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과학 원리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고중숙 교수의 [내 머리로 이해하는 E=mc²]을 읽은 것으로부터 시작된 관심이다. 이 책을 읽은 것은 25년전인 2001년이었다. 당시는 E=mc²를 이해하고자 읽다가 관련이 큰 핵에 대해서까지 관심이 이어진 것이다. 며칠 전 읽은 서균열 교수의 [인문핵]을 통해 많은 부분을 이해했다. 그러나 그 책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내용을 찾아 송은영 저자의 [페르미가 들려주는 핵분열, 핵융합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핵반응은 화학반응보다 평균적으로 1000만 배나 많은 에너지를 내놓는다. 방사성 원소란 방사선을 내놓는 원소를 말한다. 라듐, 우라늄, 토륨 등이 대표적인 원소다. 방사성 원소는 각각의 특성에 따라 알파 방사선, 베타 방사선, 감마 방사선을 내놓는다. 알파 방사선은 베타 방사선 보다 7000배 이상 무겁다. 전기까지 띠고 있어서 공기 중의 여러 입자와 반응해 적지 않은 에너지를 잃어버린다. 그러니 멀리 나아가려고 해도 나아갈 수 없다. 알파 방사선이 공기 중에서 비행하는 거리는 수 센티미터 정도이다. 그래서 알파 방사선은 종이 한 장으로도 차단이 가능하다. 알파 방사선이 그다지 해를 끼치지 못하는 이유다.
그러나 알파 방사선이 음식물이나 호흡기를 통해서 인체로 들어오면 사정은 달라진다. 인체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 베타 방사선은 알파 방사선보다 가볍고 전기도 약하다. 그래서 공기 중의 입자와도 알파 방사선만큼 반응하지 않는다. 그래서 종이 정도는 거뜬히 뚫고 수 미터까지 날아간다. 베타 방사선도 알루미늄판은 뚫고 지나가지 못한다. 하지만 베타 방사선도 과다하게 쪼이면 위험하다. 감마 방사선은 알파 방사선이나 베타 방사선과 달리 질량도 없고 전기도 띠지 않는다. 그래서 웬만한 물체는 거침없이 뚫고 지나간다. 방사선이 두려운 것은 바로 감마 방사선의 강력한 투과력 때문이다. 그러나 감마 방사선도 두꺼운 콘크리트 벽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다.
라듐과 우라늄은 알파 방사선을, 토륨은 베타 방사선을 내놓는다. 감마 방사선만을 따로 내놓는 방사성 원소는 없다. 감마 방사선은 알파 방사선과 베타 방사선이 나오면 뒤따라서 나온다. 방사성 원소는 막대한 에너지를 내놓지만 한 두 번의 단발적인 현상으로 그쳐서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창출해내기 어렵다. 방사성 원소의 에너지가 쓸모 있는 위력을 발휘하려면 붕괴 반응이 연이어 이어져야 한다. 이를테면 연쇄반응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연쇄반응은 중성자를 발견하고 나서부터 가능해졌다. 중성자는 1932년 영국의 물리학자 채드윅이 발견했다. 그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35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핵은 전기적으로 중성이 아니라 양성이다. 양성자는 양성이기 때문에 전기적으로 양성인 핵에 다가서지 못하고 전자는 핵에 꽉 붙들려서 벗어나지 못한다. 중성자는 중성이기 때문에 양전하이든 음전하이든 상관없다. 중성자가 발견되기 이전에는 감히 꿈꿀 수조차 없었던 핵 속으로의 진입이 마침내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이다.
리제 마이트너는 중성자로 우라늄을 때렸더니 우라늄보다 원자번호가 거의 절반밖에 안 되는 56번의 바륨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하나의 중성자가 입사(入射)해서 그 많은 결합을 깨고 핵을 두 동강 내버린다는 것은 믿어지기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핵 속에 입자가 많이 들어 있어 그만큼 불안정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닐스 보어는 핵은 딱딱한 고체가 아니라 말랑말랑하게 방울진 액체처럼 되어 있다는 모형을 제안했다.
우라늄 235가 어떤 원자로 쪼개어져야 한다는 공식은 없다. 분할은 무작위적이다. 어떤 원소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범위는 있다. 너무 가볍거나 무거운 원소가 생길 확률은 거의 없다. 대부분 질량수가 90~100, 135 ~145 범위의 두 원소로 쪼개어진다. 우라늄 235(양성자+중성자; 235; 질량수)가 핵분열해서 내놓는 대표적인 원소는 바륨과 크립톤, 크세논과 스트론튬, 텔루르와 지르코늄이다. 중성자와 우라늄 핵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연쇄반응과 핵분열은 원자력 에너지와 원자폭탄으로 무르 익어서 현실화된다.
아인슈타인 이전에는 누구나 에너지와 질량이 전혀 별개의 것이라고 믿었다. 아인슈타인은 질량과 에너지는 같으나 단지 형태만 다르다고 주장했다. 페르미는 중성자와 원소 사이에 파라핀을 놓고 중성자로 원소를 때리는 실험을 했다. 그러자 방사선이 엄청나게 나오는 것이었다. 방사선 수치가 열 배는 보통이었고 심지어는 100배까지도 증가했다. 방사성 수치가 높아졌다는 것은 핵반응이 더욱 빈번히 일어났다는 뜻이다. 이것은 연쇄반응이 가능해졌다는 의미다.
파라핀에는 수소가 듬뿍 들어있다. 수소에는 양성자가 하나 들어 있다. 중성자는 들어 있지 않다. 양성자와 중성자는 질량이 비슷하다. 양성자와 중성자의 질량이 비슷하니 수소는 중성자와 질량이 비슷할 것이다. 수소와 중성자는 질량이 비슷하니 파라핀 속 수소와 중성자가 충돌하면 어떻게 될까? 중성자는 많은 에너지를 잃을 것이다. 에너지를 적지 않게 잃어버렸으니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다. 속도가 느려졌으니 수소 주위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머무는 시간이 길수록 접촉할 수 있는 확률은 그만큼 높아진다.
중성자와 수소가 만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뜻이다. 중성자와 수소의 반응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니 더 많은 방사선이 나올 수밖에 없다. 방사선이 많이 나오는 것은 중성자의 속도가 느려졌기 때문이다. 속도가 느린 것을 저속이라고 한다. 속도가 느려진 중성자를 저속 중성자라고 부른다. 저속 중성자는 핵반응의 확률을 대폭적으로 높여준다. 연쇄반응이 일어나는 확률을 급속도로 향상시켜준다는 말이다. 이로써 핵에너지를 마음껏 꺼내어 쓸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다.
페르미는 핵반응 실험 준비에 들어갔다. 연쇄반응의 조건을 살피는 과정을 한 단계 한 단계 차근차근 조정해 나갔다. 어떤 물질이 중성자를 얼마나 흡수하는지, 물질의 순도에 따라 중성자 흡수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우라늄을 얼마나 쌓아야 적당한지를 세심하게 살폈다. 그러고는 순도 높은 우라늄과 흑연을 벽돌처럼 높이 쌓여 올렸다. 흑연은 중성자의 속도를 늦추기 위한 것이었다. 중성자의 속도를 늦춰주는 물질을 감속재라고 한다. 원자폭탄은 제어봉이 필요 없다.
연쇄반응이 급격히 이루어져야 무시무시한 핵폭탄이 된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은 그래서는 안 된다. 원자력 발전의 목적은 핵발전소를 일순간에 흔적도 없이 날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핵 에너지를 끌어내서 유용하게 사용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페르미는 우라늄 238이 중성자와 만나면 더 무거운 미지의 새로운 원소가 탄생할 것이라 보았다. 중성자가 우라늄 핵에 더해져서 우라늄보다 원자번호가 높은 원소가 탄생한 것이다. 이것이 플루토늄 239(양성자 94+중성자 145)다.
우라늄 238은 핵분열을 하지 못해 핵에너지를 내지 하지만 핵에너지를 내보내는 물질을 새롭게 만든다. 우라늄 238의 반감기는 45억년이다. 우라늄 235에 중성자를 충돌시키면 핵분열 하고 우라늄 238에 중성자를 충돌시키면 중성자를 흡수해 플루토늄 239가 된다.
우라늄 235는 중성자 수가 143개로 홀수다. 핵자(양성자와 중성자)들은 짝을 이룰 때 더 안정적인데, 우라늄 235는 짝이 맞지 않아 기본적으로 에너지가 높은 상태다. 우라늄 235가 중성자를 하나 더 흡수하면 우라늄 236이 되면서 중성자 수가 짝수가 된다. 이때 짝을 이루면서 발생하는 '짝짓기 에너지(Pairing Energy)'가 매우 크다. 이 넘치는 에너지가 핵 전체를 심하게 흔들어놓고(임계 변형) 결국 핵이 두 개로 쪼개지는 핵분열이 일어난다.
우라늄 238은 중성자 수가 146개로 이미 짝수다. 구조적으로 우라늄 235보다 훨씬 안정적이다. 우라늄 238이 중성자를 흡수해 우라늄 239가 되면 중성자 수가 홀수가 된다. 이때는 우라늄 235의 경우와 반대로 에너지가 크게 방출되지 않으며 핵을 쪼갤 만큼의 충격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 결과 핵이 깨지는 대신 중성자를 품고(포획) 있다가, 두 번의 베타 붕괴를 거쳐 원자번호가 92번(우라늄)에서 94번인 플루토늄 239로 변한다.
핵분열을 하면서 사라지는 우라늄 235보다 중성자를 흡수해 새롭게 생기는 플루토늄 239가 더 많아진다. 이런 경우를 증식(增殖)이라 한다. 세분하면 우라늄 238에 중성자가 더해지면 넵투늄 239(양성자 93+중성자 146)이 된다. 넵투늄 239가 베타 붕괴를 한다.(베타 붕괴는 질량수는 변하지 않고 원자번호는 하나 증가한다.) 그 결과 플루토늄 239가 된다.
중성자가 양성자보다 많은 상태에서 중성자가 양성자로 바뀌며 핵이 더욱 안정적인 상태로 붕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음의 베타 붕괴는 중성자가 양성자로 바뀌어 원자번호가 하나 증가하고 중성자는 하나 감소한다. 양성자는 하나 증가하여 전체 질량수는 변하지 않는다. 양의 베타 붕괴는 양성자가 중성자로 변환되어 원자번호가 하나 감소하고 중성자는 하나 증가하고 양성자는 하나 감소한다.
플루토늄은 원자폭탄의 개발에 또 하나의 새로운 이정표를 찍었다. 우라늄 235의 분리와 같은 동위원소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핵 원료를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기 때문이다.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 양이 임계질량이다.
우리는 아인슈타인 하면 원자폭탄을 떠올리지만 그는 원자폭탄 제조에 실질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원자폭탄을 탄생시키는 데 내가 한 일은 미국이 독일보다 앞서서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를 쓴 것뿐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후회스러워 했다. 아인슈타인의 E=mc² 공식만으로 원자폭탄을 만들 수 없다. 사람들의 논리라면 중성자를 발견한 채드윅도 원자폭탄 개발에 몫을 했다. 핵분열을 발견한 마이트너도 그렇다.
원자폭탄을 제조하려면 구체적이고도 복잡한 여러 가지 과학기술이 필요하다. 우라늄 광석에서 우라늄 235를 뽑아내서 농축시키는 일, 증식로 속의 여러 핵물질 가운데서 플루토늄을 추출해내는 일. 원자폭탄의 임계 질량을 정확히 산출해내는 일, 원자폭탄 내부에 폭약을 꼼꼼히 설치하는 일 등등 수많은 어려움을 해결해야 한다.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은 기체, 액체, 고체로 다양하다. 원소 중에서 가장 가벼운 수소는 핵융합을 일으키는 데 가장 적당하다. 우라늄은 238이 대부분을 차지하듯 수소도 경수소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수소의 99.985 퍼센트가 경수소(프로튬)이고 나머지는 중수소(듀테륨)다. 삼중수소(트리튬)는 자연 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고 인공적으로만 만들 수 있다. 가장 바람직한 핵융합은 삼중수소(트리튬)와 중수소(듀테륨)가 합쳐져 헬륨을 만드는 핵반응이다. T-D 반응이라 한다. 아인슈타인의 E=mc²는 핵분열에서 나오는 에너지뿐만이 아니라 핵융합에서 나오는 에너지도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핵분열보다 에너지 생산율이 높은 것이 핵융합이다.
우라늄 235 1kg이 핵분열하면서 내놓는 에너지는 200억 킬로 칼로리다. 수소 1kg이 핵융합하면서 내놓는 에너지는 1,500억 킬로 칼로리다.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려면 1억도에 가까운 온도가 필요하다. 핵융합 반응은 탄소 배출이 없는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소량의 방사성 폐기물은 발생한다. 핵융합 반응의 원료는 수소 즉 물이다. 넘치는 양이다. 수소는 석탄, 석유에 비해 압도적으로 싸다. 수소는 방사성 원소가 아니다. 핵융합 반응에서 나오는 질량결손이 태양열과 태양빛의 원인이다. 핵융합 반응은 핵분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온도 때문이다.
물리학에서 공부할 것은 많다. 올해 읽은 짐 알칼랄리의 [어떻게 물리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에서는 E=mc²을 통해 아원자세계에서 핵분열을 이해하고 원자핵 에너지를 해방시킬 수 있었다(106 페이지)는 말이 나온다. 색다른 표현이다. 이 책은 물리학 일반에 대한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언제라도 저명한 외국 물리학자의 핵융합, 핵분열 이야기 책이 출간되면 읽을 생각이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핵융합의 본령이라 할 별의 핵융합 이야기에 집중할 생각이다. 송은영 저자의 책에도 핵을 둘러싼 사회적 책임 부분이 나온다. 바다에 핵 폐기물을 버리는 문제를 다룬 책도 찾아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