에너지 상태를 가진 전자들로 가득 차 있다는 가설이다. 이 이론은 현대 물리학에서 반물질(Antimatter)의 존재를 예측하고 증명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물리학자 마이클 길렌의 [믿음 없는 과학은 존재하지 않는다]도 빼놓을 수 없다. 파란곡절의 여정을 거쳐 무신론자였던 저자가 기독교의 진리를 받아들인 뒤 과학으로 신앙을 해명하는 방식이 인상적인 책이다. 클라우디아 드 람의 [중력이라는 아름다움]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구절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다.

 

“휘어진 실재를 따로 가로지르는 직선은 항상 가장 직접적인 경로다. 행성의 관점에서 보나, 지구에 사는 우리 자신의 관점에서 보나 태양계를 자유롭게 항해하는 모든 것은 자신만의 직선 경로를 따라 멈추지도 미끄러지지도 방향을 바꾸지도 않은 채 곧장 나아간다. 태양계가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가 이 행성에 태어난 순간부터 곡선 공간 속에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은 이 휘어진 공간 속의 직선 하나뿐이다.”

 

단지 더 깊은 이해를 위한 개인 차원의 공부이지만 물리학 책들, 지구과학 책들, 철학 책들을 읽는 지금의 내 움직임을 휘어진 공간 속의 직선을 묵묵히 걷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물리학이라는 거대한 지성(질량)이 만들어낸 시공간의 왜곡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그 중심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난해하고 고독한 곡선으로 보일지라도 지적 호기심을 따르는 이 길은 의무나 강제가 아니라 가장 저항이 적고 자연스러운 나만의 직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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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없는 과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이클 길렌 지음, 김홍빈 옮김 / 야다북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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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길렌(Michael Guillen; 1959 - )의 [믿음 없는 과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물리학 중심의 과학 지식으로 기독교라는 종교와 신앙, 진리와 지능의 관계를 다룬 최고의 책이다. 원제는 믿어야 보인다는 의미의 [Believing is Seeing]란 제목의 책이다. 코넬대학교에서 물리학, 수학, 천문학 분야의 통합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물리학자이자 수학자, 천문학자, 그리고 기독교인“인 자신은 ”과학적 방법과 성경, 이성과 신앙, 우주와 하나님을 모두 포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한다.

 

저자는 믿음을 우주 안팎의 모든 것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관계 맺을지를 결정하는 것으로 본다. 그가 보는 믿음이란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렇듯 저자는 믿어야 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런 주장을 신뢰하게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문장이다. “무언가가 사실일 수도 있다고 믿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직접 조사해 보거나 확인해 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79, 80 페이지)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엄격한 오순절 계통의 가정에서 자란 저자는 어려서부터 조금씩 과학적 세계관을 흡수한 결과 UCLA를 졸업한 무렵 과학과 무신론의 세계에 푹 빠져 살며 그 둘(과학과 무신론)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이 책은 몇 가지 점에서 특별하다. 1) 무신론자가 주장하는 자유로운 생각들도 모두 증명할 수 없는 몇 가지 가정들에 근거한다고 주장하기(21 페이지) 때문이며, 2) 무신론적 세계관이 과학적 세계관과 반대되며 오히려 기독교적 세계관이 본질적으로 과학적 세계관과 어울린다고 주장하기(81 페이지) 때문이다.

 

저자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과학에서조차 우리가 볼 수 있는 것 즉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우주에 존재하는 것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에 따라 자신의 세계관에 큰 도전을 받게 되었다고 말한다.(37, 38 페이지) 우주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보통 물질은 약 4.9%, 암흑에너지는 약 68.3%, 암흑 물질은 약 26.8%를 차지한다.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는 반대 역할을 한다. 암흑물질은 강한 중력을 행사해 은하가 흩어지지 않고 형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암흑에너지는 우주 공간 자체를 밀어내어 우주가 점점 더 빠르게 원리적으로 밀려나도록 만드는 가속 팽창의 원동력(척력 또는 반중력)으로 작용한다.

 

저자의 행보에 주요한 계기로 작용한 인물이 현재의 아내인 로렐이다. ‘시인을 위한 물리학’이란 수업의 학부생이었던 로렐의 제의로 저자는 함께 성경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저자가 아무 의미도 없다고 생각한 성경을 읽게 된 것은 책 자체 때문이 아니라 로렐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였다.(56 페이지) 신약성경을 읽어가는 동안 양자(量子)물리학을 생각하게 된 저자는 신약성경이 논리적이지 않은 만큼 양자물리학 역시 논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양자물리학은 분자, 원자, 전자와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 세계의 불연속적 에너지와 입자들의 기묘한 움직임을 다루는 학문이다. 저자는 양자물리학이 논리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말도 안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근거해 신약성경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후 그것이 자신을 어디로 이끄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저자가 신약성경에 비논리적인 면이 있다고 본 것은 1) 악질 중의 악질 죄인이라 해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 2) 친구 뿐 아니라 원수도 사랑해야 한다는 말, 3)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 4) 참으로 살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는 말, 5) 강자가 아니라 온순한 사람이 세상을 다스린다는 말 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저자는 양자물리학을 공부하며 기존의 논리와 초논리적(超論理的) 사고의 엄청난 차이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통상적인 사고는 우리를 자명한 진리로 이끈다. 자명한 진리의 반대는 항상 거짓이다. 초논리적 사고는 우리를 심오한 진리로 이끈다. 심오한 진리의 반대 역시 사실이다.’(60 페이지) 물론 저자가 양자물리학과 신약성경을 초논리적 사고의 두 가지 강력한 사례로 보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생각이 그의 무신론에 흠집을 낼 만큼 충분하지는 않았다.

 

저자는 진리는 증명보다 크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이는 “한 이론의 진리 여부는 결코 증명될 수 없다. 왜냐하면 미래의 어느 날 누군가 그 결론과 모순되는 것을 경험하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말로도 뒷받침된다. [믿음 없는 과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많은 물리학자들, 수학자들의 이론을 접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책이기도 하다. 아인슈타인은 물론 리 스몰린, 마틴 리스, 숀 캐럴, 스티븐 와인버그, 브라이언 그린(이상 물리학자), 사비네 호센펠더, 모리스 클라인, 존 배로, 유진 위그너(수학자) 등이 그들이다.

 

이 가운데 [여섯 개의 수]라는 책의 저자인 마틴 리스의 경우를 보자. 리스가 든 여섯 개의 물리 상수(常數)는 N(뉴턴; 우주의 중력 크기), ε(엡실론; 원자핵 결합력), Ω(오메가; 암흑 물질과 우주의 밀도), λ(람다; 우주상수), Q(Quadrupole; 우주의 생산력/불균일도), D(디멘션; 우주의 공간 차원 수) 등이다. 이는 우리 우주가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도록 절묘하게 미세 조정(Fine-tuning)되었으며 값이 조금만 달랐어도 지금과 같은 우주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마틴 리스는 이런 조율이 그저 맹목적인 우연도, 인자한 신의 섭리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인류는 오직 올바르게 조합된 우주에서만 출현할 수 있었을 것이기에 인류가 현재 얼마나 귀한 상황에 있는지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가령 수소가 융합해 헬륨이 될 때 질량의 몇 %가 에너지로 바뀌는지를 나타내는 ε(엡실론; 원자핵 결합력)의 경우 그것이 0.007%가 아닌 0.006이었다면(10만 분의 1 정도만 작았다 해도) 수소 외에 다른 원소가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고, 0.008이었다면(10만 분의 1 정도만 컸어도) 빅뱅 직후 모든 수소가 헬륨으로 바뀌어 물(H₂O)이나 별의 연료가 될 수소가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은 어떤가.

 

초기 우주에 존재했던 물질 분포의 미세한 주름(밀도 요동)의 크기를 나타내는 Q(우주의 생산력/불균일도)의 경우 약 10⁻⁵보다 작았다면 물질들이 중력으로 뭉치지 못해 은하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이보다 컸다면 우주는 거대한 블랙홀들로 가득 차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거친 환경이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또 어떤가. 이들만 보더라도 기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빛은 입자이자 파동이라는 양자물리학의 주요 정의와, 예수님은 필멸자(인간)이자 불멸자(신)라는 설명을 나란히 놓는다. 또한 모든 색상의 빛(레드, 그린, 블루)을 더하면 흰색이 되는 과학의 진리와, 빛이신 하나님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다는 기독교의 정의를 나란히 놓는다. 저자는 시간을 창조한 ‘시간 초월자’인 하나님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이 없다는 점에서 “나는 나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99 페이지) 저자의 이 정의는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기에 “나는 나다“라고 설명하는 전통 방식과 다른 참신하고 독특한 해석이다.

 

저자는 기독교적 세계관이 자신의 질문에 가장 잘 대답하고, 기독교적 세계관이 과학적 세계관과 가장 잘 어울리기 때문에 기독교적 세계관을 택한 결과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기독교인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103 페이지) 저자는 지능지수(IQ; intelligent quotient)와 영적지수(SQ; spiritual quotient)를 함께 갖추는 것을 시너지 효과를 내는 3D 안경으로 세상을 보는 것에 비유한다. 이 3차원 렌즈를 이용할 때 우리는 깊이와 의미를 인식하면서 우주의 물리적인 동시에 영적인 웅장함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대단히 도약적이지만 근거가 충분하다.

 

저자는 이와 같은 시각은 우리가 죽어 불멸의 영혼으로서 창조주와 다시 만날 때 얻게 될 특권적인 시각을 미리 맛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며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는 바울의 말을 예시한다.

 

저자는 많은 과학자들이 맹목적인 믿음과 증거에 기반한 믿음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싶어 하지 않거나 알지 못하거나 아예 알기를 거부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과학의 전체 구조 자체가 맹목적인 믿음과 증거에 기반한 믿음이라는 두 개의 기초 위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127 페이지) 저자는 모든 믿음은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에 맞서 믿음을 1) IQ에 기반한 깨달은 믿음, 2) IQ에 기반한 잘못된 믿음, 3) SQ에 기반한 깨달은 믿음, 4) SQ에 기반한 잘못된 믿음의 네 가지로 나눈다.

 

SQ에 기반한 깨달은 믿음으로 저자는 양자 진공(眞空) 및 성경의 하나님을 든다. 인간은 좌뇌형, 우뇌형으로 분류되는 것이 아니라 좌뇌와 우뇌를 모두 온전히 사용한다고(전뇌형이라고) 주장하는 저자는 두 반구(半球)는 거의 정반대이면서 상호 보완적인 두 가지 세계관을 제공한다는 설명을 더한다. 더 설명하면 좌뇌는 세상을 보고, 의식적으로 알고, 언어로 쉽게 묘사할 수 있고 우뇌는 세상을 보지 못하지만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알고 비언어적으로 묘사할 수 있다.(139 페이지) 그렇기에 오직 보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만 믿기로 선택한다면 문자 그대로 반쪽 뇌로 사는 셈이다. 믿어야 보이는 것이다.

 

깨달은 믿음은 뇌의 두 반구가 서로 잘 지내도록 만든다. 저자는 과학도 종교처럼 믿음에 의해 이끌리는 특성이 있다고 말한다.(144 페이지) 그리고 그런 인식의 연장선에서 깨달은 믿음이 과학과 기술의 토대가 되기에 자연의 네 가지 힘(강력, 약력, 전자기력, 중력)보다 강력하다고 결론짓는다.(146 페이지) 저자는 우리 뇌의 두 반구에 본래부터 내장된 자연적 선물인 믿음은 종교뿐 아니라 과학, 자신이 사랑하는 수학, 물리학, 천문학까지 작동시키는 힘인 반면 논리는 아테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고안한 영리한 발명품으로 특정하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사고하는 레시피 같은 것, 믿음을 핵심 재료로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저자에 의하면 믿음이라는 자연적 선물은 논리에 의존하지 않으나 논리라는 발명품은 믿음에 의존하기에 실제로는 믿음이 논리보다 우월하다.(146 페이지) 저자는 오늘날 세속화된 과학적 방법 역시 증거는 있지만 증명은 없는 공리들을 믿도록 요구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과학이 전제로 삼는 세 가지 공리적 믿음을 소개한다. 1) 우주는 설명이 가능하다. 2) 가능한 가장 단순한 설명이 항상 최선이다. 3) 실험이 우주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등이다.

 

저자는 우주의 합리적인 설계자가 있다는 생각이 무한히 많은 숨겨진 우주들이 있다는 생각보다 더 터무니없는 것일까?라고 묻는다. 저자는 아원자 입자를 매우 간접적인 방식으로, 난해한 데이터로부터 추론하는 현실을 보며 그런 문제가 자신이 참여했던 거대한 실험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모든 분야의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설명하려는 현실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고생물학자들은 한 지역에서 발굴된 한 개체의 턱뼈 하나만 가지고 그 종 전체에 대해 전 지구적인 결론을 도출하고 천문학자들은 실제로는 볼 수 없는 외계행성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별의 궤도와 밝기의 미세한 변화를 근거로 외계 생명체의 가능성에 대해 흥분된 주장을 한다.

 

그 별들은 무려 수천 조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 역자주(譯者注)처럼 독자주(讀者注)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암흑에너지 논의도 관측이 아닌 추론의 산물이라는 말이다. 과학자들은 암흑에너지를 눈으로 봐서 믿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중력 법칙이 맞다면, 관측된 우주의 가속 팽창을 설명하기 위해 암흑에너지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고도의 논리적 추론이자, 현재로서는 우주를 설명하는 가장 최선의 모델이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무리 과학자라 해도 완벽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과학자들도 선입견과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그들이 발표한 결론에 필연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론 저자가 구원자로 여기지는 않지만 변함없이 신뢰하는 과학을 구사하고 작동하게 하는 믿음은 IQ와 SQ가 함께 작동하는 깨달은 믿음이다. SQ는 먹고 사는 것과 같은 현안(懸案)인 아닌 문제들을 생각하고 연구하고 음미하게 한다. SQ가 있었기에 과학이 탄생했다.

 

저자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4차원 리만 세계, 기하학적 점, 양자 진공, 가상 입자 등과 같이 난해하면서도 초논리적인 수학 공리와 개념을 바탕으로 한 과학 이론들이 놀라운 성공을 거두어왔다. 저자는 가상 입자들이 아주 짧은 시간 출몰하는 양자장(量子場)을 충분히 세게 튕기면 들을 수 있는 음을 만들어내는 유령 기타 줄 같은 것이라 설명한다.(46 페이지)

 

”경험과 무관하게 인간의 사유가 만들어낸 수학이 현실의 사물에 이렇게도 절묘하게 들어맞을 수 있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185 페이지) 이는 아인슈타인의 감탄이다. 저자의 감탄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중력 방정식을 가장 아름다운 방정식이라 말하는 저자다. 저자는 물리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한때 신을 믿었던 것처럼 양자물리학의 기이한 논리를 믿고 있다고 말한다. 가령 원자, 전자 등이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하는 양자 중첩 현상은 이상한 나라라는 미시 세계 거주자라면 누구나 지닌 일반적인 특성이다.

 

우주의 가장 깊숙한 비밀은 불확실성의 커튼 뒤에 숨겨져 있다. 도로시(오즈의 마법사의)와 같은 물리학은 그 커튼을 절대 걷어낼 수 없으며 우리의 강력한 SQ조차도 그 너머를 제한적으로 엿볼 수 밖에 없다. 저자는 성경 번역본, 해석 등 여러 항목에 관해 기독교인들의 의견이 상당히 엇갈리는 것처럼 양자물리학을 두고도 물리학자들 역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두고 끊임없이 논쟁했고 그 논쟁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한다.(243 페이지)

 

저자는 다른 종교들을 다룰 때처럼 기독교 세계관을 철저하게 파고들 때 편견 없이 열린 마음으로 접근했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신약성경의 핵심과 본질을 판단하려면 그 중심인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냉철하게 시선을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동정녀 탄생이 많은 사람에게 황당하게 들릴 수 있지만 자신에게는 그렇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무엇보다 먼저 만약 성경 속 하나님이 실재하신다면 그 분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행하실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생물학에서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인간의 유전체에는 과거 수많은 세대를 거쳐 우리 종을 감염시킨 수많은 바이러스로부터 유래한 약 10만 개의 DNA 조각이 새겨져 있다고 말한다. 이 고대 바이러스들은 주로 염색체의 중심부에 위치한 동원체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 구조는 놀라울 만큼 복잡하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만약 우리의 염색체가 이렇듯 고대 바이러스의 DNA에 감염되어 있다면 구약성경을 읽어본 바에 따르면 우리는 또 다른 고대의 전염성 병원체 역시 함께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즉 아담과 하와의 반역 정신이라는 바이러스다. 이 오래된 병원체를 기독교인들은 원죄라고 부른다.(259, 260 페이지)

 

저자는 자신의 비좁고 논리 중심적인 세계관으로 인해 참으로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이신 예수. 낮고 천하지만 동시에 하늘에 속한 그 분의 희생적 죽음이라는 모순적이면서도 초논리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마침내 그것을 깨달았을 때 모든 것이 달라졌다. 저자에게 그것은 평생에 걸친 무신론의 끝의 시작이었고 동시에 우주와 생명의 가장 깊은 신비 속으로 뛰어드는 지적, 영적 여정의 시작의 끝을 알리는 것이었다고 말한다.(262 페이지)

 

저자는 자신이 평생 연구해온 장엄하고도 불가해한 별들과 은하들, 퀘이사들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모든 것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이며 또한 그 사랑에 넘치는 그러나 멀리 계신 하나님이 부활하신 예수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덕분에 나와 당신, 그리고 어느 누구라도 그 분을 인격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고 마침내 그 분과 천상의 평화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268 페이지)

 

저자는 고등학교 시절 자신이 예수를 온전히 신뢰하기 위해 SQ보다는 IQ에 지나치게 의존했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를 바울의 말로 풀어낸다. 육(肉)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 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며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고린도전서 2장 14절)이라는 말이다. 저자는 기독교에 대해 무엇을 믿든 바울의 주장을 가볍게 무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적어도 이성적으로는 불합리하다. 자신이 진심으로 믿지 않는 것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독교의 관점으로는 무신론자야말로 가장 속박되어 있으며 가장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라 말한다. 저자는 우리를 붙잡아주는 힘인 강한 핵력을 이루는 쿼크를 떼어내기 위해 가장 강력한 입자 가속기로 원자핵을 폭격했지만 실패했음을 언급하며 이는 무신론자들이 하나님이라는 개념으로부터 벗어나면 진정한 자유 사상가가 될 것이라고 여기는 것과 닮았다고 설명한다. 쿼크는 원자핵 안에 있을 때 가장 자유롭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쿼크는 강력의 근원과의 거리가 제로일 때 가장 자유로운 것이다.(291 페이지) 강력은 중력, 전자기력과 반대로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결합력이 약해진다.

 

이를 점근자유성(漸近自由性)이라 한다. 쿼크는 원자핵의 중심부(양성자나 중성자의 내부)에서 서로 가장 가까이 뭉쳐 있을 때 가장 자유롭다. 강력의 존재는 속박이 아니라 해방이다. 하나님의 임재 역시 속박이 아니라 해방이다. 여기서 결합력이 약해진다는 것은 관계의 단절이나 약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완벽하게 하나가 되었기에 더 이상 나를 억누르는 강제적인 힘이 필요 없어지며 비로소 가장 자유롭고 안전한 상태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볼 수 있고, 증명할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는 것들로만 믿음을 제한하는 것은 결코 자랑할 일이 아니라 말하는 저자는 자신처럼 과학적 성향으로 똘똘 뭉친 사람에게는 성령이 마치 강력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즉 그것은 실재하며 우리는 그것과 매우 밀접하다. 성령은 우리 안 깊숙이 우리 존재를 이루는 쿼크의 가장 깊은 곳까지 숨겨져 있다. 그보다 더 친밀할 수는 없다.

 

저자는 당신의 세계관이 흔히 쓰이는 유행어처럼 증거 기반이라고 하더라도 그 기초에는 증명할 수도, 볼 수도, 심지어 온전히 상상할 수도 없는 공리적 신념들이 놓여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설령 당신의 세계관이 무신론적일지라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308 페이지)

 

저자는 꿈과 소명의 차이를 인상적으로 논한다. 저자는 의도적으로 소명을 찾아나서라고 말한다. 저자의 책에 최근의 핫 이슈인 유신진화론이라는 말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물리학 지식만으로 하나님을 설명한 내공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이 책은 지금껏 내가 읽은 어떤 물리학 책보다 유익하고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어떤 기독교 책보다 영적이면서 설득력이 강한 책이다. 저자는 소명을 찾으려면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 조용히 멈추어 서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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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지질여행
박기화 지음 / 한국지질자원연구원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제주도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2002년), 자연유산(2007년), 세계지질공원(2010년)으로 이름을 알린 곳이다. [제주도 지질여행]은 바로 이 제주도의 다양한 암석 및 지질 상황을 알게 해주는 책이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 제주도가 유네스코 다중지정지역이라는 사실 만큼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 마그마와 화산재가 물과 관계를 맺었는가 아닌가다. 제주도에는 파호이호이 및 아아 용암이 굳은 암석이 모두 존재한다. 현무암질 용암은 폴리네시안 언어에서 유래된 파오이호이 용암 또는 아아 용암으로 구분된다. 이들 용암의 형성은 마그마의 화학 성분상 차이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용암 분출 당시의 온도, 점성, 유속 등과 같은 물리적 조건 및 탈기체화에 수반된 변화, 지표면 경사 등에 의해 좌우된다.

 

파호이호이 용암은 표면이 유리질과 같이 반짝이고 매끄러우며 용암 단위의 상하부에 집중된 기공(氣孔)은 대부분 둥근 형태를 지닌다. 아아 용암은 용광로 슬래그처럼 표면이 거칠고 암괴와 같은 형태의 클링커를 지닌 용암류로서 대개 상하부 경계가 불규칙하며 산화로 인해 적색을 띠는 클린커층을 형성하고 중앙부는 비교적 치밀한 용암 상태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마그마가 물과 만나면 급히 식고 물은 끓게 된다. 이런 냉각 및 가열 반응은 매우 격렬하게 일어나 수증기를 다량 함유한 큰 폭발을 일으키게 된다. 이를 수증기 마그마성 분출 또는 수성 화산활동이라 한다.

 

고온의 마그마가 차가운 물을 만나면 마그마는 작은 반투명한 유리 조각 알갱이로 깨지게 된다. 이런 현상은 뜨거운 유리컵을 찬물에 넣으면 유리컵이 깨지는 현상과 같다. 화산분출에 의해 형성된 응회암은 퇴적암 등의 퇴적 구조에서 관찰되는 평행한 줄무늬 구조인 층리(層理)가 형성되어 있어서 퇴적암처럼 보이기도 한다. 응회암을 구성하고 있는 유리질 파편들은 물리적 성질이 불안정하며 수증기를 흡수하여 안정화되면서 부피가 증가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도 쉽게 단단한 암석이 된다.

 

제주도 작은 화산체인 오름은 주변 지형에 비해 뚜렷이 솟아올라 봉긋한 지형을 가리키는 제주어다. 악(岳), 봉(峰), 산(山)으로도 불린다. 오름은 열하(熱河) 분출과 관련이 깊다. 지각운동으로 인해 마그마와 지표 사이에 생긴 단층(斷層)과 같은 줄 모양의 틈으로 용암이 스멀스멸 대량으로 흘러 나오는 현상을 말한다. 대체로 유동성(流動性)이 큰 현무암질 용암이 그런 분출을 보인다. 열하분출 하다가 마그마의 양이 떨어지면 지표면의 하나의 통로(화도)나 점을 통해 집중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중심분출을 한다.

 

소화산체는 주로 규모가 큰 순상화산 또는 성층화산의 주화도의 측방 이동, 열극(裂隙)을 따라 만들어진 화산이란 의미에서 기생화산이라 불렸으나 최근 연구에 의해 이들이 순상화산과 성층화산의 사면 분화(flank eruption) 활동과 관계없이 현무암질 화산암 지대에서 독립적인 화산체로서도 만들어질 수 있기에 단일 마그마의 분화에 의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화산체라는 의미에서 단성 화산이라 한다.

 

단성 화산에 해당하는 368개의 오름은 대부분 화산 폭발시 분화구에서 뿜어져 나온 화산쇄설물이 화구 주변에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원추형의 작은 화산체인 분석구(噴石丘)이며 그 외 응회구, 응회환, 사발 모양의 화산 분화구인 마르, 방패형 화산 및 용암돔으로 구성된다. 분석구란 분출한 화산쇄설물이 쌓인 언덕을 말한다. 응회환(Tuff Ring)은 마그마가 지하수나 바닷물, 호숫물 등 풍부한 물과 만나 폭발적인 분출을 일으키면서 형성된 나지막한 고리 모양의 수성화산체를 말한다. 정리하면 응회환은 수성 화산체, 분석구는 분화구 주변의 돌언덕을 의미한다.

 

응회구(凝灰丘)는 마그마가 풍부한 물(바닷물, 호숫물 등)과 만나 폭발한 수성 화산체, 분석구는 물 없이 마그마 자체의 가스 압력으로 분출한 육성 화산체다. 응회구란 글자에는 물에 대한 정보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없다. 하지만 화산재 원래 마른 먼지처럼 바람에 쉽게 날아가는 성질을 가진다. 이 화산재가 날아가지 않고 한곳에 단단히 엉겨 붙으려면(凝) 반드시 수분(물)이 필요하다. 마른 모래는 성을 쌓을 수 없지만 물을 섞으면 단단하게 뭉쳐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물이 마그마보다 훨씬 많으면 폭발력이 매우 강력해진다. 물이 순식간에 기화(氣化)하면서 화산재와 파편들을 사방으로 멀리 날려 보내기 때문에 높이 쌓이지 못하고 옆으로 넓고 완만한 고리(環) 모양을 이루게 된다. 이를 응회환이라 한다. 물에 비해 마그마의 양이 많으면 끈적하고 젖은 화산재 반죽이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분화구 바로 주변에 떨어진다. 이 수분 가득한 화산재 반죽이 흘러내리지 않고 분화구 주변에 그대로 찰떡처럼 가파르게 쌓이면서 높은 언덕(丘) 모양이 된다. 이를 응회구라 한다.

 

제주도 서쪽 고산포구에는 수월봉과 당산봉이 있다. 낮은 구릉 형태의 수월봉은 응회환이고 경사가 급한 높은 산을 이루고 있는 당산봉은 응회구에 해당한다. 응회환과 응회구가 가까이 분포하고 있어 서로를 비교할 수 있다. 응회암도 물과 관련된다. 응회암은 화산재가 쌓여서 굳은 퇴적암의 한 종류다. 이 화산재가 암석으로 변하는 모든 과정에서 물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물 없이 만들어지는 특이한 응회암도 있다. 화산이 폭발할 때 너무 뜨거운 화산재(수백 도 이상)가 엄청난 무게로 순식간에 짓눌리면 녹아서 떡처럼 들러붙어 굳는다. 이를 용결응회암(Welded Tuff)이라고 부른다. 이 경우는 물보다는 자체 열과 무게로 굳은 예외적 케이스다.

 

물은 화산재의 1) 요리사, 2) 그릇, 3) 강력 본드 역할을 한다. 땅속에 있던 엄청나게 뜨거운 마그마가 바다나 지하수(물)를 만나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난다. 이 폭발력 때문에 마그마가 잘게 쪼개지면서 엄청난 양의 고운 화산재 먼지가 만들어진다. 물이 마그마를 화산재로 요리해 낸 것이다. 하늘로 날아간 화산재들은 아래로 떨어지는데, 많은 수가 바다나 호수(물속)로 떨어진다. 그냥 땅에 떨어지면 바람에 날아가 사라지기 쉽지만 물속에 떨어지면 물이 그릇처럼 화산재를 안전하게 모아준다.

 

무거운 재는 먼저 가라앉고 가벼운 재는 천천히 가라앉으면서 시루떡처럼 예쁜 줄무늬(층리)를 그리며 차곡차곡 쌓인다. 화산재 더미 사이로 지하수(물)가 끊임없이 흘러 지나간다. 물속에는 미세한 광물 성분들이 녹아있다. 이 성분들이 화산재 알갱이 사이에 풀처럼 끼어들어 서로를 단단하게 접착시켜 준다. 화산재가 물과 만나면 스스로 화학 반응을 일으켜 끈적한 진흙처럼 변하면서 돌처럼 굳기도 한다.

 

제주도는 한반도에서 남쪽으로 약 9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한라산을 중심으로 남남서-북북동의 장축과 약 41km의 폭을 지닌 타원형의 본섬 및 8개의 사람이 사는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주도는 바다에 의해 둘러싸여 있지만 대륙붕 위에서 이루어진 대륙 지각 내 화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화산섬이기 때문에 그 지질학적인 특징은 울릉도, 독도 그리고 하와이 같은 다른 해양 화산도와는 근본적인 차이를 지닌다. 중앙부에 한라산이 자리하고 368개의 오름이 섬 전체에 고루 분포한다. 한라산 정상의 백록담은 화구로서 지름이 575m이고 깊이가 100m이다.

 

제주도를 멀리서 보면 서쪽과 동쪽은 완만하고, 한라산에서 제주시와 서귀포시 쪽은 험준하다. 서쪽과 동쪽에 완만한 저지대 지역에는 파호이호이 용암이 굳어서 된 암석이, 북쪽과 남쪽 지역에는 아아 용암이 굳어서 된 암석이 주로 분포한다. 제주도에는 용암 분출에 의해 형성된 화산암과 화산 폭발에 의해 형성된 화산쇄설암 또는 응회암이 있으며 용암과 용암 사이의 퇴적층도 나타난다.

 

시추 조사에 의하면 제주도 동부는 해수면 하부로 150m까지, 서부지역은 해수면 하부 50~ 70m까지 용암이 분포하고 있고 그 밑으로는 서귀포층과 U층(unconsolidated formation; 굳지 않은층 또는 미고결층)이, 더 깊은 곳에는 중생대 화산암과 화강암이 기반암으로 자리한다. 응회구와 응회환은 수성 화산분출에 의해 만들어진 화산체로 제주도 해안에 주로 분포한다. 이 화산체는 수 cm에서 수십 cm 두께로 반복된 응회암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출봉과 같이 높은 산을 이루고 있다.

 

응회암층의 수평 분포는 수백m에서 수 km에 이르며 근원지로부터 멀어지면서 그 두께는 점차 얇아진다. 제주도 지표 하부에도 용암에 의해 덮여 응회암층이 분포해 있는 것이 시추 조사로 확인된다. 제주도는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지표 부분으로 기반암-U층-서귀포층-화산암류 및 퇴적층 순서의 지질 분포를 이루고 있다. 분출 시기를 달리하는 용암과 용암 사이에는 수m 내지 수십m에 이르는 퇴적층이 사이에 존재한다. 이들 퇴적층은 화산활동의 휴지기 동안 또는 종료 이후 퇴적된 것으로 역질(礫質) 내지 이질(泥質)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 퇴적물은 대부분 화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굳지 않은 화산회(火山灰)가 빗물에 의해 씻겨나가고 계곡이나 얕은 곳에 퇴적된 것이다.

 

곳에 따라서는 하천이나 바닷물에 의해 이동 퇴적되어 형성된 퇴적층에는 사층리, 비늘 구조 등의 퇴적 구조도 발달한다. 제주도의 해수면 44m-258m 하부에 모래와 점토로 구성된 퇴적층(U층)이 나타난다. U층은 해수면이 가장 낮았던 시기에 육지와 연결되어 있던 제주도 초기의 환경을 알려주는 지층이다. 모래와 점토로 구성된 제주도 하부의 퇴적층은 아직도 굳지 않아 물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마그마가 약 150m 두께의 U층을 뚫고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물을 만나게 된다. 이 때문에 화산 폭발의 모습은 매우 격렬하고 마그마가 깨지면서 수많은 작은 돌 알갱이들로 이루어진 수성 화산체를 만든다.

 

제주도를 이루고 있는 용암 전체를 걷어낸다면 일출봉과 같은 화산체가 곳곳에 분포하는 제주도 형성 초기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제주도가 만들어지는 동안에 여러 번의 빙하기가 있었다. 빙하기에는 지금보다 해수면이 130m 정도 낮아서 여러 차례 육지와 연결되었던 적이 있었다. 해수면이 높아진 시기에 분출한 용암은 물속으로 흘러 들어가 베개 모양의 암석을 만들었다. 제주도에 여러 차례 빙하기가 찾아왔다는 말은 우리나라 전체의 빙하기가 찾아왔다는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얼음으로 뒤덮이지 않은 비빙하 지역이었다. 제주도 삼양 해변은 검은 모래로 유명하다. 이 검은 모래는 해안 주변에 분포하는 화산암이 오랜 기간 파도의 침식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과 하천을 통해 운반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현무암은 규소의 함량이 적은 대신 철과 마그네슘 함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고철질(苦鐵質) 마그마로부터 생성되기 때문에 감람석, 휘석, 각섬석, 흑운모 등의 광물들이 많아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을 띤다. 현무암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암편과 광물들은 해양생물 파편보다 무겁기 때문에 파도에 의해 멀리 운반되지 않고 연안에 잔류할 수 있어 검은 모래사장이 발달할 수 있다.

 

삼양 해변 이외에 이호 해변, 성산읍 종단, 성산 해변, 남원읍 공천포 해변, 안덕면 화순 해변, 대정읍 하모 해면 등도 제주의 주요 검은 모래 해변 지역이다. 만장굴과 김녕사굴은 신흘리 현무암이 분출할 때 만들어진 용암 동굴이다. 용암 동굴은 파호이호이 용암에서 흔히 형성된다. 넓이는 수m에서 수십m에 이르고 길이는 수백m에서 수십km에 이른다. 파호이호이 용암은 점성이 낮고 높은 온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표면이 얇게 굳어도 내부에서는 높은 온도의 용암이 계속 흐르게 된다.

 

용암의 공급이 줄어들거나 용암의 흐름을 막고 있던 방해물이 제거되면 굳은 표면은 남아 있고 내부에 흐르던 용암의 높이가 낮아져 동굴이 만들어진다. 용암 동굴 내에는 용암이 흐르던 높이가 변한 현상이 동굴 벽에 남아 있다. 계단 모양으로 층을 이루고 있는 지붕 모양의 암석을 동굴 입구에서 볼 수 있다. 이것은 동굴 속을 흐르던 용암의 높이가 여러 차례 변했음을 의미한다. 동굴의 천장에는 오각형 또는 육각형의 절리들이 발달해 있다. 동굴 벽에는 용암이 흘렀던 기록들이 남아 있고 천장 가까이에는 돌고드름처럼 생긴 용암 종유석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용암은 상당히 묽은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한다.

 

제주도의 여러 오름 가운데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것이 있다. 거문오름 용암 동굴계이다. 용암이 내부에서 밀어 올려져 용암 표면이 부푼 빵처럼 만들어진 구릉을 의미하는 투물러스를 만들 때 절리를 따라 내부 용암이 치약이 짜진 것처럼 밖으로 나오게 된다. 이를 스퀴즈업이라 한다.(베개 용암 형성시 용암이 빨리 식은 겉면을 뚫고 나오는 것을 수중 스퀴즈업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투물러스에 생긴 틈을 따라 내부의 용암이 코끼리 발톱 모양으로 지표로 나온 것을 라바토(lava toe)라 한다. 투물러스 표면에 형성된 거북등 절리도 있다. 주상절리를 위에서 바라본 것을 거북등 절리라고 한다.

 

산굼부리는 용암 분출을 일으킨 마그마의 공급이 갑자기 줄어들거나 마그마가 다른 곳으로 이동 함으로써 지하의 공간이 형성되어 위에 있던 암석들이 지금의 깊이로 침강하여 만들어진 함몰 분화구다. 함몰구조는 지름 크기에 따라 1km 이상이면 칼데라(caldera), 1km 이하이면 함몰 분화구(pit crater)라 한다. 제주도에는 화산암 뿐 아니라 화산활동이 멈춘 기간에 형성된 퇴적암도 있다. 퇴적암은 빗물에 씻겨 내려온 커다란 암괴와 미세한 암석 부스러기로 구성되어 있다. 미세한 입자들은 대부분 화산회다.

 

푸른 바다 사이에 우뚝 솟은 성채와 같은 모양 봉우리 정상에 있는 거대한 사발 모양의 분화구, 그리고 그 위에서 맞이하는 일출의 장관 때문에 성산일출봉은 많은 사람들의 감흥과 탄성을 자아낸다. 제주도에 있는 수많은 오름 중에서 그 모양과 멋이 가장 두드러진 일출봉에 대해 군계일학이라 표현에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출봉은 다른 오름과는 어떤 차이가 있고, 그 차이는 왜 생긴 것일까? 제주도 대부분 지역은 온도가 1200°C에 가까운 현무암질 마그마가 분출한 후 용암이 되어 흐르다가 식어서 만들어진 암석으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뜨거운 마그마가 지표를 향해 올라오던 중 지하수를 만나거나 바닷물이나 호수 물 또는 빙하와 같은 얼음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마그마나 용암은 급히 식고 물은 끓게 된다. 이런 냉각과 가열 반응은 매우 격렬하게 일어나 큰 폭발을 일으키게 된다. 물이 풍부한 지역의 마그마가 관입한 것이 바로 1963년 아이슬란드의 셧시(Surtsey) 화산과 일출봉을 만든 수성화산활동의 원인이다.

 

마그마나 용암이 물에 의해 급격히 냉각되어 산산이 부스러져 분출한 화산재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흑색 유리와 같다. 이렇게 수성 화산활동에 의해 생긴 유리질 화산재가 쌓여 만들어진 소규모 화산체를 응회구 또는 응회환이라 한다. 제주도에 분포하는 대부분의 오름은 분석구다. 이들은 구성물질, 화산체의 크기와 형태가 응회환(응회구)과 다르다. 분화구의 바닥이 해발 90m에 있으며 높이가 180m에 이르고 경사가 30°를 넘는 유리질의 화산재 층으로 구성된 일출봉은 전형적인 응회구에 해당한다.

 

일출봉에서 우리가 가장 쉽게 관찰할 수 있는 구조는 황갈색 또는 짙은 회색의 응회암층들이 무수히 쌓여 만들어진 층이다. 화산재가 화구 근처에 겹겹이 쌓이면 사면의 경사가 점점 가파르게 변하지만 사면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는 경사각에는 한계가 있다.(78 페이지) 재들이 쌓이다가 어느 한계점에 이르면 더 이상 쌓이지 못하고 미끄러지거나 무너지게 된다. 이런 경사각도를 안식각이라 한다. 자연환경에서 가장 높은 자갈의 안식각이 35°인데 일출봉의 응회암층들이 보여주는 경사는 최대 45°에 이른다.

 

그 원인은 일출봉의 화산재들이 분출할 당시 물기를 머금고 있어서 안식각보다 가파른 경사면에 쌓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짝 마른 모래로는 모래에서는 싸울 수 없지만 축축한 모래로는 여러 모양을 만들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우리가 스쳐 지나가며 보아왔던 일출봉의 가파른 경사는 수성 화산활동의 선물이었기에 가능했다. 일출봉의 화산력(礫)을 자세히 살펴보면 화산재가 수 mm 두께로 덮여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화산재가 화산역에 달라붙었을까?

 

다량의 물이 마그마와 섞이면서 수성 화산활동이 일어날 경우 습기를 머금어 끈끈한 상태인 화산재는 콩알처럼 뭉치기도 하고 화산력의 표면에 달라붙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화산력을 부가 화산력 또는 피복 화산력이라 한다. 이런 화산력들이 일출봉에 많이 나타나는 것은 수성 화산활동이 물이 풍부한 상태에서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현무암질 마그마가 얕은 바다 밑에서 분출하며 형성되기 시작했다. 수심이 낮은 곳에서 분출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분출 초기부터 폭발적인 분출을 하였다. 다량의 물이 마그마와 섞이며 폭발이 일어나 화산재와 화산 력은 많은 물을 머금은 채 차갑고 끈적끈적한 상태로 분출하였다.

 

수백 m 높이의 분수처럼 솟구친 화산재와 화산력들은 화구 주변에 한 겹씩 쌓이며 다른 화산에서는 보기 힘든 뚜렷한 층리를 만들어 갔다. 화산재가 차곡차곡 쌓임에 따라 안식각(30도)을 훨씬 넘는 가파른 경사면을 가진 응회구가 만들어져 갔다. 가파른 경사로 인해 응회구의 사면에서 종종 크고 작은 사태가 일어났고 지층의 변형이 일어났다. 화산분출이 끝난 후에는 빗물과 유수에 의한 침식이 일어나 일출봉의 가장자리를 따라 한 번 쌓였던 화산재나 화산 쇄설물이 빗물이나 흘러내리는 물(유수) 등에 의해 다시 깎이고 이동하여 다른 곳에 쌓이게 된(재동; 再動; reworked) 퇴적층이 쌓이게 되었다.

 

바닷가까지 운반된 화산 기원 물질들은 파도와 해류의 작용을 받으며 퇴적되어 신양리층이란 현세의 퇴적층을 만들었다. 응회구는 지하에서 상승하던 마그마가 지하수나 바닷물 같은 많은 양의 물과 만나 폭발적으로 분출하면서 만들어진 소규모 화산체를 말한다. 응회퇴적물의 지층 경사 방향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화구가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섭지코지 지역에는 분석구에서 흘러나온 아아 용암에 의해 낮은 구릉을 이룬 조면 현무암이 분포한다.

 

성산일출봉이 형성될 때 운반 퇴적되어 만들어진 성산층이 조면현무암을 덮었고 곳곳에 풍성(風性) 사구가 있다. 제주도에는 360여개의 오름이 있다. 이 가운데 약 340여개는 분석구이다. 나머지는 수성 화산체(물과 마그마의 반응)와 용암 원정구(점성이 높은 용암)다. 더데오름은 분석구도, 수성화산체도 아닌 끈적끈적한 조면암질 마그마가 분출하여 지표에서 멀리 흐르지 못하고 굳어진 용암돔(종상화산체)이다. 섭지코지에는 분석구의 형성 비밀이 담겨 있다. 섭지코지 해안에는 분석구가 침식되어 분석구의 중심부인 화도와 이로부터 멀리 날아가 쌓인 스코리아 층까지 노출되어 있다. 이렇게 분석구의 중앙부부터 외곽부까지 모두 관찰할 수 있는 곳은 제주도에서도 섭지코지가 유일하다. 섭지코지는 바다 쪽으로 좁게 길게 뻗은 땅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조면암(Trachyte)은 산성 또는 중성 화산암이다. 조면암은 제주도와 울릉도에서만 볼 수 있는 암석이다. 섭지코지 일대의 아아 용암은 섭지코지에 있는 분석구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표면이 매우 거칠고 크고 작은 암편들이 서로 뒤엉켜 있다. 분석구(오름)가 먼저 형성된 후 또는 형성되는 과정 후기에 용암이 흘러나온 것을 의미한다. 분석구는 화산 활동으로 생긴 산(구릉) 자체를 말하고 분화구는 그 산 꼭대기에 뚫려 있는 구멍(분출구)을 뜻한다.

 

지하 깊은 곳에서 올라온 마그마는 탄산음료와 같다. 처음에는 가스가 꽉 차 있어서 뚜껑을 열자마자 콰아아 하고 공중으로 엄청나게 뿜어져 나온다. 이때 공중에서 식어 떨어진 자갈들이 분출구 주변에 모래성처럼 높이 쌓인다. 이것이 바로 오름(분석구)이다. 시간이 지나 가스가 다 빠지면 뿜어져 나갈 힘(압력)이 없어진 걸쭉하고 무거운 치즈 같은 용암만 남게 된다. 이 무거운 용암은 자갈로 대충 쌓여 있는 약한 모래성(오름) 꼭대기까지 올라갈 힘이 없다. 대신 모래성의 맨 아랫부분이나 약한 옆구리 틈새를 뚫고 스르륵 삐져나와 주변 바닥으로 흘러가게 된다. 마치 꽉 찬 치약의 옆구리가 터져서 나오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오름을 현대적 의미의 천문대는 아니지만 별을 관측하기 가장 좋은 자연 천문대로 본다. 1928년 일본인 지질학자 하라구치 쿠만이 서귀포시 천지연 폭포 서쪽 새섬 앞 해안가에 패류 화석을 많이 포함한 지층을 서귀포층이라 명명했다.

 

대포동 주상절리에서 바닷물과 만나는 부분은 절리가 뚜렷하지만 클링커층이 있는 윗부분에서는 주상절리가 희미하다. 주상절리의 상부에 있는 두꺼운 클링커(clinker)층이 외부 열을 차단하는 보온 역할을 하여 용암류 상부가 서서히 식었기 때문이다. 주상절리의 치슬마크(Chisel mark; 끌 무늬 또는 마디층)는 용암이 한 번에 쭉 갈라진 것이 아니라 석공이 조각칼(끌)로 바위를 조금씩 쪼아내듯 단계적으로 균열이 깊어지면서 기둥 표면에 남은 수평 방향의 무늬를 말한다.

 

제주도에 분포한 화산암을 모두 제거하면 해수면 하부 100m 지점부터 200m의 두께로 분포하는 굳지 않은 퇴적층이 나타난다. 제주도는 약 188만 년 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는 퇴적층만 제주도에 분포했었다. 이 퇴적층은 뚫고 올라온 마그마는 퇴적층에 들어 있는 물과 접촉하여 수성 화산분출부터 시작하였을 것이다. 용머리 응회환은 이 시기에 발생한 수성 화산분출에 의해 만들어졌다.

 

제주도 서남쪽에 자리한 송악산은 우리나라 최남단 섬인 마라도를 볼 수 있고, 한라산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제주도 전체 경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한라산 정상 북쪽에는 한라산 조면암이 분포하고 조망대 지역에는 백록담 현무암이 분포한다. 한라산 조면암은 높은 점성을 가지고 돔상(狀)으로 솟아 한라산을 더 웅장하게 만들었다. 한라산 정상은 백록담 현무암을 만든 용암이 마무리하였다. 이 용암이 북동쪽으로 오동동까지 10km, 남동쪽으로 신례리까지 11km를 흘러갔다. 관음사 부근에 구린굴을 만들고 곳곳에 밧줄 구조를 남긴 것으로 보아 점성이 낮은 파호이호이 용암이었다.

 

제주도에는 연 평균 2,061mm에 해당하는 비가 내리지만 연중 물이 흐르는 하천이 없다. 물이 잘 빠지는 다공질 화산암으로 제주도가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과거 제주도는 물이 매우 귀한 섬으로 알려졌지만 지하수를 개발해 이용하면서부터 물 부족 문제는 사라졌으며 제주 삼다수가 국내 먹는 샘물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제주도에 1년 동안 내리는 빗물을 양으로 환산하면 37억 6900m³에 달한다. 이 중 55%의 빗물은 중발산작용과 직접 유출 과정을 통해 손실되고 나머지 45%는 땅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가 된다. 제주도의 지하수 함량률이 이처럼 높은 것은 투수성이 좋은 다공질 화산암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며 우리나라 대륙지역 평균 지하수 함양률보다 3배나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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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 도미노 총서 5
에티엔 클렝 지음,박혜영 옮김 / 영림카디널 / 1997년 10월
평점 :
절판


프랑스의 물리학자이자 과학 철학자인 에티엔느 클랭(Étienne Klein; 1958- )이 쓴 시간을 주제로 한 [시간]이란 책이다. 저자는 항상 사용하는 개념들이 가장 큰 수수께끼를 내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시간은 난점(難點)이다, 그 이유는 뒤로 물러서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시간의 밖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시간을 잡을 수도 없다. 전 우주 어디에서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절대적 의미의 시간은 없다는 말을 한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도 표준으로서의 시간, 사회적 약속으로서의 시간은 존재한다고 말했다.

 

시간은 우리가 오감(五感)으로 느낄 수 있는 물질이 아니다. 저자는 시간은 자명하면서도 만질 수 없고, 내용이 풍부하면서도 재빨리 사라져 버리고, 친숙하면서도 신비스러운 것이라 말한다. 물리학자들의 말대로 시간이 화살표 방향으로 흐른다 하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발견할 수 없는 대상일 뿐이다. 저자는 흥미로운 말을 한다. 물리학자들은 늘 시간을 제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시간은 가변적이며, 불안정하고, 덧없는 것인 반면 물리학은 변화를 벗어난 관계들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물리학은 움직이지 않는 것, 변하지 않는 것 또는 적어도 비가역적인 것을 열망한다.

 

물리학을 연구하는 많은 사람들은 물리학의 목표가 일시적인 현상들에서 출발하여 영원한, 다시 말해 시간에서 해방된 법칙들을 세움으로써 변화하는 것을 항구적인 것으로 귀결시키는 데 있다고 믿는다. 진리를 추구하는 자라면 누구나 시간을 초월하는 것을 겨냥하지 않는가? 저자는 물리학 내에서조차 시간은 다양한 양상을 띤다고 말한다. 단적으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고 말하는 카를로 로벨리처럼 루프 양자중력 이론 진영에 속하지만 시간은 실재한다고 말하는 리 스몰린의 차이가 대표적이다.

 

저자는 물리학자 아서 에딩턴이 말한 시간의 화살은 사랑의 욕망을 상징하지 않고 시간의 가차 없고 돌이킬 수 없는 흐름에 대한 인간의 감정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주어진 시간 속에서 어떤 두 사람도 시간을 꼭 같이 계산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블라디미르 장껠레비치 이야기를 한다. 그는 이상하게도 시간은 텅 비어 있을수록 더욱 우리에게 짐스럽게 여겨진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 사실만으로도 이러한 시간은 역학의 일반 대상들과 구별된다.

 

권태로운 시간은 끝없이 길게 느껴지며, 초조한 시간은 천천히 흘러가나 밀도가 높고, 기쁨의 시간은 강렬하고 마치 정지한 것 같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장 껠레비치의 이야기는 할 일이나 의미로 채워지지 않은 텅 빈 시간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기보다 오히려 권태라는 무거운 감정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알 수 있는 말이다. 아무것도 할 것이 없을 때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날것 그대로 느낀다. 이는 인간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이나 불안이 되기도 한다.

 

공간의 위상 기하학과는 반대로 시간의 위상 기하학은 대단히 초라하다. 그것에는 단지 두 가지 변이(變異) 밖에 없다. 즉 직선과 원 다시 말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선적인 시간과 고리 모양으로 맞물리는 순환적 시간이다. 후자는 원의 마술적 특성에 힘입어 그리스인들(스토아 학파 철학자들)의 영원회귀 신화에서처럼 신화 속에서 많이 나타난다. 저자에 의하면 오늘날 물리학은 고통스럽게도 그리스 사상의 두 기둥을 중심으로 양 갈래로 나누어져 있다. 한편에는 존재와 근본적인 부동성을 주장한 철학자 파르메니데스가 있고 다른 편에는 그와 동시대인으로서 변전(變轉)과 유동성(流動性)을 주장한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있다.

 

저자는 뉴턴, 아인슈타인, 프리고진의 시간론을 말한다. 뉴턴은 우주 전체에 하나의 거대한 시계가 똑같이 흘러간다고 보았다. 관찰자의 상태나 물질의 존재와 상관없이 시간은 독립적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절대적 시간의 개념을 깨뜨리고, 시간은 관찰자의 운동 상태(속도)와 중력의 크기에 따라 다르게 흐른다는 것을 증명했다. 물론 아인슈타인에게도 시간은 이미 완성되어 있는 4차원 시공간의 한 축일 뿐이다.

 

프리고진은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물리 법칙이 자연계의 '가역성(되돌릴 수 있음)'만 설명하는 반쪽짜리 과학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 증가)에 기반하여, 자연계는 에너지를 소비하며 스스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산일(散逸)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밝혀냈다. 우주는 되돌릴 수 없는 한 방향으로만 진화하며, 이를 통해 물리 법칙 안에 시간의 화살과 우주의 창조성을 복원시켰다.

 

역학(力學)은 자연이 행하는 모든 것을 똑같은 과정에 따라 해체할 수 있다. 가령 종이 위에서 항성들은 거꾸로 돌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뉴턴의 물리학에서 동시성의 개념은 그 어떤 원칙상의 혼란도 야기하지 않는다. 두 명의 실험자는 그들의 시계를 동시에 작동시켜 동시성을 갖게 할 수 있다. 단지 빛으로 신호를 교환하기만 하면 된다. 뉴턴에 의하면 빛은 무한 속도로 퍼져가기 때문에 이 신호는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하든지 두 실험자는 시계의 동시성이 그대로 유지 됨을 확인하여 그들의 개인적 시간이 아닌 보편적이며 공통된 시간을 창조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단 하나의 시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뉴턴의 시간이 절대적이고 보편적이라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밀도와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이 시간은 영원하며 흔들리지 않는 냉정한 시간이므로 우주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항상 동일하게 흘러간다. 미시방정식(물리학의 분자·원자 수준의 법칙)은 시간 반전 대칭성을 가지기 때문에 가역적이고, 거시방정식(열역학이나 유체역학 등)은 확률적 통계와 엔트로피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에 비가역적이다. 거시방정식은 미시방정식에서 비롯된다.

 

프리고진은 시간이 발명품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베르그송의 경구(驚句)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저자는 이에 발명품이란 망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물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베르그송이 시간은 발명품이거나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 이유는 그가 보기에 진짜 시간이란 매 순간 이 세상에 단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절대적인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창조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베르그송 철학의 정수인 [창조적 진화]의 핵심 개념이다.

 

저자는 일리야 프리고진이라면 시간의 화살표는 없지만 거시적 층위에서는 시간의 한 화살표가 있다는 환상이 생긴다는 말 대신 시간의 화살표는 있지만 미시적 층위에서는 시간의 화살표가 없다는 환상이 생긴다고 말할 것이라 말한다. 프랑스의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도 통계역학의 기초를 다지던 루트비히 볼츠만의 H-정리(H-theorem)와 거시적 비가역성(시간의 일방통행성)에 대해 강력한 논리적 이의를 제기했다. 물론 저자가 말했듯 푸앵카레의 영원회귀는 주기가 너무 길어서 사실상 비가역성과 맞먹는다.

 

저자는 중력과, 오늘날 훌륭한 중력이론인 듯 여겨지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해서도 논한다. 그의 체계에서 중력은 우주의 서로 다른 물질적 내용물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 아니라 오히려 우주 자체의 기하학적 속성이다. 저자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의 중력을 언급하며 무게를 갖는다는 것은 자기 시간을 갖는 또 다른 방식이 된다고 설명한다. 저자의 말은 물질이 존재하며 가지는 무게(중력)라는 속성이 단순히 아래로 떨어지는 성질이 아니라 그 존재가 우주 속에서 시간과 관계를 맺는 독특한 방식을 결정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무게가 없다면(빛처럼 질량이 없다면)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한 채 시공간을 최고 속도로 통과하지만, 무게를 가짐으로써 비로소 자신만의 리듬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 머물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양자물리학의 원칙들과 일반상대성이론의 원칙들은 아직 모순 없이 양립할 수 없다는 말을 한다. 저자는 파동함수를, 서로 다른 여러 항들의 합이라 정의한다. 모든 물리적 체계를 모든 가능한 상태들의 합으로 설명하는 것은 중첩원리라 불리는 것의 직접적인 결과다.

 

합(+)의 형태로 중첩되어 있는 여러 개의 파동함수들 중에서 측정 후에 선택된 하나의 파동함수는 실제로 측정된 에너지의 값과 일치하므로 그대로 존속한다. 이때 우리는 파동함수가 측정에 의해 축소되었다고 말한다. 양자물리학에서 특정한 속성을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다름 아닌 측정 그 자체다. 저자는 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은 나이도 같고 흔히 약혼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못해 짝짓기를 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시간이 개념의 보편성이란 없으며 시간을 중심으로 한 이론적 통일성도 없다고 말한다. 시간의 화살통의 목록은 작성했으나 우리가 본 것은 단지 화살의 동강들(열역학적, 우주론적, 양자적) 단편들일 따름이라고 말한다.

 

현상학자 후설은 미래는 기다림의 대상, 현재는 주의의 대상, 과거는 기억의 대상이라 말했다. 시간에 대한 베르그송의 생각은 양자물리학의 시간론과 잘 들어맞는다. 베르그송은 상대성이론은 비판했고, 양자역학은 긍정했다. 공간은 우리가 지닌 힘의 표시이자 그 증거이기도 하다.우리는 공간을 정리할 수도 있고 개조할 수도 있다. 공간 속에서 모든 방향으로 온갖 속도로 돌아다닐 수도 있으며 지그재그로 갈 수도 있고 공간의 외양과 형태를 수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은 오히려 우리의 나약함의 표시이다.

 

시간은 우리가 어느 때나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산책 장소가 아니다. 시간은 유순하지 않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시간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시간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우리에게 자신을 강요한다. 시간은 서서히 조금씩 우리 모두를 거의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약한 불로 파멸시킨다. 우리의 무능함을 상징하는 시간, 그것은 우리 인간 조건이 거역하지 못할 경계이다. 저자는 인간의 권한이 인간에 대한 저주가 되지 않도록 보장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묻는다.

 

저자는 어떤 생각들은 우리를 시간에서 벗어나게 하고 또 다른 생각 들은 우리를 시간으로 이끌어들인다고 말한다. 고엽이라는 샹송에 나오는 “낙엽이 무수히 쌓이네”라는 가사를 흥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가슴을 찌르는 듯한 우수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말한다. 그때 시간은 텅 빈 허전함이 되며 우리를 가을의 블루스 속에 천천히 잠들게 한다. 가을은 언제나 무언가의 종말이어서 우리 자신의 종말을 환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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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식 없이 술술 양자물리]의 저자 쥘리앙 보브로프는 흔히 물리학자들이 거만한 눈으로 동료 화학자들을 대하는 것은 아마도 두 학문이 지닌 역사적 기원의 차이에서 기인한 현상일 것이라 말한다. 보브로프의 말은 갈릴레이, 뉴턴과 함께 탄생한 물리학은 세계에 대한 수학적이고 합리적인 관점을 제시했지만 화학은 연금술사 덕분에 여러 의식(儀式)으로 가득한 마법 세계에서 첫 발을 떼었던 역사적 차이에 초점을 맞춘 말이다. 


그런데 양자 물리학이 탄생한 이후 원자와 전자의 행동을 물리학적으로 완벽히 설명할 수 있게 되면서 화학적 결합과 반응도 물리학의 법칙 안에서 이해되기 시작했다. 복잡한 현상이나 개념을 그것을 이루는 더 단순한 하위 요소나 근본적인 법칙으로 쪼개어 설명하는 환원주의(Reductionism)가 문제인데 양자역학을 통해 화학을 설명해 낸 것은 하위 요소에 대한 깊은 이해가 상위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는 점에서 환원주의의 가장 아름답고 성공적인 사례(긍정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양자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전자야말로 빛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한 존재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다. 리언 레더먼과 크리스토퍼 힐은 [시인을 위한 양자물리학]에서 전자는 입자도 아니고 파동도 아니며 입자이면서 파동이라 말했다. 그들에 의하면 전자는 무언가 새로운 것, 양자(量子) 상태다. 전자가 양자 상태(Quantum State)라는 말은 전자를 단순히 입자다 또는 파동이다 같은 이분법적 틀로 대하지 않고 확률적으로 공존하는 미시 세계 고유의 완전히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 바라보아야 함을 강조한 말이다. 


관측하기 전에는 파동처럼 퍼져 있는 확률로 존재하다가 관측하는 순간 입자처럼 특정한 위치에 모습을 드러내는 양자역학의 신비로움을 잘 나타낸 표현이다. [시간은 되돌릴 수 있을까], [한 권으로 충분한 시간론],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 [시인을 위한 양자 물리학], [수식 없이 술술 양자물리] 등은 최근 내가 읽은 물리학 책의 목록이다. 나에게 전자를 주제로 한 책은 없다. 다만 아직 읽지 못한 일본의 이학 박사 사이토 가쓰히로의 [한 권으로 이해하는 원자 소립자 양자의 세계]란 책이 있다. 


최근 일본의 물리학 석사, 공학 박사 에마 가즈히로의 [전자를 알면 세상이 보인다 - 물질·양자·생명을 움직이는 작은 입자]란 책이 출간되었다. 아직 읽지 못했지만 목차만으로도 관심을 끈다. 제1장 전자는 자연계에서 ‘가장 작은 부품’, 제2장 전자의 베일이 걷히면서 ‘양자역학’이 탄생했다, 제3장 전자가 보여주는 양자역학적 운동, 제4장 화학에서도 주인공은 전자, 제5장 금속, 절연체, 반도체, 그리고 초전도체, 제6장 생물 몸속에서도 대활약하는 전자 등이다. 양자, 생명 등의 키워드가 눈길을 끈다. 제4장 화학에서도 주인공은 전자는 앞서 예시한 쥘리앙 보브로프의 말을 뒷받침한다. 


분자생물학자 찰스 코켈은 [생명의 물리학]에서 파울리의 배타원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단순히 원자에 전자를 하나씩 추가하면서 입자의 종류를 늘릴 수 없다. 전자는 자신과 똑같은 다른 전자 옆에 있는 것을 싫어한다. 이것은 일란성 쌍둥이를 생일 잔치에서 나란히 앉히는 것과 비슷하다. 쌍둥이들은 비교당하는 것을 싫어하며 친구들에게 독자적 존재로 대접받고 싶어 한다. 따라서 무작정 전자 옆에 전자를 쌓을 수는 없다. 전자 또는 모든 페르미온이 같은 상태에 있을 수 없다는 이 원리를 파울리의 배타 원리라고 부른다....그렇다면 원자 안에 나란히 있는 두 전자가 서로 똑같지 않고 싶어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성질 중 하나는 전자의 스핀이다. 전자의 스핀이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면 둘은 다르다. 쌍둥이에게 자신을 개인으로 느낄 수 있는 특징이 있는 것처럼 두 원자는 이제 파울리의 원리를 따를 수 있다...”


[전자를 알면 세상이 보인다]는 원자와 양자역학부터 화학 결합, 금속과 반도체, 초전도체, 생명 현상까지 따로 배웠던 과학 지식이 전자라는 하나의 열쇠로 연결된다고 말한다. 기대가 크다. 주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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