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 브레인이란 용어가 있다. 프라이팬에서 톡톡 터지는 옥수수처럼 빠르고 강렬한 디지털 자극에만 뇌가 반응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컴퓨터 학자 데이비드 레비(David M. Levy) 교수가 스마트폰과 디지털 멀티태스킹에 중독된 현대인의 뇌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비공식 용어다.
책을 오래 읽어왔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는 팝콘 브레인 상태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물론 팝콘 브레인 상태를 면하는 것이 관건은 아니리라. 긴 호흡의 글, 양질의 글을 계속 꾸준히 읽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글에 공감하고 익숙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전이(轉移)의 한 종류가 아닐까? 생각한다.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전이란 과거 부모나 주(主)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느꼈던 감정, 기대, 관계 패턴을 현재의 다른 대상에게 투사하는 것을 말한다. 내 입장에서 전이란 쉽게 변하지 않는 글, 깊은 서사를 가진 긴 호흡의 양질의 글을 읽는 행위를 통해 안정감을 다시 경험하(려)는 것일 수 있다. 글은 나를 조급하게 재촉하지 않고, 언제나 그 자리에서 깊은 존재감으로 나를 맞아주는 안전한 대상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이학사에서 나온 내러티브 총서(叢書) 2번 [일꾼과 이야기꾼; 서사적 주체]에 나오는 장태순 교수의 진단을 접하고나서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해 박사가 된 장태순은 좁은 의미의 전이는 정신분석이라는 상황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전이는 우리가 이야기를 교환하는 모든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말한다.
지질(地質) 공부에서도 전이가 있을 수 있을까? 지질학은 겉으로 보이지 않는 땅속 깊은 곳의 역사와 비밀을 과학적으로 추적하는 학문이다. 이는 정신분석가가 환자의 겉모습 아래 숨겨진 무의식의 억압된 상처를 파헤치는 과정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가 자신의 자전적 회고록 [슬픈 열대(Tristes Tropiques)]에서 자신의 사상적 뿌리이자 평생의 세 가지 뮤즈(Three Mistresses)로 지질학,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를 꼽은 것이 기억난다. 이 학문들은 표면 아래의 거대 심층 구조와 역사를 파헤쳐 본질을 규명하는 학문들이다.
레비스트로스는 20대 초반에 지질학을 독학하며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지평선을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왜 이 바위는 여기에 있고, 저 골짜기는 왜 깎여 나갔는가?“ 같은 질문들을 던지며 눈에 보이지 않는 세월의 흔적과 법칙을 읽어냈다. 이는 정신분석으로 이어진다. 정신분석 역시 환자가 겉으로 횡설수설하는 말(표면)을 넘어, 그 아래 도사린 무의식의 지층(본질)을 분석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 역시 사회의 화려한 이데올로기 뒤에 숨은 경제적 하부구조를 분석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지질학 공부가 전이의 한 형태가 아닐까?란 생각을 한 것은 스콧 솔로몬의 [비커밍 마션]을 만나고서다. 본문에 지진해일이 남긴 퇴적층이란 말이 나온다. 영어로는 Tsunami deposit라고 한다.(모쿠다이 구니야스는 [그림으로 배우는 지층의 과학]에서 쓰나마이트란 말을 썼다.)
쓰나마이트라는 용어를 둘러싼 논쟁은 활발하다. 눈앞의 뒤틀린 지층(표면)을 보고 쓰나미의 흔적이라고 단정 짓고 싶은 열망과, 단순한 폭풍우의 흔적일지 모르니 철저하게 의심해야 한다는 과학적 회의주의가 격렬하게 부딪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구별의 요령은 있다. 쓰나미로 인해 만들어진 지층은 파도의 파장(길이)이 수십~수백km에 달해 에너지가 줄지 않고 해안선에서 수km 내륙 깊숙한 곳까지 모래를 밀고 들어간다. 지형의 굴곡을 그대로 따라 부드럽게 덮듯이 쌓이는 경향이 있다. 폭풍으로 인해 만들어진 지층은 파장의 한계 때문에 아무리 강한 태풍이라도 해안가에서 보통 300m 이내까지만 퇴적물을 남긴다. 언덕 같은 거대 지형을 넘지 못하고 그 앞에 막혀 쌓인다.
쓰나미는 워낙 유속이 빠르고 강력해서 내륙이나 갯벌을 통째로 뜯어내며 전진한다. 이때 부서진 진흙 덩어리(진흙 포획암)가 모래층 사이에 그대로 박힌 채 굳어버린다. 폭풍의 경우 오랜 시간 서서히 물이 차오르고 빠지기 때문에 진흙처럼 약한 덩어리들은 파도에 반복해서 씻기며 다 녹아버리므로 진흙 덩어리가 거의 없다. 이는 심층을 파헤치는 것이고 전이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모쿠다이 구니야스는 [그림으로 배우는 지층의 과학]은 내가 지질 해설사가 된 첫 해인 2020년에 나온 책이고 바로 사서 읽은 책이다. 6년이 지난 지금 보니 다시 읽어야 할 필요가 느껴진다. 단 [비커밍 마션]을 읽은 후에 읽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탈(脫) 지구 및 화성(火星) 안착을 논한 책이다. 아무리 지질학이 전이의 대상이어도 위기에 처했다면 떠나야 한다는 말에 저자는 어떤 말을 할까? 성공한다면 화성이 새로운 전이의 대상이 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