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쓸 시간이 부족해 (글을) 길게 썼다는 파스칼의 말. 이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지침이다. 반면 필요 없는 말이나 글을 지워버리는 것을 뜻하는 산삭(刪削)이란 말은 따라야 할 지침이다.

 

이런 내 문제의식에 이정우 교수는 “주희(朱熹)의 세계는 음표 하나만 빠져도 전체가 무너질 듯한 조화로운 교향악의 세계“(‘인간의 얼굴’ 124 페이지)라는 말을 더했다.

 

최근 읽은 ‘궁극의 인문학’에서 글이란 보태는 것이 아니라 줄이는 것이라는 한문학자 정민 교수의 가르침을 접했다. 정민 교수는 한 글자만 빼도 와르르 무너지는 글을 써야 한다는 옛글 이론을 전했다.

 

 형용사와 부사를 적게 쓰라는 것이고 군더더기를 빼야 한다는 것이다.(”처음에는 긴 문장을 쓰다가 『칼의 노래』를 쓸 때는 짧은 문장으로 썼“다는, ”주어와 동사만으로 문장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김훈 작가가 생각난다.)

 

최근 내가 알게 된 사실 중 의미 있는 것은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가 완벽한 순간이란 더 이상 추가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버릴 것이 없을 때라는 말을 했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문제는 더 이상 버릴 것이 없는 글을 어떻게 쉽게 쓸 것인가, 이다. 마종기 시인의 ‘물빛’이란 시가 생각난다. “내가 죽어서 물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끔 쓸쓸해 집니다/ 산골짝 도랑물에 섞여 흘러 내릴 때/ 그 작은 물소리를 들으면서/ 누가 내 목소리를 알아 들을까요/

 

냇물에 섞인 나는/ 흐르면서 또 흐르면서,/ 생전에 지은 죄를 조금씩 씻어내고,/ 외로웠던 저녁, 슬펐던 영혼들을/ 한 개씩 씻어 내다보면,/

 

결국에는 욕심 다 벗은 깨끗한 물이 될까요/ 정말로 깨끗한 물이 될 수 있다면/ 그때는 내가 당신을 부르겠습니다/ 당신은 그 물 속에/ 당신을 비춰 보여 주세요/ 내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주세요...”

 

‘조금씩 씻어내고’, ‘한 개씩 씻어내다보면‘ 등의 표현이 인상적이다. 이 구절들이 내게는 글을 다듬고 가려내라는 말로 들리기까지 한다. ’물빛‘이 전해주는 것은 욕심을 다 벗지는 못할지라도 그에 근접하는 깨끗하고 맑은 글을 써야 한다는 깨우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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