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영중 교수(러시아 문학), 김경주 시인, 허희 문학평론가 등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시청했다.(어제 국회방송)

오래 전에 읽었지만 줄거리는 물론 드미트리, 이반, 알렉세이, 스메르자코프 등 네 형제 이름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작품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

이 가운데 막내인 배다른 아들 스메르자코프는 간질을 앓는 사람이고 이름의 의미는 ‘냄새난다‘이다.(아버지는 물론 형들로부터 천대, 멸시 받던 그는 결국 아버지를 살해한다.)

“그것은 냄새였다.”. 조성기 작가의 장편 소설 ‘라하트 하헤렙(Lahat Hahereb)’의 첫 문장이다.
라하트 하헤렙은 먹어서는 안 되는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가 생명나무 열매를 먹고 영생할 것을 우려한 히브리의 신 야훼가 그들을 에덴 동산에서 내쫓고 그곳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동산 주변에 둘러친 칼 모양의 불 또는 불 모양의 칼이다. 우리 말로는 화염검(火焰劍)이다.

이 책은 몇 년 전 읽었지만(再讀) 줄거리는 희미하다. 워낙 그 의미의 관념성에 경도된 탓이 아닌가 싶다.

나는 줄거리를 찾아 책을 이리 저리 뒤지기보다 에덴동산의 불칼을 소재로 한 작품이니 그 냄새마저 불로 정화시키듯 태울 것이라는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냄새라는 단어를 첫 줄에 배치한 것일까, 생각을 하고 만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다비(茶毘)’라는 책이다. 저자는 왜 남방불교의 통찰(洞察) 수행인 위빠사나를 말하는 책의 제목을 불교 전통의 화장(火葬)인 ‘다비’라고 지었을까?

자신의 다비 장면을 꾼 저자의 꿈에서 비롯된 제목이지만 왜 그 꿈일까?

단서는 있다. 열반(涅槃)은 조건으로 연결된 작용의 중지라는 저자의 말이 그것이다.

이다, 아니다, 있다, 없다 등으로 사고 체계를 동원하여 분별할 수 있는 작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리학을 전공한 김병호 시인이 우주란 상호작용하는 것들의 총체라는 스승의 말을 언급한 것(‘과학인문학’ 참고)을 참고하면 다비는 소멸이고 상호작용의 중지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마침내 우리의 말이란 스님의 뼈와 같고/ 한편의 시란/ 이상한 광채어린 스님의 사리와/ 같아서/ 우리, 역시, 육신을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란 구절이 있는 김승희 시인의 ‘다비(茶毘)를 보며’를 읽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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