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논어를 만나 행복해졌다 - 나로 살아가기 위한 든든한 인생 주춧돌, 논어 한마디
판덩 지음, 이서연 옮김 / 미디어숲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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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논어를 만나 행복해졌다'의 저자 판덩은 '나는 불안할때 논어를 읽는다' 등을 쓴 논어 전문가이다. 그는 혁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요소들을 새롭게 조합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공자의 말에 견주어 보자. 공자는 자신은 옛것을 믿고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술이부작이라는 말도 했다. 계승하되 창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공자는 배움에 대해 세 가지를 말했다. 묵묵히 아는 것, 싫증 내지 않고 배우는 것, 가르침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 등이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도 공자처럼 묵묵히 아는 것, 싫증 내지 않고 배우는 것,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을 실천할 수 있을까? 배움을 즐기는 공자의 경지에 다가가기 힘들다면 우리는 만족지연능력을 키우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만족을 미룰수록 인생의 선물은 더 커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남을 보듯 자신을 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말한다. 공자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가장 소중히 대하라고 말했다. 공자는 꿈 속에서도 주공을 그리워했다. 젊은 시절 공자는 주공의 꿈을 자주 꿨다. 하지만 노년의 공자는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었던 것 같다. 공자는 이렇게 탄식했다. 내가 이제는 정말 늙었구나. 주공을 꿈에서 못 본 지가 오래 되었다. 공자는 은나라의 주왕을 물리친 주나라 무왕의 동생 주공을 존경했다.

 

본문에 이런 구절이 있다. 번민하지 않는 자에게 열 번을 말해도 소용없다. 공자는 번민하지 않으면 일깨워 주지 않고 애써 표현하려 하지 않으면 말해 주지 않는다. 한 모퉁이를 들었을때 세 모퉁이에 반응하지 않으면 더는 반복하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공자는 마음속 괴로움과 고통을 말로 표현하지 못해 답답해 하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니 나는 너희들을 성급하게 일깨워 주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답을 알려주기보다는 질문을 던져 스스로 문제를 깨닫게 할 수도 있다. 문제에 대한 답이 입가에 맴돌 정도로 고민한 흔적이 보일 때에야 나는 너희에게 설명해 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공자는 상을 당한 사람 곁에서 먹을 때는 배부르게 먹지 않았다. 공자는 예를 지켜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사람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고 말했다.

 

죽은 사람과 유족들을 사랑한다면 장례식에 참석해 저절로 예를 갖추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위로의 말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공자는 안연에게 부가 만약 구해서 되는 것이라면 비록 채찍을 잡는 사람이라도 나 또한 하겠다. 만일 구해서 되는게 아니라면 내가 좋아하는 걸 따르겠다라고 말했다.

 

공자는 제나라에서 소(韶)를 듣고 3개월 동안 고기맛을 몰랐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공자를 고리타분한 책벌레로 상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하지만 공자는 다재다능 했다. 마차를 직접 몰았고 무예에도 출중 했으며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삶의 품격과 정치를 중요시했던 공자는 음악과 예술을 좋아했다. 어떤 일에 깊이 몰두해 파고들다 보면 자신까지 잊어버리곤 하는데 무아지경이라는 사자성어는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무아지경은 서양의 한 천재 과학자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뉴턴의 여동생이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뉴턴은 성인이 되어서도 어떤 일에서는 어린 아이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식사 시간을 알려 주지 않거나 식탁에 밥이 놓여 있지 않으면 밥 먹는 것도 잊었다. 뉴턴의 사진을 보면 상상이 갈 것이다. 잠옷을 입고 슬리퍼를 신은 채 산발이 된 머리로 일상을 보냈다. 아마 머릿 속에는 언제나 우주의 비밀을 해결하기 위한 공식들이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학문의 세계에 완전히 빠져들어 있었던 뉴턴에게 밥을 먹는 일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위대한 수학자 가우스도 무아지경에 빠지곤 했다. 산책을 하던 도중 대단히 아름다운 공식을 떠올렸던 가우스는 그 공식을 까먹을까 두려워 빨리 기록하려 했지만 수첩을 찾을 수가 없었다. 급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가우스의 눈에 검은 칠판이 들어와 재빨리 공식을 적었다.

 

그런데 갑자기 칠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우스는 칠판을 쫓아가며 계속 공식을 적었다. 한참 칠판을 쫓아가던 가우스는 자신이 공식을 적은 칠판이 사실은 다른 사람의 마차 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자의 무아지경은 짧게 끝나지 않았다. 석 달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물론 몰입의 시간으로 사람의 진지함을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무슨 일을 하든 무아지경에 빠질 정도로 혼신의 힘을 쏟아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거친 밥을 먹고 냉수를 마신 뒤 팔베개를 하며 즐기는 삶. 이런 일상은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지극히 평범하고도 특별할 것 없는 시간도 행복하다고 느끼면 지상 낙원이 될 수 있다. 공자는 내면을 다스려 그 어떤 순간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초월과 해탈의 경지에 오른 인물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다.

 

공자는 5, 60대에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니면서 많은 고생을 했다. 늦은 나이에 공자는 주역에서 자신이 주장해온 중용의 도를 뒷받침하고 검증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래서 아마도 주역을 일찍 배웠다면 좀 더 선명하게 난세에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공자는 노력하면서 즐거워해야 비로소 몰입의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즐겁기만 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몰입의 상태가 되지 않는다. 분발하여 먹는 것도 있는다라는 공자의 말은 노력했다는 것을 뜻한다. 즐거움으로 걱정을 잊는다는 말은 즐거움을 뜻한다. 늙음이 장차 다가오는 것도 모른다는 말은 몰입의 상태에 이미 들어섰다는 의미다. 삶의 즐거움은 몰입에 있는 것이다.

 

부의 엔트로피 행위를 통해서 엄격하게 자신을 단속하고 타인의 선한 점을 가려 따르고 단점을 바로 잡는 성장의 마인드셋을 하자. 타인의 행동과 결과는 그것이 옳건 그르건간에 모두 자신에 대한 경험으로 삼을 수 있다. 타인은 언제나 나에게 참고서가 된다. 공자의 말은 쉽다. 하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 부의 엔트로피 행위나 마인드셋이란 용어는 이렇게 쉬운 행동들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다.

 

공자는 사람을 성인, 어진 사람, 군자, 일반인으로 구분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성인을 만날 기회가 있을까? 공자는 살아 생전 성인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공자를 성인이라 생각하지만 공자는 자신이 성스러움과 어짊에 이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공자는 남에게서 좋은 점을 배우는 것을 지식을 구하는 차등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가장 높은 단계의 지식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다. 이는 성인에 해당된다. 다음 단계는 배워서 아는 사람이다. 곤경에 처해야만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일단 창업을 해놓고 난관에 부딪혔을 때 배우리 하기 때문에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곤경에 처해도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는 배움의 단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공자는 배움을 통한 점진적인 발전을 주장했다. 그리고 동시에 갑자기 이치를 깨닫는 순간도 있다고 말했다. 공자는 묵묵히 아는 것, 배움을 싫증 내지 않는 것, 사람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을 강조했다. 이는 배움을 통한 점진적인 발전이다. 공자는 상반되는 두 가지 생활태도를 거론했다. 사치스러운 것과 지나치게 검소한 것이다.

 

공자는 사치스러운 사람은 버릇이 없거나 겸손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사치와 버릇없는 것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사치는 자신의 체면을 높이고 자기능력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표출된 것이다. 사치스러운 사람들이 명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타인의 평가에 신경쓰기 때문이며 이들은 자신의 체면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면서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핀다.

 

태어나면서부터 예를 아는 사람은 없다. 다만 살아가면서 자신을 반성하며 천천히 일의 경계를 배우고 기준을 명확히 세우며 예로써 절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예에 부합하는 사람은 과격하지 않고 극단적이지 않고 무모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중용의 모습이다.

 

공자의 제자들은 성격이 남달랐다. 내성적인 안회는 항상 온화하고 침착했다. 모든 일에 만족했고 즐거움을 찾으려고 부단히 수련했다. 노자와 함께 도가의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장자는 안회의 말을 빌려 자신의 사상을 표현했을 정도이니 역시 수련의 경지가 높았던 공자의 제자였다고 볼 수 있다. 호기심이 강한 자공은 질문을 좋아했다. 스승인 공자와의 토론에도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자로는 경솔하지만 솔직한 사람이었다. 천하를 마음에 품은 증자는 많은 명언을 남겼다. 그의 문장은 스승인 공자보다 더 웅대하고 힘이 넘쳤다. 심금을 울리고 깨달음을 주는 내용도 많았다. 증자는 6척의 고아를 맡길 수 있고라고 말했다. 6척은 약 140센치 미터이다. 6척의 고아는 그래서 머리가 굵어진 아이를 말한다.

 

대개 입양을 할 때는 친자식처럼 키울 수 있는 갓난아이를 선택한다. 하지만 6척의 고아는 친자식처럼 키우기 힘든 나이다. 몸과 마음이 제법 성숙해진 청소년을 입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 자식도 청소년 시절에는 힘들기 마련인데 오죽할까?

 

증자가 6척의 고아를 맡길 수 있고라고 말한 것은 이처럼 어려운 것이라도 상대방에게 부탁할 수 있을 정도로 신뢰가 두텁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공자의 우상인 주공은 강태공과 더불어 주나라를 창건한 공신이다. 주공은 주나라 왕실의 관직제도와 전국시대 각국의 제도를 기록한 유교 경전 주례를 제정했다.

 

공자는 종종 사람을 칭찬할 때 그 당사자를 주공과 비교했다. 공자는 주공 같은 재주와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거만하고 인색하다면 볼 것도 없다고 말했다. 거만하고 인색한 사람이라면 능력이 아무리 많아도 언급할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거만함과 인색함을 가진 사람은 내면의 즐거움이 부족하다.

 

다시 일어서는 용기의 작가 알프레드 아들러는 열등감을 없애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개인의 가치와 전체 사회의 가치가 하나로 융합되게 하려면 자기중심에 대한 집착을 내려 놓아야 한다. 모든 일에서 개인의 명예와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면 곤경에 빠지기 쉽지만 사회 가치를 고려하면 어떤 성과든 이룰 수 있다. 공자의 말은 항상 침착하고 여유가 있다. 그는 천하의 도가 있고 없는 것과 같이 중요한 주제까지도 담담하게 말한다.

 

그가 이처럼 담담할 수 있는 이유는 운명이 자신을 어디로 이끌든 침착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자는 자신이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위치를 찾아 계속해서 더 높은 것으로 오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공자는 사람들이 멀리해야 할 세 가지 단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첫 번째 단점은 호기스러우면서 곧지 못한 것이다. 호기스러우면서 곧지 못한 사람이란 겉으로는 털털하고 너그럽게 행동해 뭐든 문제 삼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마음은 그렇지 못한 이를 말한다.

 

두 번째 단점은 무지하면서 성실하지 않은 것이다. 무지한 사람이 성실 하지도 않다면 큰 문제다. 세 번째 단점은 무능 하면서 신뢰가 없는 것이다. 공자는 위와 같은 단점을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모르겠고 뭐라 해 줄 말도 없다고 말한다. 장점으로 단점을 보완하고 균형을 맞출 수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장점이 더 많은 사람이라면 장점과 장점이 합쳐져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겸손하고 배우기 좋아하는 사람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잘 한다면 지혜로운면서 어질게 변할 수 있다. 장점들은 서로 합쳐져서 상부상조 한다. 우리는어짊에 대해 비록 거기에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마음은 향해 있는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목표로 삼아 추구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결코 권태로운 과정이 아니며 오히려 도중에 있는 수많은 검증과 시험이 우리의 인생을 더욱 더 풍부하게 해줄 것이다. 공자는 경제적인 면에서는 굳이 고대의 예법을 고민하면서까지 쓸데없는 예식을 따르지 않겠다고 말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절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국가의 정상을 만났을 때도 허리를 굽혀 악수하면 그만이니 예법이 갈수록 간소화되고 있다.

 

사실 이는 필연적인 일이다. 세계 모든 문화, 민속, 예절의 변화는 기본적으로 물질적인 측면에서부터 시작된다. 물질적인 부분이 변하면 민간 풍속도 서서히 따라서 바뀌고 민간 풍속이 바뀌면 제도도 따라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두뇌는 선형 구조가 아니다. 만약 우리의 두뇌가 선형 구조라면 70세까지 사는 사람과 50세까지 사는 사람이 얻은 지식함양 비율은 7대 5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사람의 두뇌는 지수형 성장을 한다. 사람의 두뇌는 신경원으로 연결되어 있다. 사람마다 두뇌 신경의 수량은 거의 차이가 없지만 대뇌 신경의 연결이 지수적 구조의 양상을 띠기 때문에 공자처럼 어려서부터 배움을 좋아하고 귀찮은 일 중에 잘하는게 많은 사람은 두뇌 신경의 연결이 더 많을 수 있다.

 

게다가 공자는 열정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지식을 가르쳐주었다. 지식을 얻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지식을 전수해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자의 대뇌 신경은 아주 긍정적인 자극을 받아 지수형 성장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자의 제자들은 스승과 자신의 나이 차이가 5년, 10년 밖에 나지 않는데도 학문의 경지는 상상할 수 없고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배움의 과정은 항상 직선으로 상승하지 않는다. 오히려 임곗값을 돌파하면서 성장한다. 임곗값 돌파란 무엇인가? 일반 대기업에서 물을 끓인다면 온도계가 없어도 섭씨 99도에서 물이 끓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섭씨 99도에서는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섭씨 100도에 이르면 보글거리며 거품이 생겨난다. 섭씨 99도에서 백도에 이르는 과정을 바로 임곗값 돌파라고 한다.

 

슬럼프와 같이 견디기 힘든 상황을 겪으면 자신이 제대로 배우고 있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고 배우는게 무슨 가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다른 사람은 왜 쉽게 배우는 거지? 다른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많은 성과를 거두고 논문을 쓸 수 있는 거지? 왜 나는 저렇게 되지 않은 걸까?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이런 상황에 부딪히는 이유는 평지만 걸어와서 지수형 성장 과정에 진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때 포기한다면 임곗값을 돌파하지 못하고 계속 평지에만 머물게 된다. 난관에 직접 부딪혀야만 임곗값을 돌파하고 S형 곡선을 그리며 위로 상승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은 임곗값을 돌파하는 과정이다. 안회, 자공, 자로가 오랜 시간 배웠음에도 공자와 격차를 줄이지 못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임곗값의 근사치에만 머물렀고 공자는 이미 임곗값을 돌파했다. 공자는 시간은 눈앞에 흐르는 강물처럼 밤낮으로 끊임없이 흘러간다고 말했다.

 

중국 당나라 시인 진진앙이 쓴 등유주대가가 명시로 손꼽히는 이유도 공자처럼 세월의 무상함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는 정밀하면서 간결한 문장으로 모든 사람이 속으로 생각하지만 말로는 드러내지 못하는 감정을 표현해 냈다. "앞에 사람이 보이지 않고 뒤에 오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천지의 유구함을 생각하다가 홀로 슬퍼서 눈물을 흘린다."

 

저자는 인생의 진리 중에는 반복해서 들을 때마다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고 말하며 자신은 논어를 몇십 차례 읽었지만 매번 읽을 때마다 새롭게 이해하고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이 논어를 읽을 때마다 새롭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인생에서 더 경계해야 할 점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의지가 꺾이는 경우다.

 

이따금 우리는 외부환경과는 전혀 상관없이 의지를 빼앗기기도 한다. 누군가가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학업과 이상을 포기하라 강요하지 않는데도 쉽게 포기한다. 사실 사람은 눈앞에 고통이 아닌 행복이 있을 때 더 쉽게 의지를 빼앗긴다. 부유함과 편안한 삶 앞에서 목표와 신념을 잃어 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평소 배움에 힘쓰는 사람이라도 좋은 직장에 들어가 당장 돈을 벌 수 있다고 하면 의지가 흔들려 뜻을 빼앗기게 된다.

 

공자는 자로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한 칭찬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것을 탐내지 않는 장점만 있을뿐 선량하고 훌륭한 기존에는 다다르지 못했다. 그러니 너는 아직 배워서 발전에 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다. 불교의 세 가지 보배는 불, 법, 승이다.

 

도교에도 세 가지 보배가 있다. 노자는 나에게 세 가지 보배가 있으니 항상 잘 지켜 보존한다. 하나는 자비이고 둘째는 검소함이고 셋째는 감히 천하의 일에 앞장서지 않는 것이라 말했다. 유교에도 세 가지 보배가 있다. 바로 지혜로움, 어짊, 용맹스러움이다. 이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통하는 세 가지 미덕이자 유교가 이상으로 추구하는 인격이다. 공자는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고, 용맹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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