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 곁에 머물기 - 지구 끝에서 찾은 내일
신진화 지음 / 글항아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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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학(glaciology)은 1960년대에 시작된 젊은 학문이다. 빙하 곁에 머물기의 저자 신진화 박사는 빙하(glacier) 코어로 과거 기후를 연구하는 빙하학자다. 저자는 빙하는 기후 유언장(遺言狀) 같다고 말한다. 빙하는 눈이 내리는 당시의 기후와 환경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빙하학(glaciology)에서 눈(snow)은 떨어진 이후 변하지 않은 물질을 말한다. 펀(firn)은 눈과 얼음의 중간 단계(눈도 얼음도 아닌 단계)의 물질을 이르는 말이다. 사하라 사막의 먼지, 화산 폭발로 분출한 화산재가 지구 대기를 떠돌다 빙하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빙하로 46억년의 지구 역사를 모두 해명할 수는 없다.


저자에 의하면 남극에서 시추한 빙하 코어로 80만년 동안의 기후와 환경을 연속적으로 복원했고 그린란드 빙하 코어로 12만년 동안의 기후와 환경을 복원했다. 저자는 지구의 비밀을 세상에서 처음으로 쥐게 되는 빙하학자로 평생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46억년이라는 긴 기간을 살아낸 우리 지구는 셀 수 없이 많은 전환점을 겪으며 오늘날의 지구가 되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인류 활동의 영향이 없더라도 자연적으로 농도가 증가하거나 감소한다. 이산화탄소 실측 자료는 이미 인류 활동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받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이산화탄소가 자연적으로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기 어렵다. 


하지만 과거 기후 자료를 활용하면 자연적으로 이산화탄소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산업혁명 이후로 과학기술이 폭발적으로 발전했지만 시간을 되돌려 갈 수는 없다. 다만 46억년 동안 지구가 남긴 화석, 해양 퇴적물, 빙하, 퇴적암 같은 흔적을 활용하면 46억년의 역사를 복원할 수 있다. 간접적으로 추정하는 과거 기후나 환경 데이터를 프록시(proxy)라 한다. 눈은 대기 중을 떠도는 에어로졸과 함께 땅에 쌓여 단단해지기를 거듭하면 빙하가 된다. 빙하 최상단 눈송이들 사이로 대기가 자유롭게 대류하지만 시간이 지나 더 많은 눈이 쌓이면 눈송이 간격이 좁아지고 대기가 확산의 원리에 따라 이동한다. 


빙하는 과거 대기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냉동 타임캡슐이다. 빙하를 이용해 측정한 이산화탄소 데이터는 과거 대기를 직접 측정한 데이터이므로 프록시가 아니다. 극 지역 빙하를 활용하면 연속적으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과거 기후에 대한 해석에는 명료한 단 하나의 원인보다 다양한 가설이 난무한다. 한국에는 빙하가 없다. 따라서 빙하 코어도 없다. 빙상(땅 위를 넓게 덮고 있는 얼음 덩어리)이 대륙이나 높은 산에 형성되면 중력에 의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얼음이 강처럼 흘러내린다. 이를 빙하라고 한다. 빙하는 얼음의 강이라는 뜻이다. 


남극에서는 빙상이 바다 위까지 흘러내려 얼어 있다. 이를 빙붕(氷棚)이라 한다. 강처럼 흐른다고 하지만 그 모습을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쉽지 않다. 빙상에서 떨어져 나와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빙하 조각을 빙산(iceberg)이라 한다. 이렇게 움직이고 깨지면서 빙하의 두께는 무한정 늘지 않고 특정 기후 조건 하에 일정하게 유지된다. 눈이 녹지 않고 쌓일 수 있는 최소의 높이를 설선(雪線; snow line)이라 한다. 남극 대륙과 그린란드는 설선의 높이가 0미터로 눈이 육지에서 쌓이면 거대한 대륙빙하를 형성한다. 그래서 남극과 그린란드를 옆에서 보면 프라이팬 뚜껑으로 덮어둔 것처럼 육지 전체가 오목하게 빙하로 덮여 있다.


우리나라에는 빙하가 없지만 오히려 날씨가 뜨거운 적도에는 빙하가 있다. 고도가 높은 산이 있기 때문이다. 고도가 100미터 높아질 때마다 0.6도씨 정도 기온이 낮아진다. 온대 지역은 해발 고도 1000~5000미터에서 눈이 쌓인다. 노출된 빙하는 푸른빛이 돈다고 해서 청빙(靑氷; blue ice)이라 한다. 과학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최남단은 남극 대륙의 장보고 과학기지다. 극 지방은 위도 66.5도 이상 지역이다. 자전축이 기울어진 채 공전하면 극 지역은 여름에는 해가 지지 않는 백야(白夜) 현상이, 겨울에는 극야(極夜) 현상이 나타난다. 해가 지지 않거나 뜨지 않는 곳이 연중 하루라도 있다면 그것은 극지다. 


구체적으로는 북극은 7월 평균 기온이 섭씨 10도 이하인 지역을 말한다. 실질적인 남극은 남극 수렴대 이남을 말한다. 남극 수렴대는 연중 평균 온도가 영하 4.0~영하 1.8도인 남극의 차가운 해수와 연중 평균온도가 4~10도의 북극의 따뜻한 물이 만나는 경계를 말한다. 남극은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하다. 남극에는 비나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다. 사하라 사막보다 건조하다. 남극은 사막이다. 눈바람이 휘몰아치는 남극을 하얀 사막이라 한다. 남극의 빙상이 다 녹는다면 해수면이 60미터나 상승한다. 이 빙상이 빛을 거의 다 반사하기에 남극은 세상에서 가장 춥다. 


극지에서 빙하를 얻으려면 세상에서 가장 극한 환경으로 들어가야 한다. 고도가 높고 세상에서 가장 춥고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그린란드와 남극에 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시간을 되돌려 확인할 수 없는 과거 기후와 환경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빙하를 얻기 위해서 빙하학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극지역으로 들어간다. 대기중으로 이산화탄소가 방출되면 사라지는 데 수백~수천년이 걸린다.(61 페이지) 미국의 지질학자 마샤 비요르네루드는 물 한 방울이 대기에 머무는 기간인 9일은 이해 가능하지만 이산화탄소가 사라지는 데 걸리는 기간인 수백년은 우리의 이해를 넘어선다고 말한다. 


24 시간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자연적으로 등락(騰落)한다. 식물의 광합성 때문이다. 광합성이 활발한 낮에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가장 낮고, 광합성이 줄고 호흡이 늘어나는 저녁에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가장 높아진다. 계절별로도 차이가 난다. 여름에는 광합성이 활발해 이산화탄소 농도가 낮아지고, 겨울에는 광합성이 줄어(이산화탄소 소비가 줄어) 농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북반구는 남반구와 계절이 반대여서 이산화탄소 농도 패턴도 반대다. 지구상에서 이산화탄소가 존재할 수 있는 곳은 대기권, 해양권, 육상생물권, 암석권이다. 이를 이산화탄소 저장소라 한다. 가장 큰 이산화탄소 저장소는 암석권이다. 반응 속도가 매우 느려 기후 연구에서는 고려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해양권을 든다. 이산화탄소가 다양한 저장소를 오가는 현상을 탄소 순환이라 한다. 이산화탄소 농도는 대기와 해양, 육상생물권 사이의 반응 결과다. 1000년 이상의 규모로 보면 탄소를 가장 많이 저장하는 곳은 심해다. 그르노블 연구소의 클로드 로리우스 박사 이야기가 흥미롭다. 시추한 빙하에서 떼어낸 얼음 조각을 위스키에 넣자 샴페인을 따른 것 같이 얼음 조각에서 방울이 톡톡 터져 나왔다. 이를 보고 그는 과거의 기체가 빙하 속에 담겨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극 지역 빙하에는 불순물이 가득 박힌 것처럼 작은 공기 방울이 보인다. 이 방울들을 다 터뜨려 포집한 공기를 빼내고 농도를 측정하면 과거 이산화탄소 농도를 복원할 수 있다. 


빙하는 남극과 그린란드에서 얻을 수 있지만 정확한 이산화탄소 농도 복원을 위해서는 남극 빙하만 사용한다. 그린란드 빙하에는 먼지가 많아 그 안에 있던 탄산칼슘과 빙하의 산(酸)이 반응해 인공적으로 이산화탄소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10만년 단위로 움직이는 것은 태양 복사 에너지와 관련이 있다. 기후는 지구의 세차운동, 지구 자전축 기울기 변화, 이심률의 변화 같은 천문학적인 요인에 의해 주기적으로 변동했다. 이산화탄소는 수온이 낮으면 바다에 잘 녹는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전 세계 해양은 표층을 흐르는 표층수와 해양 깊은 곳을 흐르는 심층수가 컨베이어 벨트처럼 연결되어 돌아다닌다.(86 페이지) 


이 해양 순환은 밀도의 영향을 받는다. 밀도는 온도와 염분의 영향을 받는다. 온도가 낮고 염분이 높으면 밀도가 높고, 온도가 높고 염분이 낮으면 밀도가 낮다. 밀도가 높은 물은 바다 깊숙이 천천히 순환하고, 밀도가 낮은 물은 표층에서 순환한다. 지구가 따뜻했다가 갑자기 빙하기가 찾아온 적이 있다. 겨울에도 상대적으로 따뜻한 시기와 추운 시기가 있듯 빙하기에도 상대적으로 따뜻한 시기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해류 컨베이어 벨트가 중요하다. 적도의 따뜻한 물을 북쪽으로, 북극의 찬물을 남쪽으로 보내는 대서양 자오선 역전 순환류(AMOC; atlantic meridional overturning circulation)를 말한다. 이 벨트가 멈추는 것을 AMOC 붕괴라 한다. 


그린란드와 남극은 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한쪽 온도가 하강하면 반대쪽 온도는 상승한다. 이를 양극성 시소 반응(bipolar seasaw) 반응이라 한다. 지구가 티핑 포인트를 넘어 지금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되면 기후 패턴도 달라지고 결국 우리는 지구에 대해 다시 공부해야 한다. 그린란드의 빙하기 도래는 갑작스럽다고 표현했지만 수백년에 걸쳐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지금 빙하 시대를 살고 있다. 46억 년 역사를 통해 보면 지구는 다섯 번째 빙하 시대를 보내고 있다. 지구 입장에서 지구 온도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일방적으로 지구가 뜨거워진다는 말은 정확한 말이 아니다. 


수백 수천년 이상 눈이 연속적으로 쌓여 형성된 얼음은 빙하 자체의 압력, 지구 중력, 지형 등의 영향으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한다. 그린란드 빙하는 일반적으로 내륙에서 해안을 따라 흐르다 가장자리에서 녹고 깨져 없어진다. 그래서 빙하가 무한히 자라지는 않고 기후 조건만 일정하다면 일정한 수준으로 두께를 유지한다.


지구에 존재하는 물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지구 내에서 물이 순환하는 과정을 물순환이라 한다. 태양으로 데워진 바닷물의 일부가 수증기로 증발한다. 수증기가 계속 상승하여 고도가 높은 곳에 이르면 낮은 온도로 인해 구름으로 응축된다. 구름은 지구를 떠돌다 비나 눈의 형태로 다시 땅으로 떨어진다. 구름 중 일부는 극 지역이나 고산 지역까지 넘어가 눈의 형태로 땅으로 떨어져 그곳에서 수천 년 동안 퇴적되어 빙하를 형성한다. 이렇듯 전 지구적으로 물은 순환한다. 저위도에서 증발한 수증기는 극 지역까지 이동한다. 


이동하는 동안 수증기는 구름이 되었다가 비나 눈으로 내린다. 무거운 원소가 가벼운 원소보다 더 쉽게 강수로 내리고 가벼운 원소는 극 지역까지 간 뒤 눈으로 내려 빙하를 만든다. 빙하에 남아 있는 무거운 원소의 비율은 수증기가 거쳐온 지점들의 온도를 반영한다. 빙하의 수소와 산소 동위원소비를 분석하면 당시 눈이 내린 지역의 온도 변화를 추정할 수 있다. 지구의 평균 기온이 낮았던 시기에 내린 눈에는 상대적으로 무거운 수소와 산소 동위원소의 양이 적고, 평균 기온이 높았던 시기에 내린 눈이나 비에는 상대적으로 무거운 수소와 산소 동위원소의 양이 많다. 


단스고르-외슈거 순환이란 빙하기에도 단기간의 온난화 경향이 있음을 뜻한다. 긴 시간 스케일에서 안정적으로 보이는 간빙기도 자세히 1000년 단위로 관찰하면 기후 변동을 관찰할 수 있다. 9~13세기에 해당하는 중세 온난기, 14~18세기 사이의 400년에 걸쳐 북반구 평균 기온이 섭씨 0.6도 정도 하강한 소빙기가 대표적이다. 지구는 현재 비정상적으로 긴 간빙기를 겪고 있다. 우리는 11,700년전에 시작된 홀로세 간빙기(구석기에서 신석기로 이동한 시기)를 살고 있다. 간빙기는 1만년 정도 지속되다가 끝나기에 이제는 빙하기가 시작되어야 하지만 간빙기가 계속되고 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전에 빙하기가 시작되었어야 하는데 홀로세 후기에 인류 활동으로 인한 온실 기체 농도 상승과 지구의 낮은 궤도 이심률 때문에 빙하기가 시작되지 않는 듯 하다. 온도가 상승하면 물이 더 강하게 증발한다. 그러면 가뭄이 발생하고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산불 빈도가 증가한다. 증발한 수증기가 어느 지역에서는 강수로 내리니 특정 지역에 홍수가 발생한다. 지구는 지금보다 3도 이상 온도가 올라도 버텨낼 수 있다. 문제는 인류다. 


저자는 대학원 공부에 대해 이야기한다. 논문을 쓰기 위해 다른 논문을 읽고 조각난 지식을 모아 퍼즐을 맞추듯 지식을 늘려가기에 자신이 작성한 논문의 내용은 깊이 알지만 연구 주제가 속한 상위 분야인 고기후나 빙하학의 내용을 전부 알지는 못한다고 말한다. 연구를 할수록 모르는 지식이 너무 많으니 자신의 연구와 관련된 내용을 선택적으로 소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연과학에 절대적인 사실은 거의 없다. 무한한 가설이 난무할 뿐”(195 페이지)이라 말한다. 


저자는 "뚜렷한 목적 없이 논문 편 수만 채우려고 참여한 연구는 잔인하리만큼 힘들었다. 연구라는 게 매 순간 실패와 고뇌를 마주하는 작업인데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는 주제를 당해낼 재간은 없었다.“(199 페이지)고 말한다. ‘행복하지 않습니다‘란 챕터를 보자. 이 챕터에 이런 말이 있다. ”R&D 예산 삭감은 내게 일종의 사형선고 같았다. 내 인생 전체가 부정당한 느낌이었다. 나는 왜 이토록 삶에 열정적이었을까. 원하는 일을 해보겠다고 회사를 그만두고 주도적으로 살아온 내가 무척 미웠다.“(249 페이지) 


저자는 "논문을 마무리해야 함에도 완벽한 연구 결과를 세상에 보이고 싶다는 욕심에 한없이 붙들고 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시간은 유한하고 세상엔 중요한 연구가 많으니 어느 순간이 되면 끝내고 다음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걸 박사과정을 마치며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책을 읽은 당신이 책을 덮고 대부분은 잊더라도 빙하학이 빙하로 미래 기후 예측을 하기 위해 과거 기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점을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말한다. 저자는 지구과학에서는 수학의 1+1은 2처럼 100퍼센트 사실 또는 거짓은 좀처럼 볼 수 없다고 말한다. 과학적 사실 대부분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다양한 가설일 뿐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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