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쿠오카 신이치는 제가 좋아하는 생물학자입니다. 2008년 ‘생물과 무생물 사이’, 2009년 ‘모자란 남자들’을 읽은 데 이어 2010년 ‘동적 평형’을 읽은 지 12년만인 올해 ‘생명해류’를 읽었습니다. 아니 만났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책을 선택해 읽은 것이지만 후쿠오카 신이치가 말한 대로 “작가를 발굴하고 치켜세우고 달래고 얼러서 글을 쓰게 하는 사람”인 편집자에 의해 세상의 빛을 본 책이 제 앞에도 나타났기에 저는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을뿐입니다.
앞의 세 책은 생물학 전문 책이지만 ‘생명해류’는 일정 부분 지질학과도 관련이 있는 생물학 책입니다. 제게는 정독한 세 권의 저자가 쓴 신간이지만 지질학과 연관이 없었다면 읽지 않았을 것입니다. 벌써 다음 작품이 기대됩니다. 이번에 읽은 ‘생명 해류’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작가는 혼신을 다해 작품을 쓴다. 작품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그리고 그때만의 에너지라는 게 있다. 그래서 비슷한 것은 이제 쓸 수 없다. 인생작은 2개일 수 없다. 두 번째는 언제나 빛바랜 하찮은 것일뿐이다.”
언제일지 모르나 다음에 나올 책은 ‘생명해류’와 다르되 지질학의 성과나 내용도 반영되는 책이기를 기대합니다. 세 권의 생물학 책에 이어 지질학적 내용이 반영된 책이 나온 것은 작가의 집필 계획 또는 사상의 변천에 따른 것인지 편집자의 의도를 따른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작가는 평소부터 다윈이 탐험한 진화론의 산실인 갈라파고스 제도(諸島)를 그대로 밟기를 소망했었습니다.
그의 그런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갈라파고스 관련 강연 등을 보고 출판사측에서 탐사 제안이 온 것입니다. 저자는 다윈의 고향이라 불리는 갈라파고스는 사실은 가장 다윈적이지 않은 곳이라고 말합니다. 근거는 갈라파고스 생물들은 광대한 생태적 지위를 누리며 서로 자유롭게, 생존의 선택지를 선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생존경쟁이나 자연도태의 압력에 노출되지 않고 오로지 좋아하는 장소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좋아하는 먹이, 좋아하는 행동양식을 선택하면 되었다는 것입니다.
‘생명해류’를 흥미 있게 읽은 것은 남미대륙에서 1000km 떨어진 태평양 한복판의 갈라파고스를 탐사한 생물학자의 지질 내용도 반영한 글이기 때문입니다. ‘생명해류’는 작년에 읽은 윌리엄 글래슬리의 ‘근원의 시간 속으로’와 대조적입니다. 이 책은 지질학자의 지질탐험기입니다.
대조적이라 했지만 이런 부분은 어떤가요? “이곳 바다에서는 바다를 둘러싸는 암석의 일부였던 원자가 표면에서 떨어져나간 뒤 조류(潮流)의 흐름에 따라 자유로이 떠다니고 있다. 이 원자는 단순한 열역학으로 싸인 대화를 통해, 바람에 실려온 먼지, 성간(星間)입자, 분해된 동물의 사체, 썩어가는 식물에서 온 다른 원자들과 뒤섞인다. 그들은 우리가 이해할 수도, 인지하지도 못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나눈다. 그들의 대화는 하나의 개체로 통합되고 진화하면서, 생명체나 화학적 퇴적물 혹은 단순한 용해 분자를 구성하는 존재가 된다. 그들은 깊이 흘러들어가거나 바다의 표면으로 솟아오르고 증발한다. 히말라야 산맥의 눈송이가 되고 갠지스강의 홍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따금 우리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179 페이지)
"별이 바위에 스며들어 꽃이 되었다.”는 오규원 시인의 시 구절을 다시, 더 구체적으로 보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