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전통과 과학 템플턴 동아시아 과학사상 총서 1
김영식 지음 / 예문서원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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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朱熹)는 기(氣)의 구체적 속성에 대해 분명히 이야기하지 않았다. 기는 물리적이거나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을 구성하고 그 기초가 된다. 기에 도덕적 속성이 부여되었기 때문에 주희가 사람들의 도덕 수준의 차이를 그들의 기의 차이로 돌린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희에게 물질과 생명, 물질과 정신 사이의 불연속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주희가 물리적, 생리적, 정신적 현상들 사이의 차이를 인식했다 해도 그것은 종류의 차이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였을뿐이다. 주희는 생명과 정신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기를 초월한 비물질적인 것을 상정(想定)하지 않았다. 


주희에게 기는 세계 모든 사물의 기본적 재료이며 모든 현상의 기초였다. 주희는 세계의 어떤 현상도 기의 범위 바깥에 남겨 두지 않았다. 주희는 마음은 몸을 주관하고 주재한다고 말했다. 사람의 마음이 활동을 주관할 수 있기 위해서는 진실되어야 한다. 주희는 사람은 단지 하나의 마음만을 지니고 있는데 어찌 그것을 나누어 한번에 여러 가지를 할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주희는 심(心)은 허령(虛靈; 잡된 생각이 없어 신령함)하지만 사물이나 욕심에 의해 막히면 어두워지고 완전히 알 수 없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심은 사람의 어둡고 탁한 기운에 의해서도 막힌다. 주희는 사람의 심의 양(量)은 크지만 사욕 때문에 줄어든다고 말했다. 마음을 빈 상태로 안정되게 유지하고 막힘이 없도록 하는 것은 인간의 지적, 도덕적 노력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주희에 의하면 성(性)은 마음의 도리이고 정(情)은 마음이 드러나 보이는 것이며 마음 자체는 신체를 주재한다. 도심(道心)은 의리로부터 나오고 인심은 몸으로부터 나온다. 주희는 마음이 기의 영역을 초월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주희는 마음은 기의 정상(精爽: 신령스러운 기운)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희에게 물질과 정신의 엄격한 구별은 없었다. 주희는 단일한 기가 물질, 생명, 정신의 현상과 과정들을 일으킨다고 보았다. 주희는 기는 하나여서 마음을 주관하는 것은 지기(志氣)이고 형체를 주관하는 것은 혈기(血氣)라고 보았다. 기는 단지 하나의 기이다. 의리로부터 나온 것은 호연지기이고 피와 육신으로부터 나온 것은 혈기다. 주희는 화를 잘 내는 자신의 성향은 자신의 기의 질(質)이 병들어서라고 설명했다. 물론 기가 마음에 영향을 주듯 마음도 기에 영향을 준다. 이황은 형(形)이 있는 기는 존재하지 않는 때가 있고 형이 없는 리는 항상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황은 주리(主理)적 세계관을 가졌다. 이황과 기대승 사이의 논쟁은 주희의 모호한 이기론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주희는 리(理)가 무엇인지 명확히 말해주지 않았다. 주희는 리의 서로 다른 측면을 소이연(所以然)과 소당연(所當然)으로 표현했다. 소이연은 이유, 소당연은 규범이라는 개념과 비슷하다. 주희에 의하면 리는 존재하기 위해 기를 필요로 한다. 주희에게 리와 기가 모두 중요했다. 주희에게 리와 기는 실재세계의 두 층을 가리킨다. 


신유학자들의 학문과 수신의 노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은 격물(格物), 치지(致知)였다. 격물과 치지의 목적은 개개의 사물과 사건에 내재한 수많은 리에 도달한 뒤 그것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나의 보편적인 리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이 유추(類推)였다. 이는 하나의 사물이나 현상에 관한 지식을 같은 류(類)에 속하는 다른 사물이나 현상에 관한 지식으로 확장시키는(推) 것이다. 주희의 격물 작업의 목적은 리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이일분수(理一分殊)란 리는 하나이지만 그것의 발현은 여러 가지이다란 뜻이다. 이는 정이의 구절이다. 


주희에게 인욕으로부터 자유로운 마음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인간의 자기수양에서 추구해야 하는 궁극의 목표였다. 이 목표를 성취했을 때 인간의 마음은 천리를 완전히 체현하게 된다. 인간은 격물의 방법을 통해 천리에 도달할 수 있다.(格에는 헤아리다의 의미가 있다.) 격물이란 사물의 탐구를 의미한다. 주희는 인간이 하나의 사물과 사건의 리에 도달한 상태를 일컬어 리를 안다고 하지 않고 리를 본다고 말했음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격물의 결과 얻게 되는 것은 리에 대한 지식이기보다 리를 볼 수 있는 통찰력이라는 의미다. 


주희의 진짜 목표는 개별 사물들과 사건들의 수많은 리들을 하나하나 전부 이해하는 것이 아니었다. 주희가 격물을 하는 데 있어 설정한 궁극의 목표는 하나의 보편적 리(인간 마음의 본연의 상태)에 내재된 도덕적 덕목들을 보장해 줄 천리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개별 리들의 이해로부터 보편적 리의 이해로 어떻게 나아가는가가 문제였다. 정이는 수많은 항목을 축적하고 수많은 사안에 익숙해진 후 홀연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관통할 것이라는 지극히 모호한 입장을 내놓았다. 주희는 정이가 한 가지 사물을 탐구하기만 하면 곧바로 관통할 수 있다고도 말하지 않았고 천하 만물의 리를 남김없이 규명해야만 비로소 관통할 수 있다고도 말하지 않았음에 주목했다. 


주희는 정이를 따라 오랜 기간 많은 사물을 보고 경험하고 공부한 후에야 관통이 저절로 그리고 점진적으로 오게 된다고 강조했다. 주희는 한 가지 일에 접해 곧장 그 일에 대해 그 리를 끝까지 탐구하고 얼마 뒤에 그렇게 탐구한 것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관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희는 되도록 많은 사물들을 탐구할 것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주희는 이렇게 말했다. "비록 만 가지 리가 하나의 리일뿐이지만 학자는 또한 만 가지 리 속에 있는 수천 수백 가지 온갖 복잡한 실마리들에 대해 이해해 나가야 한다. 만 가지 리가 사방으로부터 한데 모여들게 되면 저절로 그것들이 하나의 리임을 볼 수 있다. 


그 만 가지 리에 대해 계속 이해해 나가지 않고 겨우 어느 한 가지만을 이해하는 데 전념한다면 그것은 단지 공허한 상상일뿐이다." 모든 사물과 현상을 탐구하고 세상의 리를 모두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가지를 검토하고 연이어 다른 것을 검토하는 과정을 단순히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세상 모든 사물과 현상을 다 다룰 수 없다. 따라서 자신이 이미 획득한 것을 확장시켜야 한다. 주희는 지식을 확장하고 충만케 한다(擴而充)는 맹자의 구절을 바로 그러한 의미로 해석했다. 관건은 과정 어딘가에서 개별 사물과 현상의 리를 이해하는 것과 관통을 가져다 줄 하나의 리를 이해하는 것 사이의 간극을 뛰어넘는 것이다. 


주희는 류(類)와 추(推) 가운데서 추를 더 중요시했다. 유추의 방법이란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 알지 못하는 것으로 확장시켜 가는 것을 의미한다. 주희에게 격물이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희는 이미 가지고 있고 확장의 기초를 제공할 수 있는 지식을 시작(단; 端), 단서(端緖)라고 지칭했다. 그리고 인(因; ~에 바탕해서), 거(據; 근거해서), 종(從; ~으로부터) 등의 표현을 사용해 그 역할을 나타냈다. 주희는 치지(致知)의 치를 추(推)의 의미로 이해했다. 확장한다는 것은 극한까지 추론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사물을 철저하게 탐구해서 그 리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사물을 항상 철두철미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주희는 한 가지 일에 대해 철저히 탐구할 수 없으면 또 다른 일을 탐구해 보라는 저이의 말을 인정한다. 물론 주희는 지극히 어려운 일을 다루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그런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갑자기, 저절로 일어나는 일이 사실 지극히 느리고 점진적인 과정일 수밖에 없다. 주희는 학문에는 오히려 점진적인 나아감만이 있을뿐 서두르고 재촉해서 될 수 있는 리는 없다고 말했다. 


주희는 독서에는 반드시 순서가 있고 글을 읽는 데는 서두르고 다그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나씩 하나씩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머지않아 이해하는 것이 많아질 것이며 점차로 관통할 수 있을 것이다. 두 가지에 대한 이해가 모여서 하나가 되고 머지않아 또 일고여덟 가지에 대한 이해가 모여서 하나가 된다. 그러면 곧 일제히 꿰뚫어 통하게 될 것이다. 주희에 의하면 수신(修身)에서 제가(齊家), 치국(治國)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유추에 의한 것이다. 주희에게 과학이라는 독자적 범주가 존재하지 않았다. 주희에게는 자연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리해주는 경계가 없었다. 


주희의 세계에서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자연세계와 도덕의 지배를 받는 인간세계 사이의 마찰 같은 것은 없었다. 주희의 세계에서 천지라 불리는 자연세계 자체에 도덕적 속성들이 주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자연세계에 도덕적 질서가 존재함으로써 인간의 도덕성에 근거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 고대 이래 널리 퍼진 생각이었다. 주희의 세계에서는 아무 것도 제외되지 않았다. 자연현상들 자체가 주희의 진짜 관심의 대상은 아니었다."나는 일찍이 높은 산 위에서 소라와 방합 조개껍질들을 본 적이 있다. 그 중 어떤 것들은 바위 속에 있었다. 


이 바위들은 바로 옛날의 흙이고 소리와 방합은 물속의 것들이다. 아래에 있던 것이 변해서 높은 곳에 있게 되었고 부드러운 것이 변해서 단단하게 된 것이다." 서양 과학자의 말이 아니라 남송의 유학자 주희(朱熹)의 말이다. 조셉 니덤은 위의 말을 주희가 화석의 의미에 대해 이해하고 쓴 글이라 평했다. 김영식 교수는 주희의 저 말은 회남자(淮南子)의 우주생성론과 음양순환의 이론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야기한 것이라 말한다. 어떤 현상이 일단 기의 어떤 성질과 움직임들로 인한 것이라고 받아들여지면 그 현상은 충분히 설명된 것으로 간주되었고 그 현상에 대한 외적 원인이나 감춰진 메커니즘을 찾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주희를 통해 우리는 어떤 현상이나 사물의 리는 그 현상이나 사물을 총체적으로 가리킬뿐 그것을 설명해주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주희는 형이하에 속하는 것을 당연하고 명백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리하여 자연현상을 그냥 받아들였을뿐 표면적 실재를 넘어서는 더 깊은 탐구로 나아가지 못했다. 유가는 세계의 실재성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이 그 같은 실재성을 부정하는 도가나 불가와 자신들을 구분지어 준다고 생각했다. 주희는 천문역법, 화성학, 지리, 의술 등 자연현상과 관련된 여러 전문지식의 분야들에 깊은 흥미를 보였다. 격물을 통해 얻게 된 것은 사물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통찰이었다. 


격물의 결과 얻어지는 사물의 리에 대한 이해는 그 사물의 리와 사람의 마음의 리 사이의 일종의 공명관계였다. 공명이 일어나려면 마음이 텅 비고 맑고 고요해야 한다. 여러 개별 리들과 하나의 리인 천리의 연결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주희는 천지라는 중요한 개념과 관련이 있는 풍수, 지리 등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예(禮)의 일부인 음악도 중시했다. 주희는 의례, 음악, 제도, 천문, 지리, 병법, 행정, 법률 같은 것들도 모두 세상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니 그것들이 없이 지내는 것은 불가능한 고로 그것들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주희는 기는 세상의 모든 사물과 현상을 구성하고 일으킨다고 보았다. 기는 생명의 근원이자 사람의 마음을 구성하는 요소다. 주희에게 마음이란 단지 기이며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의 정상(精爽)한 부분, 영(靈)스러운 부분이다. 기는 정신적 속성들도 지니고 있으며 마음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 마음과 기의 상호작용은 자신의 마음과 기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과 외부세계의 기, 자신의 기와 다른 사람의 기 사이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과학적, 기술적인 주제들을 포함시킴으로써 주희는 유가의 학문을 더 폭넓고 과학적으로 만들었다. 물론 이후의 유가 학문체계에서 이런 넓은 범위가 그대로 지속되지는 않았다. 후학들의 관심이 좁혀진 것이다. 


주희는 귀신과 같이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입장과 반대 방향으로 갔다. 정약용은 주희와 다른 점을 많이 보였다. 상관론적 사고에 대한 비판, 귀신에 대한 해석 등에서 현저하게 다르거나 상반된 입장을 보였지만 술수와 미신에 대한 태도는 크게 보아 주희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주희는 아무리 이상하게 보이는 현상도 기 개념으로 설명했다. 주희는 주역 점도 그의 체계 내에 받아들였다. 주희는 주역이란 원래 점복에 사용하기 위해 저술된 것으로 생각했다. 주희는 주역의 의리(義理)에만 집중하고 점복적 측면을 무시한 당시의 학자들을 비판했다. 


정약용이 오행 이론을 거부한 것은 근본적으로는 상관 사고에 대한 거부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약용은 여러 가지 사물들이나 관념들을 오행과 연관짓는 임의성을 비판했다. 가령 정약용은 수(水)와 적시고 아래로 향함, 목(木)과 굽고 곧음, 금(金)과 따르고 변화시킴을 대응하는 대신 수는 습하고 차가움, 목은 부드럽고 올라감, 금은 단단하고 내려감의 속성들과 연관짓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음양이론에 대해서도 정약용은 여러 가지 것들을 음양이라는 두 가지에 연관짓는 일이 지니는 임의성을 비판했다. 현대사회에서 전문 과학기술 지식은 일반 지식인들의 관심과 이해로부터 분명하게, 그리고 때로는 아주 심하게 분리되어 있다.


전통시대 중국에서, 그리고 이러한 분리가 일어나기 전의 유럽에서 일반 지식인들이 과학이나 자연세계에 대한 지식을 그들의 관심 범위에서 배제할 이유는 없었다. 전문가가 되는 것을 경계하는 경전의 근거들의 하나로 주역 계사전에 수록된 형이상은 도(道)이고 형이하는 기(器)라는 구절을 들 수 있다. 군자불기(君子不器)론도 빼놓을 수 없다. 진정한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도, 리, 성과 같은 고차원의 개념들을 추구해야 하며 단순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 구체적, 실용적, 기술적인 문제와 지식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군자는 단순한 도구적 기능만을 수행하는 좁은 범주에 자신을 한정시켜서는 안 되며 폭넓은 학문과 수양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작은 도 즉 소도(小道)는 살펴볼 만하지만 너무 멀리까지 추구하면 수렁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가르침도 그렇다. 전통시대 중국 역사에서는 전문분야들에 대한 학자들의 관심을 고무하는 몇 가지 요소들이 있었다. 도(道)와 기(器)를 분리하여 도를 기보다 우위에 놓는 경향과 양자를 불가분의 관계로 간주하는 경향이 존재했다. 후자의 입장은 도가 기 안에 존재하며 기 없이는 도가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으로 나타났다. 군자불기라는 말도 단순하거나 일방적으로 해석되지 않았다. 폭넓은 학문과 수양을 목표로 삼을 것을 강조했지만 그런 폭넓은 학문과 수양에는 자연세계에 대한 공부가 포함되었고 기술에 관한 지식 - 실행까지는 아니더라도 - 도 제외되지 않았다. 


군자불기라는 말의 실제 효과는 유학자들에게 좁은 주제 - 그것이 과학이건 기술이건 다른 전문분야이건 - 에 갇힌 단순한 전문가가 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었을뿐 학자들이 당연히 추구해야 할 폭넓은 관심과 학문으로부터 과학과 기술의 주제들을 배제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소도라는 말에는 당연히 도라는 말이 들어 있다. 주희는 만물을 공부하고 이해할 것을 역설하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때 논어의 박학(博學)이란 개념을 활용했다. 중국 전통사회에서 유학자와 전문 과학기술지식 사이의 수렴은 완전하지 않았다. 유학자들은 보통 과학기술의 전문 주제들에서 지적인 도전이나 자극을 느끼지 않아 그 같은 주제들의 공부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전문 과학기술 주제들에 대한 유학자들의 지식수준은 대개 그리 높지 않았으며 당대 최고 수준에 도달한 경우는 드물었다. 주희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비록 그가 역러 전문분야들을 공부하고 여러 분야들에서 상당한 지식을 지니기는 했지만 그의 이해는 당대 전문가들의 수준에 미치지는 못했다. 전통 중국에 우리가 과학적이라거나 기술적이라고 부를 만한 여러 전문분야들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이들은 서로 분리된 독립적 분야들로 개별적으로 존재했고 과학적인 것과 기술적인 것 사이의 뚜렷한 구분도 없었다. 심지어 전통시대 중국에서 과학이나 기술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 존재했었는지도 의심스럽다고 할 수 있다. 전통 중국에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명확한 구분이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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