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사 시인수업 6
조동범 지음 / 모악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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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韓屋) 도서관에서 시인의 시 창작 강의를 듣는 호사(豪奢)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37일 시작된 청운문학도서관에서의 강의로 59일까지 매주 수요일(1517)에 진행된다.

 

시 창작 강의를 듣고 있지만 나는 시를 이해하려는 것일 뿐이다. 물론 후에 시간이 되면 아니 마음에 여유가 들면 시를 쓰는 모험을 감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강사인 유종인 시인께서는 수사법(修辭法)보다 사물이나 현상을 새롭게 보는 자세와 시를 대하는 마음가짐에 초점을 두고 강의한다.

 

유종인 시인은 필요한 수사를 두 개 정도로 한정한다. 은유와 활유 또는 물활론(物活論)이. 사이비(似而非)란 표현이 눈에 띈다. (시인의 의도를 잘못 파악한 것인지 모르지만) 기존의 바탕이나 현상에서 출발하되 남과 다르게 보는 눈으로부터 새로운 사유가 펼쳐지는 것을 시인이 사이비(似而非) 즉 비슷하되 다른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조동범 시인의 묘사(描寫)’를 통해 다음의 것들을 배울 수 있다. <'소가 들판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있다'는 서경(敍景)적 표현을 '몸통을 잃어버린 소가 풀의 어둠을 뜯어 먹고 있다', '머리 잘린 소의 더러운 혀는 풀의 뿌리를 천천히 더듬기 시작한다' 같은 비가시적 이미지인 심상(心象)적 표현으로 바꿀 수 있다.

 

심상적 구조의 문장과 이미지는 서경적 구조와 완전히 유리된 것이 아니며 서경적 구조를 기본으로 하는 경우도 많(61 페이지)(현상을) 심상적 구조로 파악하게 되면 서경적 구조로 파악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의 이미지를 제시할 수 있다.>(60 페이지)는 글이다.

 

완전히 유리된 것이 아니며란 말과 전혀 다른이란 말로부터 나는 사이비란 말, 더 나아가 청출어람(靑出於藍), ”얼음은 물이 얼어서 된 것이지만<빙수위지(氷水爲之), 물보다 더 차다(寒於水)>“는 말(신영복 지음 담론’ 116 페이지)을 떠올린다.

 

유종인 시인의 강의는 일상적 단어를 찾아 의미를 확장시키는 것이 특별히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조동범 시인의 '묘사'는 다른 시 창작 강의와 달리 유익하게 읽힌다. 이 책을 읽고 모악 출판사의 시리즈물인 엄경희 평론가의 '은유', 구모룡 평론가의 '제유', 유성호 평론가의 '직유', 권혁웅 평론가의 '환유', 정끝별 평론가의 '패러디'를 읽을 생각이다.

 

얼마 전 사둔 나희덕 시인의 '한 접시의 시' 도 읽어야겠다. 봄이 되면 특히 많이 생각나는 조용미 시인이 시 창작 책을 쓴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올 봄 하릴없어 옥매 두 그루 심었다는 시인이다.

 

유종인 시인은 어휘력을 기를 것을 주문한다. 어휘를 피상적으로 알지 말고 익히라는 의미이다. 특히 순 우리말을 익히라는 것이다. 그리고 시집을 적극적으로 읽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메모하듯 쓰라고 말한다.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 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이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라는 이문재 시인의 '오래된 기도'를 예로 들며 그렇듯 교과서적인 언어의 의미를 새롭게 확장시키는 것이 시라고 말한다.

 

시인은 우리에게 숙제를 내주신다. 자신의 기도는 어떤 것들인지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시인은 시란 의미의 파생(派生: 어떤 사물의 주체로부터 갈리어 나와 생김)이고 일견 무관해 보이는 것들을 연결짓는 것이고 무수히 많은 관계성에 주목하는 것이라 말한다.

 

시인은 영감(靈感)이란 결국 내가 일으키는 것이라 말한다. 시인에 의하면 시는 의미의 확장 놀이이다. 여기서 랑그와 파롤이란 말을 생각해 본다. 신영복 선생님은 시란 랑그가 아니라 파롤이란 말을 한다.(‘담론’ 26 페이지)

 

소쉬르에 의하면 랑그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 뇌 속에 자리 잡은 사회적 형태의 약속 체계이며 파롤은 개인적이며 순간적이고 개별적 언어이다. 이문재 시인이 한 것은 인간보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어떠한 절대적 존재에게 비는 것 또는 그런 의식을 의미하는 기도란 단어를 파롤(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것,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는 것,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는 것,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는 것 등..)로 만든 것이다.

 

여담이지만 시경(詩經)‘은 고대 중국에서 여론 조사나 동태 파악 차원에서 사회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모아놓은 시를 편집한 책이다.(신정근 지음 동양고전이 뭐길래?‘ 38 페이지) 이를 보며 내가 생각한 것은 점령(占領)이란 말이다.

 

()나라의 천자가 각 읍국(邑國: 고대 도시국가)의 점인(占人: 점치는 사람들)을 남치해간 뒤 점을 독점하고 그들 읍국들에게 점의 결과를 알려주는 정책을 통해 영도력을 발휘한 것이다. 점령은 점으로 영도한다는 의미이다.(강병국 지음 주역독해상경(上經) 10 페이지)

 

시경(詩經)과 주역(周易) 모두 정치사회적 의미를 갖는 책이라는 의미이다.(신영복 선생님의 마지막 강의인 담론이 주요 논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시와 주역이다.)

 

각설하고 시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묘사(描寫)는 이미지를 통해 지배적인 인상을 드러내며 감각화된 세계를 보여준다.(11 페이지) 또한 묘사를 파악하는 것은 시의 구성 원리를 파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17 페이지)

 

시적 언술은 묘사와 진술로 이루어지지만 묘사된 세계를 통해 시적 감각이 극대화된다.(19 페이지) 미적 인식을 제시하는 시적 상황을 지배적 정황이라 한다.(20, 21 페이지) 묘사는 지배적 정황이 됨으로써 비로소 시적 감각을 갖는다.(21 페이지)

 

묘사는 구체적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고 설명은 개괄적 행위나 모습을 제시한다. ‘개 한마리가 도로 위에 죽어 있다.’는 문장은 설명이다. 반면 도로 위에 납작하게 누워 있는 개 한 마리. 터진 배를 펼쳐놓고도 개의 머리는 건너려고 했던 길의 저편을 향하고 있다.’는 묘사이다.(23 페이지)

 

묘사는 서경적 구조, 심상적 구조, 서사적 구조 등으로 나뉜다.(33 페이지) 서경적 구조는 가시적 세계를 재현하는 방법론이다.(33 페이지) 심상적 구조는 비가시적인 이미지를 통해 시적 정황을 구축하는 방법론이다.(34 페이지) 심상적 장면은 서경적 구조만으로는 형언하기 힘든 시인의 내면을 제시한다.(38 페이지)

 

저자는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사물을 조금만 다른 시선으로 파악한다면 그것은 평범한 사물에서 지배적 인상을 제시하는 시적 대상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 말한다.(43 페이지) 서경은 사실적 장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서경적 구조가 사실적 장면임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곧 익숙한 관계로 이루어진 상투적 장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46 페이지) 심상적 구조는 시인의 시적 개성을 발휘하기 적합하며 주관적인 묘사를 통해 낯설게 하기를 수행한다.(57 페이지)

 

심상적 구조는 가시적인 물리 공간에서 감지한 것이 아니라 심리라는 비가시적 공간에서 감지한 것이다.(57 페이지) 거칠게 표현하자면 심상적 구조는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이다.(59 페이지)

 

주변의 모든 정황을 심상적으로 파악하려는 강박에 빠질 필요는 없다. 서경적 구조와 심상적 구조가 혼재되어 나타날 수 있는 것처럼 주변의 사물들 역시 서경적 장면과 심상적 장면이 섞여 있을 수 있다.(67 페이지) 각각의 장면들이 지배적 정황으로 기능할 수 있느냐의 문제와 더불어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느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67 페이지)

 

영상조립시점은 어울리지 않는 낯선 정황들을 돌연히 내세우되 그 안에 일관된 정서와 감각을 부여하는 창작 방법론이다.(74 페이지)

 

서경적 구조는 가시권 사물과 비가시적 사물이 혼재될 경우 자연스럽지 않을 경우가 있지만 영상조립시점은 마음에 떠오르는 것들을 함께 묶어 재구성한 것이므로 가시권 사물과 비가시권 사물이 섞여 있을 수 있다.(74, 75 페이지) 두 개 이상의 조각난 영상이 조립되는 영상조립시점은 조각의 합이 전혀 다른 감각을 소환하기도 한다.(75 페이지)

 

영상조립시점을 구성할 때의 관건은 정황들이 일관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할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 파편화된 이미지가 조각나 있기만 하고 일관된 감각과 정서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영상조립시점은 실패하고 만다.(80 페이지)

 

시에서 이미지는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맞닥뜨린 이러한(이미지가 무의식과 의식을 지배하는, 이마골로기의) 세계 속에서 시는 어떠한 이미지를 응시해야 하는가?(100 페이지)

 

시가 이미지의 산물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물론 시를 구성하는 원리와 요소는 무수히 많지만 그중에서 이미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101 페이지) 시인들은 자신의 경험과 상상력이 그 어떤 시적 이미지를 통해 드러나기를 희망한다. 이미지를 통해 시인들의 경험과 상상력은 실재의 국면으로 재현되어 하나의 시적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미지는 실재하는 상상력이며 동사에 구체적으로 재현된 시적 경험이다.(101 페이지)

 

이미지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며 이미지 자체가 되기도 한다.(102 페이지) 이미지를 해현한다는 것은 단지 눈에 보이는 장면만을 제시하는 것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이미지는 그것만으로 하나의 시적 의미를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시에서 묘사가 곧바로 의미로 전이되는 경우가 그러하다.(102 페이지)

 

바슐라르는 의미들이 너무 분할된다면 그것은 말장난으로 전락할 수도 있고 단 하나의 의미 속에 갇힌다면 교조주의로 빠질 수 있다는 말을 했다.(104, 105 페이지) 저자는 다층적인 의미 구조에 기대기보다 감각이 지나치게 극대화된 시적 이미지에 경도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지적한다.(105 페이지)

 

상당수의 작품이 다채로움을 잃은 채 화려한 감각과 언어라는 시적 경향이 지나치게 몰입하는 태도를 비판한다.(106 페이지) 심상화된 세계는 서경적 세계와 달리 주관적 언술 양상을 띠기 때문에 시인 자신만이 볼 수 있는 주관화된 이미지의 양상을 띠게 된다.(107 페이지)

 

심상적 구조는 서경적 구조와 달리 사실적 이미지나 진술이 전달할 수 없는 내면의 미묘한 울림과 파동을 효과적으로 제시할 수 있기 때문에 환상적 세계를 통해 표현되는 시인 내면의 복잡다단한 감각을 적절하게 수용할 수 있다.(107 페이지) 분절되고 파편화되기만 하고 의미 없는 감각만으로 채워질 때 문제는 발생한다.(108 페이지)

 

조동범 시인의 묘사는 자주 들여다보며 숙독할 책이다. 시를 이해하는 과정이 쓰는 행위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바람직한 모습을 연출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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