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도착한 박성규 시인의 ‘이제 반딧불을 밝혀야겠다‘는 등단 13년 된 시인의 열번째 시집이다. 다작의 시인이란 말을 할 수 있겠다.

그의 직전 시집인 ‘오래된 곁눈질‘에 ‘라제통문(羅濟通門)‘이란 시가 있어 조어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얼마 전 한성백제 박물관에서 제라동맹(濟羅同盟)이란 문구를 보았는데 이번엔 라제통문이다. 제라동맹은 백제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니 당연하다.

그런데 라제통문은 백제 지역인 무주에 새겨진 이름인데 제라통문이라고 하지 않아 배경이 궁금하다. 누군가는 제라동맹이란 말을 우습다고 하지만 이는 현명한 생각이 결코 아니다.

그는 자신이 신라식 명명에 물들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사소한 것 같지만 나는 섬세하고 고운 백제 문화에 깊은 관심이 있다.

신라가 아닌 고구려에 의해 통일이 되었다면 좋았을 것이란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신라보다 백제의 미의식과 안목을 높이 평가한다는 말은 하고 싶다.

나는 백제 지역과 무관한 사람이다. 그러니 내가 백제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 어떻게 보면 안타까워 하는 것은 지역과 무관한 것이다.

오늘날의 러브샷이나 원샷에 해당하는 술자리에서의 벌칙이 한문으로 쓰인 안압지 출토 주령구를 보며 이두가 있었음을 상기시킨 뒤 순수 한자로만 쓰여진 글은 절대 화랑들 또는 신라 귀족의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한 경주 출신의 한 분이 생각난다.

˝자신의 고향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미숙한 초보자이다. 모든 땅을 자신의 고향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강인한 자이다. 전 세계를 타향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완벽한 자이다.˝

12세기 프랑스 철학자 위그(Hugues de Saint Victor)의 말을 인용해야 할까?

물론 곧바로 쓰기에는 전제가 많다. 그러니 나는 다만 친숙한 것은 낯설게 보고, 낯선 것은 친숙하게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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