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이 병풍처럼 둘러 싸인 프랑스의 카르투지온 봉쇄수도원을 이야기한 조용미 시인의 ‘침묵지대‘란 시를 최근 읽었습니다.

먼 이국을 아니 어쩌면 영성을 동경하게 하는 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시인이 말한 병풍은 병풍석이라 불리는, 왕 또는 왕비가 잠든 능침(陵寢)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돌과 뉘앙스가 사뭇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장명등(長明燈) 불빛을 오래 밝혀다오/ 자줏빛 남빛 깃을 단 소렴금 대렴금으로/ 나를 꽁꽁 묶어다오/ 고복(皐復)일랑 하지 말아다오.... ˝란 종생기(終生記)를 쓴 조용미 시인.

그는 아마도 왕릉이라도 연구한 듯 합니다. 최근 종묘(宗廟)에 다녀왔습니다. 신주를 모신 종묘와 시신을 안장한 왕릉의 차이를 표면을 보는 것으로는 식별할 수 없지만 조만간 왕릉 나들이를 실행하도록 해야할 것 같습니다.

마종기 시인이 ‘제3강의실‘에서 인체해부실습장을, 자신에게 ˝술을 가르쳐주고, 다시 그 속에서 시를 써주고, 종/ 교를 준, 내 미래의 친구들이 누워 있는 곳.˝이라 표현한 것을 왕릉에 적용한다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카톨릭, 하면 저는 에디트 슈타인 생각을 먼저 합니다. 현상학자 후설의 제자이자 하이데거의 동료였던 현상학/ 심리학자 출신으로 유대교에서 카톨릭으로 개종한 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순교한 분입니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그는 세속에서의 생활이 카톨릭의 봉쇄 카르멜 수녀회에서의 생활보다 더 고독했다고 말합니다. 제게 에디트 슈타인은 철학의 한 분파인 현상학 전공자로 우선 인식됩니다.

물론 그가 수도자였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당분간(?) 그는 철학이라는 세속 학문과 종교, 영성의 신령 사이에서 저로 하여금 길을 잃지 않게 해줄 스승으로 제 옆에 있을 것입니다.

한 철학자는 ˝후설의 현상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태어날 때부터 강제로 주입되어 신학교에까지 가게 만든 기독교(카톨릭 프로테스탄트)의 신과 그에 따른 신앙을 버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현상학을 공부한 무신론적 실존주의자였다가 막스 셸러라는 현상학자를 통해 카톨릭 사상과 만난 에디트 슈타인과 그 철학자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란 의문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의미로운 주(主)의 날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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