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은 남자
켄 코프먼 지음, 조주희 옮김 / 일레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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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자연주의자이자 탐조가인 켄 코프먼(Ken Kaufman; 1954 - )의 [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은 남자]는 새와 자연에 관한 넓은 지식, 합리적인 생각을 만날 수 있는 탐조 역사의 고전이라 할 책이다. 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은 남자란 제임스 오듀본(1785-1851)을 이르는 말이다. 오듀본은 현대 조류학/ 생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이다. 몇 가지 면에서 윌리엄 스미스(1769 -1839)와 비슷한 사람이다. 선구자라는 점, 빚 때문에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는 점 등이다. 윌리엄 스미스는 영국 최초의 지질도를 만든 사람이다.


저자는 우리 모두 탐험가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고 말한다.(37 페이지) 저자 켄 코프먼은 존 제임스 오듀본의 기록이 손녀 등에 의해 가필, 수정되었다고 주장한다.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는 의미다. 저자는 오듀본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면 마치 희미한 조명이 비치는 거울의 방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 수많은 이야기와 일화가 우리를 둘러싸지만 그 중 상당수는 서로 모순되며 검증 가능한 사실은 래브라도의 참새처럼 좀처럼 찾아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자신의 세대가 (존 제임스 오듀본 이후) 200년에 걸쳐 축적된 지식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인간 문명의 경계를 벗어난 풍요로운 자연과 생명에 매료된 사람들은 이름에 대한 열정을 오래도록 품는다고 말한다.(38 페이지) 저자는 200년에 걸친 세심한 관찰과 연구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철새의 경로에 관해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새를 관찰할 때 보이는 것은 단편일 뿐이지만 그동안 축적되어 온 지식의 틀에 내가 관찰한 것을 끼워 적용하면서 지금 보고 있는 현상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118 페이지)


곁가지 즐거움 거리 중 하나가 린네와 뷔풍의 대결이다. 지질학에 관한 책을 통해 우주의 나이가 성경적 분석으로 제시된 약 6000년이라는 주장이 틀렸으며 지구의 나이가 당시 받아들여지던 인식보다 훨씬 더 오래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 뷔퐁은 린네를 겨냥해 "다른 사람을 따르기 위해 스스로를 굴복시키고 싶지 않으며 자연의 섭리에 대하여 그들 멋대로 지어낸 생각과 구조를 표현하는 하찮은 표 따위로 서로 어울리지도 않는 존재들을 우스꽝스럽게 연관 짓는 명명론자들의 어설픈 현학을 모방하고 싶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뷔퐁은 새의 외모만으로는 종 사이의 진정한 관계를 판단할 수 없다고 보고 행동을 조류를 분류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1890년대 플로렌스 머리엄이 birding이란 단어를 탐조의 의미로 썼다. 1600년대 셰익스피어는 birding을 새 사냥의 의미로 썼다. 저자는 알렉산더 윌슨, 존 제임스 오듀본 등이 훨씬 더 많은 조류 종을 정교하게 묘사한 것을 일러 이 정도의 정밀한 묘사는 새를 산 채로 포획하거나 사냥하여 죽은 새를 눈앞에 두고 자세히 관찰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당시는 쌍안경이나 카메라가 없던 시대였다. 저자는 오듀본이 노예를 사고 팔았다는 사실은 외면한 채 새를 사냥했다는 사실에만 분노하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오듀본은 갓 죽은 새를 눈앞에 두고 깃털 하나하나를 사진보다 훨씬 더 직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이는 큰 장점이었지만 갓 죽은 새 표본을 오래 보관할 수 없기 때문에 아주 빠르게 작업해야 했다. 특히 더운 날씨에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141 페이지)


오듀본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새 화가였다. 저자는 살아 있는 새를 관찰하며 스케치 하는 일이 자신에게 가장 큰 만족을 주는 일이라 말한다.(107 페이지) 새를 그린다는 것은 여러 곳을 다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자 역시 자신의 나라인 미국의 50 개주를 모두 방문했다. 저자는 매번 낯선 길로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발견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로 발을 디디는 것 같아 낭만과 설렘을 느낀다고 말한다.(267 페이지)


저자는 토머스 제퍼슨이 오하이오 강을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설명인즉 제퍼슨은 이 강을 직접 본 적이 없었기에 그의 말은 강의 시각적 매력에 대한 찬사라기보다 교통과 무역에 대한 강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 표현일 것이다.(115 페이지) 미국의 제 3대 대통령 제퍼슨은 유명 조류학자이기도 했다.(76 페이지) 오듀본 역시 미국의 여러 곳을 다녔다. 1800년대 초의 자연주의자들은 새들이 이동에 대해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계절과 새들의 이동 방향의 관계성을 조금씩 알아채기 시작했지만 철새의 규모나 이동거리는 알 방법이 없었다. 책의 원재는 [The Birds That Audubon Missed]다. 오듀본이 놓친 새들이라는 뜻이다. 가령 저자는 오늘날의 탐조가들이 그 옛날 오클리 농장에서 오듀본이 기록한 새들을 보면 그의 분류 방식에 의아함을 느낄 것이라 말한다. 그는 그곳에서 붉은눈비레오를 보았지만 붉은눈은딱새라고 불렀고 학명에는 솔새라고 이름 붙였다.


루비상모솔새는 루비상모굴뚝새라고 불렀고 학명에는 역시 솔새라고 이름 붙였다. 한편 솔새의 일종인 휘파람새, 북방흉내지빠귀새, 회색개똥지빠귀를 모두 지빠귀 종으로 분류했다.(160 페이지) 이에는 시대적 차이도 관계한다. 존 오듀본은 잃어버린 도팽이라는 신화의 주인공이기도 하기도 하다. 도팽(dauphin)은 프랑스 군주제에서 왕위 계승자 즉 황태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저자는 자신의 동네(오하이오 북서부의 이리호 주변)를 세계 솔새의 수도라고 부른다. 저자에 의하면 미국의 솔새는 열렬한 조류 애호가와 일반인을 구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한다.(219, 220 페이지) 저자는 솔새가 지나갈 때, 주변에 나무와 덤불이 경이로운 생명체를 품고 있을 때 우리는 희귀성에서만 만족감을 찾을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탐조 입문자에게는 솔새 한 마리 한 마리가 마치 수수께끼처럼 신비롭게 느껴질 것이고 노련한 탐조가에게는 이번 시즌에 처음 또는 오늘 처음 마주치는 솔새 종 하나가 큰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본문에는 지리학 이야기도 나온다. 본토보다 반도 끝에서 종의 다양성이 감소하는 현상에 대한 것이다. 이 현상은 전 세계 여러 지역의 다양한 동식물 집단에서 관찰된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을 일괄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은 없다. 하지만 섬 또는 섬처럼 고립된 곳에 서식하는 생물의 지리적 패턴을 탐구하는 섬생물 지리학의 일반적인 원칙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섬은 본토보다 종의 이주와 소멸이 더 빈번하다. 기존 생물 종은 사라지고 이상하게도 우연히 섬에 도착한 새로운 생물 종이 자리를 잡을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개척가적인 탐험 정신도 중요하지만 전 세계에 걸쳐 수십 년 또는 수백 년의 연구로 방대한 데이터가 축적된 분야에 뛰어드는 것도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뚜렷하게 드러나는 미세한 패턴이 있기 때문이다.(267 페이지) 쉽게 왔다가 쉽게 떠나는 것이 반도와 섬으로 이루어진 역동적인 플로리다 생태계의 특징이다.(281 페이지) 저자는 도요물떼새를 가장 좋아하는 생물 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는 도요물떼새들의 열렬한 팬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탐조를 시작할 당시 매년 도요물떼새의 종을 파악하고 식별하는 것이 어렵기만 했다. 알아낸 것 같다가도 다시 보면 또 의심스러웠다. 혼란은 끝나지 않았다. 어쨌든 그건 오래 전의 일이고 이제는 자신 있게 자신이 보는 모든 도요물떼새의 이름을 댈 수 있다고 말한다.(294 페이지)


저자는 오듀본과 자신을 비교하기도 한다. 즉 자신은 오듀본처럼 능숙하게 다양한 도구와 자료를 활용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고 말한다.(322 페이지) 저자는 오듀본의 생각을 추측하기도 한다. "미국 청둥오리가 텍사스에서 둥지를 튼다는 사실이 오듀본에게는 이상하게 느껴질 것이다"라는 식으로. 텍사스는 저자가 탐조 역사에서 각별히 여기는 거대한 존재다. 미국 전역의 탐조가들에게 가장 좋아하거나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를 뽑으라고 물으면 늘 텍사스가 손꼽힌다.(329 페이지)


북미 오리 종 대부분은 북쪽 지역에서 번식한다. 겨울 동안 걸프 연안 근처의 습지로 방대한 무리가 몰려들지만 대부분 겨울이 끝나기 전에 북쪽 대초원의 연못, 북극 숲의 호수, 심지어 북극 툰드라로 향한다. 봄이 절반쯤 지나면 남쪽 바다는 겨울에 북적거리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지친 낙오자만 드문드문 흩어져 으스스할 정도로 텅 비어 있다. 따라서 추운 북동부 해안의 상징인 미국 청둥오리가 텍사스 걸프 연안에 둥지를 틀었다는 것이 당연히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337, 338 페이지)


새로운 발견을 위해 자연주의자들이 아무리 만반의 준비를 하고 현장으로 나가도 바로 눈앞에서 새로운 것을 놓칠 수 있다는 사실은 씁쓸하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놓쳤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인간의 일생은 너무 짧아서 생물의 다양성과 자연의 풍요로움을 전부 이해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작은 시도도 우리의 일상을 기쁨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



책의 후반부에 사냥 이야기가 또 나온다. 에스키모 쇠부리도요새와 관련해서다. 1963년 봄에는 갤버스턴섬에서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해 가을 9월 초 카리브해 동부의 바베이도스 섬에서 한 사냥꾼이 에스키모 쇠부리도요를 사냥했다. 이 새가 아직 존재한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그는 이 표본을 보관하다 나중에 박물관으로 보냈다. 저자는 6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에스키모 쇠부리도요새를 기다린다고 말한다.(352 페이지)


저자는 나그네 비둘기나 에스키모 쇠부리도요와 같은 종에 대해 우리는 그저 다양성의 한 조각 즉 하나의 개체군만이 아니라 이 대륙이 자랑하던 풍요로움을 잃었다고 말한다.(353 페이지) 프랑스의 자연주의자 조르주 퀴비에는 멸종이라는 개념이 낯선 1800년대 초에 멸종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주장을 폈다. 조르주 퀴비에는 지질학에서 격변론을 주장한 인물이다. 저자는 예전의 풍요로움은 어디로 사라졌을까?라고 묻는다. 글쎄, 이들 대신 우리가 나타났다. 인간들 말이다.


특히 유럽에서 온 정착민들이 북미 대륙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고 이 대륙은 예전만큼 많은 야생동물을 지탱할 수 없게 되었다. 저자는 대부분의 조류 종 개체수를 과거 수준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고 말한다. 아무리 헌신적으로 노력해도 토지의 수용 능력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말 것이라는 뜻이다.(362 페이지) 이런 말을 들어보라. "야생 비둘기와 마도요 등을 학살했던 파괴적 인간들은 그들이 없앤 자연의 풍요로움처럼 오래전 이미 이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그 탐욕과 어리석음은 여전히 살아남아 더 교활하고 이기적인 방식으로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여기서 더 잃으지도 모를 경이로운 자연을 생각하면 분노 하며 당면한 문제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하며 올바른 일이다."(363, 364 페이지) 백번 공감한다. 


저자는 오듀본이 연구 내용을 표절하고 내용을 지어내는 등 부정을 저지른 것은 틀림없지만 지식 추구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점 역시 분명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오듀본은 노예제 찬성론자, 백인 우월주의자, 과학 사기꾼 등으로 여러모로 끔찍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내면에는 더 다양한 종류의 새를 그려 경쟁자들을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와중에도 진정한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아름다운 면이 존재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오듀본의 예술적 스타일을 모방하려는 시도는 이제 영원히 내려놓으려고 한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실험이긴 했지만 이제는 끝이다. 진정한 예술을 창조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치려 하지 말고 내면의 비전을 끌어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결과다.(421, 422 페이지) 오듀본의 작품처럼 예술적이지는 않을 것이고 그만큼 유명해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틀림없는 나만의 작품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발견은 공동의 경험이며 이 경험이 공유되는 범위는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새로운 조류 종을 정의하려면 유전자 데이터가 필요하고 이러한 DNA 분석은 실험실의 전문가들만이 실시할 수 있다. 저자는 거의 모든 지식 추구 과정과 마찬가지로 조류 연구에서도 발견한 많은 이들이 함께한 모험과 공유된 경험, 공동 노력의 산물이었다고 말한다.(454 페이지)


이 부분에서 생각할 책이 있다. 카밀라 팡의 [궤도 너머] 라는 책이다. 생화학자 카밀라 팡 역시 이 책에서 같은 논조를 선보였다. 카밀라 팡은 “과학은 혼자서 개척하고 씨름하는 일이 아니다. 더 많은 발견을 위해 함께 비옥한 토양을 파헤치는 일에 더 가깝다. 공동연구는 거의 언제나 바퀴를 부드럽게 널리는 윤활유이자 발전을 가져오는 촉매다.”라고 말했다. 수렴하는 부분이 충분하다. 450 페이지가 넘는 [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은 남자]는 그 만큼 압도적인 탐조 즉 지적 탐험의 소산이다. 흥미 있게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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