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읽다 - 누구나 과학을 통찰하는 법
정인경 지음 / 여문책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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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읽다란 제목과 달리 정인경의 책은 역사, 철학, 우주, 인간, 마음 등의 다섯 챕터로 구성되었다. 각 챕터는 다섯 편의 책 리뷰로 구성되었다.

 

역사에는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 , 등의 책이, 철학에는 카렌 암스트롱의 축의 시대‘,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 임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등의 책이, 우주에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스티븐 호킹의 위대한 설계등의 책이, 인간에는 조지 오웰의 교수형‘,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등의 책이, 마음에는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폴 새가드의 뇌와 삶의 의미등이 포함되어 있다.

 

저자는 이 책이 자신의 전작인 뉴턴의 무정한 마음의 후속작이라 말한다.(11 페이지) 전작이 과학이 무정한 것에 대해 비판한 책이라면 이 과학을 읽다는 비판을 넘어 과학을 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책이다. 저자도 말했듯 우리가 과학 공부를 하는 이유는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이 왜 중요한지를 알고 우리의 삶과 연결지어 생각하는 법을 터득하는 데에 있다.

 

이는 최근 유럽인 이야기 등을 펴낸 주경철 교수가 한 말과 상통한다. 기계적으로 팩트를 외운다면 그건 퀴즈왕이고 전문가는 팩트를 연결해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며 깊이는 시간과 함께 쌓인다.”는 말이다.

 

과학을 읽다의 특징은 특정 주제나 개념에 따라 논의를 전개한 책이 아니라 한 챕터당 한 권의 책을 리뷰한 책이라는 점이다. ‘과학을 읽다는 다소 특이한데 그것은 저자가 말했듯 인간의 역사를 말하면서 뜬금없이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것을 인간의 사랑과 고통을 말하면서 우리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한다.(26 페이지) 이 챕터의 본론은 진화이다. 저자는 바르트가 어머니를 잃고 쓴 애도일기를 짧게 설명하며 수잔 손택의 아들이 어머니와의 사별에 대해 쓴 어머니의 죽음과 영장류 학자 제인 구달과 인간은 아니지만 아들과 다름 없었던 침팬지 플로, 플린트를 떠올린다.

 

그리고 애도일기의 롤랑 바르트와 침팬지 플린트를 비교하는 것이 불경스러울 수도 있지만 생명의 진화에서 인간도 침팬지도 모두 포유류의 뇌를 가진 것임을 언급한다. 저자에 의하면 다윈은 종의 기원‘ 4장에서 멸종과 탄생의 과정을 생명의 큰 나무로 설명했다.(29 페이지)

 

생명의 나무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가지가 갈리지는 지점이다. 나뭇가지가 갈라져 나간다는 것은 하나의 공통조상으로부터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난다는 뜻이다. 이 말을 들으니 아기는 아지에서 왔고 아지는 가지에서 왔다는 말이 생각난다.(송아지, 망아지 할 때의 그 아지)

 

저자는 내일 어느 곳에서 새로운 화석이 하나 발굴되면 인간의 계보는 또다시 수정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지금은 우리 빼고 모든 인간종이 멸종했다는 것! 대체 그 수많은 인간의 조상은 누구였을까? 그들은 왜 멸종하고 우리만 살아남은 것일까?란 말로 챕터를 마무리 짓는다.

 

이런 연결(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이야기를 하고 관련된 자료로 수잔 손탁의 아들이 어머니를 잃고 쓴 책 어머니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제인 구달의 침팬지와의 관계로 이어나가고 말하고자 하는 진화를 이야기하며 끝은 열린 형식 즉 질문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과학을 공부하는 방식이고 책을 리뷰하는 한 방편이다.

 

저자는 사랑에 빠진 네안데르탈인을 제목으로 한 챕터에서 스티븐 미슨의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을 소개하며 우리는 가끔 혼자라는 외로움을 느낀다는 첫 문장을 선보인다. 그리고 인간은 언제부터 외로움을 느꼈을까란 물음을 던진다. 엄정한 주제나 개념을 다루는 과학책도 시작은 정서(情緖)임을 생각하게 하는 포석(布石)이다.

 

저자는 로렌 아이슬리의 광대한 여행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40억년 만에 처음으로 한 생명체가 자신에 대해 사색하고 깊은 밤 갈대에서 바람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는 갑자기 설명할 수 없는 고독을 느끼게 되었다.”...

 

이를 접하고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할 수도 있다. “인간은 마침내 그가 우주의 광대한 무관심 속에 홀로 내버려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우주의 그 어디에도 그의 운명이나 의무는 쓰여 있지 않다. 왕국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 자신에게 달려 있다.”

 

지구에서 40억 년 만에 출현한 사색하는 생물종인 우리는 배가 부른 후에도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고 싶어하는 특별한 생명체였던 것이다... 이는 스티븐 미슨의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 ’사랑에 빠진 네안데르탈인이란 챕터의 결론(마지막 문장)이다.

 

저자는 카렌 암스트롱의 축의 시대’/ 종교, 인간의 문명을 만들다란 챕터에서 종교와 과학은 모두 같은 나무에서 나온 가지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한다.(가지라는 말은 다윈의 종의 기원을 다룬 챕터에서도 의미 있게 제시되었다.)

 

이 챕터는 철학 챕터답게 니체가 인용되고 비트겐슈타인이 인용되고 강상중이 인용된다.(철학 챕터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칸트, 비트겐슈타인 등이 다양하고 적절하게 인용된다.) 이 챕터의 결론은 과학에서 통찰을 얻기 위해서는 인간의 삶과 철학을 폭넓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108 페이지)는 문장이다.

 

결국 과학을 알기 위해서는 역사, 철학, 종교 등 여러 학문들을 섭렵(涉獵)해야 함을 알게 한다. “진짜 진리는 신이라는 개념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실재하지 않지만 인간이 도달하고픈 완벽한 그 무엇이다.”(107 페이지) 이 문장은 저자의 주요 전언(傳言)이며 논의를 풀어나간 궤적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단서이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모든 인간은 본성적으로 앎을 원한다는 챕터에서 앎은 인간의 본성임을 역설한다.(116 페이지) 물론 인간 존재로부터, 보는 것으로부터, 앎으로부터 세계의 진리를 탐구하고 삶의 지혜를 구하려한 철학자들의 존재를 헤아리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를 통해 우리는 뉴턴이 이데아와 같은 형이상학적 개념들을 제시하고 설명하는 데 몰두한 철학자들과 달리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언어의 사용을 자제하고 명료함과 확실성을 추구하기 위해 숫자나 기호, 도형과 같은 수학적 언어를 활용하고 수학적 증명방식을 채택했다는 사실(120 페이지)을 알게 된다.

 

뉴턴의 원리와 법칙으로 세계는 신비의 베일을 벗고 실체를 드러냈다.(128 페이지) 흥미로운 것은 에드먼드 핼리가 뉴턴을 신에 가장 가까이 간 사람이라 칭송한 것이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다룬 챕터에서 우리는 자연과학과 같은 확실한 지식이 등장하고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상황에서 인간의 앎이 믿을 만한 것인가를 따져 묻는 것이 중요해졌다는 말(131 페이지)을 접한다.

 

이 부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로 짜인 책이 과학을 읽다이다. 과학사를 공부하면 이런 체계와 유기체적 질서를 짤 수 있다.(책 날개에 의하면 저자는 수학과에서 공부했고 한국과학사를 전공했고 이과에서 문과로 전향해 일제 식민시기 역사연구자로 30대를 보냈고 과학기술학 협동과정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자에 의하면 고대 철학에서는 세계는 무엇인가, 란 질문을 던졌다면 근대 철학에서는 인간이 세계를 어떻게 아는가, 라는 질문을 했다. 이는 존재론에서 인식론으로의 전환이다.(132 페이지) 칸트의 문제의식은 철학사 전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철학의 학문적 지위를 확보하려는 것이었다.

 

18세기 철학은 종교와 과학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133 페이지)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이제껏 철학이 세계가 무엇인지를 탐구했다면 자신은 인간의 앎이 무엇인지를 먼저 탐구하겠다고 했다.(이 부분에서 진은영의 순수이성비판해설서의 제목이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을 세우다라는 사실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의미심장하고 함축적인 제목이다. 정인경의 책에도 이런 내용이 있다.: 136 페이지)

 

칸트는 우리의 인식이 세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우리의 인식을 따르는 것이라고 선언했다.(135 페이지)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뉴턴 과학은 인간이 알 수 있는 지식이고 신의 존재를 다루는 형이상학은 인간이 알 수 없는 지식으로 선을 긋고 교통정리를 했다. 뉴턴이 없었다면 칸트 철학도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칸트는 시간과 공간을 경험적으로 알 수 없는, 인간의 순수한 직관이라고 보았다. 시간과 공간은 변화하지 않으며 필연적으로 객관적이라고 확신했다. 칸트의 관념론은 과학이 발전하면서 시대적 한계를 드러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나오자 뉴턴의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은 잘못된 것으로 판명났고 칸트 철학의 토대가 된 시간과 공간 개념도 무너졌다.(137 페이지)

 

앞에서 엄정한 주제나 개념을 다루는 과학책도 시작은 정서(情緖)라는 말을 했는데 이와 관련해서 생각할 수 있는 말이 저자의 이 말이다. “모든 인간의 이야기는 인간이 주인공이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과학이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163 페이지)

 

저자는 과학이란 무엇이며 가치란 무엇인가를 물은 리처드 파인만을 이야기한다.(164 페이지) 저자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시데레우스 눈치우스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보자.(시데레우스 눈치우스는 별의 메시지라는 의미이다.) 저자는 과학사에서 시데레우스 눈치우스를 기념적인 책으로 설명한다.

 

갈릴레오는 인간의 감각이 실재를 알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실재는 무엇이고 인간은 실재를 어떻게 아는가? 이러한 철학적 질문에 갈릴레오는 답을 찾은 것이다. 실재하는 우주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근대 과학이었다.,, 지구 밖에 있는 달을 관찰하기에 인간의 눈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망원경과 같은 도구에 의지해서 우주를 관찰할 수 밖에 없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가설이라는 벽에 부딪혔을 때 실재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망원경 덕분이었다.(178 페이지)

 

(흥미로운 것은 갈릴레오 갈릴레이인데 갈릴레이라 하지 않고 갈릴레오라 한다는 사실이다. 퍼스트 네임으로 부른다는 사실이다. 가령 아이작 뉴턴, 임마누엘 칸트, 리처드 파인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 과학을 읽다에 나오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래스트 네임으로 부르는데 갈릴레오 갈릴레이만은 퍼스트 네임으로 부른다는 의미이다.)

 

저자의 책에는 운동의 상대성 원리가 나온다. 저자는 부둣가에서 친구가 손을 흔들며 서 있다고 할 경우 배가 부둣가에 당도하는 순간 자신이 다가서는 것인지 친구가 뒤로 물러서는 것인지 착각이 들거나 옆 선로의 기차가 서서히 뒤로 움직이는데 내가 탄 기차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경우 이는 상대성 원리로 인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전문적으로 말하자면 상대성 원리는 정지상태와 등속(等速) 운동상태는 관찰자의 위치가 어딘가에 따른 차이만 있을 뿐 실제로 양자간에 아무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은 상대성원리와 광속 일정원리를 2대 가정(假定)으로 한다.

 

저자는 이제 우주에 대한 사색과 탐구는 과학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해졌다고 말하며 상대성이론과 양자물리학으로 대표되는 현대 물리학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더 어렵지만 이렇게 복잡한 우주일지라도 우리는 아는 만큼 볼 수 있기에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191 페이지)

 

저자는 빛의 물리학을 다룬 챕터에서 과학의 역사를 보면 과학 개념들은 과학자들에 의해 임의로 만들어진 것이라 말한다. 때로 과학자들은 그 개념들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밝히지 못하기도 했다. 입자와 파동도 그 중 하나이다.(192 페이지)

 

뉴턴은 빛만이 아니라 모든 물질을 입자로 보았다. 그런데 빛을 입자로 설명하면 입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설명하기 어렵다. 뉴턴은 지구와 달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물체 사이에 중력이라는 힘이 작용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러한 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물리적으로 납득이 갈 만큼 설명하지 못했다.

 

뉴턴은 중력이 두 물체 사이의 텅 빈 공간에서 어떤 매개도 없이 즉각적으로 전달된다고 가정했는데 사람들은 이를 마술적이고 신비스러운 힘의 작용이라고 비판했다... 빛을 파동으로 보면 좀더 설득력 있는 설명이 가능해진다.(193 페이지) 빛은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다. 이는 빛이 입자도 아니고 파동도 아니라는 말이다. 빛은 무엇인가? 왜 파동이면서 입자일까?

 

아직도 우리는 그 이유를 모른다. 하지만 어쨌거나 빛과 우주의 모든 물질은 그렇게 존재한다. 빛은 우리 눈에 색 파장처럼 파동으로 보이다가 진동수가 높아질수록 그 파동이 입자를 닮아간다. 1920년대 양자역학은 이런 신기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출현한 학문이다.(198 페이지)

 

저자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이야기하며 릴케의 나는 정말 두렵다란 시를 인용한다.(이 챕터의 제목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누가 과학을 두려워하는가?’이다.) 왜 두려워하는가?란 제목이 붙었을까? 릴케의 시의 제목인 나는 정말 두렵다가 실마리를 던져준다.

 

이 시의 마지막 부분은 너희는 그 모든 노래하는 사물들을 죽인다란 구절이다. 저자는 이 구절을 언급하며 릴케가 두려워 한 것은 자연의 신비를 낱낱이 파헤쳐 신의 능력까지 다가선 과학이었다고 설명한다. 흥미로운 것은 릴케가 신만이 알 수 있는 인생의 비밀스러운 뜻을 시적 감수성으로 찾아내는 시인의 행위를 신에게 저주받을 일이란 역설적 표현으로 설명했다는 점이다.(고운기 지음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16 페이지)

 

윤동주 시인의 시 가운데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이란 구절이 있다.(‘쉽게 씌어진 시’) ”‘코스모스는 우주에서 태어난 지적 존재가 거꾸로 의식, 생명, 물질, 우주를 탐색하는 경이롭기 그지없는 이야기다.“(206 페이지) 세이건은 인류사의 위대한 발견과 대면하게 될 때마다 우주에서 인간의 지위는 점점 강등했다.“고 썼다.

 

문제는 앎이다. 세이건은 (위대한/ 결정적) 앎이 증가할 때마다 우주에서 인간의 지위는 점점 강등했다고 말했지만 앎은 위대한 것이다. 실상을 바로 아는 것은 용기이자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저자는 코스모스를 읽으면서 시인 윤동주의 서시한 구절을 떠올렸다고 말한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210 페이지) 칼 세이건은 우리가 아는 유일한 보금자리인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을 소중히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말했다.(창백한 푸른 점은 지구를 의미한다.)

 

스티븐 호킹의 위대한 설계’/ 철학은 죽었다!에서도 우리는 앎의 중요성에 대해 숙고할 수 있다. 저자에 의하면 호킹은 우리는 이 우주에서 작고 별 볼일 없는 존재지만 심오한 우주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225 페이지) 이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편에서 내가 한 말과 공명한다.

 

저자는 조지 오웰의 교수형을 이야기하며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솔직히 우리는 우주를 이해하는 것보다 인간을 이해하기가 더 어렵다.”는 말을 한다.(237 페이지) 저자는 다윈의 말대로 우리는 동물에서 유래했지만 동물 중에서 아주 특별한 동물이라 말한다.(243 페이지)

 

저자는 에른스트 마이어의 진화란 무엇인가를 다루며 다윈 진화론을 인간의 출생의 비밀에 비유한다. 물론 비천한 내력이 담긴 비밀이다. 다윈은 악마의 사도(司徒)라 불린다. “에른스트 마이어가 쓴 진화란 무엇인가는 우리가 왜 진화론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는지, 철학적으로 무엇이 문제였고, 다윈이 발명한 새로운 생물학적 개념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를 명료하고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250 페이지)

 

중요한 단서는 인간의 진화에서 사회진화론과 같은 잘못된 이론도 개체군의 개념을 잘 몰라 빚어진 오해라는 말이다. 저자에 의하면 다윈의 진화론에서 진화의 단위는 개인이나 인종이나 민족이 아니라 개체군이다.(255 페이지) 인류 전체가 진화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백인종은 우월하고 흑인종이나 황인종은 열등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저자는 다윈이 인간의 유래서문에서 인간이 지구상에 출현한 방법이 다른 생물들과 동일하게 취급되어야 함을 말한 것은 인간 우월주의에 대한 도전이었다고 말한다.(261 페이지) 저자는 인간의 유래는 자신 인생의 책으로 소개한다. 과학사를 공부하며 늦게 읽은 책이라고 인간의 유래를 설명하며 저자는 도킨스나 굴드의 책을 보고 난 후에 이 책을 읽고 놀라움과 후회, 부끄러움이 밀려오는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

 

이 책을 왜 이제야 읽었는지 후회가 되었고 다른 생물학자들의 책이 모두 다윈의 각주(脚註)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260 페이지) ’인간의 유래는 인간의 진화를 한 편의 성장소설처럼 그려냈다. 우리는 누구인가를 묻기 전에 우리는 무엇이었나, 인간의 신체가 어떻게 생겨났고 그 다음에 인간의 마음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차례로 보여주었다.(262 페이지)

 

저자는 뇌과학자 마이클 가자니가가 인간다움의 특별함을 다윈이 말한 사회적 본능(자기 보존 본능보다 타인을 이해하고 아끼는..)에서 나온 것으로 소개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카렌 암스트롱이 축의 시대에서 인류는 네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황금률을 바탕으로 고대 문명을 건설했다는 사실을 언급했음을 상기시킨다.

 

도킨스는 동물행동학자로서 유전자 관점에서 동물과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했다. 그의 관심은 다윈이 해결하지 못한 동물과 인간의 이타주의였다.(280 페이지) 도킨스는 인간의 이타적 성향도 유전자의 프로그램에 동원된 결과라고 말한다. 우리가 그토록 생존에 집착하고 더 많은 자식을 낳으려고 욕망하는 것, 이 모든 행위가 우리 몸속에 있는 유전자가 자기 복제를 위해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통제한 것을 의미한다.(281 페이지)

 

마음, 뇌의 활동편에서는 가정 먼저 편성된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가 눈길을 끈다. 레비는 아우슈비츠 생존자였다. 이탈리아에서 반파시즘 투쟁에 가담했다가 체포된 레비는 19441월 아우슈비츠 제3 수용소로 보내졌다. 대부분의 유대인은 가스실에서 비참하게 죽어갔는데 젊고 건강한 레비는 합성고무를 만드는 공장에 차출되어 강제노역에 동원되었다.(299 페이지)

 

레비는 자신이 겪은 수용소의 참상을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배고픔과 추위, 아우슈비츠에서 겪은 수많은 고통 중에 레비를 가장 괴롭힌 것은 기억의 고통이었다. 의식이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 아우슈비츠에 오기 전의 기억들이 떠오를 때마다 그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300 페이지)

 

레비는 기억은 자신이 인간임을 느끼게 하는 잔인하고 오래된 고통이라 말했다.(301 페이지) 프리모 레비는 인간이었기에 기억을 갖고 있었다. 아우슈비츠에서 아무리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어도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수많은 기억의 편린을 간직하고 있었다.(302 페이지)

 

기억은 인간의 조건이다. 기억한다는 것은 생물체로서 뇌가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인간의 뇌 안에 있는 신경세포는 우리가 경험한 일들과 배운 지식들을 차곡차곡 부호화하여 저장한다.(302 페이지) 비인간적인 수용소에서 인간 선언은 오직 살아남는 것, 기억하는 것, 그리고 나치의 잔학상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었다.(304 페이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기억하지만 또 생존하기 위해 망각해야 한다. 아무 것도 잊지 못한다면 그것도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다.”(305 페이지) 그렇기에 우리는 기억해야 할 일과 잊어야 할 일들 사이에서 번민한다.”(305 페이지) 아우슈비츠 생존자 레비는 1987년 투신자살하고 만다. 레비는 자신의 이야기를 아무도 들어주지 악몽을 매일 매일 꾸었다.

 

저자는 모든 공부가 그러하듯 과학 공부도 이해하고 기억하는 과정이라 말한다. 아픈 역사도 기억해야 한다. 잘못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310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기억은 집단의 기억이다.(310 페이지) 이 말은 진화의 단위는 개체군이라는 말과 함께 생각해볼 문제이다.

 

인지과학자 폴 새가드는 뇌와 삶의 의미에서 인간의 뇌가 실재를 알고 삶에서 중요한 문제를 깨닫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감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342 페이지) “지적인 연구조차도 발견의 즐거움, 실패의 두려움, 적당한 발전의 만족감이 없다면 아무 소용도 없어질 것이다. 개념, 믿음, 목표의 표상을 가치 평가에 묶어주는 뇌의 감정적 과정들이 없으면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에 관한 지침을 제공하는 상황과 선택권의 끊임없는 평가를 잃게 될 것이다.”(343 페이지)

 

저자는 뇌가 느끼는 감정은 가치판단과 예측을 하기 위해 진화한 것임을 상기해보라, 감정이 있어야 가치를 판단할 수 있다고 말한다.(343 페이지) 우리 뇌는 지각과 추론, 감정, 기억이 따로따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통합적으로 작동한다. 실재를 알면서 동시에 실재를 아는 것이 중요함을 직관적으로 느낀다. 실재를 아는 것과 그것의 중요성을 느끼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344 페이지)

 

인간은 개인적인 행복을 넘어 수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가치 즉 규범과 도덕을 추구한다. 우리는 똑같은 뇌 신경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345 페이지) 이는 인간다움의 특별함을 다윈이 말한 사회적 본능(자기 보존 본능보다 타인을 이해하고 아끼는..)에서 나온 것으로 소개했다는 사실을 언급한 과학자 마이클 가자니가, ’축의 시대에서 인류는 네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황금률을 바탕으로 고대 문명을 건설했다는 사실을 언급한 철학자 카렌 암스트롱 등을 연상하게 한다.

 

저자는 샘 해리스의 신이 절대로 말할 수 없는 몇 가지를 다룬 챕터에서 진정 사실과 가치는 분리되는가?란 말을 한다. 폴 새가드는 사실과 가치의 연결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샘 해리스는 사실과 가치를 구분하는 것은 우리의 착각에 불과하다는 말을 했다. 세계에 가치가 없고 과학이 어떤 가치를 말하지 않는다고 해도 즉 과학이 가치중립적일지라도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이다.(355 페이지)

 

사실로부터 가치가 도출되지 않는다는 것은 논리일 뿐이다. 인간은 사실이라는 점에서 옳고, 중요하며, 믿어야 한다는 감정을 느끼고 가치판단을 한다. 우리는 만유인력의 법칙이 과학적 사실이라는 이유에서 믿는다.(356 페이지) 샘 해리스는 우리의 뇌가 기능적으로 사실과 가치를 처리하는 방식에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356 페이지)

 

샘 해리스는 과학자들이 과학적 사실을 발견할 때에도 사실에 대한 믿음에 크게 의존한다고 말한다.(357, 358 페이지) 과학자들은 연구실과 실험실에서 증거와 논증을 토대로 옳다는 가치판단을 한다. 저자는 인간은 사실을 토대로 가치판단을 한다. 사실상 모든 가치판단의 영역은 과학적 사실들과 결부되어 있다. 지금까지 우주, 인간, 마음에 대한 과학책을 읽고 내린 과학적 통찰이다. (사실)과 판단(가치)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올바른 가치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고 말한다.(364 페이지)

 

앞에서 과학을 읽다는 제목과 달리 역사, 철학, 우주, 인간, 마음 등의 다섯 챕터로 구성되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저자의 말을 통해 우리는 그 배경을 알 수 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나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는 과학책이면서 인문학책이다. 이 책들은 세계가 무엇인가라는 과학적 사실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과학적 개념과 내용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지식()의 가치, 과학기술의 방향성, 올바른 사회, 삶의 의미에 대해 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 과학저술가는 잘못된 사회를 바꾸고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정치적, 사회적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367 페이지)

 

편의상 과학으로 크게 분류했을 뿐 그 안에 역사, 철학, 우주, 인간, 마음 등의 세부 항목이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저자의 관점 또는 가치관에 나는 공감한다. ‘과학을 읽다는 서평집 형식의 책이지만 하나의 관점으로 수렴하는 책들을 선정, 배치한 일관성이 돋보이는 책이다. 하나 하나의 책들이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악기들처럼 유기적으로 구성되고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 아름다운 책, ‘과학을 읽다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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