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평론가 김현 선생의 저서 가운데 ‘제강의 꿈‘이란 평론서가 있다.
‘행복의 시학‘과 함께 김현 문학 전집의 아홉 번째 책으로 발간된 ‘제강의 꿈‘의 제강은 ‘장자‘에 나오는 신(神)의 이름이다.
눈, 코, 입, 귀가 없는 제강은 춤과 노래를 잘 하고 또 즐기는 특별한 재주까지 지닌 존재이다. 혼돈은 제강의 다른 이름이다.
나는 ‘제강의 꿈‘이 가스통 바슐라르를 다룬 ‘행복의 시학‘과 함께 전집의 아홉번째 책으로 묶인 것이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한다.
동양과 서양, 신화와 미학 또는 시학의 적절한 어울림을 보는 듯 하기 때문이다.
김현 선생을 언급하는 것은 최근 읽은 ‘은유와 마음‘에서 저자인 명법 스님이 프랑스 미학이론가들을 열거했기 때문이다.
최근 우주율동우주라는, 춤을 위주로 한 창작 연희극이 공연되었다.
이 극은 객석과 무대가 경계없이 오픈되었고 줄거리가 즉석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질서와 혼돈 사이의 기묘한 관계에 초점을 둔 우주율동우주는 카오스가 무질서가 아니라 무한 질서라는 심오한 의미를 담아낸 극이다.
물론 나에게는 우주가 어떻게 율동하는가보다 무질서와 무한질서의 차이가 더 의미있게 여겨진다.
우주율동우주를 소개한 한 기자는 우리 모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관계망 속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이 기사를 읽고 생각한 것은 최근 나온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란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많은 것이 많은 것과 연관되어 있지만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연관된다는 주장은 잘못이라 말한다.(22 페이지)
젊었을 때 나는 모든 것은 모든 것과 연관되었다는 주장에 경도되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연관되었다는 주장에 대한 지지를 거둔 상태이다. 지극히 관념적이라는 생각에서이다.
‘제강의 꿈‘과 ‘행복의 시학‘을 다시 읽을 생각이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채 넘어갔던 부분들이 이해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