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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강아지에게 양자역학 가르치기 - 나의 첫 양자 수업 ㅣ 프린키피아 2
채드 오젤 지음, 이덕환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5월
평점 :
물리학 박사이자 화학물리학 박사 채드 오젤(Chad Orzel)의 [우리집 강아지에게 양자역학 가르치기]는 상대성 이론과 함께 현대 물리학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양자역학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 책이다. 제목에 나오는 강아지는 어떤 의미일까? 단순한 차원이 아니라 강아지에게 양자역학을 가르친다고 하는 것이다. 강아지는 사람과 다르게 선입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도 놀라지 않는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에게 양자역학이 난해하고 난감해 보이는 것은 양자역학이 세상에 대한 우리의 상식적인 기대에 어긋나기 때문이라고. 저자가 의미하는 바는 양자역학을 배우려면 강아지처럼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 양자론을 정립하도록 만들어준 발견은 빛과 물질이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입자 - 파동 이중성이었다. 일반적으로 파동이라고 생각하는 빛도 어떤 실험에서는 입자의 흐름처럼 보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입자의 흐름이라고 생각하는 전자빔도 어떤 실험에서는 파동처럼 보인다는 사실들도 밝혀졌다. 저자는 앞부분에서 입자와 파동의 차이를 설명한다. 파동 자체는 공간에서 변이의 확산일 뿐 물리적으로 분명한 위치와 속도를 갖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입자는 한 개, 두 개, 세 개가 있다고 할 수 있지만 파동은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양자 물리학을 이해하려면 파동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예전에는 비교할 수 없었던 빛과 소리는 지금은 파동의 상이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이야기된다. 빛과 소리는 장애물을 만났을 때 차이가 나타난다. 빛의 파동은 직선으로 지나가지만 소리의 파동은 장애물을 돌아서 가는 것처럼 보인다. 소리의 파동은 상당히 넓게 회절되기 때문에 심하게 꺾인 길에서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일상적인 물체는 빛의 파장보다 너무 크기 때문에 회절을 관찰할 수 없다. 그러나 충분히 작은 장애물에서는 빛의 파동적 특성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를 찾을 수 있다.
플랑크의 편법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당시 물리학자들은 빛을 끊어짐 없이 이어져 있는 물(water)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빛을 연속적인 파동으로 생각하니 에너지가 무한대로 나오는 이상한 현상이 생겼다. 플랑크는 빛을 모래알처럼 쪼개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플랑크의 편법은 물리학자들이 연속적인 파동이라고 생각해 왔던 빛을 입자의 경우처럼 물의 연속적인 덩어리의 흐름으로 보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플랑크의 가상적인 진동자는 빛을 불연속적인 밝기 단위의 입자로만 방출할 수 있다. 그 진동자가 바로 양자 물리학의 양자라는 개념이다.
플랑크가 빛의 양자에 해당하는 광자의 개념을 처음 도입한 것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플랑크는 빛이 불연속적인 양자의 흐름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가 자신이 사용한 이상한 편법을 쓰지 않고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줄 것이라고 믿었다. 플랑크의 불연속적인 에너지 계산법을 적용한 결과 주파수가 낮을 때는 고전역학의 비례 그래프를 따르다가 주파수가 높아질수록 에너지가 무한대로 가지 않고 다시 0으로 떨어지는 완벽한 곡선을 얻게 되었다.
닐스 보어는 플랑크의 불연속성 개념을 원자 구조에 도입하여 전자가 아무 궤도에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에너지 준위를 가진 궤도에만 존재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 광자는 밝기가 아니라 진동수와 관계가 있다. 진동수가 너무 작으면 빛이 아무리 밝아도 전자가 방출되지 않고 진동수가 커지면 아무리 빛이 희미해도 상당한 양의 에너지를 가진 전자가 방출된다. 빛의 밝기는 광자의 개수이고 진동수는 광자 하나의 에너지이다. 빛을 불연속적인 입자의 흐름으로 생각해야 했지만 그런 입자들이 여전히 파동과 마찬가지로 진동수를 가지고 있고 간섭 패턴도 만들어냈다.
아인슈타인, 밀리컨, 콤프턴은 모두 빛의 입자성을 밝혀낸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루이 드 브로이는 빛과 물질 사이의 대칭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전자와 같은 물질적 입자도 파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일 빛 파동이 입자처럼 행동한다면 입자도 파동처럼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것이다. 드 브로이는 운동량이 파장에 의해서 결정되는 광자와 마찬가지로 전자와 같은 물질적 입자도 운동량에 의해서 결정되는 파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데이비슨, 거머, 톰슨의 실험에 이어서 과학자들은 모든 아원자 입자들이 파동처럼 행동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입자의 질량이 증가하면 파장은 점점 더 짧아지기 때문에 직접 파동의 효과를 관찰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불확정성 원리는 단순히 측정 자체가 시스템의 상태를 바꾼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측정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양자 불확정성은 양자 물체가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어서 나타나는 결과로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근본적인 한계에 해당한다. 불확정성이 측정에 의한 시스템의 상태 변화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1920~1930년대에 등장했다.
마당에 있는 토끼의 위치와 운동량을 아주 정확하게 알아내고 싶은 경우를 생각해보자. 토끼의 위치를 더 정확하게 알아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면 토끼가 달아나버리기 때문에 토끼의 속도가 변한다. 아무리 느리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더라도 언젠가는 토끼가 도망칠 것이다. 결국 토끼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모두 정확하게 알아내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토끼처럼 지각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도망칠 수 없는 전자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전자의 위치를 측정하려면 빛의 광자가 반사되도록 해서 산란된 빛을 현미경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전자를 보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
광자도 운동량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광자가 전자에 의해 반사되면 전자의 운동량도 변한다. 현미경의 렌즈는 어느 정도 범위의 각도에서 광자를 수집하기 때문에 충돌이 일어난 후에는 전자의 운동량이 불확실해진다. 전자가 어느 쪽으로 움직였는지를 정확하게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양자 이론에서는 위치와 속도에 관한 양들이 처음부터 정의되지 않는다. 불확정성은 측정의 실질적인 한계에 대한 법칙이 아니라 현실의 한계에 대한 법칙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측정하기 전에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의 값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 값을 물어보는 것부터가 의미가 없다.(68 페이지)
양자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 모두가 불확실하다고 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파동 함수는 양자역학에서 입자의 위치를 수학적으로 나타낸 식을 의미한다.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지만 이를 제곱하면 위치에서 입자가 발견될 확률을 알게 해준다.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는 운동량의 불확정성과 위치의 불확정성이 지나치게 크지 않은 하나의 파동 다발을 얻는 것이다. 불확정성 원리의 의미는 단순히 위치와 운동량을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의미에서는 그런 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자의 파동적 성질을 설명하려면 전자가 행성과 같다는 생각 자체를 포기해야만 한다. 대신 전자가 원자핵 주변을 일종의 구름처럼 흐릿한 모양으로 떠다닌다고 생각해야 한다.(83 페이지) 전자의 위치는 불확실하지만 원자핵 주변으로 한정되어 있고, 운동량도 불확실하지만 전자가 원자핵 주위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 범위로 제한된다. 일상적인 대상은 너무 크기 때문에 양자역학적 불확정성을 확인할 수가 없다. 아주 작은 입자가 아주 작은 공간에 갇혀 있어야만 불확정성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전자가 언제나 위치와 운동량 모두에 대해 불확정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원자를 구성하는 전자 에너지가 절대 0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전자의 일부이면서도 에너지가 0이 되려면 전자가 움직이지 않고 원자핵에 멈춰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미 살펴보았듯이 그런 일은 절대 불가능하다. 전자를 원자에게 최대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려면 원자핵에 중심을 둔 폭이 좁은 전자의 파동 다발을 만들어야 하고 그런 다발에는 운동량이 0이 아닌 상태들이 대단히 많이 포함되게 된다. 그래서 수소에서 가장 낮은 에너지를 가진 상태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에너지는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다.(85 페이지)
영점 에너지는 갇힌 입자가 가질 수 있는 절대적 최소 한계가 된다. 시스템을 아무리 조심스럽게 만들어도 입자는 언제나 움직이고 작은 무작위적 요동 때문에 입자가 움직이는 속도의 크기와 방향은 끊임없이 바뀐다. 영점 에너지는 양자 물리학에서 우리의 직관과 가장 확실하게 어긋나는 아이디어 중 하나로 세상에 완벽하게 정지하고 있는 것은 없다는 뜻이다. 시스템으로부터 모든 에너지를 빼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언제나 약간의 에너지는 남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심지어 텅 빈 공간도 영점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양자 효과에 의한 불확정성은 일반적으로 매우 작아서 현실적으로 거시적 대상은 확실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취급할 수 있다. 과학을 배우는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가 바로 세상이 얼마나 철저하게 고전 역학적인가 하는 점이다. 양자 물리학에서는 파동처럼 행동하는 입자, 서로 다른 두 곳에 존재하는 대상, 죽어 있으면서 살아 있기도 한 고양이처럼 다양한 종류의 놀라운 이야기가 등장한다. 저자는 양자 법칙이 일상적인 강아지와 고양이를 포함한 거시적 세계에서 곧바로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말한다.
양자역학에서 이론을 지배하고 파동 함수를 계산해주고 행동을 예측해주는 수학적 방정식이 있지만 파동 함수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양자역학의 철학적 문제는 대부분 이론의 해석에 대한 것이다. 파동 함수, 허용 상태, 확률, 측정은 양자역학의 핵심 원리이다. 모든 것은 파동 함수를 가지고 있고 파동 함수는 어디를 살펴 보거나 상관없이 어떤 값을 갖게 된다. 양자론에서는 주어진 대상이 언제나 어떤 상태에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 전자는 중간 에너지 상태를 거치지 않고 순간적으로 도약한다. 두 상태 사이의 극적인 변화를 양자 도약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실제로 에너지도 약에 해당하는 상태 변화에는 전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전자는 특정한 파장의 빛을 흡수하거나 방출한다. 파동 함수는 확실성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바로 이 부분에서 철학적 문제가 끼어든다. 고전 물리학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양자적 무작위적 확률은 매우 난감한 개념이다. 물리학에서는 최후의 나비가 날개짓을 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완전히 똑같은 조건에서 똑같은 실험을 반복하더라도 두 번째 실험의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여러 가지 가능한 결과의 확률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상자를 열어서 두 상자 중 어느 하나에 과자가 들어 있는 사실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과자가 왼쪽 상자와 오른쪽 상자 모두에 들어 있는 것으로 본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빛의 편광은 양자역학의 핵심 개념인 중첩, 측정, 확률을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양자 지우개라는 개념이 있다. 이것을 이해하면 양자 물리학의 핵심적인 요소를 모두 이해하는 셈이라고 한다. 이는 입자의 경로 정보(어디로 갔는지)를 지워서 사라졌던 파동의 간섭무늬를 되살리는 실험장치나 현상을 말한다.
코펜하겐 해석 진영은 미시적 물리학과 거시적 물리학 사이에 엄격한 경계선을 설정함으로써 중첩과 측정의 문제를 회피해보려고 노력했다. 양자, 전자, 원자, 분자와 같은 미시적 대상은 양자역학의 법칙에 의해서 지배되지만 강아지, 물리학자, 측정 장치와 같은 거시적 대상은 고전 물리학에 의해서 지배된다. 미시 세계와 거시 세계는 절대적으로 구분이 되기 때문에 거시적 대상이 양자적으로 행동하는 경우는 절대 볼 수 없다. 양자 측정에는 거시적 측정장치와 미시적 대상의 상호작용이 필요하고 그런 상호작용이 미시적 대상의 상태를 변화시킨다. 그런 상황을 일반적으로 파동 함수가 단 하나의 상태로 붕괴된다고 표현한다.
유진 위그너는 파동 함수가 붕괴되는 것이 친구가 상자를 열었을 때인지 아니면 자신이 그 결과를 통보 받았을 때인지를 물었다. 역학은 미시적 물체와 그런 물체로 구성된 집단의 성질을 설명하는 데는 훌륭하지만 우리가 보는 세상은 고집스럽고 놀라울 정도로 고전적이다. 미시적 세상과 거시적 세상의 절대적 구분을 고집하는 코펜하겐 방식은 많은 물리학자들에게 문제를 회피하려는 시도를 보였다. 코펜하겐 해석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말해주지만 그런 일이 왜 일어나는지는 설명해주지 못했다.
양자역학의 해석 문제는 미시 세계의 확률적 법칙과 거시 세계의 결정론적 법칙 사이의 극명한 차이를 어떻게 연결하고 설명할 것인가에서부터 시작한다. 코펜하겐 해석에 만족한 물리학자는 거의 없다. 그 대안 중 하나가 다중 세계 해석이다. 그들에 의하면 똑같은 사건이 우리가 경험하는 것과는 다른 과정으로 진행되는 무한히 많은 대안 우주가 있다. 파동 함수는 언제나 부드럽고 연속적으로 변화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파동 함수의 어느 한 가지만 경험한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가지를 보게 되는지는 확률적으로 결정된다.
결어긋남은 파동 함수의 서로 다른 가지들이 상호작용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코펜하겐 해석이나 다중 세계 해석은 물론이고 다른 해석을 좋아하는지에 상관없이 측정을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파동 함수의 물리적 붕괴가 포함되거나 또는 계속 확장되고 진화하는 파동 함수의 여러 가지 중 어느 하나만을 인식하거나 상관없이 측정은 능동적인 과정이다. 상태를 측정하기 전까지 물체는 모든 가능한 상태의 양자적 중첩 상태로 존재하지만 측정을 한 후에는 즉시 하나의 상태로만 관찰된다.(161 페이지)
본문에는 양자 제논 효과도 나온다. 제논의 역설의 양자적 해석이다. 1990년 콜로라도에 있는 국립 표준기술연구소의 데이브 와인랜드 연구진의 웨인 이타노가 베릴륨 이온을 이용한 실험으로 양자 제논 효과를 분명하게 확인했다. 터널 현상은 담장을 향해 달려가는 강아지의 경우처럼 장애물을 향해서 움직이는 입자가 마치 장애물이 없는 것처럼 장애물을 통과해 버리는, 쉽게 예상하기 어려운 양자 현상이다. 양자 입자는 물질의 파동적 성질 때문에 고전 물리학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단단한 물체 속으로 파고 들어가거나 지나가 버릴 수 있다. 가장 분명한 에너지의 형태는 움직이는 물체가 가지고 있는 운동 에너지이다.
일상적인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의 운동 에너지는 질량에 속도의 제곱을 곱한 양의 절반에 해당한다. 운동 에너지는 언제나 0보다 큰 값을 가지며 질량이나 속도가 늘어날수록 커진다. 움직이지 않는 물체는 다른 물체와의 상호작용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가능성을 퍼텐셜 에너지라고 부른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무거운 물체는 퍼텐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런 물체는 움직이지 않지만 지나치게 활동적인 강아지가 테이블에 부딪혀서 바닥으로 떨어지면 운동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183 페이지)
에너지는 양자역학에 대한 이야기에서 특히 중요하다. 양자 입자는 잘 정의된 위치나 속도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고전 물리학에서처럼 그런 성질을 추적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러나 양자역학에서도 에너지는 보존되기 때문에 에너지를 이용해서 양자 시스템을 설명할 수 있다. 얽힘(entanglement)은 기본적으로 두 물체의 상태 사이의 상관성을 말한다. 아인슈타인은 언제나 원인으로부터 결과에 이르는 경로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결정론적 우주관을 철저하게 믿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는 양자역학에 대해서 심각한 철학적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그는 측정하기 전까지는 양자 입자의 성질이 결정되어 있지 않고 확률적인 값을 가진다는 생각을 매우 불편하게 생각했다.
1930년대 초가 되면서 아인슈타인은 어쩔 수 없이 불확정성을 인정했지만 여전히 양자 이론을 불편하게 느꼈다. 양자역학은 고전 물리학에서와는 달리 멀리 떨어진 측정들도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에서 비국소적 이론이다. 국소성은 고전 물리학의 핵심이기 때문에 의문을 품을 수 없다. 국소성에 따르면 원인과 결과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 간격이 필요하다. 공간 이동은 비국소적 상관성을 응용하는 가장 널리 알려진 예일 것이다. 사람들은 이름만으로도 수많은 상상을 하게 되어서 순간적으로 물질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스타트랙]과 같은 과학 소설을 떠올리게 된다.
A에서 출발한 물체가 부드러운 폭음과 함께 사라졌다가 멀리 떨어진 B에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 소설에서 보았던 것과 비교하면 실제 양자 공간 이동은 실망스럽게 보인다. 양자 공간 이동은 물체 자체가 아니라 물체의 양자 상태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다. 더욱이 정보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이동의 속도도 빛보다 느리다. 과학 소설에서 꿈꾸는 공간 이동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공간 이동의 핵심은 원격 복사라고 할 수 있다. 한 곳에 있는 물체를 다른 곳에 있는 복제품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는 팩스 장치가 고전 물리학을 이용한 공간 이동의 예가 될 수 있다.
중간 이동이 가능한 것은 양자 물리학이 비국소적이기 때문이다. 공간 이동 개념은 1993년에 처음 소개되었고 1997년에 안톤 자일링거가 이끄는 인스부르크 연구진에 의해 처음으로 증명되었다. 그들은 자외선 레이저에서 나온 광자를 두 개의 적외선 광자로 변환시켜주는 결정을 통과시켜서 얽힌 광자를 만들었다. 각각의 적외선 광자의 에너지는 본래 자외선 광자의 절반이 되었다. 그들은 두 차례에 걸쳐서 레이저를 결정해 통과시킴으로써 모두 4개의 광자를 만들었다. 광자 2와 광자 3의 쌍은 공간 이동에 필요한 얽힌 쌍으로 사용했고 나머지 두 개의 광자 중 하나인 광자 1은 공간 이동이 될 상태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편광기를 통과시켰다. 나머지 광자 4는 언제 자료를 수집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신호를 사용했다.
저자는 물체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목표라면 굳이 양자 공간 이동을 이용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양자 공간 이동은 특정한 상태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준다. 그렇다면 양자 공간 이동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명이 없는 물체를 옮기는 데에는 양자 공간 이동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의식이 있는 대상을 옮기는 경우에는 반드시 양자 공간 이동이 필요하다. 의식은 근원적으로 양자역학적이라고 생각하는 과학자도 있다. 로저 펜로즈는 [황제의 새 마음]에서 그렇게 주장했다.
그런 주장이 옳다면 사람이나 강아지의 뇌 상태를 제대로 재현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팩스 장치가 아니라 양자 공간 이동장치가 필요하다. 우리는 사람을 공간 이동시킬 수 있는 단계에 가까이 가지 못하고 있다. 현재 양자 공간 이동에 대한 관심은 훨씬 더 작은 물체에 한정되어 있다. 위치와 운동량에 대한 불확정성 외에 에너지와 시간의 불확정성도 있다. 직접 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입자인 가상 입자는 심각한 과학 이론에서는 지나치게 환상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 입자들이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빛과 물질 사이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양자 전기 역학 또는 QED라고 부르는 이론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가상 입자는 우리가 직접 관찰할 수 없을 정도로 지극히 짧은 시간 동안에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그러나 가상 입자와의 상호작용이 전자의 상호작용 방식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그런 입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 효과는 아주 작지만 그 효과를 측정할 수 있고 그 결과가 실험 결과와 소수점 아래 14 자리까지 일치한다. 이런 실험은 QED가 옳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줄 뿐 아니라 수십억 달러가 필요한 입자가속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새로운 아원자 입자의 존재를 알아 낼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저자는 양자역학은 마술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무리 불가능하고 신기하게 보이더라도 양자역학은 물리학의 일반 원리에 맞는 과학 이론이다. 현상이나 장치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양자라는 단어가 공짜로 에너지를 만들어 주거나 메시지를 빛의 속도보다 더 빨리 보내도록 해주지는 않는다. 양자역학의 원리는 우주의 심오한 구조 속에 들어 있다. 양자역학은 그런 법칙을 따를 뿐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그런 법칙이 양자적 특성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양자역학의 여러 가지 예측이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일상적인 통찰과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모든 상식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양자역학은 사실이기에는 너무 그럴듯한 것은 거의 확실히 엉터리라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상식 법칙을 넘어서지 않는다. 양자 물리학에 따르면 영점 에너지는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에 있는 경우에도 존재하는 에너지다. 운동 에너지를 최소값으로 만들고 퍼텐셜 에너지를 증가시킬 수 있는 외부와의 상호작용을 모두 제거해 버림으로써 양자 시스템으로부터 추출할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꺼내더라도 여전히 시스템에는 잔류 에너지가 남는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와 마찬가지로 영점 에너지는 물질의 기본적인 파동적 성질에서 비롯되는 결과이다. 우리가 불확정성에 의한 한계를 넘어설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점 에너지를 이용해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도 없다. 영점 에너지를 이용하려는 시도는 광자의 절반을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요구는 의미가 없다. 양자 자유 에너지에서 주로 언급되는 또 다른 요소는 진공 에너지다. 이것은 QED에 따르면 반드시 존재하는 가상 입자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사라지는 과정에서 빈 공간의 영점 에너지를 이용한다는 영점 에너지 주장의 변종이다.
양자역학을 잘못 이용하는 또 다른 주요 분야가 대체의학이다. 서점과 인터넷은 양자역학이 건강과 부와 장수의 열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이런 주장에서 가장 흔하게 활용되는 것이 바로 양자 측정이다. 사기꾼들은 양자 이론에서 측정하기 전까지는 상태가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래서 자신이 건강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열쇠라고 주장한다. 그런 식이라면 스스로에게 양자 제논 효과 실험을 반복하면 영원히 사는 것도 가능해진다. 자신이 언제나 건강한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그런 양자 측정이 몸이 병들지 않도록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저자는 양자 효과는 확인하기가 매우 어려우며 연구대상이 커질수록 확인하기가 더 어려워진다고 말한다. 양자 중첩 상태가 확인된 가장 큰 물체는 수십억 개의 전자가 모인 경우이고, 양자 제논 효과는 하나의 입자에서만 확인되었다. 양자역학은 이상하지만 훌륭한 이론이고 흥미로운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대부분의 현대 기술은 어떤 식으로든지 양자역학에 의존한다.
현대 전자 장치와 컴퓨터 칩은 양자역학에 의해 작동하고 현대 통신에 사용하는 레이저나 LED와 같은 공학 장치도 기본적으로 양자 장치이다. 놀라운 사실은 양자역학이 기적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양자역학의 예측이 일상적인 통찰과 어긋나기는 하지만 이론 그 자체가 상식을 완전히 넘어서는 것은 아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결과를 약속하는 사람은 거짓을 말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자신에게도 거짓말을 하고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