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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사랑한 클래식 - 영화로 보고, 글로 읽고, 귀로 듣는 클래식의 세계
최영옥 지음 / 다연 / 2016년 6월
평점 :
영화와 클래식 음악의 관계를 해명한 책을 읽는다. '영화가 사랑한 클래식'이다. 영화와 그림(한창호 지음 '영화, 그림 속을 걷고 싶다'), 영화와 정신분석(김서영 지음 '영화로 읽는 정신분석'), 영화와 인문학(김영민 지음 '영화인문학'), 영화와 경제학(박병률 지음 '영화 속 경제학') 등 영화와 함께 생각하는 또는 영화로 만나는 다양한 전문 분야의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나는 영화보다 클래식 음악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이겠지만 최영옥 저자의 '영화가 사랑한 클래식'을 클래식에 비중을 두고 대하게 된다.
최근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초기 작 중 하나인 '여수의 사랑'에는 비제의 칼멘 중 하바네라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 자흔이라는 여자가 나온다. 그녀는 "여수(麗水)에 가면, 나한테도 음악 같은 건 필요 없어요"란 답을 한다. 영화화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중편 소설이고 드라마틱한 부분이 없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한다면 관련 부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생각해본 적이 있다. 영화 제작자들도 내가 그랬듯 자신의 영화를 빛낼 클래식 음악들을 고르고 생각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내리라.
말했듯 클래식 음악보다 영화를 덜 좋아하는 나는 클래식 음악이나 작곡가들을 이해하기 위해 영화를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들을 공부하듯 들으려는 나는 그의 교향곡 5번 4악장이 수록된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인) 토마스 만 원작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아직 감상하지 못했고,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이 아름답게 흐르는 '엘비라 마디건'을 보며 비슷한 듯 다른 투명한 슬픔이 인상적인 같은 작곡가의 피아노 협주곡 23번 2악장을 영화에 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저자 최영옥 님은 음악전문지 기자, 음악칼럼니스트, 음악 평론가, 공연 기획자 등 음악 전문가이지만 강의를 위해 클래식 음악들이 흐르는 영화를 찾고 훑는 등 노력을 기울이느라 가끔 자신이 클래식 음악 전문인지 영화 전문인지 헷갈린다고 말한다. '영화가 사랑한 클래식'은 저자의 말에 의하면 영화들 중에서도 클래식이 될 영화들을 중심으로 엮은 책이다. 흔히 클래식이라면 고전 또는 낭만 음악 위주로 생각을 하지만 고전(古典)이란 말이 의미하듯 시대를 뛰어넘어 살아남을 명작들을 의미한다.
'영화가 사랑한 클래식'은 클래식 음악에 얽힌 이야기들을 담은 책이다. 거기에는 작곡가, 연주자, 영화감독 등과 관련된 다양한 사연들이 있다. 지난 2000년 바흐 서거 250주년 기념으로 일본의 NHK가 방영한 어느 사찰에서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6곡 전곡 연주를 들으며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낀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영화였다면 그렇게 고즈넉한 분위기에 투박한 첼로 선율을 수십 분씩 담아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클래식 음악과 관련한 영화 이야기는 이런 방식으로 하면 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영화는 당연히 스토리가 위주이다. 거기에는 사람들의 삶과 사연이 깃들어 있다. 나는 아직 영화를 뇌과학을 이해하기 위한 또는 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 물론 이는 인간과 삶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불교 수행의 궁극적 목적 가운데 하나가 (깨달음이 아니라) 고통을 여의고 기쁨을 얻는 것(서광 스님 지음 '치유하는 유식 읽기' 191 페이지)이듯 내가 영화를 통해 뇌과학을 이해하려는 것도 삶과 사연들을 이해하고 사람들과 더 잘 어울려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 의도로 올해 초 읽은 책이 제프리 잭스의 '영화는 우리를 어떻게 속이나'이다. 잭스에 의하면 뇌가 진화해온 오랜 시간 동안 영화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뇌의 인식 시스템은 현실과 영화를 구분하지 못한다.('영화는 우리를 어떻게 속이나' 16 페이지) 음악은 그렇게 영화가 우리를 교묘히 속이는 것을 돕는 보조 장치가 아닐지? '영화가 사랑한 클래식'이 다룬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 46편의 영화 중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중 편지의 이중창이 나오는 '쇼생크 탈출'부분에는 의미심장한 글이 나온다.
프랭크 다라본트가 감독한 이 영화에는 수감자 앤디가 교도소 방송실의 문을 닫아걸고 음반을 트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모차르트의 여성 이중창 곡인 '저녁바람 부드럽게'로 수감자들은 느닷없이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잊고 있던 바깥 세계의 자유를 떠올린다. 음악은 우리를 속이는 영화를 돕는 조력자이기도 하지만 현실을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하는 매개체이기도 한 것이다.
앞서 정신분석 이야기를 했지만 '영화가 사랑한 클래식'에는 "괴이쩍은 사랑의 정신분석학적 보고서"인 미카엘 하네케의 '피아니스트'와 그 영화에 수록된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이야기가 나온다. 아닌 게 아니라 김서영 교수의 '영화로 읽는 정신분석'에도 이 영화가 나온다. 김서영 교수는 "정신분석이란 바로 이렇게 드러난 이야기와 함께 또 다른 이야기를 읽어 내게 만드는 도구"('영화로 읽는 정신분석' 204 페이지)란 말을 한다.
최영옥 저자는 "난해하고 모호하기 그지 없"는 영화라는 평과 함께 감독이 영화를 보는 내내 저마다 자신의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영화가 '피아니스트'란 말을 던진다. 저자는 세상과의 단절에서 오는 고통을 겪은 슈베르트의 삶을 생각하면 해답이 나올 것도 같다는 말을 한다. 영화에는 이렇듯 이야기들이 나온다. 이제 영화들을 조금 더 주의 깊게 눈여겨 보게 될 것 같다. 어쩌면 클래식 음악을 듣기 위해 영화를 감상하려는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