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 - 찰스다윈 자서전
찰스 다윈 지음, 이한중 옮김 / 갈라파고스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진화란 한 개체의 성장 과정이 아닌 여러 대에 걸쳐 일어나는 집단 내의 변화를 일컫는 말이다. 구체적으로는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집단 내에서 특정 형질의 비율이 크게 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찰스 다윈 자서전인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2008년 4쇄)는 적당한 표현은 아니다. 원제는 ’The autobiography of Charles Darwin’이다. 내 개인적으로 다윈에 대해 이전보다 큰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후쿠오카 신이치의 ‘생명해류’(2022년 9월 출간)를 읽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의 부제는 ‘진화의 최전선 갈라파고스에서 발견한 생명의 경이‘다.

 

신이치는 단순히 관광객으로서 갈라파고스를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전 어느 가을 멀고 먼 항해 끝에 이 군도에 도달하고 탐험한 비글호의 자취를 따라, 그 경로를 거쳐 섬을 보고 싶었다고 썼다. 다윈 자서전은 손에 넣은 지 10년이 훨씬 넘은 책이다. 이제서야 이 책을 읽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다윈은 선원들을 잘 통제하고 지휘하기 위해 선원들과 식사를 같이 하지 않는 대신 동등한 지위에서 함께 지낼 말 상대를 구한 비글호 함장 로버트 피츠로이로 인해 비글호를 타게 되었다(장수철, 이재성 지음 ’아주 명쾌한 진화론 수업‘ 20 페이지)는 글을 읽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다윈은 신학 및 의학을 공부했는가 하면 오랜 세월 지렁이 연구를 했고 딱정벌레 애호가였고 지질학에도 정통했다. 다윈은 전 생애를 통틀어 외국어 하나도 변변하게 익히지 못했다고 말했다.(26 페이지) 이를 보며 칸트 생각을 하게 된다. 백종현 교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서 ”만약 칸트가 라틴어 외에 그리스어도 하고 프랑스어도 하고 영어도 했어야 한다면 칸트 철학은 생겨나지 않았을지 모른다.“(40 페이지)는 말을 했다.

 

다윈은 대학 입시에 필요한 라틴어 및 고전 공부에 서툴렀다고 한다. 다윈은 (내과) 의사인 아버지처럼 피 흘리는 모습을 못 보았다. 다윈은 강제로라도 해부학을 익히지 못한 것을 큰 실수라 말한다. 다윈에게 그것은 그림을 못 그린다는 사실만큼이나 치유 불가능한 약점이었다.(41 페이지) 다윈은 묘한 말을 한다. 아버지의 결정에 따라 의학 공부를 위해 간 에든버러 대학에서의 지질학 강의가 말할 수 없이 지루해 살아 있는 한 결코 지질학 공부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당시 지질학을 철학적 입장에서 대하려는 준비는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48 페이지)

 

아들이 의사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 아버지는 아들에게 성직자의 길을 가라고 권했다. 다윈은 성경에 나오는 모든 표현의 문자적 의미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앙을 전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55 페이지) 다윈에게 있던 성직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것은 비글호 승선으로 인해서였다. 다윈은 과학의 모든 분야에 박식했던 헨즐로 교수를 존경했다. 다윈에게 큰 영향을 준 두 책은 훔볼트의 ’사적인 이야기‘, 허셜의 ’자연철학 연구 입문’이다.

 

다윈은 헨즐로 교수의 권유로 세지윅을 따라 다니며 지질학을 공부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다윈은 여러 방면의 과학책을 읽었지만 과학이란 것이 사실을 묶어 일반 법칙이나 결론을 끌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점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71 페이지) 다윈은 헨즐로 교수에게서 온 편지를 받게 된다. 피츠로이 선장이 자신과 함께 무료로 비글호 항해를 따날 젊은 자연과학자에게 기꺼이 선장실의 일부를 내어주겠다고 한 소식을 담은 편지였다. 피츠로이는 후에 다윈이 ‘종의 기원’ 같은 불경스러운 책을 냈다며 매우 화를 냈다.(피츠로이는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다윈은 비글호가 가는 곳마다 행한 지질학 탐사로 지질학에 대한 눈을 떴다. 다윈은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를 탐독했다. 다윈에게 이 책을 공부할 것을 권한 사람은 헨즐로다.(118 페이지) 흥미롭게도 헨즐로는 다윈에게 그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견해는 절대 받아들이지 말라는 말을 했다. 다윈은 지질구조를 파악하는 일에 방해가 된다며 사냥 습관마저 버렸다. 관찰과 추론을 하며 얻는 기쁨이 사냥에서 얻는 기쁨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윈은 지질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다윈은 결혼을 함으로써 얻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곰곰이 따져보기도 했다. 이는 칸트를 연상하게 하는 부분이다. 다윈은 기독교를 신의 계시로 믿는 일을 그만두었다. 다윈은 모든 생물종의 모든 개체가 으레 극심한 고통만 겪어왔다면 더 이상 자기 종족을 번식하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고 지금까지 그런 고통만을 느껴왔다거나 대개 그래왔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없다고 결론내렸다.(104 페이지) 다윈은 한편 고통은 그 작용이 완벽하지는 않은 자연선택과 마찬가지로 대개 각 생물종이 다른 종과의 생존투쟁에서 가능하면 이길 수 있는 종이 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말도 했다.

 

다윈에 의하면 고통이 많다는 사실은 모든 유기체가 변이와 자연선택을 거쳐서 발전해왔다는 견해와도 일치한다.(106 페이지) 다윈은 만물의 시초에 대한 신비는 우리로서는 풀 수 없는 문제이기에 자신으로서는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겨두는 것에 만족할뿐이라고 썼다.(109 페이지) 다윈은 자신이 주로 즐거웠고 일생 동안 유일하게 해온 일은 과학 연구 작업이라고 말한다.(143 페이지) 다윈은 갈라파고스 제도의 생물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남미적 특성 특히 제도의 각 섬마다 생물종이 조금씩 다르다는 사실을 종이 서서히 변화해왔다는 전제에서만 설명이 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146 페이지)

 

다윈은 베이컨의 귀납원리에 따라 아무런 이론 없이 방대한 사실들을 수집했다.(146 페이지) 다윈은 맬서스의 ’인구론’을 읽고 유리한 변이는 제대로 보존될 것이고 불리한 변이는 사라질 것이라 결론지었다. 1858년 여름 다윈은 알프레드 월리스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다윈이 월리스의 글을 옳다고 생각한다면 라이엘에게 보내어 읽어보게 해달라는 부탁의 소논문이었다. 다윈은 자신의 이론과 정확하게 같은 내용을 담은 월리스의 소논문을 보고 '종의 기원’출간을 서둘렀다. 1859년 11월‘종의 기원’이 출간되었다.

 

다윈은 자신의 책이 성공한 또 다른 요인은 분량이 적절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윈은 인류의 기원에 대해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고 넘어갔다면 ‘종의 기원‘의 성공에 도움이 되지 않았거나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 말한다.(160 페이지) 다윈은 ’종의 기원‘을, 출간이 늦어져 유리한 결과가 된 사례라 말한다. 다윈은 식물학 책을 여러 권 낸 식물학자이기도 하다. 자신이 죽는 날은 관찰과 실험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날이 될 것이라 말하는 다윈은 자신을 분명하고 간단하게 표현하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어렵다고 말한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낭비했으나 모든 문장을 오랫동안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이점이 있기는 하다는 것이다.(166 페이지)

 

휘갈겨 쓴 글이 공들여 쓴 글보다 더 나은 경우가 많았다고 말하는 다윈은 다독가였다. 논문이나 책을 읽으면 처음에는 그저 감탄하기만 한다고 말하는 다윈은 순수하게 추상적인 사고의 고리를 따라가는 능력이 아주 부족하다고 자신을 설명한다. 기억력이 방대하지만 흐릿한 편이라 말하는 다윈은 기억이 자신에게 해주는 역할은 자신이 내린 결론과 반대되거나 지지하는 무언가를 목격했거나 읽어보았다고 막연히 말해주는 것뿐이라고 말한다.(169 페이지) 다윈은 자연과학에 대한 자신의 사랑은 꾸준하면서도 열렬했다고 말한다.(170 페이지)

 

책 부록으로 비글호 항해기가 실려 있다. 1831년 12월 27일부터 1836년 10월 2일까지의 기록이다. 다윈의 나이 22세부터 27세까지의 기록이다. 여행지는 세인트 야고섬과 갈라파고스 제도다. 이 여행은 해당 지역의 지질, 기후, 식생 등에 대한 관찰 및 보고로 이루어진 여행이다. 다윈은 눈길을 끄는 수많은 풍경 중에서도 전체적인 초목의 무성함이야말로 압권이었다고 말하며 풀들의 전아함, 기생식물들의 신기로움, 꽃들의 아름다움, 나뭇잎들의 윤택한 초록빛에 넋을 잃었다고 덧붙였다.(바이하)

 

다윈은 자신을 자연사에 매료된 사람으로 표현했다. 다윈은 섬장암(閃長巖)에 대해 논한다. 석영이 없거나 상대적으로 소량(5% 이하)인 관입 화강암이다. 다윈은 갈라파고스 제도에 적어도 2천개의 분화구들이 있다고 썼다. 다윈은 갈라파고스의 자연사는 의미심장하다고 썼다. 제도(諸島) 전체가 또 하나의 작은 세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다윈의 설명이다. 다른 곳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수많은 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윈은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파충류라고 말한다. 바다거북, 육지거북, 도마뱀, 뱀 등이다.

 

육지거북은 풀 없이 1년에 몇 차례의 비만 내리는 섬에서도 살 수 있는 종이다. 다윈은 넓은 세상 가운데 이렇게 제한된 지역 안에 바다에 사는 종과 육지에 사는 종을 모두 가지는 뚜렷한 특징을 지닌 도마뱀의 한 속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고 썼다.(229 페이지) 다윈은 몇몇 떠돌아다니는 종들을 제외하면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발견되는 유기체들은 고유 토착 종들이기는 하지만 아메리카 종의 성질을 강하게 띤다고 말한다. 서로 동떨어진 섬과 대륙에 이토록 유사한 형태를 보이는 생물이 있다는 사실은 아직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다.(231 페이지)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창조의 힘이 넓은 지역에 동일한 법칙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윈은 어느 한 섬에서만 채집을 했다면 이렇게 완벽한 단계적 변화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라 말한다.(233 페이지) 다윈은 영국의 새들과 갈라파고스 제도의 새들을 비교한다. 영국에서는 인간에 의해 상처를 입는 어린 새들이 거의 없지만 모든 새들이 사람을 무서워 하는 반면 갈라파고스 제도와 포클랜드 군도에서는 인간에 의해 많은 새들이 다쳤음에도 자신들을 보호할 두려움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236, 237 페이지)

 

다윈은 "기억은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나쁜 상태의 표본을 많이 보내는 것보다 좋은 상태의 표본을 조금 보내는 것이 낫다." 등의 조언을 채집자들에게 한다. 채집자들은 오랜 시간을 혼자서 고생하더라도 낙담하지 말고 이국에서의 매순간을 소중히 여겨 아침부터 밤까지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윈은 여행하는 사람은 식물들의 형태나 모양을 모두 보는 식물학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맨 바위 덩어리들은 아무리 야생적인 형태라도 잠시 동안만 멋진 장관으로 보일뿐 곧 단조롭게 느껴지는데 거기에 밝고 다양한 색으로 채색을 하면 바위가 곧 환상적으로 변하듯 식물들로 뒤덮인 풍경은 아주 아름다운 그림이거나 적어도 매력적인 그림이 될 것이라 말한다.(244 페이지)

 

다윈은 거주민도 없고 물도 없고 나무나 산도 없는 파타고니아 고원이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파타고니아 고원은 아르헨티나와 칠레에 걸쳐 있는 고원이다. 항해가 너무나 즐거운 여행이었다는 다윈은 교훈적인 면에서 보면 여행은 뿌듯한 참을성을 길러주고 이기심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고 자신을 위해 행동하는 습관을 길러줄뿐 아니라 모든 것을 최상으로 만드는 능력까지 가르쳐줄 것이라 결론짓는다.(249 페이지)

 

다윈의 책은 다윈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는 훔볼트의 ’남아메리카 여행기‘를 읽을 필요를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꼼꼼하고 열정적인 다윈이 5년여의 여행을 하고 쓴 비글호 항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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