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납일까지 넘기며 붙잡아 두었던 단청과 조선왕조 책 스무 권을 도서관에 돌려주고 오는 길입니다. 새벽 세시 무렵 들린 카톡음을 듣지 못한 채 잠결에 어설프게 시연 내용을 외운 것도 같고 시연 꿈을 꾼 것도 같은 밤을 보내고 실제 시연까지 마치고 나니 조금 허무합니다. 스무날을 함께 한 책들을 돌려주고 나니 무언가 머릿 속에서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나의 책들은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 철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그것’들은 나의 몸 속으로 스며들어 와 일단 쓰인 뒤 내 몸을 빠져나간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공허한 기분에 빠져 몸 속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 그분의 심경을 조금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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