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 신념의 길과 수난의 인간상 문학의 이해와 감상 13
이건청 지음 / 건국대학교출판부 / 199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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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을 이야기할 때 열사(烈士)와 의사(義士)의 차이를 논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열사는 무기 없이 비폭력으로 저항한 분들, 의사는 무기를 들고 독립운동을 한 분들이다.) 윤동주처럼 신념의 인간이 행동의 방식이 아닌 시의 방식을 택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윤동주는 보드랍기 짝이 없는 서정적 자아로 완강하고 투박한 굴욕의 시대에 응전해 갔기에 수많은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었고 크나큰 아픔을 감내해야 했다.

 

윤동주는 지사(志士)도 투사(鬪士)도 아니었다. 다만 시로써 끊임없이 "아픔의 먹이"가 되어갔다. 윤동주의 외삼촌 김약연 선생은 1890년 회령에서 이주해 와 청국인에게서 땅을 구입해 조선인 마을을 형성하고 명동서숙(明東書塾)을 거쳐 명동 소학교와 명동중학교를 설립, 발전시켰다.

 

간도는 민족교육의 요람이자 독립운동의 본거지가 되었다. 윤동주 집안과 김약연 집안은 혼인으로 하나가 되었다. 윤동주는 아명이 해환(海煥)이었다. 그 아래에 달환(達煥; 일주)이 있었고 어린 나이에 죽은 동생이 별환이었다.(해와 달과 별이다.)

 

천문학자 박석재 교수는 "우주에는 무엇이 있나요?"란 아이들의 물음에 ", , 별이 있단다"고 답한다고 말한다. '해와 달과 별이 뜨고 지는 원리' 67 페이지 참고) , , 별은 아름답고 순수한 우리말이다. 윤동주 부모는 해와 달과 별처럼 아름답고 순수한 아들들을 생각하고 이름을 그렇게 지어주었을 것이다.

 

, , 별은 윤동주의 시집 제목에 나오는 하늘, 바람, 별과 잘 어울리고 시와도 잘 어울린다. ()이지만 시()라 해도 좋을 듯 하다. 윤동주가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명동의 생가 마을은 과일나무에 둘러싸인 기와집, 오디나무 밑 우물, 이 모두를 굽어보고 선 교회당과 학교 건물 등이 있는 평화롭고 한적한 풍경을 지닌 곳이었다.

 

윤동주는 9세 때인 1925년 명동 소학교에 입학한 이래 194529세로 타계할 때까지 학생 신분이었다. 명동 소학교 시절 윤동주는 학교에서 발간되는 벽보신문에 동시를 빠짐없이 발표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세계문학전집을 통독할 정도로 독서 범위가 넓었다. 명동 소학교 5학년 과정을 수료한 윤동주는 명동촌에서 10리 동남쪽의 대랍자라 하는 곳의 중국인 소학교에 편입하여 1년간을 더 다녀 졸업했다.

 

그의 시 '별 헤는 밤'에 나오는 패(), (), () 등의 이름은 이 시절 만난 여학생들이다. 이 중국인 소학교를 마치고 윤동주는 용정의 은진중학교에 입학했다. 윤동주 집안은 이를 계기로 용정으로 이사했다. 통학의 어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명동에 유입된 공산주의와 무정부주의 때문이었다.

 

은진중학교는 캐나다 선교부의 미션 스쿨이어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이 시절 윤동주는 다방면에 능력을 보였다. 축구, 교지 편집, 재봉질, 웅변, 수학.. 윤동주는 2학년 때 교내 웅변대회에 나가 1등을 했다. 흥미로운 것은 침착한 어조와 내용으로 1등을 했다는 점이다.

 

동급생이자 고종 사촌인 송몽규가 길림을 거쳐 북경으로 떠나고 문익환이 평양 숭실중학교로 전학하자 윤동주는 부모를 설득해 19359월 숭실중학교로 옮겨갔다. 윤동주는 백석(1912 - 1996) 시집 '사슴'이 출간되자 책을 구할 수 없어 1백부 한정판으로 출판된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온종일 걸려 정자로 베껴냈다.

 

중학 시절 윤동주의 서가에는 '정지용 시집', 한용운(1879 - 1944)'님의 침묵', 수주 변영로(1898 - 1961)'조선의 마음', 파인 김동환(1901 - ?)'국경의 밤', 무애 양주동(1903 1977)'조선의 맥박', 백석의 '사슴' 등이 꽃혀 있었다.

 

신사참배 문제로 숭실중학교가 폐교되자 용정으로 돌아와 일본인이 경영하던 광명학원 중학부 4학년에 편입했다. 이 무렵 윤동주는 동주(童舟)라는 필명으로 '가톨릭 소년'지에 동시를 발표했다. 연희전문 시절 윤동주는 외솔 최현배(1894 - ?) 선생에게서 조선어와 민족의식을, 손진태 교수로부터 역사를, 이양하(1904 - 1963) 교수로부터 영문학 강의를 들었다.

 

윤동주가 일본에 건너가면서 계속 영문학을 한 것도 이양하 선생의 영향이었다. 산책길에서 윤동주는 삼베 또는 옥양목 한복 차림이었고 손에는 항상 책을 들고 있었다. 윤동주 시에는 가필, 정정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윤동주는 형편상 기숙사 생활을 했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 발발과 함께 전쟁물자 수급을 위한 착취 때문에 기숙사도 영향을 받았고 4학년 생인 윤동주는 이에 2학년생인 정병욱과 함께 하숙을 하게 되었다. 누상동 마루터기였다.

 

이 하숙집 이후 소설가 김송(金松; 1909 - 1988)의 집에서 하숙을 하게 되었다. 이 시기 윤동주는 많은 시를 썼다. 김송은 요시찰인이었다. 이 때문에 윤동주는 북아현동으로 하숙을 옮겼다. 이 시기는 참 힘든 시기였다. 하지만 이 시기에 윤동주는 '새벽이 올 때까지', '십자가', '별 헤는 밤', '서시' 등의 대표시들을 썼다.

 

윤동주는 독서 범위가 넓어지면서 더욱 말수가 적어졌다. 시적인 긴장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윤동주는 책에 메모를 할 때도 있었지만 좀체 책에 줄을 치지 않았다. 윤동주는 별안간 떠오르는 시상을 충동적으로 표현해내지 않고 몇 달, 몇 주를 두고 머릿 속에 간직해 두고 갈고 다듬어 완전한 작품이 되었을 때 문자화했다.

 

윤동주는 천성적으로 걷기를 좋아한 시인이었다. 정병욱은 "내가 평생 해낸 일 가운데 가장 보람 있고 자랑스런 일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윤동주의 시를 간직했다가 세상에 알려줄 수 있게 한 일이라고 대답할 것"이라 말했다.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간행된 것은 해방 후인 1948130일이다. 애초 77부 한정판으로 연희전문 졸업기념의 시집으로 기획한 것이었는데 7년이나 지나 빛을 본 것이다. 1942년 연희전문 문과를 마친 윤동주는 릿쿄대학 영문과에 입학한다.

 

여름 방학이 되어 고향에 돌아온 윤동주는 "앞으로 우리 말 인쇄들이 모두 사라질 것이니 무엇이든 심지어 악보까지도 사서 모으라"고 당부했다. 독립운동 죄목으로 체포된 윤동주는 상당 분량의 시작(詩作) 원고와 일기 등을 압수당했고 압수된 자신의 원고를 일어로 번역해야 했고 심한 취조를 겪었다.

 

1940년을 전후한 시기에 윤동주는 읽힐 기약도 없는 시들을 위해 가장 치열한 정신을 태워올렸다. 윤동주 시 작품으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것은 117편이다. 이 가운데 35편 정도가 동시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이다. 윤동주 시가 일관되게 노래한 것은 그가 설정한 절대적 양심에 도달하지 못한 채 현실에 자리하고 있는 자아의 번민상이다.

 

윤동주 시의 정서적 근원은 고향이다. 그런데 그의 고향은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시에는 그리움의 정서가 지배적이다. 이상(理想)으로 설정한 절대 자아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적 자아를 상징하는 것이 '또 다른 고향'에 나오는 백골이다.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시인이 고향에 돌아온 날 백골을 언급했다는 사실은 윤동주의 고독은 고향에 돌아옴으로써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윤동주는 보다 포괄적이고 온전한 자기 자신을 표명하기 위해 우물, 거울, 하늘, (), 십자가 같은 상징들을 동원했다. 우물이나 거울은 시인의 내면 의식을 비추는 것들이다.

 

윤동주는 연못에 비친 제 모습에 도취된 나르시스와 달리 연민과 갈등의 모습의 자신을 발견했다. 윤동주는 일제 식민지로 전락한 멸망한 왕조의 후예인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구체적 상징물로 거울을 설정했다. 하지만 그 거울은 파란 녹이 끼어 있었다.

 

윤동주의 자아 성찰은 비극적 자아를 확인한 아픈 것이었다. 식민지적 상황에서 그의 존재는 모멸과 오욕의 것이었다. 윤동주는 단절이나 좌절에 대한 감정적 위로나 화해를 말하지 않았다.

 

윤동주는 그것을 강하게 응시하고 뛰어넘으려 했다. 윤동주는 한국 서정시에 긴장을 불어넣어 깊은 공감의 시세계를 완성한 시인으로 기록되었다.(건국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이건청의 '윤동주'100 여 페이지의 얇은 책이지만 꽤 체계적이고 세밀한 책이다. 충실한 반영과 분석이 돋보이는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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