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정적이지만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가 말한 도시권이란 말을 생각한다.
르페브르의 도시권이란 기존에 말해진 도시권보다 더 의미 있고 활기 넘치는 것이지만 생성과 만남의 여지가 있음은 물론 미지의 새로움을 끊임 없이 추구할 가능성이 봉쇄되지 않은, 갈등적이고 변증법적인 도시 생활을 할 권리를 말한다.
르페브르의 도시권을 생각하게 한 것은 어제의 내 분주한 행적(行蹟)이다.
아침 일곱 시 집을 나선 뒤 밤 11시 30분 집에 들어온 내 행적은 오전 동구릉(東九陵) 중 경릉(景陵; 헌종과 효현왕후 김씨, 효정왕후 홍씨의 능), 혜릉(惠陵: 단의왕후 심씨의 능), 숭릉(崇陵;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의 능) 순례, 오후 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생각거리를 찾느라 면벽(面壁)하듯 시간 보내기, 저녁 ‘조선궁궐과 음양오행’ 프로그램 듣기로 채워졌다.
시간으로는 16 시간 30분을 밖에서 보내 피곤한 것이겠지만 피곤한 이유는 달리 있다.
1) 죽어 신(神)이 된 조선 왕들의 정원을 인간으로서 거닐었기 때문이고, 2) 미술관에서 주제를 찾느라 면벽하듯 한 작품 앞에서 30분 정도를 보냈기 때문이고, 3) 서울시립 미술관에서 ‘자율 진화 도시’ 프로그램 가운데 실제가 아닌 사진의 종묘, 봄, 여름, 가을의 종묘가 아닌 눈 내린 종묘 정전(正殿)을 보았기 때문이다.
종묘가 도시 진화 프로그램에 포함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다름이 아니라 건물이 설립된 뒤 여러 차례 증축되고 재건되었기 때문이다.
종묘는 각기 다른 시대에 증축되거나 재건된 탓에 지붕의 색과 질감 등이 단일하지 않다. 오음음계를 연상하게 한다고 할까?
어제 내가 보낸 아침, 오후, 저녁, 밤의 시간들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갈등적이고 변증법적인 시간들이었다. 결국 이 말로 다 정리할 수 있다. 피곤의 이유를.
새로움을 추구하는 탓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