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대에 피아노가 떨어졌다 - 시공간을 공명한 천문학자×음악가의 우주적 평행이론
지웅배.김록운.천윤수 지음 / 롤러코스터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웅배(천문학자), 김록운(피아니스트, 공연기획자), 천윤수(미학자) 공저의 [천문대에 피아노가 떨어졌다]란 책이다. '행성의 궤도에서 찾아낸 바흐의 화음부터 무조음악과 공명한 양자역학까지 과학과 예술이 맞닿은 4가지 평행우주'란 설명이 눈길을 끄는 책이다. 4가지 평행우주란 1. 조율(케플러 x 바흐), 2. 변주(갈릴레이 x 드뷔시), 3. 불협화음(하이젠베르크 x 쇤베르크), 4. 공명(호킹 x 베토벤)이다. 정리하면 케플러, 갈릴레이, 하이젠베르크, 호킹이 과학자이고 바흐, 드뷔시, 쇤베르크, 베토벤이 음악가다. 


본문에 이런 내용이 있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질학 가운데 천문학이 가장 음악과 가깝다는 말이다. 아인슈타인은 케플러가 고정된 화성(火星)을 사용한 것은 진정한 천재의 아이디어였다고 말했다. 인상적인 대목은 “오랫동안 인류는 완벽한 원으로만 된 이상젹인 우주를 상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우주도 조금씩 어긋나고 삐걱거리는 세계였다.”(47 페이지)는 말이다. 


평균율을 만든 빈센초 갈릴레이 이야기도 나온다. 이 사람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아버지다. 우주가 드러내는 삐걱대고 어긋나는 면모를 오류로 바라보지 않고 우주 본연의 모습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비로소 천문학자와 음악가가 모두 평화를 찾았다.(55 페이지) 바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오늘날 서양음악에서 사용하는 모든 조성을 시도하고 탐구했다. 인간의 기쁨과 눈물, 탄식과 웃음, 온갖 감정과 이야기를 건반 위에 올려놓았다. 조성에 따라 곡 분위기가 어떻게 달라지고 또 어떤 스타일로 작곡해야 하는지를 책 한 권으로 정리했다. [평균을 클라비어 곡집]이다.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은 단순한 음악 모음집이 아니다. 24가지 조성으로 호모 사피엔스의 희로애락을 담은 감정의 타임 캡슐이다. 특히 이 곡집에서 절반을 차지하는 푸가는 다양한 감정이 복합적으로 발현되고 뒤섞이는 인간 감정의 입체적 특성을 투영한다. 그래서 흥미롭다. 하나의 선율로 된 성부의 뒤를 따라 비슷하게 조금 다른 성부가 뒤섞인다. 계속 새로운 성부가 하나하나 추가되면서 다층적인 곡이 완성되는 다성음악이다. 일종의 돌림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조화롭되 그렇지 않은 약간의 어긋남이 곡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인류도 언젠가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지구 그 바깥에 존재할 또 다른 생명체에게 남기는 추억으로 바흐의 평균을 클라비어 곡집을 보이저 탐사선에 포함하기로 선택한 것은 탁월한 결정이었다. 


바흐의 평균율이 조화롭되 그렇지 않은 약간의 어긋남이 존재하는 곡이듯 칼 세이건은 외계는 지구와 비슷하되 미세하게 다르다고 생각했다. 케플러는 각 행성 주기를 두 번 곱한 수치는 궤도 반지름을 세 번 곱한 수치와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73 페이지) 태양계 모든 행성의 공전주기를 제곱한 수치와 궤도 반지름을 세제곱한 수치가 정확히 같은 것은 모두 동일한 태양 중력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이것이 조물주가 우주를 창조한 수학적 조화라고 생각했고 이 관계를 조화의 법칙이라 부르며 찬양했다. 


우주의 무게 만큼이나 바흐 음악은 묵직하게 느껴진다. 바흐가 장엄하고 신성한 분위기를 요구하는 궁정 교회에서 대부분의 음악 활동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작품은 깊은 신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한 경건하되 환희에 찬 분위기의 곡이 많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달을 바라보던 늑대인간이라 불렸다.(90 페이지) 망원경은 원래 땅을 보는 도구였다. 전쟁터에서 적진을 살피거나 항해사가 육지를 둘러볼 때 사용하는 매우 일상적인 도구였다. 다만 그들과 갈릴레이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망원경으로 땅이 아닌 밤하늘의 별을 겨냥했다는 점이다. 갈릴레이는 처음으로 망원경의 고개를 들어올린 인물이다.(93 페이지) 


갈릴레이는 절대 보름달을 그리지 않았다. 태양빛이 비스듬하게 비추는 반달과 초승달만을 그렸다. 달의 거친 면모를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갈릴레이는 목성의 위성을 발견하고 하늘의 모든 존재가 지구만을 중심으로 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이 잘못된 것임을 알았다. 본문을 통해 moon이 달 외에 위성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연은 우리에게 감상의 방향을 강요하지 않는다. 자유를 허락한다. 하지만 자연을 노래하는 음악은 명확한 감상의 방향을 제시한다. 그리고 관객의 감상을 그 틀 안에 가두려고 한다. 드뷔시는 건반 위에서 중력을 사라지게 만들고 싶었다.(119 페이지) 드뷔시는 중력에 방향성을 입히는 반음을 과감하게 지워버렸다. 드뷔시는 '달빛'에서 특정구간에서만 온음 음계를 활용했다. 


갈릴레이는 지구 자체의 움직임 때문에 밀물과 썰물이 반복된다고 주장했다. 당시 그는 이것이 지구 공전의 확실한 증거라고 생각했다. 잘못된 생각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지구가 움직인다는 올바른 결론으로 이어진 흥미로운 사례다.(126 페이지) 목성의 네 위성(이오, 유로파, 가니메데, 칼리스토)은 얼음과 암석으로 뒤덮인 얼음 위성이다. 모두 아래에 두꺼운 지하 바다가 있다. 이는 목성의 강한 중력 때문이다. 목성이 가하는 압도적으로 강한 중력이 위성들에게 스트레스를 안기게 된다. 그 결과 위성들은 조금씩 양옆으로 찌그러지고 내부 스트레스가 누적되면서 높은 온도가 유지된다. 그래서 내부에 얼음이 얼지 않은 채로 액체 바다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지구 바닷물이 달의 중력에 붙잡힌 채 달과 같이 움직이면서 주기적인 밀물과 썰물을 발생시키는 것과 정확히 원리가 같다. 


별 내부는 온도와 압력이 극단적으로 높은 플라스마 상태다.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된 상태여서 입자들이 빚에 가까운 속도로 부딪혀 충돌하며 더 무거운 원자핵으로 뭉친다. 쇤베르크는 세상 풍경이 바뀐다면 음악이 향하는 대상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알렉산더 폰 쳄린스키에게 잠깐 과외를 받은 것 말고는 평생 독학으로 음악을 익혔다.(144 페이지) 조성 자체를 소멸시킨 쇤베르크의 음악은 입자와 파동의 경계를 허문 물리학자들과 통한다. 쇤베르크는 자신의 음악이 조성을 부정하는 무조음악이 아니라 조성을 확장하는 범조성 음악이라 주장했다. 


하이젠베르크는 자연의 가장 작은 숨결인 원자의 움직임 속에서 보이지 않는 선율을 들으려 했다. 물리학은 물체의 움직임을 이야기하는 학문이다. 파장이 짧은 빛은 에너지가 크다. 그래서 빛을 원자에 비추는 순간 원자 자체의 움직임에 변화를 준다. 빛이 닿기 전에 원자가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는지를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156 페이지) 하이젠베르크는 철저한 수학적 체계로 점철되어 있던 물리학을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나치 과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토대로 삼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유대 물리학(Jewish Physics)이라고 하며 공격했다. 우라늄 원자핵에 중성자가 부딪히면 거대한 질량을 가진 우라늄 원자핵이 작은 조각들로 분열한다. 이때 새로운 중성자 두 개와 함께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된다. 방출된 중성자가 주변의 다른 우라늄 원자핵과 부딪히면서 다시 분열을 일으킨다. 이 과정이 무한 반복된다. 이를 연쇄반응이라 한다. 칼 세이건은 인류가 스스로 문명을 파괴할 수 있는 기술적 수단과 능력을 갖추었지만 그런 파국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지혜를 충분히 얻지 못한 단계라고 평가했다.(165 페이지)


우주의 열기는 지난 138억 년 동안 우주의 팽창과 함께 식었다. 탄생 초기의 그 뜨겁던 기운은 이제 절대영도 가까이 희석되었다. 물론 아무리 식었다 해도 흔적은 깨끗하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주 민감한 온도계로 잰다면 미미하게나마 잔열(殘熱)을 포착할 수 있다. 우주 초기 빅뱅의 잔재로 남은 열복사의 흔적을 우주배경복사라 한다. 빅뱅에서 시작된 우주 탄생과 팽창의 역사는 예상치 못한 극적인 전개를 맞았다. 우주의 열기가 지나치게 고르게 식은 것이 미스테리로 등장한 것이다. 마치 태초의 우주가 섬세하게 조율된 피아노처럼 미세조정을 거친 듯 했다.


원자핵보다 크기가 작던 태초의 우주가 수십 광년 이상으로 확장한 극단적 팽창을 우주론적 인플레이션이라 한다. 오늘날 우리가 바라보는 은하와 우주 거대 구조는 인플레이션을 거쳐 작은 요동(搖動; fluctuation)이 증폭된 결과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이 광활한 우주의 한 자리에 존재하는 이유는 태초의 인플레이션이 일어난 순간에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의 밀도가 주변보다 아주 살짝 높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우주는 양자(量子) 요동에서 태어났다. 우주는 불확정성과 불협화음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혼돈 속에서 지금의 별과 은하가 탄생했다. 불확정성과 불협화음은 결코 단순한 무질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아름다움과 가능성의 전조다.(181 페이지) 


얼핏 생각하면 빛은 질량이 없기 때문에 중력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아야 할 것 같지만 아인슈타인에 의해 질량이 없어도 중력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 밝혀졌다. 우주의 시간과 공간 자체가 휘고 왜곡될 수 있다는 의미다. 빛은 언제나 직진한다. 하지만 빛이 나아가는 무대는 왜곡될 수 있다. 무거운 별처럼 질량이 큰 물체는 주변 시공간을 움푹하게 왜곡한다. 빛은 여전히 직진하지만 시공간 자체가 왜곡되었기에 나아가는 경로가 휘어 보이는 것이다.(203 페이지) 


블랙홀은 부피가 0이다. 무한히 작은 부피 안으로 붕괴해버린 그 지점을 특이점이라 한다. 호킹은 우주는 블랙홀에서 탄생했고 블랙홀은 우주를 품고 있다고 말했다. 블랙홀은 우주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입증하기에 가장 좋은 실험 무대다. 베토벤 음악은 블랙홀을 닮았다. 시간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남들과는 다른 시간 흐름 속에서 살았다. 비현실적으로 빠른 템포를 남겼다.(216 페이지) 


블랙홀은 정의 자체부터 빛나지 않는 천체다. 그래서 빛을 담는 그릇인 망원경은 그 앞에서 무력하다. 블랙홀은 보는 것이 아니라 느껴야 한다. 베토벤도 단순히 음악을 듣지 않았다. 청각의 부재 속에서 시각과 촉각과 감각을 동원해 음악을 진정으로 느꼈다. 호킹은 블랙홀이 빛을 낸다고 예측했다. 블랙홀의 강력한 중력이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수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에너지가 극(極)이 달라 쌍소멸하는 것을 막을 때(떨어지게 할 때) 마이너스의 에너지는 블랙홀에 흡수되고 짝을 잃은 플러스 에너지는 소멸되지 못한 채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이다. 


호킹은 거대한 질량이 한 점에 붕괴되는 순간을 이해하려면 중력과 시공간을 설명하는 일반상대성이론뿐 아니라 미시 세계를 이해하는 양자역학이 결합해야 한다는 통찰을 제시했다. 베토벤은 하루 아침에 청력을 잃은 것이 아니라 젊은 시절부터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점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시기에 따라 베토벤에게 허락된 음역대가 계속 바뀌었다. 그 변화가 베토벤 음악 인생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베토벤은 청력을 완전히 잃은 후에는 음악을 듣지 않고 상상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