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에게 묻는 심리학
김태형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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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심리학자의'거장에게 묻는 심리학'은 프로이트(정신분석학), 융(분석심리학), 프롬(사회심리학), 매슬로(인본주의심리학) 등 심리학의 네 거장을 대표하는 저서들을 쉽게 풀어낸 책이다.

선정된 책들은 대표작이기보다 개념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들이다. '세계관에 대하여'(프로이트), '무의식에 대한 접근'(융), '인간의 마음'(프롬), '존재의 심리학을 향하여'(매슬로) 등이 해당 책들이다.

정신분석은 주류 심리학의 비판을 받지만 옳건 틀리건 간에 사람의 정신과 행동 모두를 포괄하는 이론을 구축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보수 세력의 비과학적 세계관이 지적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님을 잘 알았다. 프로이트는 세계관을 과학적 세계관, 종교적 세계관, 철학적 세계관으로 나누었다.

중요한 점은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은 오직 과학적 세계관만을 받아들여아 한다고 강조했다는 사실이다. 프로이트는 과학적 세계관의 가장 큰 적을 종교적 세계관으로 보았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종교는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가 투사된 것이다. 저자는 천국에 대한 영상은 개인들의 아버지 관계가 아니라 지배와 착취가 없는 이상사회에 대한 인류의 사회적 요구를 반영한다고 말한다.

프로이트는 긴 세월 동안 서구인들의 정신을 지배해온 종교가 그들이 과학적 세겨관을 가질 수 없도록 방해하며 유아기의 심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을 크게 우려했다.(27 페이지)

저자는 상대적이라 해서 진리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33 페이지) 프로이트는 무정부주의 철학을 우선 문제삼았다. 저자는 철학적 상대주의가 불가지론에 잇닿아 있다고 말하며 물자체를 인식할 수 없다고 본 칸트도 불가지론자로 분류한다.(37 페이지)

프로이트는 마르크스주의에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았다. 마르크스가 인간의 본성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이다.(43 페이지)

프로이트는 인간의 심리와 행동은 경제적인 동기 하나만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보았다. 프로이트가 문제삼은 것은 서유럽에서 동일한 경제 발전 단계에서 어떤 나라에서는 혁명이 일어났고 어떤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은 사실이다. 이 부분에서 연산군과 정조의 차이를 생각할 수 있다.

연산군과 정조 모두 비극적으로 부모(연산군은 어머니인 폐비 윤씨, 정조는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잃었지만 임금이 되어 너무 다른 길을 걸었다.

프로이트는 경제적 요인들의 힘보다 본능의 힘이 더 크다고 믿었다.(43 페이지) 저자는 프로이트가 자신의 이론에 경제적 동기의 중요성을 조금도 반영하지 못한 것을 가장 뼈아픈 대목이라 설명한다.

프로이트는 마르크스주의가 원래는 과학과 기술의 토대 위에 세워졌던 학문이었으나 러시아혁명에 적용되면서부터 종교처럼 변질되었다고 주장했다.(47 페이지) 분명한 것은 사회경제적 조건만으로 인간심리를 올바로 설명할 수 없으며 환경이 바뀐다고 해서 개인심리나 집단심리가 그에 비례해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48 페이지)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제도가 확립되면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사회주의적인 심리를 가지게 될 거라 암묵적으로 믿었다.(47, 48 페이지)

러시아 사회주의는 사람들의 사회적 동기를 원만하게 충족시켜주지 못했고 사람들을 건강한 사회적 동기를 가진 존재로 바꾸지 못했다.(49 페이지) 프로이트는 세계관 그 자체의 무용성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오직 비과학적인 세계관을 배격하려 했다.(51 페이지)

융이 프로이트와 결별한 것은 프로이트의 성욕설을 정면 부정했기 때문이다.(55 페이지) 융은 프로이트와 결별한 후 분석심리학을 정립했다.(55 페이지)

융은 꿈은 검열 때문에 왜곡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의 솔직한 표현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사람은 무의식의 원시 심성을 이용해 꿈을 꾼다고 보았다. 또한 원시 심성은 현대인의 언어나 의식과는 다르기 때문에 난해하다고 주장했다.

융은 일상생활에서 종종 마주치는 용어나 이름이나 한 장의 그림 따위가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명백한 의미 외에도 특정 함의를 지니고 있을 경우 우리는 그것을 상징이라 부른다고 설명했다.(63 페이지)

융은 상징은 자연스럽게 발생한다고 보았는데 이는 무의식이 별다른 조작이나 변형을 가하지 않고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더라도 해석자에게는 (해석해야 할) 상징이 된다는 의미이다.(64 페이지)

융은 집단 표상 또는 집단 무의식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67 페이지) 융의 중요한 개념 가운데 원형이 있다. 이는 개인적 상징과 대비되는 집단적 상징이다.(70 페이지)

저자는 집단적 상징에 불과한 원형 그 자체가 어떤 집단적 모티프나 본능적 경향을 담고 있다고 볼 근거는 없다고 말한다.(71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집단적 상징이나 심상에 불과한 원형은 자체 내에 모티프나 본능적 경향성을 담을 수는 없으며 단지 어떤 모티프나 본능적 충동을 유발하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71 페이지)

"가장 문명화된 사회라고 자부하던 서구유럽에서 어떻게 히틀러나 무솔리니 같은 파시스트들이 정권을 잡을 수 있었을까?",

"왜 수많은 대중이 파시스트에게 열광하고 그들이 내리는 부도덕한 명령에 복종했던 것일까?","사람에게는 악마적 본성이 있는 것이 아닐까?"...프롬은 이런 문제들과 씨름했다.(107 페이지) 프롬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시즘을 접목시켜 사회현상을 설명하려 한 특이한 심리학자이다.(108 페이지)

프롬은 인간은 늑대인가, 양인가란 질문을 던진다. 프롬은 성악설을 주장한 사상가들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확산시키는 주범이라 비판했다.(111 페이지) 프롬은 사람은 일상생활에서 악하게 행동하지 않고, 악한 행위임이 분명할 때 동조하지 않고 사람들이 악한 행위를 하면 정신건강이 나빠진다는 점 등을 들어 성악설은 오류라고 보았다.

성악설이 맞다면 즉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면 악행을 할 경우 정신건강이 좋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성악설은 오류라는 것이다. 프롬은 그럼에도 서양의 도덕적 파산과 심리적 무력감 때문에 성악설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대중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113 페이지)

프롬은 전쟁은 사람이 악해서가 아니라 경제적 이익, 방어 목적, 집단의 명성과 영광 등 다양한 사회적 원인들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데 심리주의는 이런 주요 원인들을 무시하고 공격성 또는 폭력 행위의 원인을 모두 인간심리로 환원시키므로 오류라고 보았다.(113 페이지)

물론 프롬은 성선설도 수용하지 않았다. 프롬은 성악설과 성선설을 모두 반대하며 인간은 늑대이기도 하고 양이기도 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프롬에게 선은 삶을 사랑하는 것, 악은 죽음을 사랑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프롬은 순수하게 죽음을 사랑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고 순수하게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성인(聖人)이라 보았다.

프롬은 삶에 대한 사랑과 죽음에 대한 사랑이 프로이트의 삶의 본능과 죽음 본능을 살짝 바꾼 것이 아니라 말했다. 관련이 있지만 명백히 다르다는 것이다.(116 페이지) 프롬은 프로이트의 죽음 본능 이론을 비판했다.

프롬은 인생이 삶의 본능과 죽음 본능이 싸우는 전쟁터라는 프로이트의 견해에 반대해 인생은 삶의 본능이 지배하는 과정인데 다만 삶의 본능이 다하면 죽게 되는 것으로 보았다. 프롬은 죽음 본능은 사람의 근본 본능이 아니라 삶의 본능이 좌절된 결과로 보았다.

프롬은 프로이트의 죽음 본능을 죽음에 대한 사랑으로 대치했다. 죽음에 대한 사랑은 본능이 아닌 경향성이다. 프롬은 나르시시즘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나르시시즘의 모든 형태에 공통된 점은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것"이라는 프롬의 말은 유명하다.

프로이트가 나르시시즘을 성욕이 자신을 향하는 것이라 본 반면 프롬은 심리적 에너지가 자신을 향햐는 것이라 보았다. 프롬의 견해가 타당해 보인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사랑과 인정에 대한 과도한 욕구, 비판에 대한 비정상적 과민반응, 자아도취와 부풀려진 자기상, 자기중심성과 합리적 판단의 왜곡 등을 특징으로 한다.

나르시시즘은 명백한 반사회적 인격장애이다. 프롬은 나르시시즘은 저주이며 그 극단적인 형태는 자기파멸이란 말을 했다. 프롬은 나르시시즘적 동기나 감정이 성 본능이나 생존 본능에 비견될 만큼 강력하다고 주장했다.(129 페이지)

저자는 병적인 집단을 형성하는 데 작용하는 집단심리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대중의 나르시시즘적 경향이 아니라 프롬이 근친상간적 고착과 관련해 질타한 의존심인 것 같다고 말한다.(133, 134 페이지)

저자는 프롬이 나르시시즘을 정상적인 자기애와 혼동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프롬이 나르시시즘을 성욕에 비견될 만큼 중요하고 강력한 것으로 본 것은 그가 프로이트의 이론적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 말한다.

저자는 심리적 에너지의 방향이 자기를 향하기 때문에 사랑과 인정에 대한 과도한 욕구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인정에 대한 과도한 욕구 때문에 에너지가 밖으로 향하지 못하고 자신을 향하는 것이라 말한다.(135 페이지)

모든 사람이 주체할 수 없는 나르시시즘적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가정은 오류이다. 프롬은 어머니에 대한 성적 욕구가 어머니에 대한 고착을 낳는 것(프로이트의 주장)이 아니라 어머니에 대한 고착이 어머니에 대한 성적 욕구를 낳는다고 지적했다.(137 페이지)

저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인간의 보편적 동기가 아니라 부모관계에 문제가 있는 일부 사람들이 갖는 어머니에 대한 비정상적 욕망이라 설명한다. 유아는 성을 모르므로 어머니에 대한 성욕을 가질 수 없다. 다만 생애 초기에 가졌던 어머니에 대한 집착에 후에 눈뜨게 된 성욕을 덧씌울 경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되는 것이다.(137 페이지)

무력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어머니 또는 어머니를 대신하는 대상에 의존하려 한다. 그런데 그 집단의 규모가 점점 커짐에 따라 인종과 민족, 종파와 정당이 사랑을 보증해주는 어머니들이 된다.(139 페이지)

프롬에 의하면 전 성기적 의미에서의 근친상간적 충동은 남성과 여성의 기본적 격정 가운데 하나이다.(138 페이지)

근친상간적 욕망은 타인 또는 다른 사회집단을 사랑하는능력을 손상시킨다. 저자는 생애 초기의 어머니에 대한 애착과 성인의 근친상간적 소망은 같은 것이라는 프롬의 이론은 오류라고 말한다.

저자는 근친상간적 경향은 모든 사람의 기본 경향이 아니며 설령 아이 시절에 그런 소망이 있다 해도 그것은 어른의 근친상간적 욕망과 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한다.(143 페이지)

매슬로가 심리학 연구에 발을 들여 놓을 무렵 심리학계는 정신분석학과 행동주의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었다.(169 페이지)

매슬로는 정신분석학이 기본적으로 신경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에 기초해 만들어진 심리학이어서 사람의 어두운 면, 병리적인 면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폐단이 있다고 생각했다.(169 페이지)

매슬로는 정신분석학의 우울하고 비괸적인 인생관을 거부했다. 행동주의 심리학은 행동을 외적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보고 사람은 이러한 일련의 자극 - 반응들의 연합을 학습하는 존재라고 보는 학습이론을 주장했다.(170 페이지)

매슬로는 사악한 인간보다 선한 인간, 병자보다 건강한 인간, 소극적인 사람보다 적극적인 사람을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171 페이지) 매슬로가 사망하기 2년 전 출간된 '존재의 심리학을 향하여'는 제3의 심리학 이론이 갖는 성과만이 아니라 한계까지도 고스란히 집약되어 있다.

정신분석학은 정신병을 서로 반대되는 동기나 감정 사이의 심리적 갈등의 결과로 보고 행동주의는 부적절한 학습 결과로 본다. 반면 매슬로의 인본주의 심리학은 욕구 결핍 또는 좌절의 결과로 본다.(172 페이지)

매슬로는 사람의 기본 동기를 성 본능과 즉음 본능이 아니라 사회적 욕구를 포함하는 5가지 욕구로 보았다.(173 페이지) 매슬로는 식욕과 성욕과 같은 생물학적 동기 외에 사회적 동기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사회적 동기를 더 중요한 것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175 페이지)

매슬로의 5가지 욕구는 다음과 같다. 생리적 욕구, 안정 및 안전 욕구(이상 생물학적 욕구), 사랑과 소속의 욕구,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 욕구/ 심미적 욕구/ 인식 욕구(이상 사회적 욕구) 저자는 기존 심리학은 사람이 결핍 동기만이 아니라 성장 동기를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점을 간과해왔다.

결핍 동기는 한 번 충족되면 더 이상 동기로 작용하지 않는다. 반면 자아실현 욕구 같은 성장 동기는 욕구가 충족될수록 더욱 증대된다. 동물과는 달리 사람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성장동기이다.(181 페이지)

매슬로는 각각의 욕구들은 독립적이어서 따로 또는 동시병행적으로 추구될 수 있다고 보았다.(183 페이지) 결론적으로 하위 욕구를 원만하게 충족시킨 사람일수록 상위 욕구로 나아가기가 훨씬 쉽다고 할 수 있다.(184 페이지)

저자는 생물학적 동기는 결핍동기, 사회적 동기는 성장동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한다.(185 페이지) 매슬로는 사람이 성장 동기 뿐 아니라 방어 및 퇴행 경향도 가지고 있음도 인정했다. 매슬로는 사람은 안전한 상황에서는 성장을 추구하지만 위험과 위협, 실패와 좌절 또는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후퇴하거나 정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다.(188 페이지)

매슬로는 사람에게는 앎을 추구하는 경향뿐 아니라 두려워하는 경항도 있다고 보았다. 주의할 것은 앎을 두려워하는 경향은 자기 자신보다 타인에 대한 것이라는 점이다. 즉 부모가 자식의 성적 호기심을 불편해 하는 것, 착취자나 폭군이 피지배자들이 지식을 쌓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 무지나 거짓이 더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 등이다.

물론 세번째는 자신에 대한 것이다. 매슬로는 자아실현 욕구를 최상의 욕구이자 유일한 성장 동기로 보았다.(220 페이지) 자아실현이란 자신의 모든 잠재력을 실현한다는 의미이다. 저자는 건강한 사람은 심리적 병에서 자유로운 사람, 사회와의 관계맺기에 성공한 사람, 세계를 변혁할 수 있는 사람 등으로 본다.

저자가 말했듯 자아실현은 함께 사는 데 필요한 것이다. 홀로 살면 자아실현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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