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먼지로부터 - 상실을 통과하는 한 과학자의 경이로운 여정
앨런 타운센드 지음, 송예슬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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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앨런 타운센드는 생물지구화학자다. 생물지구화학은 생물학, 지질학, 화학 모두를 부분적으로 다루며 그 밖의 많은 것을 아우르는 학문이다. 저자는 과학의 역사는 억압, 남용, 배제,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과학은 성취도, 역할도, 잘난 지식도 아니다. 과학은 하나의 과정이며, 세상을 관찰하고 그 안에서 존재하는 방식이다. 과학은 남보다 덜 한심하게 살도록 하거나 죽음을 늦춰주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역경을 만나든지 자아에 매몰되지 않고 경이(驚異)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물론 과학은 신앙이나 영성과 다르지 않게 희망을 준다. 저자에 의하면 과학은 영적인 자기 구원의 실천이 될 수 있고 사랑의 행위가 될 수 있다. 


저자는 사랑이 오래 참고 온유하며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다만 진리 안에서 기뻐 하는 것이라면 과학 만큼 순수한 형태의 사랑도 없을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나무를 불태우면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1000년 동안 대기에 머무는 것처럼 우리가 살면서 내리는 선택들은 몸속에 오래가는 변화를 새긴다고 말한다. 저자는 희망이 위안을 주듯이 호기심은 우리의 신경을 진정시키고 마음을 열게 하며 내면에서 우리를 갉아먹는 스트레스 호르몬에 제동을 건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는 세상을 이야기의 틀에 넣고 싶어하고, 삶이 논리적으로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지구에서 건강하고 희망찬 성장은 필연적으로 붕괴를 수반한다고 말하며 자신의 붕괴에 대해 설명한다. 


두개인두종(頭蓋咽頭腫)에 걸린 네 살 난 딸 이야기가 그것이다. 저자는 한곳의 성장을 지속하려면 다른 곳의 성장을 파괴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파괴의 속도를 극단적으로 높여왔다. 하지만 그런 현실을 감쪽같이 은폐하는데도 도가 터서 정말로 계속 성장할 수 있는 척한다. 각각의 삶이 좇는 공통의 목적이 여전히 성장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이야기다. 저자는 콜로라도 대학교 교수로서 브라질 프로젝트와 코스타리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숲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말해주는 원소들을 연구하는 프로젝트였다.


저자는 코스타리카는 대륙판이 충돌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소개한다. 저자는 섭입(攝入)을 더없이 느리지만 장대한 전투가 일어나듯 한 판이 다른 판 밑에 깔리는 현상으로 설명한다. 지구핵에 가깝게 떠밀린 패자(敗者)는 녹아내리는 것으로 복수를 한다. 그 결과 생긴 마그마 거품이 포개진 판을 뚫고 솟아올라 화산을 형성한다. 아래 깔린 판은 눌린 상태에서도 부단히 저항하며 상층의 땅을 들어올린다.(53 페이지) 


한 번의 이혼을 겪은 저자는 프로젝트를 통해 두 번째 아내 다이애나를 만났다. 저자의 책은 과학 프로젝트와 일상을 과학적 통찰과 연결짓는 내공이 돋보이는 책이다. 가령 저자는 우리의 삶과 감정, 그리고 투쟁과 수용의 순환이 자신이 연구하는 원소들의 순환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며(66 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비옥한 토양은 모두 화산 분출, 빙하, 대홍수 등 재앙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말을 한다.(97 페이지) 저자는 이런 말을 한다. “각 생명의 전초기지는 암석 틈새로 흐르는 물에 농축된 이산화탄소를 더해주어 화학적 풍화작용을 촉진하고 물속에 광물의 양분이 방출되도록 한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가 생기와 푸르름을 되찾는다.”(98 페이지) 


저자는 뇌수술을 받은 딸 네바를 위해 우블렉을 만든다. 네바는 우블렉이란 이름을 듣고 웃기는 이름이라 말한다. 우블렉은 비뉴턴유체다. 상부 맨틀과 비교할 부분이다. 저자는 부드럽게 다루면 액체처럼 흐르지만 충격을 가하면 고체처럼 단단해지는 우블렉을 보며 인간 정신의 가소성(可塑性)과 한계를 떠올린다. 충격과 트라우마가 혈액을 농축시키는 것을 보면 충격을 가하면 고체처럼 단단해지는 우블렉을 생각할 법하다. 저자는 힘든 상황에서도 인간은 과학 분야에서든 자신에 관해서든 위대한 발견을 하고 대단한 해법에 도달할 수 있겠지만 진정한 배움과 발견, 천재성의 발현은 노는 듯한 마음 상태 즉 충분히 이완되었을 때 훨씬 수월하게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인류가 진화하는 동안 일부 유전자는 부모가 아닌 여러 생물체를 거쳐 우리 DNA로 들어왔다. 이를 수평적 유전자 이동이라 한다. 저자의 아내 다이애나는 바로 이런 미생물을 연구하는 과학자다. 다이애나는 “답을 찾는 과정의 복잡함과 불확실성을 지칠 줄 모르고 즐겼”으며 “다들 그냥 진실로 받아들이는 답에 안주하지 않고 진짜 답을 알고 싶어했다.” 저자는 과학을 무한히 즐기는 듯한 다이애나의 태도가 한계를 받아들였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135 페이지) 저자는 자신이 과학절대주의에 빠졌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오만함은 또다른 형태의 광신이었고 그것은 바람직한 과학적 태도와 근본적으로 불일치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과학사는 다른 어떤 분야의 역사만큼이나 추악하며 그 추악함은 과학이 지향하는 기본 원칙의 근본적인 잘못이 아니라 인간의 결점에 기인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과학의 본질은 우리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의문을 던지는 것이라 말한다.(126 페이지) 우리는 과학을 통해 자신의 한계 안에서 아름답게 춤출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다이애나가 연구를 통해 알아낸 사실이다. 가장 처음 유리병에 들어온 박테리아는 무작위로 결정되는 듯 보였으나 이후 모이는 박테리아에 굉장한 영향을 미치더라는 것이다. 그 첫 박테리아를 좋아하는 박테리아만 이어 모인다는 것이다.(145 페이지) 


남극에 가서 크라이오코나이트(cryoconite)를 연구하고자 했던 다이애나는 교모세포종(膠母細胞腫) 진단을 받는다. 저자 입장에서는 딸과 아내가 뇌종양을 앓게 된 것이다. 저자가 추산한 아내와 딸이 모두 뇌종양에 걸릴 확률은 3/1000억보다 희박하다. 저자는 이 상황에서 카오스 이론을 떠올린다. 카오스이론이란 세상을 규정하는 복잡한 시스템 다수가 초기 조건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무작위라고 생각했던 것들 속에도 놀라운 수준의 자기조직화와 패턴이 존재한다는 점을 설명해준다. 카오스 이론의 창시자 에드워드 로렌츠는 나비 날개짓이 한 마을을 초토화한 토네이도가 되기까지 모든 점을 연결하는 것이라는 대중의 생각을 무척이나 탐탁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179 페이지) 


저자는 뇌종양을 앓는 상황에서도 호기심을 잃지 않는 아내를 보며 정신과의사 노먼 도이치의 ‘기적을 부르는 뇌’를 인용한다. 즉 호기심이 아내의 비밀스러운 힘의 근원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새로운 정보를 꾸준히 습득하는 사람의 뇌는 스스로 발전해 새로운 생각과 세계를 탐구하는 능력을 키워간다는 것이다.(213 페이지) 도이치는 도파민 보상이 답을 찾는 데서 오기도 하지만 때로 답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통해 더 강하게 온다고 말했다. 과학과 삶을 연결짓는 저자의 성찰력은 숲과 암석 이야기로 이어진다. 저자에 의하면 숲은 광합성을 통해 공기에서 탄소를 얻고 단백질의 핵심 구성요소인 질소도 결국 공기에서 얻는다. 그러나 칼슘을 비롯해 그 밖에 숲이 필요로 하는 것들은 전부 암석에서 온다. 암석은 열기와 빗물, 침범하는 식물 뿌리의 영향으로 서서히 풍화하면서 자신이 품은 풍요를 내어준다.(221 페이지) 


저자는 기적적이고 획기적인 답을 찾아내는 것만이 성공이라는 생각으로 과학에 접근하면 과학이 지닌 진짜 중요한 힘을 놓치고 만다고 말한다. 우리가 저항하지 않는다면 과학은 우리에게 한계와 받아들임을 가르쳐준다.(224 페이지) 강인한 의지와 과학 연구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았던 아내는 병세가 심해진다. “네바는 오른쪽 얼굴 일부가 마비된데다 언어장애까지 겪는 엄마를 무서워했다. 그 역시 이해가 갔으나 지켜보고 있으면 마음이 무너졌다.”(252 페이지) 수술 후 항암 치료, 그리고 백신 요법을 받았으나 결국 아내는 과학을 향한 호기심과, 원하면 언제든지 그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갔다.


저자는 원자의 관점에서 우리의 불멸은 보장되어 있다고 말한다. 칼 세이건은 이런 말을 했다. “우주의 관점에서 우리 모두는 소중하다, 만일 어떤 사람이 당신과 뜻이 맞지 않는다면 그냥 내버려두기를. 1000억 개 은하 속에 우리와 똑같은 사람은 찾을 수 없을 테니까.” 병세가 악화되어 고통이 심해진 아내는 모르핀 주사를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까지 몰렸다. 마지막 순간까지 미소로 딸을 대하는 아내를 보며 저자는 우리의 영혼 가장 깊숙한 곳까지 당신의 존재가 영원히 새겨졌다고 말한다. 저자는 가장 중요한 순간 아내가 그토록 특별할 수 있었던 것은 가장 근접한 답의 원천일뿐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방법 – 인 과학에 헌신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 ‘우주의 먼지로부터’는 저자가 세상을 떠나기 몇 주 전 아내로부터 써달라고 부탁을 받고 쓴 책이다. 아내는 “우리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방법을 찾아줘”란 말을 했다. 저자는 자신이 아내와 달리기를 통해 변함없이 연결될 수 있었기에 아픔이 희석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을 마비시키는 슬픔의 수렁으로 더 깊이 추락하던 저자는 “슬픔은 하나의 원소다. 탄소나 질소처럼 자신의 주기를 가지고 있다.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것에 들고 날 뿐이다.”란 글을 읽는다. 피터 헬러의 ‘도그 스타’의 한 구절이다. 


저자는 궁극적으로 과학의 목적은 세상의 가능성이 피어나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혼돈의 일부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286 페이지) 저자는 가장 어두운 시간을 지나 문을 열어보니 여태껏 몰랐던 평온이 있었다고 말한다. 아내 무덤에 찾아간 저자는 아내가 작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생각한다. “대담하게, 관대하게, 충만하게 살라. 가장 중요한 곳에 에너지를 쏟고, 남을 먼저 살림으로써 나를 살리라. 관대해지고, 무한히 궁금해하고, 실패를 절대 두려워하지 않는 데서 얻는 것만큼 커다란 위로와 기쁨은 없다. 그러니 가장 기쁜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 닫힌 마음이 아니라 즐기는 태도로 질문할 것. 더러 부서지고 불타버릴지라도 눈앞에 놓인 큰 기회를 붙들 것.” 


저자가 인용한 책들이 다 인상적인데 가장 크게 마음을 끄는 것은 로버트 맥팔레인의 ‘언더랜드’의 한 구절이다. “우리 자신도 일부는 광물이다. 치아는 암초, 뼈는 돌이다. 땅에서만이 아니라 신체에서도 지질작용이 일어난다.” 저자는 말한다. “나를 구성하는 원소들이 흩어져 아직 형성되지 않은 생명을 이루기 전까지 다이애나가 계속 내 안에 알아 숨쉬리라는 것을. 하지만 언젠가는 새로운 우주먼지가 생겨나리라는 것도.“ 이 부분이 대단한 감동으로 읽은 책의 대단원이다. ‘우주의 먼지로부터’는 과학에 근거한 아름다운 책, 슬픔과 두려움과 허망을 이기는 과학자의 감동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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