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바위, 시간 - 지질학적 증거에 기반한 지구 연대 논쟁
데이비스 영.랠프 스티얼리 지음, 김의식 옮김 / IVP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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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자 데이비스 영, 랠프 스티얼리의 책이다. 부제는 ‘지질학적 증거에 기반한 지구 연대 논쟁’이다. 랠프 스티얼리는 ‘그랜드 캐니언, 오래된 지구의 기념비’의 공저자 중 한 명이다. 이 책은 “주로 기독교 목사, 신학자, 성서학자, 학생, 과학적 문제에 관심 있는 평신도를 대상으로 하지만 비그리스도인도 환영”하는 책이다. 저자는 표준적인 주류 과학적 지질학의 관점에 비해 지구사를 근본적으로 잘못 보는 관점을 홍수지질학으로 명명한다. 본문에 흥미로운 개념이 나온다. 루수스 나투라이(lusus naturae)란 개념이다. 자연의 장난이란 의미다. 많은 유능한 학자들에 의해 화석은 1) 루수스 나투라이, 2) 헤아릴 수 없는 여러 목적에서 암석 안에 자리 잡도록 창조된 하나님의 작품, 3) 하나님이 생물계를 창조하실 때 마침내 결과에 만족하여 현재의 동물과 식물의 창조가 아주 좋다고 선포하시기 전에 있었던 예행 연습의 폐기물, 4) 천상의 영향의 산물, 5) 암석 내부의 끓어오르는 증기나 가소성 요소의 산물, 6) 동물과 식물의 싸앗 원리로 충전된 지하 유체의 산물들 중 하나로 여겨졌다.(62 페이지) 


로버트 후크(1635-1703)는 화석을 유기물로 보았지만 그것이 노아 홍수의 잔존물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66 페이지) 물리학과 천문학에 폭넓은 관심을 가졌던 후크는 지질학적 주제에도 매료되어 지질학에 아주 중요한 공헌 몇 가지를 했다. 그는 당시에 발명된 현미경을 지질학적 자료 연구에 최초로 적용했다. 후크는 세포라는 말을 고안해낸 사람이다. 덴마크의 과학자 니콜라스 스테노(1638-1686)는 지층들은 한꺼번에 퇴적되지 않고 개별 층들이 연속적으로 퇴적되고, 각각의 층은 그 위의 층들이 퇴적되기 전에 굳는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화석이 멸종과 무관할 수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처음에 화석 기록으로만 알려졌던 생물들 중 일부가 오늘날에도 살아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지구가 6천년보다 훨씬 오래되었다는 결론이 나온 것은 19세기 초였다. 크리스티안 퓌히젤(1722-1773)은 누층(formation)을 동일한 시기에, 동일한 재료로, 동일한 방식으로 형성된 지층들로 정의했다.(98 페이지) 걸출한 광물학자이자 작센의 지질 전문가인 아브라함 베르너(1749-1817)와 물리학을 오늘의 형태로 정립시킨 윌리엄 톰슨(1824-1907)의 사례를 보며 우리는 그들보다 적어도 한 가지 면에서는 더 안다고 말할 수 있다. 베르너는 화강암, 편마암, 편암, 현무암 등이 초기의 바다에서 화학적으로 침전되었다고 주장했다.(100 페이지) 이를 수성론이라 한다. 톰슨은 지구의 연대를 계산할 때 필요한 방사능이라는 열의 원천을 몰랐다.(183 페이지) 물론 이는 시대의 한계였다. 윌리엄 톰슨은 일명 켈빈(Kelvin) 남작이라 불렸다. 절대 영도를 의미하는 K는 바로 켈빈의 이니셜이다.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허턴(1726-1797)과 제임스 홀(1761-1832)의 관계도 흥미롭다. 두 사람 모두 화성론자다. 홀은 스승격인 허턴이 타계하고 나서 실험을 거행했다. 홀은 암석을 도가니에 넣어 녹이고 화성(火成) 현상을 실험적으로 모형화한 최초의 지질학자였다.(118 페이지) 허턴은 생전에 홀의 실험을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찰스 라이엘(1797-1875)은 균일론의 최고 해설자였다. 균일론은 지금은 작용을 멈춘 초자연적 원인에 의지하지 않고 현재 작동중인 것으로 관측되는 원인들의 측면에서 지구의 과거사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는 학설이다. 라이엘은 찰스 다윈(1809-1882)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다윈에게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를 소개해 준 사람이 비글호 선장 로버트 피츠로이(1805-1865)다. 피츠로이는 자신의 그런 행동이 다윈에게 진화론을 정립하게 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렸다. 


균일론의 반대가 격변론이다. 격변론 이론을 무너뜨리고 균일론적 사고를 심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 빙하 연구로 유명한 루이 아가시(1807-1873)다. 아가시는 다윈 진화론을 반대한 수수께끼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133 페이지) 다윈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이론을 제창하기 이전부터 일류 지질학자였다. 그는 지질학적 경험을 통해 침식이 매우 느리게 일어난다는 인상을 받고 지구의 태고성 문제를 숙고하게 되었다.(150 페이지) 윌리엄 스미스(1769-1839)의 조카인 존 필립스(1800-1874)는 커다란 석탄 광산 내에서 깊이의 함수로 온도의 증가를 측정하여 지구가 오랜 기간 냉각되어 왔다는 결론을 내렸다.(151 페이지) 19세기가 다하면서 다년간의 현장 답사 경험이 있는 전문지질학자들은 지구가 단지 수쳔 년밖에 되지 않았다고는 꿈에서도 생각하지 않았다. 


지구 역사가 6천년 되었다는 말은 베드로후서 3장 8절(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에서 기원했다. 하나님의 천지 창조일인 6일에 기계적으로 1000을 곱한 결과다.(41 페이지) 이 사실을 접하며 영묘한 하나님의 하루가 어찌 천년 같기만 할까란 의문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말을 신비롭다고만 여길뿐 하루가 천년에, 천년이 하루에 고정된다는 것이 너무 기계적이고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를 제한하는 것이라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는 것 같다. 베드로 후서의 핵심은 주님의 날은 우리가 헤아릴 수 없다는 의미이지 ’하루; 천년’이 아니다. 저자는 성경에 나오는 족보들을 더한 숫자는 인간의 연대이지 우주나 지구의 연대가 아니라는 말을 한다,(229 페이지) 


저자는 성령이 성경해석이라는 교회의 작업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해석은 오류 가능한 인간들에 의해 수행된다는 말을 한다.(234 페이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성경 해석이 무류(無謬)한 결과를 생산하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절차였다면 분명히 교회는 광범위한 본문들에 대해 수많은 경건한 사람이 내놓은 매우 많은 다양한 해석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히 교회는 자신의 믿음이 성경에 가장 충실하다고 전적으로 확신하는 수많은 교파로 나뉘지 않았을 것이다. 성경 주석가들이 무류했다면 모든 본문의 해석에서 일치를 보였을 것이다.(234, 235 페이지) 저자가 말했듯 하나님은 자연 안에서도 자신을 계시하시기에 주석가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배격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과학적 발견을 배제함으로써 하나님의 작품에 대한 과학적 연구의 열매를 경시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과학은 개방성과 변화 가능성을 핵심으로 한다.(236 페이지) 지구의 장대한 태고성은 굳게 확립된 기본 원리다. 문화적 진공 상태에서 성경을 주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238 페이지) 과거의 주석가들은 과학 발견들의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그들은 다른 과학적 개념들에 의해 형성된 문화 속에 거했다. 과거의 주석가들은 문화적 배경과 무관하게 성경을 해석한 것이 아니다. 저자는 현대 과학이 반성경적이라는 말은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성경이 역사적 책이라는 말은 성경의 모든 구절이 동일한 방식으로 역사적이라거나 심지어 성경의 모든 구절이 역사적 정보를 전달하려는 의도를 갖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시편의 시들, 예언자들의 신탁적 언설, 사도들의 편지 일부, 요한계시록의 묵시적 환상의 일부는 비유와 상상이 풍부하다. 이 편(編)들은 분명히 역사서가 아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일정한 역사적 맥락 안에서 쓰였고 그것들이 쓰인 시기의 상황에 대해 말했다.(241 페이지) 성경은 특별히 자연세계에 대한 자잘한 세부 사항을 가르치기 위해 주어진 책이 아니다.(250 페이지) 


음파와 유사한 방식으로 반응하는 지진파는 암석층을 통과하지만 그 에너지의 일부는 서로 다른 두 층 사이의 경계면에서 반사된다. 이런 암석 불연속면을 지진 반사면(seismic reflection)이라 부른다.(308 페이지)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의 지질학 논의는 대부분 사암, 석회암, 셰일, 석탄, 증발암 등의 퇴적암에 초점을 둔다. 그들은 이 암석들이 창세기 홍수 동안 지구 전체에 걸쳐 지극히 급속하게 퇴적되었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들은 지구가 수천년보다 훨씬 오래되었음을 증거하는 화성암과 변성암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거의 논하지 않는다.(433 페이지) 많은 경우 관입 마그마의 거대한 암석체는 냉각대(chill zone)를 보여준다. 냉각대는 냉각 중인 화성암체가 관입당한 모암(母巖)과 접촉한 곳에서 형성된다. 냉각대는 이 화성암체 내부에 비해 대단히 세립질인 암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질학자들은 이 암석의 세립질적 성격의 원인을 이 암석이 마그마보다 훨씬 더 차가운 모암과 접할 때 일어나는 마그마의 메우 급속한 냉각과 결정화로 돌린다. 


마그마의 온도는 H₂O의 양에 따라 다르지만 현무암질 마그마는 보통 섭씨 1,100~1,200도 정도이고 화강암질 마그마는 대개 섭씨 750~1,000도 정도다. 그에 비해 마그마가 관입해 들어간 암석은 섭씨 200~300도 정도로 상대적으로 차갑다. 화성암체 내부의 마그마는 주변부의 마그마보다 훨씬 천천히 열이 손실된다. 결과적으로 화성암체 내부의 암석을 구성하는 결정들은 접촉면 근처 냉각대의 광물들보다 크기가 더 자랄 시간을 갖는다.(437, 438 페이지) 관입 화성암은 석회암, 사암, 셰일의 두꺼운 연속층에 의해 둘러싸인 경우가 많다. 이 퇴적암들은 화성암체와의 접촉면 가까운 곳에서 흔히 입자 크기, 결정의 성격, 광물 종류 면에서 분명한 변질을 겪는다.(438 페이지) 


지구의 태고성을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경우는 심성암체다. 캘리포니아주의 시에라네바다 저반(底盤; batholith) 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부슈벨트 화성암 복합체 등이 지구의 태고성을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저반들이다. 저반은 지구 깊은 곳의 마그마가 지각 속으로 침입하여 천천히 식으며 굳은 거대한 심성암체다. 이들은 길이 480km, 폭 240km, 두께 7.2km의 매우 거대한 화성암체다.(442 페이지) 이런 초거대 화성암체가 만들어지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1) 지각 또는 상부 맨틀 내의 깊은 곳에 있는 암석들이 녹는 시간, 2) 녹은 물질이 대량으로 쌓이는 시간, 3) 마그마가 지각을 거쳐 지표 또는 그것이 정지될 때까지 이동하는 시간, 4) 마그마가 결정화되는 시간, 5) 새로 결정화한 화성암체가 주변 암석의 배경 온도까지 식는 시간, 6) 화성암체가 결정화한 지표 아래에서 표면에 이르는 시간, 7) 화성암체가 침식으로 지구 표면에 드러나는 시간(442 페이지) 등을 보라. 얼마나 장구한 시간이 걸릴지 감이 잡힌다. 더 고려해야 할 중요 요인 중 하나는 마그마가 들어갈 커다란 공동(空洞)이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마그마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마그마가 상승하는 시간보다 훨씬 느리다. 이는 마그마가 시간을 두고 발생하는 파동의 형태로 상승함을 나타낸다.(447 페이지) 


이미 정치(定置)되어 굳은 암체를 다른 암체가 가로지르기도 한다. 개별 화성암체들의 화학적 조성이 모두 같지는 않다. 이는 마그마 원천 지역의 화학 조성이 변했거나, 심성암체들이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원천으로부터 나왔음을 암시한다.(448 페이지) 가장 많이 걸리는 것은 마그마가 결정이 되어 굳는 시간이다. 화성암체의 냉각의 증거가 불과 수천 년 된 지구와 양립할 수 없다면 홍수 지질학의 이론과는 더욱 양립하기 어렵다.(463 페이지) 많은 화성암체가 이전에 존재하던 퇴적암 안에 자리잡고 있다는 점도 헤아릴 필요가 있다. 커다란 관입암체들은 결코 빨리 열을 잃을 수 없다. 젊은 지구 가설의 문제는 심각해진다. 그 옹호자들은 지표면에 퇴적된 일반적 퇴적암들이 어떻게 112km 또는 그보다 더 깊은 지하에 묻히고 그곳에서 완전히 재결정화되고 그 후 극히 짧은 시간에 지표로 솟아 노출되었는지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471 페이지) 그 어디에도 그렇게 빠른 과정이 기록되어 있지 않음이 물론이다. 


각력암을 의미하는 breccia는 이탈리아어에서 온 단어로 ‘부서진’을 의미한다. 각이 지고 부서진 파편들로 구성된 역암을 말한다.(490 페이지) 지난 한 세기 동안 퇴적 지질학자들은 퇴적물과 퇴적암을 이해하는 원리들을 규명했다. 주어진 퇴적체를 움직이는 물 에너지나 바람 에너지의 강도를 결정하는 기본 역학, 어떤 종류의 조건에서 소금이나 석고나 탄산염이 침전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수화학(水化學), 산호초나 숲이 번창할 수 있는 온도와 빛 조건을 제한하는 생태학적 또는 생물학적 원리들이 여기에 포함된다.(503 페이지)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화강암들은 지질학자들이 시에라네바다 저반이라 명명한 대략 560km×96km의 거대한 화강암체의 매우 작은 부분을 이룰뿐이다.(507, 508 페이지) 저반이란 102제곱 km 이상의 면적이 드러난 관입 화성암체를 말한다. 


저자는 인상적인 표현을 한다. 시에라네바다 산맥으로부터의 증거는 하나님이 세계의 이 부분을 어마어마하게 긴 기간이 걸리는 놀라울 정도로 복잡한 지질학적 과정을 통해 형성하기로 결정하셨음을 분명히 보여준다는 말이 그것이다. 저자가 말했듯 지구의 어떤 지역의 지질이든 면밀하고 주의 깊게 들여다본다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이 자신의 세계를 만드시는 데 수많은 시간을 들이셨음을 이해할 수 있다.(534 페이지) 방사성 연대측정은 절대 연령 측정을 위한 수단이다. 방사성 연대측정이 지구가 오래되었다는 개념의 유일한 증거는 아니다.(536 페이지) 전자의 수는 핵 내의 양성자 수와 거의 비슷하다. 전자의 질량은 양성자 질량의 1/ 1,836이다. 양성자와 전자가 상호작용하면 중성자를 형성할 수 있다. 중성자는 양성자보다 약간 더 무겁다. 핵 내의 양성자와 중성자의 합이 원자질량이다. 양성자 2개, 중성자 2개의 방출 조합을 알파붕괴라 한다. 헬륨 원자핵(알파 입자)을 방출하는 현상이다. 


베타붕괴는 양의 베타붕괴와 음의 베타붕괴로 나뉜다. 양의 베타붕괴는 양성자가 중성자로 변하면서 양전자와 전자 중성미자를 방출하는 현상을 말한다. 음의 베타붕괴는 중성자가 양성자로 변환되면서 전자(베타 입자)와 반중성미자를 방출하는 현상을 말한다. 우라늄 238로부터 시작하여 알파붕괴 8회, 베타붕괴 6회를 수반하는 여러 차례의 붕괴를 거쳐 양성자 82개와 중성자 124개로 이루어진 안정한 동위원소인 납 206(82+124)이 만들어진다.(541 페이지) 방사성 붕괴는 통계학적으로 모형화되어야 한다. 언제 어떤 원자가 자동적으로 붕괴할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자는 10분만에 붕괴할 수도 있고 10억년만에 붕괴할 수도 있다. 반면 우리는 어떤 표본의 특정 동위 원소의 방사성 원소의 지극히 많은 수가 붕괴하게 될 속도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이는 반감기를 염두에 둔 말이다. 


어떤 원자들이 붕괴할지 정확하게 예상할 수 없다. 수백 또는 수천년에 지나지 않는 물질들의 연대측정을 원한다면 반감기가 5,730년인 탄소 14를 이용하면 된다. 수백만-수천만년 된 광물과 암석의 연대측정을 위해서는 반감기가 12억 5천만년인 칼륨 40을 이용하면 된다. 암석의 연대가 수백만-수십억년인 경우 반감기가 44억 6,800년인 우라늄 238이나 반감기가 1,060억년인 사마륨 147을 이용하면 된다. 지질학적으로 중요한 방사성 동위원소의 붕괴상수의 섭동(攝動; pertubation)에 대한 증거는 오늘날까지 발견되지 않았다.(548 페이지) 창조과학연구소의 러셀 험플리스는 창세기 홍수 동안에 방사성 붕괴가 100만배 증가했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즉 짧은 기간에 방사성 붕괴가 일어났다면 엄청난 양의 열이 발생해 생명을 전멸시킬 정도의 광범위한 암석의 용융과 바닷물의 비등(沸登), 대기의 가열을 초래했을 것이다. 


험프리스는 공간 자체가 늘어나고 복사선의 파장이 길어지는 적색편이(파장이 '붉은; 긴' 쪽으로 변화)의 우주 안에서 공간을 통해 나아가는 복사선 에너지의 손실에 의해 막대한 양의 열에너지가 상쇄되었다고 말했지만 우주의 팽창 속도가 왜 갑자기 창조 기간과 노아의 홍수 기간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증가했는지 답하지 못했다. 만일 방사성 연대측정에서 심각한 오류가 발견되었다면 그것은 지질학의 요인 때문에 발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방사성 연대 측정이 합당하고 식견 있는 비판을 견뎌낼 수 없다면 지질학자들은 그 방법을 포기할 것이다. 그들은 과학계 회원들의 강력한 비판에 따라 결함이 있는 방법을 포기할 것이다. 하지만 몇몇 다른 방법은 비판적 분석을 오랫동안 견뎌왔고 따라서 지질학적 조사에 유익한 도구로 여겨진다. 넓은 범위의 방사성 연대 측정법으로부터 얻은 증거는 지구가 수십억 년임을 압도적으로 지시한다. 


하나님이 암석에 방사성 동위 원소와 그것의 딸 생성물의 형태로 남겨 두신 단서는 대단히 명료하다.(612 페이지)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은 현대 지질학이 주장하는 지구사의 모습이 무신론과 반지성주의로 채색된 균일론의 원리라는 토대 위에 지어졌다고 주장해왔다.(615 페이지)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은 균일론이 성경에 제시된 기독교적-유신론적 세계관을 향한 적대감, 특히 신적 창조의 개념과 죄 많은 인류를 멸하기 위한 격변적인 전 지구적 홍수 개념을 향한 적대감으로부터 나오는 진화론적 우주관에 대한 헌신과 짝을 이룬다고 종종 주장한다.(625 페이지)


동일과정설을 주창한 초기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은 국지적 격변 사건을 거부하지 않았다. 동일과정설은 과거의 자연환경에 작용했던 과정이 현재의 자연현상과 같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하지만 그는 동료 지질학자들이 호소하는, 현대인들이 경험하지 못한 대규모의 격변에 대해서는 냉담했다. 화산 활동의 강도가 특정 지역에서는 시간에 따라 다양할 수 있더라도 전 지구적 규모에서 거의 동일한 강도를 유지했다.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방법론적 균일론과 실질적 균일론을 구별했다. 전자는 자연법칙의 균일성과 관련된다. 실질적 균일론은 지질학적 결과를 낳는 종류의 과정들이 지질학적 시간을 통해 지속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들의 속도가 격변적이지 않고 다소 일정했는지 즉 점진적이었는지 같은 문제와 관련된다.(632, 633 페이지) 


균일한 입자 크기를 가진 순수한 석영 모래가 95 퍼센트를 넘는 두꺼운 축적물은 격변적 과정의 산물로 생기지 않으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643 페이지) 층서 기록에 넓게 자리 잡은 구조체들이 발달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지질학적 과거에 격변적 사건이 일어난 점을 받아들이더라도 우리는 젊은 지구나 완전히 격변적인 지구사 해석을 수용하기 어렵다. 라이엘은 지구가 식고 있다는 주장에도 회의적이었다. 저자는 우리도 대다수 지질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라이엘의 지구사의 일정 상태 개념을 거부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이 라이엘이 그토록 강력하게 지지했던 의미에서의 균일론자들이 아니라고 말한다. 지구 과거의 어떤 측면에서는 방향적 특성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현대의 지질학자들은 장기간에 걸친 지질학적 진행 속도나 지질학적 조건의 균일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저자는 느린 속도를 선호하는 선험적 편견이 아니라 암석 내의 경험적 증거가 그랜드 캐니언의 암석 대부분이 느린 속도로 퇴적되었음을 수용하라고 강력히 요구한다고 말한다.(648 페이지) 저자는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에게 균일론과 격변론의 무익한 이분법을 폐기할 것을 요구한다.(649 페이지) 저자는 자신들은 두 가지 면에서 균일론자라 말한다. 1) 지질학이 물질의 기본 특성과 자연법칙이 계속 일정했다는 점, 2) 우리가 종류 측면에서 현재의 지질학적 과정 및 원인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과정과 원인의 측면에서 과거의 지질학적 지형을 설명하려고 먼저 시도한 후에 생소한 미지의 원인에 호소하려 한다는 현실론적 절차를 일반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점 등이다. 


저자는 암석들이 해석되어야 한다는 말에 즈음해 결국 해석 체계는 암석 안에 있는 것에 부합해야 한다고 말한다.(651 페이지) 비록 퇴적암 기록의 일부 현상이 노아의 대홍수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호소하는 현상 대부분은 전 지구적인 격변적 노아의 홍수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과정의 측면에서 훨씬 더 만족스럽게 설명될 수 있다. 어떤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은 현재로서는 증거가 자신들의 견해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한다.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은 지질학적 관심이 아닌 종교적 관심에 의해 동기를 부여받는다고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젊은 지구의 수용을 요구하지 않는다. 사람의 영원한 구원은 젊은 지구를 받아들이는 데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있다.


저자는 목사들과 주일학교 교사들에게 젊은 지구 창조론과 홍수 지질학을 설교와 분반 공부에 놓지 말 것을 요구한다. 또한 미래의 교회 목사들을 훈련시키는 신학교 교수들에게 몸소 지질학을 배우고, 신학생들에게 지질학 공부를 권하고, 신학생들을 위해 성경의 가르침을 타당한 과학과 연관시키는 방법의 모형을 만들고, 학생들이 목회를 시작할 때 젊은 지구 창조론을 옹호하지 말라고 권할 것을 요구한다.(660 페이지) 저자는 젊은 지구 창조론을 교육받은 그리스도인이 대학이나 박물관에 가서 정식 지질학을 접하고 새로이 알게 된 과학적 지식과 어린 시절 배운 종교적 견해 사이에 놓인 그랜드 캐니언보다 훨씬 더 넓은 엄청난 지적, 영적 간격을 몸소 대면함으로써 성경을 오류의 책으로 받아들이고 교회의 종교적 양육에 대해 확신을 잃게 된다는 말로 젊은 지구 창조론 교육의 문제를 짚는다.(659 페이지) 


저자는 젊은 지구 창조론은 복음 전도의 장애물이라 말한다. 현대의 젊은 지구 창조론을 일반 대중에게 강요하려는 노력은 많은 지성적 지도자가 이미 품고 있는, 기독교가 순전히 반지성적인 현대판 몽매주의라는 생각에 신빙성을 더할뿐이다. 저자는 오래된 지구에 대한 믿음을 자신들의 성경관과 기독교 신앙관에 어떻게 통합할지 잘 모르기 때문에 젊은 지구 창조론을 계속 고수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허위적인 과학적 가설을 통해 성경이나 기독교를 증명하는 것은 하나님을 영예롭게 하지 못하며 그리스도의 대의에 상처만 입힐뿐이다. 성경은 과학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된다고 권위가 올라가지 않고, 과학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다고 신뢰성을 잃지 않고 그 자체의 자기 입증적 권위 위에 선다.(666 페이지) 


지질학적 사실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적 사실보다 훨씬 덜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이다. 성경과 자연 안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종류의 사실들을 만나지만 두 사실 모두 원천은 하나님이다. 성경과 피조 세계는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불일치할 수 없다. 불일치와 갈등과 부조화에 이르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자료에 대한 인간의 해석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연과 성경 사이의 외관상 갈등 때문에 낙담하지 말아야 한다. 저자는 창조와 성경의 관계를 잘 나타내는 것은 화성보다 대위법이라 말한다. 대위법이란 두 개 이상의 독립적인 선율을 조화롭게 배치하는 작곡 기술을 말한다. 저자는 성경의 난점들이 성경의 권위, 무류성을 거부하는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긴장과 난점이 없는 과학은 전혀 재미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당혹스러운 문제가 없는 과학을 매우 의심해야 한다. 저자는 창조된 질서와 성경 안에 그리고 그것들 사이에 난점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 두 계시에 대한 우리들의 이론적 재구성들 안에 그리고 그 사이에 난점이 존재한다고 말한다.(670 페이지)


책의 마지막 장인 17장 ‘창조론; 복음 전도, 변증학‘은 저자의 전문이 자연과학을 잘 아는 균형 잡힌 신학자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장이다. 인상적인 말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해석과 현대 지질학을 비롯한 과학적 결과와의 불일치를 보고 자신들의 주해(註解)를 재평가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지질학, 물리학 부분에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신학적 상세 서술 부분에는 전체적으로 동의하지만 너무 유려해 약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책에서 많이 배웠다. 저자가 말했듯 11장, 14장, 15장은 어렵다. 11장은 비교적 따라갈 만한데 방사성 연대측정을 다룬 14, 15장은 상당히 어렵다. 기본적으로 물리학 지식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고 저자의 설명이 상세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는 분명 나의 역량 부족에 기인하는 부분이다.


성경의 내용들이 서로 모순되게 보이는 것을 대위법으로 설명하는 것에 감탄했다.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 데보라 하스마, 로렌 하스마의 ’오리진‘, 로렌 하스마의 ’죄의 기원‘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로렌 하스마의 ’죄의 기원‘의 챕터 중 ’신학과 과학의 조화와 대위법‘이란 챕터가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성경, 바위, 시간‘의 저자가 말한 부분이기도 하다. 예레미야 33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주야와 맺은 언약이 없다든지 천지의 법칙을 내가 정하지 아니하였다면..‘(25절) 


천지의 법칙을 지으신 것이니 이는 ’성경, 바위. 시간‘에서 저자가 말한 부분과 공명한다고 볼 수 있을까? 저자는 성경과 자연 안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종류의 사실들을 만나지만 두 사실 모두 원천은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기독교인들이 현대 과학의 성과를 다 누리고 수용하면서 지구, 우주, 인간의 연대에 대한 과학의 성과에 대해서만은 극구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이 부분도 ’성경, 바위, 시간‘을 정독했다면 문제로 인식하고 고치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두(冒頭)에서 말한 것처럼 저자가 말했듯 ’성경, 바위, 시간‘은 “주로 기독교 목사, 신학자, 성서학자, 학생, 과학적 문제에 관심 있는 평신도를 대상으로 하지만 비그리스도인도 환영”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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