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고고학 - 돌과 뼈로 읽는 인간의 역사 사계절 1318 교양문고
김상태 지음 / 사계절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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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이 땅에 발을 디딘 시기는 언제일까? 300만 년 전이라 했다가 500만 년 전이라 했다가 지금은 700만 년 전이라 말하고 있다. 처음 두 발 걷기를 한 시점을 말한다. 700만 년 전은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가 등장한 시기를 말한다. 저자는 주먹보다 조금 큰 돌멩이 하나만 있으면 죽은 동물이 사체에서 고기로 변한다고 말한다. 처음으로 도구를 만든 인류는 약 300만 년 전 등장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추정된다. 그들이 사용한 것은 찍개다. 찍개란 석기의 날이 찍는 용도에 적합한 각도와 모양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86 페이지) 


저자는 구석기 고고학 연구의 궁극은 구석기인의 삶 전체를 이해하고 복원하는 것이라 말한다.(88 페이지) 한 생태 전문가가 새의 세밀한 부분을 찍은 사진을 보고 한 말이 생각난다. 생명체인 새와 하늘, 땅, 강 등 자연이 어우러진 전체적인 모습으로서의 아름다움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먹도끼를 만들어 사용한 인류는 180만 년 전에 등장한 호모 에렉투스다. 주먹도끼를 만들 때 적어도 두 개의 망치돌이 필요하다. 망치돌은 주먹도끼를 만드는 도구다. 주먹도끼 제작 과정은 찍개에 비해 월등히 어렵다. 


주먹도끼는 석재(石材)를 선별하는 단계부터 지식이 필요하다. 주먹도끼는 찍고(송곳) 찌르고(칼) 자르고(가위) 부수기(망치)가 가능한 도구다. 스페인 아타푸에르카 유적에서 시신과 함께 매장된 주먹도끼가 나왔다. 이를 망자를 추모하는 부장품으로 해석한다. 스페인 아타푸에르카 축제 관련자들이 전곡리 구석기 축제를 벤치마킹 하기 위해 온 적이 있다. 망치돌로 주먹도끼를 만들면 충격 지점이 으스러지면서 두껍고 둥글거나 길쭉하고 모난 조각이 떨어진다. 사슴뿔로 만든 망치를 사용하면 돌이 거의 으스러지지 않고 얇고 폭이 넓은 조각이 떨어진다. 도구를 정교하고 미세하게 다듬기 위해 정이나 끌 같은 누름 도구가 발명되었다. 1991년 알프스 빙하가 녹으면서 발견된 얼음 인간인 외치의 소지품에도 누름 도구로 추정되는 물건이 있었다. 


구석기인들은 돌을 불로 가열하면 유리질화하면서 더욱 섬세하고 얇은 조각을 떼어낼 수 있다는 물리 및 화학 원리도 알았다. 구석기 시대 말엽인 15,000년 전 활도 등장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 하빌리스는 찍개를 사용했다. 호모 에렉투스는 주먹도끼를 사용했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는 창을 사용했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에렉투스가 나무로 창을 만든 뒤 창 끝에 날카로운 돌을 장착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창을 멀리서 목표물을 향해 던지는 무기로 사용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활과 화살을 사용했다. 


네안데르탈렌인은 호모 에렉투스 중 일부가 갈라져 나온 새로운 인류다. 약 50만 년 전 등장해서 그들보다 후에 출현한 호모 사피엔스와 공존하다가 약 3만 년 전에 멸종했다. 멸종 이유로 생식, 언어 구사 능력 부족, 사피엔스와의 경쟁에서 패배 등을 든다. 스티븐 미슨은 그들이 언어 지능, 사회적 지능, 기술 지능, 자연 지능, 일반 지능을 연결짓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했다.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호모 사피엔스에게 전해졌다. 네안데르탈인이 만든 석기 제작 방식이 르발루아 기법이다. 예비 단계와 본 단계가 분리된 르발루아 기법은 석기의 모양을 잡는 예비 단계에서 격지를 생산하고 본 단계에서 단 한 번의 타격으로 석기를 만드는 기법이다. 본 단계의 최종 결과물인 석기를 아주 살짝만 잔손질을 하거나 아예 잔손질을 하지 않아도 창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정도였다.


르발루아 등장 이전은 전기 구석기, 그 이후는 중기 구석기로 불린다. 호모 사피엔스가 고안한 돌날은 르발루아 기술을 고도화한 석기 대량 생산 체계의 산물이다. 네안데르탈인은 석기 제작의 부산물인 격지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했다.(210 페이지) 석기 1세대는 올도완 문화, 2세대를 아슐리안 문화, 3세대를 르발루아 문화라 한다. 올도완이란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협곡에서 유래한 말이다. 주먹도끼는 이름 때문에 주먹으로 쥐고 도끼처럼 내려찍는 도구라 생각하기 쉽지만 한쪽 끝만 뾰족하고 전체 형태는 타원에 가깝고 좌우는 대칭이고 둘레를 모두 날카롭게 다듬은 다기능 도구다. 


구석기 유적들은 가공하기 좋은 돌이 풍부한 지역에 몰려 있다. 한반도에서 석기를 만들 때 가장 흔하게 사용한 돌은 석영과 규암이다. 석영은 그 자체로 결정질 광물이어서 깨지지 않고 제멋대로 부서진다. 규암은 사암이 변성작용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어서 결정이 뚜렷하지 않아 석기를 만들기 쉬웠다. 물론 아프리카나 유럽에 비해 한반도의 규암 주먹도끼는 선이 굵고 투박하다. OSL 연대 측정에 석영이 유용하다. 우리나라는 석영이 풍부하다. OSL은 Optically Stimulated Luminescence의 약자다. 광여기(光勵起) 루미네슨스라는 의미다.


태양빛에 노출되지 않도록 토양을 채취한 후 석영 입자들을 골라 원자 속의 전자가 에너지가 높은 상태에서 낮은 상태로 옮겨갈 때 에너지의 차이 만큼 방출하는 빛인 루미네슨스를 측정한다. 루미네슨스는 석영 결정이 완전히 파묻힌 순간부터 축적된다. 이 원리를 이용하면 석영 입자가 포함된 지층이 언제 흙에 덮였는지 아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수십 만 년 이상을 측정할 수 있다.(206 페이지) 


호모 에렉투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고인류는 나무 위 생활을 병행했다.(93 페이지) 호모 에렉투스는 불을 다루는 지식을 습득한 최초의 인류다. 호모 에렉투스는 첫 번째 사냥꾼이었다. 호모 에렉투스는 처음으로 아프리카를 벗어난 인류다.(121 페이지) 유럽, 인도네시아, 중국까지 진출했다. 호모 에렉투스는 불과 함께 아프리카 바깥으로 활동 영역을 넓힐 수 있었고 그 덕에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독일 쇠닝엔 유적에서 호모 에렉투스가 불로 그을린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 창이 발견되었다.(121 페이지) 


유럽의 후기 구석기 시대에 해당하는 약 2만 2000년 전 무렵에 솔루트리안 문화가 등장한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석기는 길고 양끝을 날카롭게 다듬은 아름다운 창끝이다. 규질 암석을 재료로 한 석기다. 정교하게 눌러 떼기 위해 사전에 열처리를 한 것이다. 약 250-350도 이상의 온도로 가열해야 돌의 성질이 변한다. 평범한 화덕에서도 낼 수 있는 온도다. 돌을 불에 달구면 열에 약한 성분이 녹으면서 돌의 성질이 유리질로 변한다. 유리질로 변한 돌은 일반 돌보다 더 섬세하게 가공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중부 메지리치 유적에서는 거의 100 마리에 가까운 매머드 뼈로 만든 집이 발견되었다. 우크라이나 몰로도바 마을 유적에서는 집 바깥에 작은 화덕 여러 개가 배치된 흔적이 발견되었다. 프랑스의 루피낙 동굴에 줄 지어 걸어가는 매머드 무리가 그려져 있다.(113 페이지) 매머드는 초식동물이다. 매머드의 최후 생존지역이었던 시베리아 툰드라에는 엄청난 양의 상아가 묻혀 있다. 


아득한 구석기 시대에 풍수라는 개념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발굴 현장을 다녀 보면 대부분의 유적이 기막히게 풍수 좋은 곳에 있다.(106 페이지) 발굴 과정에서 층위 조사를 해보면 거의 대부분 모래층 또는 자갈층이 발견된다. 과거 한때 하천이 흘렀다는 의미다.(107 페이지) 강은 늘 같은 자리를 흐를 것 같지만 땅을 침식시키고 퇴적하기를 반복하며 천천히 그러나 쉼 없이 물길을 바꾼다. 화식으로 인한 영양 섭취 증가는 뇌가 커지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124 페이지) 인간은 자연계의 모든 동물들이 두려워하던 불을 과감히 취해서 안전과 안위를 확보할 수 있었고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함경북도 종성군 동관진 유적에서 한반도가 무척 추웠던 시기에 살던 매머드, 털 코뿔소(wooly rhinoceros), 메가케로스(대형 사슴) 등의 뼈가 발견되었다. 우리나라 산과 들에 매머드가 살았다니 상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충청북도 청주시 인근의 두루봉 동굴에서도 다량의 동물 뼈가 발굴되었다. 짧은 꼬리 원숭이, 하이에나, 코뿔소(rhinoceros) 뼈도 있다. 지금은 동물원에 가야 볼 수 있는 동물로 적도 가까운 아열대 지역에 주로 서식한다. 한반도가 지금보다 훨씬 더웠던 시기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증거다. 빙하기와 빙하기 사이 간빙기에 한반도의 기온이 아열대 지역만큼 뜨거워지면서 이 동물들이 북상했던 흔적이 화석으로 남은 것이다.(126, 127 페이지)


기후 변화는 산소 동위원소인 O 16과 O 18의 비교를 통해 연구한다. O 16은 O 18보다 가벼워서 온도가 상승하면 더 빨리 상승한다. 이러면 공기 중 O 16의 양이 많아진다. 온도가 낮아지면 O 16의 양이 줄어든다. 온도가 1도 변할 때마다 두 원소의 비율은 0.7 퍼센트 차이난다. 과학자들은 깊은 바다의 퇴적층을 채굴하여 이런 방법으로 시기별 산소 동위 원소 비율 변화를 계산한다. 기후 변화의 추이를 통하여 전반적 환경 변화를 유추한다.(128, 129 페이지) 


연구자들은 약 300만 년에 걸친 구석기 시대를 크게 전기, 중기, 후기로 나눈다. 시기를 나누는 기준은 뗀석기 제작 기술 발달 정도다. 처음으로 석기를 만들었다고(혹은 사용했다고) 추정하는 인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하빌리스다. 시작은 어땠을까? 여러 가지 중 하나는 길을 가던 고인류가 날카로운 돌조각을 밟고 피를 흘렸고 그 모습을 지켜본 동료가 돌조각으로 죽은 동물의 살점을 잘랐을 것이라는 이야기다.(132 페이지) 시작이야 어떻든 어느 시점부터 인류는 의도를 가지고 돌을 깨기 시작했다. 


좋은 돌이란 결정 구조가 없고, 구성 입자가 곱고, 입자의 결합력이 적당한 돌이다.(133 페이지) 결정이 있으면 충격을 가했을 때 원하는 모양이 아니라 원래의 결정을 따라서 돌이 깨진다. 입자가 크고 거칠수록 예리하고 정교하게 다듬기 어렵다. 돌이 너무 단단해도 도구로 가공하기 어렵다. 시간이 더 지나서 네안데르탈인의 르발루아 기술과 호모 사피엔스의 돌날 기술 단계로 접어들면 돌을 고르는 기준이 더욱 까다로워진다. 


아프리카나 유럽의 주요 유적 주변에는 석기 만들기에 아주 좋은 처트나 플린트 석재가 풍부하다. 한반도는 흑요석이 풍부한 백두산 주변과 혼펠스와 셰일이 있는 일부 남부지역을 제외하면 화강암, 화강 편마암, 규암, 천매암, 석회암, 점판암이 우세하다. 이 돌들은 하나같이 석기로 가공하기에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한반도의 구석기인들은 흔한 석영이나 규암 중에서 쓸 만한 석재를 선별하고 거기에 맞는 기술과 도구를 발달시켰다. 


호모 에렉투스는 다기능 도구이자 예술의 맹아를 품고 있다고 평가되는 주먹도끼의 창시자다. 뿐만 아니라 불을 자유자재로 다루었고 고인류의 요람인 아프리카를 벗어난 첫 인류라는 수식어가 그들을 따라다닌다. 진화의 측면에서는 털이 거의 사라졌고 점점 길어지는 성장의 양육 부담을 공동육아로 대처하기로 했다. 뇌의 용적의 증가와 불의 사용, 음식 분배, 창을 이용한 집단 사냥 등은 모두 인류의 사회성이 강화되었음을 암시한다. 


돌과 석기의 구별법은 이렇다. 1단계; 반드시 깨진 부분이 있어야 한다. 2단계; 여기저기가 조금씩 깨져 있는지 한 부분이 집중적으로 깨져 있는지 확인한다. 한 부분이 집중적으로 깨져 있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3단계; 집중적으로 깨진 부분이 가지런한지 규칙적인지 살펴본다. 그런데 때로 우연히 깨진 돌도 규칙적일 수 있다. 자연의 힘은 언제나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4단계; 아직 당신 손에 돌이 들려 있다면 즉시 주변을 더 확인한다. 비슷한 생김새와 특징을 가진 돌을 서너 개 더 찾았다면 그것들은 구석기 유물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는 화석이 별로 없다. 뼈나 나무 같은 유기물이 땅속에서 보존되려면 건조한 알칼리성 토양이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토양은 대체로 습도가 높은 산성이다. 주먹도끼의 길이와 너비의 비율은 1; 0.7 정도다. 주먹도끼는 이전 시기에 도구들에 비해 훨씬 만들기 어려운 도구다. 이것을 만들려면 머릿속에 계획을 빈틈없이 실행할 수 있는 기술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주먹도끼를 만든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완전히 직립했다는 뜻의 학명을 가진 호모 에렉투스다. 


인간의 조상은 700만 년 전부터 두 발로 걷기 했다고 하는데 180만 년 전에 등장한 호모 에렉투스 이름에 직립이란 이름을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전의 직립은 과정이자 불완전한 단계였고 호모 에렉투스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벽한 두 발 걷기가 가능해졌다. 이 판단은 호모 에렉투스의 골격 구조가 현대인과 거의 동일하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 호모 에렉투스 단계에 이르면 인간의 앞발이 진정한 의미의 손으로 바뀐 것이다. 이렇게 진화한 손은 망치질을 비롯한 정교한 작업을 할 수 있었고 그로부터 인간은 주먹도끼를 발명했다.(198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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