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 너머의 역사 - 빅히스토리, 문명의 길을 묻다
김기봉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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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사 전공자 데이비드 크리스천이 제안한 빅히스토리는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 우주, 지구, 생명에 대해서까지 논의 대상으로 삼는 학문이다. 빅히스토리는 인간이 역사의 주인공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시간과 공간을 우주로까지 확장해 인문학의 3문(問;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에 답을 제시하려는 학문이다.(263 페이지)

 

빅히스토리는 아직 기존 역사학으로부터 아마추어 역사로 취급받는다.(218 페이지) 그것은 빅히스토리가 고유한 역사학적 지식을 생산하지 못하고 과학사 지식을 병렬적으로 연결하는 스토리텔링에 머물러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빅히스토리는 나름의 서사 공식을 가지고 있다. 구성 요소, 골디락스 조건, 복잡성의 증가다.

 

빅히스토리는 불확실한 미래에서 인류가 생존하고 문명을 지속하기 위해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거시와 미시 세계를 연결하는 새로운 역사 서술 모델이 필요한 시대 상황을 반영한다.(213 페이지) 최근 인류세란 말이 널리 언급되고 있다. 이 개념은 현생 인류가 지질학적 행위자로 등장해 여섯 번째 대멸종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지구 생태계의 다른 존재와의 연관하에서 발생했음을 깨닫고 파괴적인 문명을 리셋할 수 있는 기본 값을 설정하는 것이다.(247 페이지) 그런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인간은 다방면에 걸쳐 여러 종류의 일을 다재다능하게 할 줄 아는 만능의 전문가(generalist specialist)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이란 종(種) 단위의 인간이다.

 

언어를 매개로 허구 세계로 들어가는 것도 적응이다. 그 과정에서 만든 것이 이야기다. 이야기는 슬기로운 생각을 하는 호모 사피엔스를 상호 주관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호모나렌스로 전환시켰다. 인간은 잡담과 수다를 떠는 종이다. 잡담과 수다는 이성적인 호모 사피엔스를 감성적인 호모 나렌스로 변환시켰다.

 

인간은 자신이 짠 의미의 거미줄에 매달려 사는 동물이다.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과거 - 현재 - 미래로 흘러가는 시간, 그리고 시간의 흐름 속 세상이라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삶을 이해하고 의미를 만들어내는 자유를 얻었다.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이야기는 남아서 미래 후손들에게 문화유전자를 전달한다.

 

픽션의 문법에 따르면 기억의 반대말은 망각이 아니라 상상이다. 신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창조력을 가지고 있다면 인간은 유에서 무(아직은 없는 것)를 떠올리는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 선천적 요인과 후천적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생명체의 변이에 관해 설명하는 일반 이론이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다.

 

진화란 변화를 동반한 계승이다.(진화는 생식세포의 유전자에 생긴 우연한 돌연변이가 세대에서 세대로 계승되는 가운데 생존에 유리한 것이 자연선택되는 것이라고 말한 후쿠오카 신이치의 견해와 함께 새길 말이다.) 다윈이 진보와 구별하고자 한 진화란 생명체가 생식하고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돌연변이가 자연선택으로 살아남아 다양한 동식물 종이 생성되는 전개(unfolding)를 지칭한다.

 

자연선택이란 자연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선택되는 것이다. 인간은 이성의 법칙이 아니라 편견과 감정에 휘둘려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객관적 사실보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배움을 통해 실재로서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획득한 정보나 지식을 토대로 뇌 속에서 우리 나름의 매트릭스를 구축해 그것을 토대로 주변환경을 우리에게 맞게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12 페이지)

 

이야기로 주조된 매트릭스에 사는 호모 나렌스라는 특성이 인간을 계산 불가능한, 시스템 오류가 일어날 수 있는 자유의지의 존재로 만든다.(85 페이지) 이야기 자아는 모든 경험을 말하지 않으며 가장 강렬했던 순간과 최종 결과에 초점을 맞추어 스토리를 구성하고 사태를 재생한다. 인간은 객관적 실재와 주관적 감각 세계 외에 이야기로 창조된 상호주관적 의미 세계에 산다.(89 페이지)

 

저자는 현재의 대학 체제에서 국부론이나 도덕감정론이 경제학과 또는 철학과의 박사 학위 논문으로 통과될 수 있을까? 묻는다. 칼레츠키는 아마 조롱이나 당하고 퇴짜를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종류의 저서를 쓴 학자는 대학교수가 되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여러 분과 학문으로 나뉜 대학의 학문적 현실이다.

 

오늘날 대학에 인문학자는 없고 국문학자, 영문학자, 사학자, 철학자 등 개별 학문 분야 전공자들만 있다. 하지만 그런 개별 인문학 분과학문조차 대학내에서 점점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 애덤 스미스가 근대사회 형성과 존립의 토대로 상정한 사회와 정의라는 두 규칙은 사람들이 당위로서 공정한 관찰자에 대해 믿는 상황에서는 힘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신은 죽었다고 생각하는 탈주술화된 근대인에게 그런 형이상학적 가정은 허구일 뿐이다.

 

오늘날 인문학이 처한 난점은 인간이 더이상 만물의 척도가 될 수 없는 시대에 인문학의 역할과 가치를 어떻게 재규정할 수 있느냐다. 막스 베버는 전통시대의 모든 숭고하고 궁극적인 가치들이 공공 영역에서 추방된 근대의 지적 상황을 세계의 탈주술화라고 불렀다. 세계의 탈주술화로 일어난 합리화는 인문학을 학문의 최전선에서 후방으로 밀어내고 빈자리를 과학이 대신 채우는 것으로 인식의 나무를 재구축했다.

 

이런 패러다임 전환의 기폭제가 된 것이 17세기 과학혁명이다. 조르다노 브루노는 천동설을 배척하고 코페르니쿠스의 세계관을 지지하다가 이단 재판을 받아 화형 당했다. 브루노와 갈릴레오의 결정적 차이는 브루노는 연금술의 신인 헤르메스와 이집트의 신 토르의 영향을 받아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주장한 반면 갈릴레오는 망원경을 통한 관측결과를 근거로 천동설의 오류를 지적했다는 점이었다.

 

갈릴레오는 천동설과 지동설의 대립을 종교와 과학 사이의 모순이나 불일치가 아니라 학문의 두 방법론 즉 사변적 논리로 이야기하는 것과 관찰 결과를 수학과 기하학의 원리로 푸는 것의 차이로 이해했다. 갈릴레오는 천동설의 오류를 지적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오류를 증거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의 신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갈릴레오를 교회의 탄압으로 불우하게 생을 마감한 과학의 순교자로 추앙하는 것은 후세인들이 만든 신화다. 갈릴레오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의 연구에는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러나 과학사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가 새로운 과학적 사실들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그의 문제 제기로부터 세상을 보는 방식이 중세 기독교 믿음에서 과학적 사고로 바뀌었다는데 있다.

 

파울 파이어아벤트에 의하면 갈릴레오는 당시 가톨릭교회가 지동설을 하나의 가설로 용인했지만 갈릴레오는 지동설만 진리라고 고집스럽게 주장해 갈등을 야기하고 사건을 일으키게 되었다. 갈릴레오가 일으킨 바람은 종교보다는 학문을 바꾸었기에 과학 혁명이라고 불린다.

 

후설은 진자의 동시성과 낙하법칙 등의 객관적 세계는 발견했지만 생활세계를 수학이라는 이념의 옷으로 은폐하여 과학의 영역에서 추방한 갈릴레오를 발견의 천재인 동시에 은폐의 천재라고 말했다. 새로운 지식이 성립하고 세계관이 바뀌는 과정에서 혼돈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푸코가 광기의 역사를 통해 주장했듯 이성의 빛은 광기의 그림자를 동반한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규범과 지식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이기에 이성의 빈번한 추방 없이 진보는 일어나지 않는다. 파이어아벤트는 모든 상황에서 타당한 유일한 규칙 또는 오직 그것을 준거로 해서만 올바르게 기능할 수 있는 체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모든 것은 괜찮다고 주장했다.

 

자유로운 학문 세계를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은 오로지 과학지식에 근거해 세상에 질서를 세우고 인간을 이해하려는 과학주의의 결핍이 아니라 어느 한 세계관이 다른 세계관을 이단으로 처벌하고 금지하거나 비과학적이라고 비난하고 배제하는 지식의 독재다.

 

과학사도 문화사에 포함된다. 문화의 다양성은 생물학적 종의 다양성이 그러하듯 다른 문화와 관계를 맺고 접합하는 것으로 발현된다. 서로 다른 문화와 교류하고 충돌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확정성은 그들 각각의 세계에 반영되며 그것이 상호 문화적인 이해와 과학적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진리란 인간과 관계 없이 존재하는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자기가 살고 있는 생활세계의 토대 위에서 의미를 추구하는 가운데 만들어진다. 오늘날 인류의 실존 문제는 인간중심주의를 해체하고 지구와 우주에서 인간의 위치는 어디인지에 대해 재설정할 것을 요구한다. 빅히스토리의 선험적 조건은 인간 없는 역사는 불가능하며 무의미하다는 것이다.(275 페이지)

 

인간만을 주체로 설정하지 않은 역사는 어떻게 가능한가? 관건은 인류 문명의 지속가능성을 지키고 실존적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역사가 변해야 한다는 점이다. 중요한 문제는 역사가 과학이 되는가 아닌가가 아니라 인간 삶에 쓸모 있는 이야기가 되는가 아닌가다.

 

클로드 새넌의 말이 흥미를 돋운다.“우리는 과거를 알 수 있지만 통제할 수는 없다. 우리는 미래를 통제할 수 있지만 알 수는 없다.” 역사가는 인간, 시간, 공간의 3간(間)을 조합해 일관된 이야기로 역사를 쓴다.(251 페이지) 모든 이야기는 시작과 끝으로 구성된다. 그 둘을 연결해 스토리 라인을 형성하는 구조가 플롯이다.

 

역사라는 용어는 과거에 대한 기록으로서 성립한 것이 아니라 기록자가 탐구, 서술한 것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등장했다.(257 페이지) 이는 동서양 모두 그렇다. 역사가에 의한 기록으로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역사의 시작을 인류 탄생이 아닌 문자의 탄생으로 보는 관념을 낳았다. 이런 문자 중심 역사학은 과거 인류가 살았던 대부분의 시간을 역사 영역 밖으로 추방했고 우리는 무엇인가란 물음에 나오는 우리를 문자 기록을 남긴 자들로 한정하는 경향을 낳았다.

 

문자 기록을 남긴 자들은 대부분 지배자들이다. 그들에게 역사가 인류 전체가 아니라 왕조와 국가와 같은 특정 정치 공동체의 서사를 의미함에 따라 역사 이야기의 공간적 프레임이 생겼다.(258 페이지) 국가 간의 역사 분쟁도 역사 3간(間; 인간, 시간, 공간)을 조합해 자국사를 구성하는 문법 차이에서 기인한다.

 

일반적으로 한국사는 민족을 상수로 하여 시간과 공간의 매트릭스를 구성한다. 반면 한(漢)족과 5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은 민족이 아닌 영토를 준거로 하여 자신들의 역사를 규정했다. 중국은 고조선, 고구려 등을 중국사가 아니라 중국과 적대적이었던 오랑캐의 역사로 인식한 전통을 무시하고 주변국의 역사를 침탈하는 역사 공정을 벌이고 있다.(254 페이지)

 

진화의 플롯으로 빅히스토리 스토리텔링을 구성할 때 제기되는 문제 중 하나는 진화가 복잡성이 증가하는 방향성으로 진행되는 일반적 과정인가다. 물론 진화의 시계에서 늦게 등장한 생물일수록 자연선택을 통해 살아남는 과정에서 더 큰 복잡성을 갖는다. 하지만 그것이 우주 차원의 일반적 경향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인류는 1억 5천만년 동안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이 멸종하지 않았다면 생겨날 수 없었다. 단적으로 이 사실을 감안하면 진화는 반복 불가능하고 순전히 우발적인 사건임을 알게 된다.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신비는 유독물질이던 산소가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원소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는 세균 덕분이다.

 

세균이 인간을 만들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세균은 수십억 년간 지구를 지배했다. 이들은 네 가지 혁신(광합성, 호흡, 진핵세포, 유성생식)을 통해 복잡성을 증가시킴으로써 지구환경을 바꾸었다.(281 페이지) 우리 몸의 30조 개 세포는 7년이 지나면 모두 바뀐다. 그럼에도 같은 나로 인식되는 것은 실재가 아니라 정체성을 만드는 기억 덕이다.

 

양자역학에 닥치고 계산하라는 말이 있다. 물질은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라는 코펜하겐 해석이 합리적으로 이해 불가능하지만 실재로 그러하니 이유를 따지지 말고 그냥 수용하라는 주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런 식으로는 살 수 없다.(295 페이지)

 

우주가 아무리 크고 영원하다고 해도 그것은 지구라는 창백한 푸른 점에 잠시 머물다 가는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주가 내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우주에 관한 정보를 생산하고 의미에 관해 이야기한다.(298, 299 페이지) 인간은 과학 없이 생존할 수 없다. 그런 만큼 인간은 과학만으로 살 수 없다. 인문학이 충분조건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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