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볼트에 대해 일정 정도 이상의 관심이 생겼다. ’천재들의 과학노트‘에 나오는 훔볼트 이야기부터 다시 읽어야겠다. ’천재들의 과학노트‘는 부분적으로 읽은 책인데 다른 인물(가령 게오르기우스 아그리콜라, 니콜라우스 스테노 등) 이야기에는 밑줄이 쳐져 있는데 훔볼트는 그렇지 않다. 훔볼트는 지리학, 지질학, 기후학, 생물학 등을 통합한 진정한 박식가였다는 소개 글이 눈에 띈다. 그는 1769년생이다. 다산(茶山), 풍석(楓石) 등과 비교할 거리가 있을까?(다산; 1762년생. 풍석; 1764년생)
훔볼트 역시 어머니로부터 받은 막대한 유산 덕에 자신만의 과학 탐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런 점은 조르주 루이 르클레르(1707년생)와도 유사하다. 르클레르 역시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아 수학, 물리학, 화학, 현미경학, 식물학 등 광범위한 관심사를 공부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린 인물이다.
’과학의 첫 문장‘의 저자 수잔 와이어 바우어는 광범위한 관심사, 그리고 생계를 위해 돈을 벌 필요가 없는 부유함은 당시 지구과학 연구자의 필수 요건이었다고 말한다. 다윈이 케임브리지 대학 시절 훔볼트의 남아메리카 탐험기를 읽고 중미를 탐험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다윈은 “훔볼트가 없었다면 비글호를 타지도 않았을 것이고 《종의 기원》을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윈 역시 부유한 의사 가문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지질학을 공부하고 진화론을 구상할 수 있었던 다윈에게 참고 저서가 된 작품은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다. 반면 윌리엄 스미스는 르클레르, 다윈, 훔볼트 등과 거리가 크다. 영국 최초의 지질도를 작성한 그는 생계를 위해 일을 했던 엔지니어겸 지질학자였다. 스미스가 지하세계에 처음으로 접근한 것은 탄광의 측량사로 일하면서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