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을 오해한 대한민국
신현철 지음 / 소명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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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 번역 등의 오류 등을 많이 언급한 책이어서 다소 지루하게 또는 재미 없게 읽힌다. 하지만 정독할 가치는 충분하다. 물론 교양서적을 재미로 읽는다는 의미의 말은 아니다. 이 책은 다윈의 개념들이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잘못 이해된 정도가 크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다. 우선 자연선택이란 말부터 우리는 오해한다. “사람들이 자연선택을 자연의 선택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저절로 그렇게 되어 가는, 스스로 그러한 등의 의미이다. 자연선택이란 환경에 적합한 생물이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생물은 죽는 자연스러운 과정의 반복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자연선택이란 자연이 특정한 유형의 생물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 환경에 적합한 생물들이 자연스럽게 살아남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관련 문장이다. 


일본에서 배운 경쟁이란 말을 우리나라에 소개한 사람이 유길준이다. 그가 사용한 경쟁이라는 단어는 후쿠자와 유키치가 만든 것이다. 후쿠자와 유키치와 대비되는 사람이 동시대의 가토 히로유키다. 유키치는 경쟁을 competition의 의미로, 히로유키는 struggle의 의미로 썼다. 전자는 긍정적인 선의의 경쟁의 의미를 가진 말이고 후자는 적대적 경쟁의 의미를 가진 말이다. 전자는 함께를 뜻하는 com과 목표로 삼다/추구하다를 뜻하는 petere의 결합어다. 두 사람은 모두 외국어로 네덜란드어를 공부하다가 후쿠자와는 네덜란드어가 앞으로 외국과의 교제에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영어를 공부하기로 했고 가토는 독일이 유럽 각국에서 가장 학문이 발달한 나라라고 생각하여 독일어로 방향을 돌렸다. 


후쿠자와는 개인의 자립과 자유를 존중하는 것을 기초로 하는 영국 사상을 일본에 최초로 도입했고, 가토는 국가의 개입에 대한 우월성을 지향하는 독일 사상을 일본에 최초로 도입했다. 가토가 생각한 경쟁이 후쿠자와가 생각한 경쟁보다 일본 내에서 널리 통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초기 지식인들이 사용했던 경쟁이라는 개념은 고전적 자유주의 관점이었겠지만 1890년대를 지나면서는 사회 진화론에 따른 경쟁의 개념으로 변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윈은 독일의 고생물학자 하인리히 게오르그 브론이 번역한 일부 내용에 대해 부만을 표했다. 가령 ‘선택에 유리한‘이라는 영어가 ’완전한‘ 또는 ’완벽한‘이라는 독일어로 번역이 된 것이다. 저자는 만일 생물이 완벽하다면 환경이 변화할 때에 완벽한 생물에게서 또 다른 변이가 나타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만일 없다면 그 생물은 더 이상 진화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생물에게 변이가 나타나 환경에 유리하도록 적응하면서 새로운 종으로 만들어진다는 다윈의 생각을 오해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경쟁의 양상은 과감한 창의성 경쟁이 아닌 소극적 위험 회피 경쟁, 사회적으로 최적화된 실력 경쟁이 아닌 과도한 간판 따기 경쟁, 조화로운 공생 발전이 아닌 약육강식의 승자독식 경쟁이라 정리한다.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진화론으로 읽는 것이 문제다. 그런 독법은 과학적 사실과 인간 사회의 윤리적 가치를 혼동하는 독법이다. 있는 그대로의 현상(is)을 당연히 그래야 하는 가치(ought)로 오인하는 자연주의적 오류다. 미국 저술가 데이비드 쾀멘(David Quammen)은 다윈은 과학과 사회학 분야에서 핵심적이고 상징적인 인물이지만 널리 제대로 이해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저자는 맬서스가 생존을 위해 경쟁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고, 다윈 역시 생존을 위해 경쟁해야 한다고 설명하지 않았음에도 다윈과 맬서스가 연결되어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을 해야만 한다는 담론이 형성되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중요한 말을 한다. 다윈이 [종의 기원] 6판에서 evolu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면 혼란이 제기되지 않았을 것이다. 다윈의 생각이 궁금할 뿐이다. 그러나 다윈은 사용했고 스펜서가 사용한 evolution과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은 상태로 일본으로 전달되었고 일본에서 번역된 진화라는 용어는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많은 혼란을 야기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혼란을 멈추어야 할 것이다. 단지 진화라는 단어가 이미 우리 사회에서 고정되어 있다면 사용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보라는 개념이 포함된 진화라는 단어를 생명과학계에서는 퇴출시키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189 페이지) 


저자는 먹을 것이 부족하면 경쟁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식량 자원을 모색해야만 하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이어서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오히려 생물이 다양해지는 과정을 설명하려고 했다고 말한다.(191 페이지) 다윈은 place와 station이란 단어를 단순히 지역이나 장소가 아닌 생태학적 개념으로 사용했다. 오늘날 place는 생태적 지위로, station은 생태적 지위의 하위 개념의 하나인 공간적 또는 서식지 지위로 사용된다.(192 페이지) 그런데 생물과 환경과의 관계를 규명하는 생태학이라는 학문이 다윈 시대에는 아직 정착되지 않아서 다윈이 사용했던 place나 station을 생태학적 관점에서 정확하게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다. 실제로 생태학이라는 용어는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간된 이후인 1866년에 에른스트 헤켈이 처음 사용했다. 


저자는 2019년 [종의 기원 톺아보기]를 쓴 저자다. 이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우리는 둘러싸고 있는 모든 생명체 사이에서 나타나는 상호 연관성을 우리가 해박하게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을 마땅히 고려한다면 종과 변종의 기원에 대해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아직까지도 많이 남아 있음에 놀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떤 한 종은 널리 퍼져 분포하며 개체수도 많은 반면 이와 동류인 또 다른 종은 좁은 곳에서만 살아가고 개체수도 매우 적은 점을 누가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종들 사이에 이 상호연관성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믿기로는 이 연관성이 지구상에 있는 정착생물들 하나하나의 현재의 번성과 미래의 성공과 변형을 결정하기 때문이다.”(219 페이지) 다윈의 말이다. 


이 내용이 [다윈을 오해한 대한민국]에 인용되어 있다. 아마도 이 부분이 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다른 점은 다 잊더라도 이 상호연관성이란 개념을 다윈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는 점을 아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종의 기원 톺아보기]를 읽어야 하겠다. 저자는 상호 연관성은 오늘날 생물과 생물 사이에서 나타나는 상호작용으로 풀이된다고 말한다. 상호작용은 한 생물이 작용하면 다른 생물은 이에 대해 반작용하는 관계로 경쟁도 이러한 상호작용의 한 종류로 간주한다. 오늘날 생물들 사이의 상호작용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서로 협력하는 공생 관계를 들고 있다. 공생을 강조하는 책들도 찾아 읽어야겠다. 저자는 궁리하고 음미하며 보낸 시간의 결과 이런 책을 냈다. 깊은 탐색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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