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 물리학자 조르주 파리시의 책이다. 저자는 2021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다.(마나베 슈쿠로, 클라우스 하셀만과 공동 수상이다.) 1948년생이니 68세대라 할 수 있다. 책 제목은 ‘질서와 무질서 사이에서‘다. 부제는 ’한 복잡계 물리학자의 이야기‘다. 저자는 지금껏 아무도 답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이 두려움을 주지는 않으며 결국 이전에 아무도 하지 않은 과업을 상상하거나 해결하려 직접 뛰어드는 것이 우리 일이 될 것이라 말한다. 물론 잠긴 문을 여느라 평생을 보낼 수는 없다. 저자의 연구는 다수의 행위자가 상호 작용하는 계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때로 그 대상은 전자, 원자, 스핀, 분자가 될 수 있다.
많아지면 달라진다(more is different)란 말이 있다. 관건은 미시적 규칙과 거시적 행동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저자는 찌르레기들이 멀리서도 잘 보이는 저녁 시간에 공중 군무를 추는 것은 밤을 보낼 적당한 잠자리가 있다는 그들만의 신호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한다. 찌르레기들은 겨울을 날 장소에 11월 초에 도착해 이듬해 3월 초에 떠난다.(16 페이지) 찌르레기의 행동에 관한 연구는 분명 생물학자의 영역이지만 개체의 3차원 움직임을 정량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물리학자들만 할 수 있는 분석을 필요로 한다. 놀라운 점은 새 떼 가장자리의 밀도가 중심부보다 30 퍼센트 이상 높다는 사실이다. 고립을 피하기 위한 조치일 수 있다. 그래야 사냥당할 위험이 작아진다. 중심의 새들은 가장자리의 새들로부터 이미 보호를 받고 있기에 굳이 가까이 있을 필요가 없다.
저자는 시(詩)에서도 그렇지만 과학에서도 마찬가지로 완성된 결과물에는 창작 과정에서의 노고와 의혹, 망설임은 흔적도 남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가장 가까이 있는 새들 간의 간격은 무리에 따라 매우 다를 수 있다고 말한다. 생물학은 현재 대변혁의 시기를 맞고 있다. 데이터의 양이 계속 증가함에 따라 정량적 방법의 사용이 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꼭 필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러한 방법은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사용될 수 있으며 어떤 내용인지에 따라 상당히 다른 방법이 이용된다. 특히 동물행동학에서 동물의 행태를 연구할 때 수학의 비중이 과도하게 높으면 부정적인 반응이 일어나기 쉽다. 실제로 동물행동학자들은 어떤 행태의 원인을 찾을 때 정량적 방식을 활용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여러 설명 중 하나일 뿐 동물행동 연구의 핵심을 건드리지는 못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많은 과학 분야의 기본 정신이 세월이 흐르면서 변화했다. 이러한 변화는 어떤 방법론이 과학적이고 중요하며 어떤 방법론이 실제 질문에 답할 수 없으므로 거부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열띤 토론에서 발생한다.
관련해서 양자역학의 창시자 막스 플랑크의 냉소적인 발언을 곱씹어볼 만하다. 그는 과학에서 새로운 진실은 반대 자들을 설득하고 계몽해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그들이 죽고 새로운 개념에 친숙해지는 신세대가 형성되면서 승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자신은 플랑크보다는 낙관적이라 말한다. 선의가 있고 인내심만 있다면 대부분 공통된 결론에 도달하거나 적어도 일치하지 않는 지점을 밝힐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자신이 어린 학생이던 시절 이론물리학은 논 풀루스 울트라(무상의 존재)로 여겨졌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는 이제 모두 쿼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다고 말한다. 쿼크는 접착제 역할을 하는 글루온을 통해 결합되어 있고 양성자와 중성자의 구성 요소이며 쿼크의 특성을 계산하는 양자 색역학이란 이론도 있다.
저자는 아이디어는 가끔은 부메랑 같아서 처음에는 한 방향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다른 곳으로 향할 때가 많다고 말한다. 흥미롭고 비범한 결과를 얻으려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영역에서 응용될 수 있다. 상태를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가 계에 공급해야 하는 열의 양을 잠열(潛熱)이라 한다. 실온에서 자기(磁氣)를 띠는 계인 자석은 온도가 증가하면 자성을 잃는다. 전문적으로 표현하면 자석이 강자성(强磁性)에서 상자성(常磁性)으로 전이되는 것이다. 강자성은 외부 자기장이 없는 상태에서도 물질이 자기를 띠는 것을 말하고 상자성은 외부 자기장이 있을 때에는 자기를 띠지만 없을 때에는 자기를 잃는 물질의 성질이다. 거시적 자기장은 계의 입자 하나 하나에 존재하는 스핀이라는 수많은 자기장이 종합되어 나온 것이다. 자석 내 스핀들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 작용으로 인해 스핀들이 동일한 방향을 향하게 된다. 작은 화살표들은 수가 아무리 많아도 일제히 같은 방향을 향한다. 자성체에서도 온도 상승으로 상전이가 일어난다. 실제로 자석에 공급되는 열이 스핀의 운동을 증가시키고 그에 따라 스핀이 방향을 바꿀 수 있게 된다. 이때 스핀들은 무질서해지고 정렬 상태를 잃는 성향을 보인다. 거시적 자기장을 생성하는 스핀의 정렬 상태는 온도 상승으로 계속 혼란스러워지다가 결국 완전히 무질서해진다.
보통 물리계는 하나의 상태에만 놓인다. 예를 들어 특정 온도와 압력에서 물은 액체이거나 고체 혹은 기체다. 특별한 경우에는 계가 두 가지 상태 또는 상에 놓일 수 있다. 섭씨 백도에서 물은 액체상과 기체상에 동시에 놓일 수 있다. 또한 물이 동시에 고체, 액체, 기체 상태의 압력과 온도 값도 하나 존재한다. 그 유명한 물의 3중점(triple point)으로 괜히 유명한 게 아니다. 일반적으로 계는 하나의 상에 놓인다. 반면 낮은 온도의 무질서계는 동시에 매우 다양한 상에 놓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질서 맺음 변수가 함수가 된다는 즉 무한한 값의 집합이 된다는 뜻이다. 이를 파악한 것은 물리학에서 진정한 일보 전진이었다.
합성 모형의 구축과 그 해 덕분에 우리는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현상을 알아낼 수 있었다. 우리는 무질서의 세계로 향하는 문을 활짝 열었다. 물리학적 해석에서 시작해 수학으로 해석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렇게 수학으로 증명하기까지 20년 넘는 세월이 흘렀고 프란체스코 게라를 비롯한 협력자들의 연구가 문제의 열쇠를 찾는 핵심이 되었다. 증명에 사용된 문구가 단순하다는 점이 정말 놀라웠는데 돌이켜보면 모든 길이 명확했던 것 같다. 스핀 유리와 마찬가지로 실제 유리도 무질서계다. 무질서한 이유는 유리가 규소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다양한 크기와 유형을 지닌 수많은 분자로 이루어진 불순물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정이 되려면 규칙적인 구조가 필요하므로 불순물을 많이 함유한 유리는 결정이 아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스핀 유리라고 하는 금속 합금의 무질서는 합금 내부에 있는 철 원자들의 배치가 무작위적이기 때문이다. 금속이 액체 상태일 때 철 원자들은 합금속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지만 냉각될수록 점점 움직일 수 없게 되고 임의의 위치에 갇히게 된다.
우리가 실제 과정을 구체적으로 파악해보려 노력중인 지금으로서는 이 전부가 지독하게 복잡하게 보인다. 하지만 언젠가 연구가 끝나면 간단한 것으로 밝혀질 수 있다. 책으로 물리학 이론이나 수학 정리를 공부할 때에는 모든 것이 명확해 보인다. 결과를 얻기 위해 필요했던 복잡한 작업과 고군분투는 깨끗이 생략되고 결과만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결해야 또 다른 흥미로운 문제는 스핀 유리 모형 같은 도식적 모형을 더 현실적인 모형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예컨대 스핀 사이에 작용하는 힘을 스핀 사이의 거리를 염두에 두며 최대한 상세하게 설명하는 모형을 만드는 것이다. 상전이는 분명한 공간적 위치가 주어진 많은 구성요소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일어난다. 이전에 논의된 간략화한 모형에서는 고려되지 않는 내용이다.
유리나 왁스와 같은 무질서계의 경우 평형 상태에 도달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대체로 아주 길다. 수년 혹은 수세기가 걸릴 수도 있다. 평형 상태에 도달하는 시간이 아주 긴 것은 강도를 높이기 위해 산업기술이 사용된 우리 집 창문 유리도 마찬가지다. 실제 세상은 무질서하고 현실에서 일어나는 많은 현상들은 서로 상호작용하는 수많은 구성요소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구성요소 사이의 상호작용은 간단한 규칙의 형태로 표시할 수 있지만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전체가 보여주는 집단행동의 결과는 정말 예측하기 어렵다. 기본적 행위자는 스핀이나 원자, 분자, 신경세포, 일반 세포이지만 웹사이트나 주식 중개인, 주식과 채권, 사람, 동물, 생태계 구성요소 등도 포함된다.
모든 기본적 행위자 간의 상호작용에서 무질서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무질서는 어떤 기본적 행위자가 다른 행위자들과 다른 방식으로 행동한다는 사실에서 온다. 역방향으로 정렬하는 스핀도 있고 대다수의 원자와 다르게 움직이는 원자도 있으며 다른 사람이 사는 주식을 파는 금융투자자도 있고 저녁 식사에 초대받았지만 누군가 다른 손님에게 반감을 품고 멀리 떨어져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자연을 조사하는 아주 강력한 수단 즉 현상을 단순화하는 방법을 처음으로 찾은 사람은 갈릴레오 갈릴레이였다. 그는 마찰을 완전히 무시하는 이론을 세웠는데 마찰이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걸을 수도 먹을 수도 없다. 현대 물리학을 열어젖힌 갈릴레오의 세상은 현실 세계와는 완전히 다르다. 이후 수 세기가 지나면서 현실을 더욱 충실하게 설명하기 위해 다른 요소들이 추가되었고 지금은 현실과 매우 근접한 수준에 이르렀다.
인간은 물리 현상을 본질적인 것으로 전환시키는 능력에서 출발해 지난 수세기 동안 물리학을 발전시켰다. 이제 물리학은 갈릴레오가 제외할 수밖에 없었던 복잡성과 무질서를 다시 모형에 도입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고 풍요로워졌다. 예술이나 다른 많은 인간 활동과 마찬가지로 과학에서도 처음에는 직관으로 시작하고 확실성은 나중에 얻게 된다. 직관은 상당히 중요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직관이라는 도구는 형식 논리보다 훨씬 뛰어나고 과학적 진보의 기초가 된 직관적 추론을 조사하는 일은 정말 흥미롭다. 동일한 역사적 시기에 서로 다른 학문 사이에서 이미지나 개념을 전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은유가 그러하다.
통계학(statistics)은 국가(state)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시작된 과학이다. 19세기의 여러 경제학자와 사회학자 특히 벨기에의 아돌프 케틀레 같은 학자들이 통계학과 확률 계산에 매우 중요한 공헌을 했다. 한편 19세기 후반에는 제임스 클라크 맥스웰과 루트비히 볼츠만이 집단행동을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완전히 독립된 방식으로 물리학에 확률과 통계학을 도입했다. 비슷한 시기에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 메커니즘이 공식화되었는데 유전 형질이 무작위로 변화하고 그 형질이 선택되면 후손에게 전달된다는 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다윈에게 진화론의 핵심은 서로 다른 다양한 가능성 중에 선택이라는 개념이었다. 저자는 문화가 DNA로 전달된다는 생각은 진화 이론의 기본 원리와 충돌한다고 지적한다.
참이 아닌 가정으로 출발하면 참이 아닌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가정이 잘못되었으나 잘 감춰져 있어 구분하기 쉽지않고 그 결과 역시 거짓이나 정리의 귀결인지라 참인 것처럼 과시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누구나 아이디어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는 알지만 어디에 도착할지는 모를 때가 있다는 말을 한다. 저자는 아이디어라는 것은 예상할 수 없어 놀랍고 절대로 사소하지 않은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말을 통해 생각을 형식화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말은 강한 힘을 지니고 있고 단어들은 서로 연결되어 서로를 끌어당긴다. 기본적으로 수학의 알고리듬과 같은 기능을 갖는 것이다. 알고리듬이 거의 혼자서 수학 추론을 이끌어가는 것처럼 말에도 생명력이 있어 다른 말을 끌어내 우리로 하여금 추론을 하고 형식적 논리를 사용하게 해준다. 아마 생각을 의식적으로 언어로 형식화하는 작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기억하는데도 유용할 것이다. 우리가 말을 통해 생각을 형식화하지 않는다면 기억하기 훨씬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비언어적 사고가 언어적 사고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생각이 역사적으로 언어보다 훨씬 더 오래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인간의 언어는 수만 년의 역사가 있는데 인간이 언어가 생기기 전에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믿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저자의 견해에 반대한다. 언어가 없으면 생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리학에도 직관이 있다. 갈릴레오가 대표 사례다. 그는 천상계와 지상계가 유사하며 양쪽에 같은 법칙을 사용할 수 있다는 위대한 직관이 있었다. 물리적 직관은 이후에도 근본적인 역할을 했고 특히 20세기 초 양자역학이 탄생하는 시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양자역학은 물리학의 대모험 중 하나였고 충분히 1930년까지 플랑크나 아인슈타인, 보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폴 디랙, 파울리, 페르미 등 저명한 과학자들이 참가했다. 당시 물리학자들이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상당히 많이 관찰되었다. 누가 봐도 이상하고 모순되는 현상이었다. 예를 들어 흑체복사가 그렇다. 과학자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당시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양자역학을 통해서만 설명 가능한 현상들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의 논리적 귀결은 무엇이었을까? 양자역학을 발명하고 그에 대한 타당한 설명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역사는 완전히 다른 길을 따라 갔다. 아직 밝혀내지 못한 부분이 존재하나 다음 논문에서 밝혀내겠다는 전형적인 방식을 따라 잘 알려지지 않은 구성요소 중 일부가 실제로는 고전 역학과 양립할 수 없는 기괴한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가정함으로써 고전 모형에서 양자 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1900년 플랑크의 논문 이후 모순된 기여가 많이 있었고 그 중 일부는 솔직히 말해 잘못된 것이었다. 아무튼 그 연구들은 고전 역학에서 양자 현상을 정당화하려는 불가능한 시도였기 때문이다.
플랑크는 흑체복사를 설명하기 위해 빛이 고전 물리학의 일반 원리와 전혀 양립되지 않는 정확히 양자적 특성을 가진 진동자와 상호작용한다고 가정했다. 그러나 그는 고전 물리학과의 호환성이 존재하지 않는 자신만의 길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인상적인 점은 플랑크가 제시한 설명 가운데 일부가 어떻게 정확할 수 있었는지였다. 그의 물리적 직관은 매우 강력했다. 고전역학의 관습에 머물러 있으면서 양자 현상을 어느 정도 설명했고 고전 역학과 실제 관찰된 현상간의 모순은 점점 더 커져갔다. 결국 모순이 너무 많아지면서 새로운 양자역학의 여러 측면을 예감하게 했다. 예를 들어 1913년에 나온 보어의 이론에서는 수소 원자 주위를 도는 단 하나의 전자가 특정 조건을 충족하는 한정된 궤도에만 있다고 가정하면 수소가 방출하는 빛의 스펙트럼 선을 간단하게 계산할 수 있었다.
이 가설은 고전역학의 지지를 받지는 못했지만 10년 후 새로운 역학의 출현이 시급하다는 인식이 부상했을 때 양자역학 구축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엄청나게 고민한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진전을 이루는 데 사소한 정보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가령 아인슈타인은 1907년 중력을 가지고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직관이 떠올랐다고 한다. 자유낙하를 할 때 중력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우리 주위의 중력이 사라지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중력은 기준 좌표계에 따라 달라지고 기준 좌표계를 적절하게 선택하면 적어도 국소적으로라도 중력을 없앨 수 있다고 말이다. 아인슈타인은 아마도 이러한 관찰에서 출발해 당대의 가장 심오하고 가장 앞선 물리학 이론인 일반 상대성 이론을 구축할 수 있었다.
아인슈타인이 이러한 직관을 갖게 된 것은 이상한 일화 때문이었다고 전해진다. 진짜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사실이 아니라 해도 적절한 일화인 것 같다. 한 도장공이 아인슈타인의 집을 칠하다가 3층 발판 위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작업을 했다. 어느 날 도장공이 몸을 너무 많이 내밀었다가 균형을 잃고 의자에 앉은 채로 떨어졌는데 다행히 뼈만 조금 부러졌다. 며칠 후 아인슈타인이 이웃과 이야기하다가 이런 의문이 들었다. 불쌍한 도장공이 떨어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이웃은 제가 이야기를 해봤는데 떨어지는 동안 의자에 기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중력이 없어진 것 같았대요라고 대답했다. 이때 아인슈타인은 도장공의 느낌을 포착했고 곧바로 일반 상대성 이론을 형식화하러 달려갔다. 중력 이론의 기원이 항상 추락하는 그 무엇 즉 뉴턴에게는 사과, 아인슈타인에게는 도장공과 관련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저자의 친구인 아우렐리오 그릴로는 물리학자가 되기란 고되고 힘들지만 일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고 한다. 그러나 보통 과학자는 항상 먹고사는 문제를 안고 있고 과학도 기본적으로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용된다.(153 페이지) 저자는 수학을 잘 모르고 과학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도 어려운 과학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160 페이지) 이 책에서 내 수준에서 흥미롭게 다가온 것은 물의 삼중점 이야기, 유리 이야기, 아인슈타인과 도장공 이야기 등이다. 수학을 잘 모르고 과학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도 어려운 과학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이 힘을 준다. 동시에 부담도 된다. 공부를 해야 한다. 지나친 앞서감인지 모르나 물의 삼중점 즉 고체, 액체, 기체가 공존하는 상태와 기독교의 삼위일체를 같은 맥락으로 볼 여지도 있을까?란 생각을 한다. 러셀 스테나드가 파동-입자 이중성을 논하며 신이며 인간인 예수를 설명한 것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