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시대 - 제5회 창비청소년도서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고 17
강창훈 지음 / 창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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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철과 함께한 시간은 약 4천년이다. 인간은 강함을 상징하는 철을 이용한 욕망 실현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지구를 구성하는 물질의 19%에 달하는 철은 산소(50%)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중요 물질이다. 지구 전체 질량 중 34%에 이르는 철은 중량면에서 단연 으뜸을 차지한다. 철은 별의 온도가 40~60억도일 때 만들어진다. 빅뱅 후 10억년 후의 일이다. 철 이후 27번 원소인 코발트에서부터 92번 원소인 우라늄까지의 66종의 원소가 만들어졌다. 철까지는 핵융합으로 즉 별이 살아 있을 때 만들어지고 그 이상은 별이 죽으면서 만들어진다. 철의 원자핵에 있는 일부 중성자가 붕괴해 양성자로 변함에 따라 구리, 은, 금 등의 새로운 원소가 만들어졌다.


철을 비롯한 원소들은 우주 곳곳으로 튕겨져 나갔다. 원소들은 모여 성간 매질이라는 이름의 기체 구름을 형성했다. 성간 매질은 조건이 맞는 곳에 이르러 서로 뭉쳐 수많은 별을 만들었다. 그렇게 생성된 별들 중 주위에 행성을 거느린 별도 있었다. 태양도 그 중 하나다. 철은 인간이 생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원소다. 지구는 태양을 이루는 물질들로 이루어졌다. 태양에서 떨어져 나온 물질들은 서로 부딪히고 뭉치면서 점점 커졌고 결국 현재와 같은 크기의 지구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지구 온도가 올라갔다. 작은 천체들과 충돌했기 때문이고 크기가 커지면서 내부 압력이 높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온도가 올라가자 지구 내부가 녹아내렸다. 철과 같은 무거운 금속 물질들이 중심부로 내려앉아 지구 핵을 이루었다. 지구 외핵은 액체여서 구성 성분 중 무거운 철은 아래로 가라앉고 규소 등 가벼운 물질은 맨틀과의 경계인 위쪽으로 떠오른다. 이런 현상을 대류현상이라 한다. 이로 인해 지구는 자석 같은 상태가 되어 자기장을 발생시킨다. 자기장은 태양풍을 막는 역할을 한다. 태양풍은 대부분 지구 자기장에 막혀 흩어지지만 일부는 지구 자기장에 이끌려 대기권으로 진입해 빛을 낸다. 이를 오로라라 한다. 


철에게는 산소라는 친구가 있다. 자연 상태에서 철은 늘 산소와 붙어 지낸다. 산소와 결합한 철을 산화철이라 한다. 산화철의 색은 붉다. 산화철은 녹슨 철이다. 인간은 산화철에 열을 가해 산소를 떼어냄으로써 유용한 철을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철은 다시 산화된다. 철과 산소 사이에는 남조류(시아노박테리아)라는 중매(仲媒)가 있었다. 남조류는 바닷물을 빨아들여 수소를 먹고 산소를 뱉어내는 최초의 광합성을 했다. 이 결과 지구에 산소가 엄청나게 만들어졌다. 당시 바다에는 철이 무수히 떠돌았다. 남조류가 만든 산소가 철을 산화시켰다. 산화철은 물과 분리되어 바다 아래로 가라앉았다. 


철을 산화시키고 남은 산소는 오존층을 만들었다. 생명체가 더 이상 바다에 갇혀 살 필요가 없게 되면서 육상 생물이 출현했다. 원래 육상에는 태양에서 오는 자외선을 막아주는 오존이 없다가 위의 작용을 거쳐 육상 생물이 출현한 것이다. 철의 산화가 끝난 것은 18억년전이다. 인체에는 평균 3그램 정도의 철이 있다. 이 가운데 60%가 혈액에 존재한다. 혈액이 붉은 것은 철 때문이다. 혈액의 주요 구성 성분인 적혈구 속에는 헤모글로빈이 있다. 헤모글로빈의 철 원자 4개가 산소와 결합하여 몸 구석구석으로 산소를 나른다. 


약 6천년전인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불로 흙을 구워 토기를 만들다가 발견한 것이 구리다. 구리는 약 1,084도에 녹는다. 가마의 온도가 1,100도 가까이에 이르자 구리가 녹아 토기 표면에서 흘러나왔고 온도가 내려가자 구리끼리 뭉쳐 고체 덩어리로 굳었다. 좀 더 강한 재료를 바라던 인간 앞에 나타난 것이 청동이다. 청동도 우연의 산물이다. 구리를 제련하는 과정에서 어쩌다가 주석이 조금 섞인 합금 즉 청동이 만들어졌다. 청동은 철보다 약하지만 쉽게 산화하지 않는다. 철은 토기에서 청동기까지 기나긴 기술 축적 과정이 있었기에 인간과 만날 수 있었다. 


철기 시대 이전에도 인간은 철을 알고 있었다. 바로 운철(隕鐵)을 통해서다. 운철은 운석 중 철광석이 많이 포함된 것이다.(우주를 떠도는 작은 암석들 중 지구 인력에 끌려 대기권으로 떨어지는 것을 유성이라 한다. 유성은 대부분 불에 타 없어지지만 땅까지 도달하는 것이 있다. 이를 운석이라 하고 운석 중 철광석이 많이 포함된 것을 운철이라 한다.) 운철은 돌보다 물러 변형이 잘 되지만 두드릴수록 단단해졌다. 우주에서 온 운철의 성분은 지구의 지각에 존재하는 철과 성분이 다르다. 운철의 철은 산화철이 아니다. 대기권을 통과할 때 높은 마찰열을 받아 산소가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운철은 힘들게 달구지 않고 두드리기만 해도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 수 있다. 운철이 인류에게 곧바로 철기 시대를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원한다고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토기를 굽다가 구리를 발견했듯 청동기를 만들다가 우연히 철을 만났다. 산불로 인해 철을 발견했다는 가설도 있다. 히타이트가 서아시아에서 강자가 된 것은 메소포타미아 민족이 잘 모르는 철 생산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히타이트는 물론 철기를 처음으로 생산한 민족이 아니다. 철기 시대가 시작된 것은 기원전 1000~500년경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철기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히타이트가 몰락하고부터다. 


이집트는 철을 제련하는 데 필요한 자원이 부족했다. 산화철에 화학적 변화를 일으켜 철을 생산하려면 불의 온도를 최대한 높여야 한다. 그러려면 땔감이 많아야 하는데 이집트는 목재가 풍부하지 않았다. 철에 대한 욕망이 크지 않은 점도 작용했다. 이집트는 토양 특성상 철제 농기구가 없어도 농사를 짓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중국에서 철기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춘추시대다. 한반도에서 철, 하면 생각나는 나라가 가야다. 


철을 제련하는 것은 재료의 성질을 바꾸는 일이다. 산화철을 제련하는 데 필요한 높은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충분한 땔감이다. 인간은 처음에 나무를 썼고 후에는 석탄을 사용했다. 철 생산이 늘어날수록 숯 사용량도 늘어났다. 이 때문에 곳곳에서 삼림이 사라졌다. 철 생산은 대규모 삼림 벌채를 초래했다. 삼림 감소는 동식물의 다양성 상실, 토양 침식, 기후 변화 등 다른 환경 문제를 야기했다. 인간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더 많은 곡식을 얻기 위해 철을 깨웠다. 그리고 철을 이용해 권력을 차지하고 나라를 세우고 제국을 건설했다. 


철기 시대가 시작된 이래 인간은 계속 철의 혁신을 꿈꾸었다. 철 덩어리를 불로 달구고 망치로 때리기를 반복하면 산화철이나 불순물이 많이 제거되어 그럭저럭 순수한 철에 가까운 덩어리를 얻을 수 있다. 이를 연철(軟鐵)이라 한다. 철기 시대가 되었다고 철기가 곧바로 다른 도구를 압도한 것은 아니었다. 옛사람들은 운철뿐 아니라 철광석에도 신성한 의미를 부여했다. 운철은 하늘의 신이 준 선물, 철광석은 대지의 신이 준 선물이라 생각한 것이다. 


부국 및 강병을 실현시켜주는 가장 좋은 수단은 철이었다. 풀무 덕에 액체 상태의 철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철을 선철(銑鐵)이라 한다. 선철을 한 번 더 녹여서 거푸집에 부었다. 이것을 주철이라 한다. 선철이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것은 전쟁에서였다. 중국의 철 생산량이 최고조에 이른 것은 송나라 때인 11세기였다. 수력 풀무가 발명되고 천년 가량 지났을 때였다. 송나라 때 철 생산량이 급증한 것은 땔감으로 숯 대신 석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소동파도 석탄에 대한 글을 남겼다. “팽성에는 과거 석탄이 없었다. 1078년 12월에 비로소 사람을 보내 백토진 북쪽에서 석탄을 찾아냈는데 철광석을 녹이고 특별히 날카로운 무기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송나라 사람들은 석탄을 코크스(석탄에서 유황 성분 등을 제거한 순수 덩어리)로 만들어서 땔감으로 사용했다. 코크스는 불을 붙이기 어렵지만 숯보다 발열량이 훨씬 커서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다. 송나라는 철을 주로 군사적 용도로 썼는데 이는 동아시아의 국제 정세와 관련이 있다. 송은 개국 이래 여진, 거란 등에게 시달렸다. 송나라는 제철 기술은 뛰어났지만 철제 무기를 개량하는 역량은 부족했다. 오히려 제철 기술이 거란과 여진으로 새어 나가 두 나라의 군사력 강화를 돕고 말았다. 칭기즈칸은 중국 대륙에서 들여온 철로 무기를 개량하여 몽골 초원을 통일하고 사방으로 공격을 개시했다. 그 첫 번째 희생자는 여진이었다.


인간은 연철과 선철에 만족하지 않고 더 큰 혁신에 목말라했다. 연철은 부드러워 좋고 선철은 단단해서 좋다며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연철은 걸핏하면 휘고 선철은 툭하면 깨진다는 불만을 품었다. 이런 불만 때문에 생긴 것이 강철이다. 엄밀히 따지면 연철과 선철은 모두 철과 탄소의 합금이다. 순수한 철은 심지어 알루미늄보다 무르다. 숯이나 코크스를 이용해 제련하는 과정에서 탄소가 철에 들어가 비로소 단단해지는 것이다. 철에 탄소가 얼마나 포함되느냐에 따라 녹는점, 강도, 연성, 탄성 등 성질이 천차만별로 변화한다. 


탄소 함유량은 철의 종류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연철은 탄소 함유량이 0.01 퍼센트 미만인 철이다. 선철은 탄소 함유량이 3.0~4.5 퍼센트인 철이다. 연철처럼 무르고 선철처럼 단단한 철이 강철이다. 탄소 함유량을 0.02~2.0 퍼센트로 조절하면 강철(鋼鐵)이 된다. 옛사람들이 지금처럼 철과 탄소의 관계를 이해하고 계획적으로 탄소 함유량을 조절한 것은 아니다. 연철, 선철, 강철의 순서로 철을 발전시킨 것은 더더욱 아니다. 철 생산 초기에 세 가지 철이 뒤섞여 있었다. 점차 경험을 축적해 원리를 터득하면서 철의 종류를 체계적으로 파악했다. 


대항해 시대에 망망대해를 항해하던 점선에는 작지만 매우 중요한 철이 있었다. 나침반이 그것이다. 나침반은 철이 없었다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발명품이었다. 나침반은 중국에서 발명되었다. 나침반을 항해에 이용한 것은 송나라 때부터다. 그 전까지만 해도 항해사들은 주로 별과 바람을 읽어 자신의 위치와 방향을 파악했으나 구름이 낀 날은 읽기 자체가 어려웠다.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중국에는 장작처럼 불이 붙는 검은 돌이 있다. 장작보다 화력이 훨씬 강하고 때로는 이튿날이 되어야 불이 꺼진다.”고 썼다. 


사람들이 석탄에서 유황을 제거하는 데 몰두한 시기가 있었다. 송나라는 코크스 제조법을 알아낸 나라다. 철이 더 강해지고 많아지면서 인간은 새로운 욕구를 갖게 되었다. 상품을 빠른 시간에 대량 생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팔고 원료와 노동력을 가지려는 것이었다. 철은 증기기관을 탄생시켰다. 철 생산을 늘리려면 석탄을 더욱 확보해야 했다. 광산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문제는 갱내에 생기는 물이었다. 산업 혁명을 이끈 증기기관은 광산에서 만들어졌다. 산업혁명은 광산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증기기관은 산업용 동력 장치로도 이용되었다. 그 결과 산업혁명이 궤도에 올랐다. 증기기관은 대량 생산 시대를 열었다. 


상품을 운송할 교통수단이 필요했다. 트레비식이라는 기술자가 증기기관을 철도 동력으로 활용하는 데 성공했다. 영국의 산업혁명이 혁명으로 불리는 것은 기계를 이용한 대량생산이 가능해졌을뿐 아니라 상품을 실어나르는 새로운 교통수단 즉 철도와 증기선의 발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철도 역시 광산에서 만들어졌다. 갱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지하수만이 아니었다. 갱도가 길어질수록 채굴한 광물을 밖으로 나르는 일이 어려워졌다. 광산업자들은 갱도에 레일을 깔 생각을 했다. 나무 레일에 이어 철제 레일을 떠올렸다. 증기기관이 그랬듯 철제 레일도 새 욕망을 자극했다. 철제 레일을 갱도 밖에서 사용할 수 없을까? 철제 레일을 이용해 철광석과 석탄을 제철소로 운반할 수 없을까? 이런 욕구를 충족시키려면 기관차가 필요했다. 


증기기관차가 발명되었다. 증기기관을 만든 트레비식이 증기기관차를 개발했다. 증기 기관차가 등장하면서 영국은 철도 시대에 돌입했다. 헨리 베서머가 강철을 대량 생산했다. 선로의 내구성 문제가 해결되었다. 철기 시대가 시작된 이래 인간이 철을 가장 많이 활용한 곳은 전쟁터였다. 휴전선은 철책으로 되어 있다. 철조망의 역사는 가시철사에서 시작된다. 가시철사는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대륙 횡단 철도가 개통되고 수많은 사람이 이주하면서 미국 서부의 드넓은 땅에 목장이 속도로 늘어났다. 농부들은 이웃 목장의 가축 떼로부터 작물을 지켜야 했다. 가시철사가 발명되었다. 


이내 철조망은 전쟁에서도 쓰이게 되었다. 1898년 미국 ? 스페인 전쟁, 1899년 보어 전쟁, 그 이후 1차 세계대전 등에서 요새 방어를 위해 철조망을 사용했다. 철조망은 2차 대전 이후 포로수용소를 만드는 데 아주 효율적인 재료가 되었다. 철은 냉전을 상징하게 되었다. 철은 여러 번 재활용이 가능한 물질이다. 철 스크랩이란 말이 있다. 고철을 재활용하는 것이다. 화석 연료 사용을 줄이는 방법의 하나다. 


인간이 철을 만들며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 중 하나다. 철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어떻게 철을 효율적으로 쓰는가가 관건이다. 철은 지구 온난화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철은 바닷속에 살고 있는 식물성 플랑크톤이 성장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성분 가운데 하나다. 철이 풍부하면 식물성 플랑크톤의 수가 급증해 광합성으로 이산화탄소 농도가 감소하게 된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녹으면서 철이 바다로 유입된다. 이로 인해 식물성 플랑크톤이 증가하면 대기 중 많은 이산화탄소가 흡수되어 지구 온난화가 저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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