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마 히로키의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에 의하면 동물과 스노비즘은 반대되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동물은 소비자의 필요를 그대로 충족시키는 상품에 둘러 싸인 채 살아가는 존재, 미디어의 논리에 따라 바뀌는 모드(mode)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존재이다.
반면 스노비즘은 주어진 환경을 부정할 실질적인 이유가 아무 것도 없음에도 형식화된 가치에 입각해 그것을 부정하는 행동양식을 말한다.
코제브가 스노비즘이라 부른 세계에 대한 태도는 후에 슬라보예 지젝에 의해 냉소주의로 불리게 된다.
알렉산더 코제브는 거대한 이야기가 사라지고 나서 사람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동물과 스노비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히로키는 ‘냉소주의 = 스노비즘’의 시대는 유효성을 잃었고 대신 독자나 시청자를 일정 시간 동안 지루하지 않게 하고 적당히 감동시키며 적당히 생각하게 하는 잘 만들어진 이야기에 대한 욕구가 높아진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한다.
어떻든 스노비즘일지 모르지만 나는 잘 만들어진 이야기를 불편해 한다. 잘 만들어진 이야기는 세상의 단면을 보여주어 감동을 주지만 어느 정도 사기성(詐欺性)이 있는 것은 아닌지?
어떻든 나는 특히 감동할 거리와 생각할 거리가 적당히 섞인 이야기를 불편해 한다. 히로키는 스노비즘은 갔다고 말하지만 나는 내 비판적 시선들이 스노비즘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나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문화를 명품 소비하듯 또는 허영심으로 소비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라깡의 루브르’(백상현), ‘미술관이라는 환상’(캐롤 던컨), ‘비참한 대학생활’(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총학생회),
‘동물원이 된 미술관’(니콜레 체프터), ‘동물화화는 포스트모던’(아즈마 히로키), ‘구경꾼의 탄생’(바네샤 슈와르츠)은 나의 그런 문제의식에 따라 선택한 책들이다.
자꾸 낯선 곳에서 엉뚱한 생각들과 씨름하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