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離散: 디아스포라) 자료를 찾다가 정은경 교수의 ‘밖으로부터의 고백 디아스포라로 읽는 세계문학’을 읽게 되었다.

이 책에 스테판 츠바이크(1881 – 1942) 이야기가 나온다. 구스타프 말러가 오스트리아, 보헤미아, 독일 사이에서 복잡한 정체성을 가졌던 유대인 작곡가였던 것처럼 츠바이크는 독일어로 작품 활동을 한 오스트리아 태생의 유대인 작가였다.

그는 참여 작가도 적극적인 반전 작가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전장에서 도피한 작가로 부와 명에를 통해 망명지에서도 비참한 생활을 면했음에도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아내와 머나먼 브라질에서 동반 자살을 했다. 저자는 이를 의문이라 표현한다.

스테판 츠바이크의 ‘프로이트를 위하여’ 편역자 양진호는 츠바이크가 1942년 일본군이 싱가포르를 함락시켰다는 소식을 접하고 절망감에 휩싸인 채 아내와 함께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자살했다고 썼다.

프랑스 작가 로랑 세크직은 장편 소설 ‘스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나날’에서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를 나치의 만행으로 망가져 가고 있는 유럽의 폐허에 세운 비석(碑石) 같은 글로 표현했다.

정은경 교수는 스테판 츠바이크를 코스모폴리턴으로 정의했다.(29 페이지)

츠바이크는 나치 때문에 자살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유대인인 발터 벤야민(1892 – 1940)을 생각하게 한다.

벤야민은 나치에 의해 미국 망명의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다량의 모르핀을 복용해 자살한 작가이다.

마르크시즘 연구자였던 까닭에 출국 비자가 발급되지 않자 피레네 산을 넘어 스페인 국경에 도착했으나 스페인 경찰로부터 프랑스 강제송환을 통보받은 상황이었다.

벤야민은 한나 아렌트에게도 베일에 싸인 인물이었다. 아렌트는 “벤야민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그가 시인이 아니면서도 시적으로 생각했다는 점이다. 그에게 은유(隱喩)는 언어의 가장 크고 비밀스러운 선물이었다. 언어를 비의적으로 사용하면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구체화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는 말을 했다.(우베 카르스텐 헤예 지음 ‘벤야민, 세기의 가문’ 110 페이지)

요즘 내가 관심을 갖는 주제는 윤동주 시인을 디아스포라로 보는 것을 정교화하는 것과 그의 시를 은유에 초점을 맞춰 이해하는 것이다.

윤동주 시인을 비롯 벤야민, 츠바이크에 이르기까지 1940년대에 몇 가지 유형의 죽음을 맞은 국내외의 문인, 작가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너무 자유로운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