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그송 읽기 세창사상가산책 9
한상우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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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부 베르그손, 성자 스피노자, 성령 니체...(신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내키지는 않지만...)란 신성한 3위 일체 개념은 질 들뢰즈에서 연원(淵源)한 것이다. 내게 베르그손, 스피노자와 달리 니체는 (정서적으로) 버성기는 존재이다. 세창 미디어에서 나온 세창 사상가 산책 시리즈 중 성자, 성령은 아직 미출간이고 성부는 기출간이다.(책 제목은 베르그송 읽기) 아버지부터인가? 작은 판형에 200여 페이지의 미니 시리즈. 3부로 이루어진 책으로 베르그손의 삶(1부), 베르그손의 철학사상(2부), 베르그손의 생명주의 철학의 의미(3부) 등을 만날 수 있다.



저자(한상우 교수)는 누군가의 철학 사상에 대한 연구는 그 연구자의 사상이지 대상이 되는 이의 사상이 아님을 강조한다.(22 페이지) 베르그손의 철학을 단 한 단어로 규정한다면 생명주의이다.(29 페이지) 베르그손은 다윈의 점진주의에 대립하는 돌연변이설을 받아들였다.(42 페이지) 베르그손의 생각대로라면 신은 창조 과정 안에 내재하며 창조과정과 더불어 자기 자신도 창조해간다.(47, 48 페이지)


베르그손의 철학을 과정(過程)철학이라 할 수 있는데 화이트헤드(1861 - 1947)가 ‘과정과 실재’에서 자신이 베르그손의 철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밝힌 것은 유명하다. 베르그손은 실증적 지식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화이트헤드는 철학도 물리학처럼 추상적인 지식이기 때문에 과학적 추상 작용 없이 철학의 지식은 성립할 수 없다고 보았다.(75 페이지) 물론 화이트헤드는 철학의 대상이 자연과학의 대상과 꼭같은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철학은 거시적, 자연과학은 미시적)


베르그손의 ‘지속과 동시성’은 지속으로 우주를 이해한 베르그손이 동시성으로 우주를 이해한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에 대해 견해를 밝힘으로써 있게 된 아인슈타인과의 논쟁적 대화의 결과물이다.(53 페이지. 베르그손: 1859 - 1941. 아인슈타인; 1879 - 1955) 물론 베르그손의 현대 물리학 숙지는 충분하지 않았다.(64 페이지) 베르그손의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은 시간과 지속, 의식과 자유의지 등에 대해 다룬 책이다.


스펜서의 철학사상이 불충분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노력에서 나온 책이기도 한 이 저서는 한편으로는 칸트의 시간과 자유의지에 관한 주장에 대한 반박이라 할 수 있다.(59, 60 페이지) 베르그손은 칸트가 시간을 등질적이며 일회적이고, 영원히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공간화된 시간으로 보았다고 비판했다. 베르그손은 시간이란 공간화할 수 없고 균질적이지 않으며 나란히 병행해 놓을 수 없고, 어느 한 부분이 다른 한 부분의 원인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60 페이지)


윌리엄 제임스는 베르그손을 수수하고 겸손하고 허세를 부리지 않는 사람, 천재적이고 지성적인 사람으로 평했다(아, 베르그손!) 베르그손은 실용성, 유용성 등을 오류와 동의어로 여겼다.(70 페이지) 스피노자의 철학이 범신론이냐 아니냐란 논쟁을 낳고 있듯 베르그손 역시 범신론적 신비주의냐 아니냐란 논쟁을 낳고 있다. 이 우주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적 실체는 없다. 이 우주는 과정과 사건의 집합이다.(78 페이지)


이 밖에 베르그손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사람으로 장켈레비치, 테야르 드 샤르뎅(1881 - 1955)을 들 수 있다. 베르그손은 바슐라르와는 대립적이었다.(베르그손: 1859 - 1941. 바슐라르: 1884 - 1962) 테야르 드 샤르뎅의 진화론은 베르그손과 같이 자연발생적 진화론이 아니라 창조적 진화론이고 비약을 통한 전혀 새로운 종으로의 진화론이다.(83 페이지)


2차 대전 이후 일반인에게는 완전히 잊힌 철학자 베르그손을 부활시킨 사람은 질 들뢰즈이다. 들뢰즈에게 영향을 미친 또 다른 베르그손의 철학은 ‘창조적 진화’에서 제기된 헤겔 변증법에 대한 부정이다.(88 페이지) 베르그손의 영향을 받은 중요한 철학자로 모리스 메를로 퐁티를 빼놓을 수 없다. 베르그손은 생성과 흐름, 창조로서의 삶과 생명을 중시한 철학자, 개념의 굳은 틀에 의거해 철학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경계한 철학자, 결정론적 사고, 기계론, 목적론, 체계의 철학에 강력 반대한 철학자이다.(89 페이지)


저자는 베르그손의 사상은 결코 체계와 도식을 세워 전 우주를 몰아넣으려는 것이 아니라 말한다.(90 페이지) 그러나 참고할 말이 있다. “...그러나 그 황홀감(바그너의 음악을 들을 때 그렇듯 우주의 모든 것이 눈앞에서 선명하게 펼쳐지는 듯한 지적 황홀감)이 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물들 사이의 간격, 차이, 갈등을 장려한 개념적 체계 속에 녹여버림으로써 성립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현대 철학은 그 황홀감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했다.”(이정우 교수 지음 ‘담론의 공간’ 274, 275 페이지)


베르그손은 전통 형이상학의 중심 문제였던 존재의 문제를 생성의 문제로 바꾸었다. 존재가 아닌 생성이 무엇인지 묻고 그것을 직관을 통해 파악하려 한 것이다.(96 페이지) 파르메니데스는 존재의 단일성, 분할 불가능성, 불변성을 주장했고 헤라클레이토스는 존재의 복수성과 생성을 주장했다. 이에 대한 절충으로 제시된 것이 플라톤의 사상이다. 플라톤은 영원, 불멸, 불변, 완전의 이데아와 불완전하고 변하는 현상계라는 이분법을 제시했다.


반면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불변하는 이데아가 현실 밖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 내재한다고 보았다.(97 페이지) 운동성에 주목한 베르그손은 연역 - 귀납, 분석 - 종합의 방법은 고정된 관념으로 생성을 파악하려는 시도라 정의했다. 베르그손은 스승격인 헤라클레이토스가 생성과 변화를 파악한 것은 훌륭하지만 이는 고정된 관점으로 생성과 변화를 파악한 것일 뿐 운동성 자체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직관은 운동성을 운동성으로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다. 베르그손은 과학은 완전히 일어난 일에 대해 파악하는 방법이므로 일어나고 있고 움직이고 있는 사물의 생명인 생성을 파악할 수 없다고 보았다. 철학은 참으로 실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형이상학이어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생성으로서의 지속을 탐구해야 하는데 지속은 직관에 의해서만 직접 우리에게 제시될 수 있으며 간접적으로는 이미지에 의해서 시사될 수 있을 뿐 개념적 표상에 가둬 둘 수 없다.(105 페이지)


다양성을 중시하는 과학과 철학은 수많은 시간 안에 낱낱이 흩어져 사실만을 볼 뿐이고 통일성을 중시하는 과학과 철학은 추상적 영원을 볼 뿐 구체적 실재를 파악하지 못한다.(106 페이지) 베르그손은 철학함이란 일상적 사고 작업의 습관적 방향을 역(逆)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라 정의했다. 베르그손은 지속이란 개념으로 자유의지와 인과율의 확실한 결합을 시도한 철학자이다.


베르그손이 말하는 참된 실재는 생성이며 다양성의 통일성이며 동시에 끊임없는 움직임이고 고정불변한 개념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지속이다. 지속은 오직 직관을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지속은 끊임없는 움직임이며 흐름이다.) 어떤 도시를 수집 가능한 항공사진들을 조각조작 맞추어 파악하려는 것이 개념적 이해라면 그 도시로 직접 들어가 주요 유적이나 사물들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 직접경험인데 이는 직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베르그손의 생각이다.


또한 어떤 구절을 분석하는 것이 아닌 공감하는 것이 직관이라는 것도 베르그손의 생각이다.(직관은 참된 실재를 직접 파악하는 능력이다.) 베르그손은 물리학은 운동성 자체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베르그손은 지성이 표현하는 운동은 부동적인 것을 병렬시켜 그 운동을 재구성한 것에 불과하다고 보았다.(118 페이지) 생명체는 분리될 수 없고 재구성될 수 없고 부분으로 파악될 수 없다.


베르그손은 유기체로서의 생명체에 대한 파악은 결코 분할과 재구성을 통해 사물을 파악하는 지성이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베르그손은 생명을 가진 유기체의 삶은 예견 불가능한 창조적 성격을 지니기에 지성의 능력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고 보았다. 발전된 본능으로서의 직관이 무의식에 가깝다면 지성은 의식에 가깝다. 베르그손은 생명과정에서 가장 기초적인 능력은 본능이며 부동적인 것과 이미 주어진 것을 다루는 데 자신감을 갖는 지성은 물질 쪽으로 향해가지만 본능은 생명 쪽으로 향한다고 보았다.(베르그손의 직관은 본능의 소산이며 능력으로서 구체적이고 독창적으로 참된 실재를 파악하는 것이다.)


베르그손은 이성에 의한 본질직관을 거부하고 감성직관을 인정한 칸트와도 경해를 크게 달리한다. 베르그손의 직관은 가장 단순한 공감행위이다.(127 페이지) 베르그손은 공감행위로서 직관에 의해 파악되는 생성, 변화, 운동으로서의 세계를 참으로 실재하는 세계 즉 지속으로 보았다. 그리고 우리와 아주 가까이 있어서 구체적으로 직접 파악할 수 있는 지속을 우리의 의식 즉 자아라 보았다.(127, 128 페이지)


베르그손은 우리가 강도(强度)를 크기와 동등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내포적이며 분할 확장될 수 없는 순수하게 내적인 상태를 외연적이고 확장 가능한 것을 표현하는 데 알맞는 언어로 표현하기 때문에 질적인 변화를 양적인 변화로 간주한다고 보았다.(129 페이지) 베르그손이 말하는 지속은 간단히 정의할 수 없다. 베르그손의 철학 자체가 지속의 철학이다. 베르그손은 시간 그 자체는 살아 있는 것이며 공간처럼 각각의 독립적인 단위로 분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본질적으로 분할 불가능한 움직임 자체로 보았다.(140 페이지)


지속으로서의 시간은 불가역적이다. 이렇게 말하면 물리적 시간을 상정하는 사람도 시간은 불가역적이라 말한다는 사실을 지적할 것이다. 하지만 물리적 시간은 부단한 흐름을 각 순간들로 나눌 뿐 아니라 동일한 행위가 두 번 이상 반복될 수 있다고 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141 페이지) 고대 철학이 말하는 형상이나 이데아는 이 지속으로서의 시간에서 독립한 영원이다(141 페이지)


베르그손은 정신이 개념 속에 유리(遊離)시키고 저장하는 형상이란 변화하는 사물의 모습을 밖에서 촬영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근대과학자들은 부단한 흐름이며 부분으로 나눌 수 없는 전체로서의 시간을 수없이 분할된 공간상의 점들로 공간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끊어지지 않은 자연스러운 동작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수많은 사진과 정지된 화면의 연결일 뿐인 영화를 생각해보자. 베르그손에 의하면 진화는 지속이며 창조이다.(143, 144 페이지)


베르그손은 우리의 자아를 각 부분이 내적으로 상호 분리 불가능하게 연결지어진 전체로 본다.(145 페이지) 끊임없는 지속으로서 우리의 의식이 받아들이는 경험은 결코 서로 비교해서 동질적인 요소만을 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베르그손의 이론을 따라 우리는 같은 음악이라도 어제 감상한 것과 오늘 감상한 것이 같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자아가 바로 순수지속이며 우리의 삶은 과거가 미래를 잠식하고 불어나면서 전진해가는 연속성으로서의 지속이다. 과거는 지속으로서 우리의 삶 그 자체이며 기억에 의하여 부단히 현실화하고, 현재는 부단히 과거가 되는 지속이며 변화이다.(151 페이지) 현재는 부단히 과거가 되고 과거는 기억 때문에 현재화한다. 미래는 예견불가능하다.


베르그손이 말하는 예견불가능성은 미래의 개방성이며 부단한 창조이고 자유로운 행위이다.(154 페이지) 이는 결정론자들과 숙명론자들이 말하는 닫혀 있고 이미 결정된 미래와 반대된다. 그리고 이미 정해진 목적과 목표를 향해 계획된 그대로 진행되어 간다는 목적론적인 사고방식과도 반대된다. 기계론과 목적론은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고 보며 이미 주어진 결과가 미래에 실현될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베르그손에 의하면 결과가 원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157 페이지) 생명의 약동(elan vital)은 기계론과 목적론 외의 제3의 길을 찾으려 시도한 결과물이다. 공간과 비유기체적인 물질은 분석적인 오성의 영역에 알맞은 것이며 순수 지속으로서 생명은 직관이라는 철학적 방법을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159 페이지) 우주적인 차원에서 보면 물질과 생명 모두 지속에 참여하고 있다.


물리 질서는 자동적인 질서이며 생명 질서는 자발적인 자유의 질서이고 목적성을 초월한다.(166 페이지) 베르그손은 생명 그 자체보다 무생물적인 것에 더 관심을 두는 지성의 결점을 본능의 소산인 직관이 보충할 수 있다고 보았다.(173 페이지) 베르그손의 철학은 지성에만 치우쳐 있는 철학을 거부하되 직관과 지성의 균형을 잡으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베르그손은 단일성과 다수성의 구분은 무생물질의 범주에 속하며 생명의 약동은 순수한 단일도 다수도 아니라고 보았다.(175 페이지)


베르그손에게 창조란 신비가 아니라 우리가 자유롭게 행동하기를 시작하면서 우리 자신 속에서 체험하는 것이다. 베르그손에게 우주적 차원에서의 창조도 인간 의식에서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같다. 우주적 차원에서의 창조는 생명 자체의 힘이며 생명 자체의 요구이고 생명의 약동이다.(179 페이지) 베르그손에 의하면 이 우주는 이미 완성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완성되어 가는 것 즉 새로운 참가(參加)에 의해 끊임없이 성장해 가는 것이다.


우주 안에서 새로운 발명이나 창조가 없다면 시간은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180 페이지) 베르그손이 말하는 창조란 우주적인 차원에서나 인간 차원에서나 끊임 없이 완성되어 가는 생명의 자유로운 행위를 의미한다.(181 페이지) 베르그손에게서 창조와 진화는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베르그손은 물질과 생명을 절대적으로 분리해보는 진화생물학의 바탕 위에 서 있으면서도 차이점을 강조한다.(184 페이지)


베르그손에 의하면 우리에게 창조와 의식, 창조와 자유는 동의어이다.(188 페이지) 저자는 인간이 신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사랑 그 자체인 신도 인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인간을 창조했다고 말한다.(192 페이지) 사랑을 베풀기 위한 창조란 의미이다. 베르그손은 뇌를 기억의 저장 공간이 아니라 기억이 현재화하는 지점으로 보았다.(199 페이지) 베르그손의 메시지는 사랑 자체인 신과 열린 종교, 열린 도덕성, 자기 한계 극복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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