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가 a~님과 저녁 식사를 한 곳이 관철동에 위치한 ‘된장 예술과 술’이란 밥집이란 사실을 안 것은 다시 찾을 것을 생각하고 받아든 명함 주소를 통해서였다.

종로(鐘路)라야 교보문고, 알라딘 중고서점, 인사동, 정독도서관 등을 알 뿐 이면(裏面)의 요소 요소를 알지 못하기에 심사가 조금 복잡했던 것은 의외의 일이 아니다.

저녁 전에 들른 2층 커피 하우스에서 차를 마시고 내려오는 길에 쓰인 계단조심(階段操心)이란 문구마저 명구(名句)인 듯 느꼈던 것은 서울 도심과 어울리지 않는 낯선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 탓일 것이다.

밥집 대표 이름이 李弼莘이기에 이 필자 신자인가요? 물었더니 대표는 친절하게도 필(弼)자 재(宰: 재상 재)자인데 잘못 인쇄된 것이란 말을 했다.

알기로 관철동(貫徹洞)은 1914년 4월 1일 동 이름 개정시 관자동(貫子洞)의 ‘貫’과 그 북쪽의 다리인 철물교(鐵物橋)의 ‘鐵’을 합해 만든 이름이다.

재(宰)와 신(莘)이 다른데 그냥 둔 심사를 알지 못하지만 문제는 오식(誤植)이 아니라 두 지명의 앞 글자를 일률적으로 합치는 상투적인 조어(造語) 방식이 아닐지?

물론 꼭 앞 글자만을 채택하지는 않는 것은 인사동(仁寺洞)의 경우 인사동 부근의 옛 지명인 관인방(寬仁坊)의 仁과 사동(寺洞)의 寺를 합했다는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

왜 관(寬) 대신 인(仁)을 택한 것일까? 다시 말해 관사동이라 하지 않고 인사동이라 한 것일까?

유학자 이기동 선생은 인(仁)이란 글자를 엄마가 아기를 밴 모습, 사람과 사람이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 아니면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부축한 채 기댄 모습을 형상화한, 한국인의 심성을 잘 설명하는 단어라고 소개한다.(이은선 지음 ‘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 70 페이지)

지금은 사실 사람들이, 그리고 세상이 다시 말해 천지가 인(仁)하지 못한 시대이다.

천지불인(天地不仁)의 시대이다.

지난 해 12월 8일 문화 해설사 수업차 찾은 북촌 한옥 마을에서 내가 눈여겨 본 것들 중 꼭두박물관을 빼놓을 수 없다.

그날은 존 그레이(‘불멸화 위원회’란 책에서 볼셰비키를 영지주의(靈智主義)의 일종으로 본...)가 ‘꼭두각시의 영혼’이란 책을 출간한 날이었다.

그레이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처형한 볼셰비키의 행위를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 아래 벌인 의도적 행위로 보았다.

그레이는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를 쓰기도 했는데 이 책의 원제가 바로 ‘지푸라기 개’를 의미하는 ‘Straw Dogs’이다.

이는 “하늘은 어질지 않다. 만물을 지푸라기 개로 여길 뿐이다(천지불인天地不仁 이만물위추구以萬物爲芻狗)˝란 노자 ‘도덕경’ 5장에서 유래한 말이다.

어질지 않은 세상에서 인(仁)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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