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미, 하늘길을 두루두루
김신환 외 지음, 환경운동연합 기획 / 들녘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선조들은 두루미가 천년을 살면 청학(靑鶴)이 되고 다시 천년을 살면 현학(玄鶴)이 된다고 믿었다. 1742년 우화등선, 웅연계람의 주인공 청천(靑泉) 신유한의 청천은 어머니 꿈에 나타난 푸른 학과, 메말랐다가 다시 솟아오른 샘을 합쳐 만든 말이다. 청학동(靑鶴洞)의 청학도 푸른 두루미를 의미한다. 청학동은 푸른 학이 사는 이상향을 말하는 것으로 요즈음 기준으로는 지속가능한 사회 정도의 의미가 될 것이다.

 

60 가지 이상의 소리와 몸짓 언어를 내는 두루미는 인간 외의 척추 동물 중 가장 복잡한 행동을 하는 동물 종이다. 대부분의 두루미는 철따라 이동한다. 봄부터 가을까지 습지에서 번식하는 두루미는 포식자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도록 얕은 물 위에 둥지를 만든다. 물론 물이 불면 둥지를 높여 침수되지 않게 하는 것이 급선무다.

 

알을 한, 두 개만 낳는 등 번식력이 낮은 두루미에게 주요 서식지인 습지가 급속히 사라지는 것은 슬픈 현실이다.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두루미와 함께 살아왔다. 두루미는 몸집이 커 방향 전환을 쉽게 하지 못하는 데다가 전선(電線)이 눈에 잘 보이지 않아 부딪혀 속이 빈 뼈가 골절되는 등 치명적 피해를 입기 쉽다.

 

두루미는 교란에 민감한 새다.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에서 볼 수 없었던 두루미를 1970년대 철원 민통선 지역에서 발견한 이가 세계적 두루미 전문가 캐나다인 조지 아치볼드 박사다. 1990년대 후반 북한에 심각한 기근이 들어 탈북자 행렬이 이어질 때 두루미들도 북한을 떠났다. 북한 안변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230마리 이상의 두루미가 겨울을 나던 주요 활동지였지만 그 이후 식량 부족 때문에 북한 주민들이 논의 낙곡(落穀)까지 모두 취하고 오리, 거위, 염소 등 가축들을 풀어 모두 주워 먹게 한 탓에 두루미들이 먹을 것이 없자 안변을 떠나 철원을 찾은 것이다.

 

대형 조류이고 습지의 상위 포식자인 두루미가 살려면 습지가 보전되어야 한다. 농사는 아주 불안정한 생계수단이다. 수입이, 투자한 비용을 간신히 메울 정도이기에 들판에 먹이를 찾아 날아드는 수천 마리의 새들은 가계에 추가적 부담이 된다. 그러니 농민들이 자기 소유의 농지에서 새들을 쫓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니다. 반면 놀랍게도 두루미를 잃지 않기 위해 이익의 일부를 기꺼이 포기하려는 농민들이 점점 늘고 있다.

 

국제 두루미재단의 설립자 조지 아치볼드 박사는 80년대 들어 한국의 동료들이 공동경비구역과 한강 하구에서 월동하던 두루미 개체수가 감소하고 임진강 유역의 연천에서 월동하는 두루미가 발견되었으며 철원 지역의 두루미 개체수가 약 350 마리로 증가했다고 알려왔다고 말한다. 만일 북한과의 관계가 개선되어 철원 지역의 개발 계획이 진행된다면 그 지역의 두루미 서식지와 두루미의 안위에는 또 다른 위협이 될 것이다.

 

남북한 모두 사용하는 학(鶴)은 두루미를 뜻하는 단어다. 조지 아치볼드 박사는 두루미와 가까이 있는 주민들을 돕지 않고는 두루미를 도울 수 없으며 두루미와 주민들의 운명이 서로 이어져 있음을 항상 느낀다고 말했다. 1990년대 초 홍수, 가뭄, 비료 수입 감소 등으로 북한의 토지생산성은 떨어졌다. 사람이 먹을 것이 줄자 두루미들의 주요 먹이 자원인 벼 낙곡도 감소했다. 다행히 북한 당국이 두루미를 엄격히 보호한 데다가 군인들만이 총기를 소지할 수 있어서 두루미들이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두루미들을 안변으로 돌아오도록 한 프로젝트가 안변 프로젝트다. 우연하게도 안변 프로젝트가 시작된 2008년에 북한 당국은 유기농법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라는 내용의 시행령을 내렸다. 이로 인해 토양은 비옥해졌고 토양 산성도는 낮아졌고 식량 안보는 개선되었다. 콤바인으로 벼를 수확하면 벼알의 3~5%가 논에 떨어진다. 민통선과 새들의 잠자리인 비무장지대, 한탄강 등에는 인적이 드물어 사람들의 간섭이 없다.

 

전영국 교수는 흑두루미를 현학(玄鶴)으로 네이밍한 자신이 사는 순천에 대해 이야기한다. 석문 호흡에서 말하는 진기를 타고 추는 춤인 현무(玄舞)도 언급된 이 글에서 필자는 흑두루미 춤을 추면서, 아이들과 흑두루미와 관련한 창의 체험 활동을 해나가면서 순천만의 흑두루미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필자는 흑두루미와 관련된 문화예술활동은 창의적 활동이기도 하지만 생태와 환경에 대한 좋은 학습 매체임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순천만 주변에는 학산리, 선학리, 송학리, 학동, 황새골 등 새(bird)가 이름에 들어간 마을이 많다. 송학은 황새를 일컫는다. 순천만에 오래 산 노인들에 의하면 흑두루미는 강산 두루미라 불렸다. 강산이 한 번 바뀔 때마다 돌아오기 때문이다. 두루미는 뚜루루 ? 뚜루루 하는 울음소리에서 이름이 유래한, 순수한 우리말 새다. 두루미의 라틴어 속명인 그루스(grus)도 그루루 하는 울음 소리에서 유래했다. 일본어 쯔루도 소리에서 기원한 것이다.

 

재두루미는 한강과 임진강 하구, 연천, 철원평야 등에서 겨울을 보내다가 본격 추위가 찾아오면 남쪽으로 이동하는 습성이 있다. 재두루미는 흑두루미보다 훨씬 크다. 두루미는 우리나라에 찾아오는 두루미들 가운데 몸집이 가장 크다. 두루미는 보통 자기 영역을 지키며 가족 단위로 일정한 지역에 머무는 습성이 있다.

 

두루미가 번식지와 월동지 사이의 하늘길을 찾아가는 능력은 부모 두루미들이 이끌어주고 연장자로부터 배우기에 해가 갈수록 늘어난다. 순천만을 찾아오는 두루미들이 천 마리를 넘어서면서 순천을 천학의 도시라 부른다. 천학은 천년학의 줄임말 같다. 물론 두루미는 천년을 살지 못한다. 하지만 두루미들이 대를 이어 살아간다면 천년을 사는 것이 맞다. 하지만 두루미들은 대부분 멸종위기종이다. 두루미들과 인간, 그리고 생태계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길이 모색되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