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보는 문화유산 - 유물의 표정을 밝히는 보존과학의 세계
신은주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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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법의 한계를 보완하는 OSL(optically stimulate luminescence) 연대측정법이 문화재는 물론 지층의 나이를 아는데 요긴한 방법이라고 들었다. 신은주의 ‘과학으로 보는 문화유산’은 그런 앎의 연장선상에서 구입한 책이다. 1부 금속, 2부 토지, 도자기, 유리, 3부 목재, 4부 지류, 직물, 회화, 벽화, 보존환경, 5부 석조, 6부 미래에 남겨줄 우리의 유산 등으로 구성되었다.

 

서두의 방법론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저자는 주기율표 설명으로 책을 시작한다. 금(金)을 이야기한 챕터에서는 암석이 화성암, 퇴적암, 변성암으로 나뉘듯 광상(鑛床)도 화성 광상, 퇴적 광상, 변성 광상으로 나뉜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온다. 산금(山金)이 묻힌 곳은 화성 광상이고 사금(砂金)이 묻힌 곳은 퇴적 광상이다. 광상은 유용 광물이나 자원이 묻힌 곳이고 광산은 그것을 채취하는 장소다.

 

저자는 어쩌면 지금 당신이 끼고 있는 금반지는 신라 귀족이 사용하던 금귀걸이였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금으로 만든 물건은 기능을 상실해도 녹여서 다른 형태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구리는 녹이라는 특별한 면모를 갖는다. 산소를 만난 청동이 보호막으로 만드는 것이 녹이다. 이 녹은 새로운 부식의 진행을 막아준다. 좋은 녹은 놔두고 나쁜 녹만 선별해 제거해야 한다.

 

일전 내가 선사박물관 해설에서 지질과 고고학을 연결시켜 화산탄과 모양이 비슷하다고 한 비격진천뢰는 시한폭탄이다. 둥근 무쇠 속에 화약, 철 조각, 죽통이 들어 있다. 나선형의 홈을 판 목곡이라는 장치에 감는 도화선(화약선)의 길이에 따라 폭발 시점이 조절된다. 철은 탄소 함량에 따라 수철, 연철, 주철, 강철로 나뉜다. 강철은 탄소가 2% 미만인 철로 강도가 좋고 충격에 잘 견딘다.

 

유리는 투명하고 단단하지만 잘 깨지며 물과 공기는 통과하지 못하지만 빛은 통과한다. 유리는 결정 구조가 없는 액체이되 점성이 높아 고체처럼 형태를 유지한다. 베개용암에 유리질이 있다. 용암이 차가운 물에 잠겨 급속히 식는 과정에서 생기는 비결정형의 검은 물질이다. 나주 오량동 옹관(甕棺) 가마터 이야기에서 저자는 점성이 좋은 점토, 석영, 장석, 운모, 활석 등의 광물을 비짐(첨가물)으로 넣는 태토(胎土; 바탕흙) 준비 과정을 이야기하며 암석, 광물, 토양, 점토 등에 대해 설명한다.

 

석영은 규소와 산소만으로 이루어진 광물로 화성암, 퇴적암, 변성암에서 모두 확인된다. 장석은 지각에서 60%를 차지하는 가장 흔한 광물이다. 상감(象嵌)기법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려만의 독창적 기법이다. 저자는 고려청자를 인간이 만든 보석이라 설명하며 최고의 찬사를 받는 고려청자는 당대는 물론 지금도 가치와 아름다움이 더해지는 도자기로 신석기시대부터 토기를 만들던 이들의 손에서 시작된 셀 수 없는 도전과 노력에 의한 것이라 마무리짓는다.

 

1200도 이상의 고온에서만 일어나는 류사이트(leucite)화(化)는 숨쉬는 그릇이라는 말로 언급할 수 있다. 공기는 드나들지만 물은 차단되어 빚어지는 현상이다. 류사이트는 화산암의 일종이다. 책에는 김원룡 교수 이야기도 나온다. 저습지 유적인 광주 신창동 유적 발굴을 위해 일본 나라문화재연구소에서 관련 정보와 기술을 배워와 발굴을 한 이야기다.

 

목재는 수침(水浸) 목재와 건조 목재로 나뉜다. 목재는 수분이 15~18%면 썩지 않는다. 수침목재도 세포 내부에 물이 채워지고 산소와 차된되어 썩지 않는다. 다만 발굴되어 땅 위로 나오는 순간 목재 내부에 함유되어 있던 수분이 증발하면서 형태가 갈라지고 뒤틀리는 등 수축, 변형이 생긴다. 그렇기에 신속하게 물이 담긴 용기에 담아 고정한 후 보존처리실로 즉시 옮긴다.

 

목재는 물이 이동하는 도관, 목섬유 등 세포의 집합체로 벌집처럼 속이 비어 있다. 세포와 공극(空隙), 수분(水分)으로 이루어졌으며 내부는 셀룰로오스, 헤미셀룰로오스, 리그닌 등의 성분으로 채워져 있다. 수침 상태가 되면 내부 성분들이 썩어 없어지는데 그 자리를 물이 차지하는 것이다. 셀룰로오스는 철근, 헤미셀룰로오스는 골재, 리그닌은 시멘트에 비유된다.

 

고대인들은 나무에 왜 옻을 칠했을까? 답은 옻을 칠하면 표면에 얇은 막이 생겨 물이나 곰팡이 등으로부터 나무를 보호하고 특유의 광택을 내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들으니 천장이나 벽에서 스며 나온 석회동굴 내부의 습기가 벽화의 표면에 맺힌 뒤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굳는 과정이 오래 반복되면 벽화 표면에 견고한 얇은 막이 되는 현상이 떠오른다.

 

대장경(大藏經) 목판은 주로 산벚나무로 만들었다. 대장경은 큰 그릇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산벚나무를 수년 동안 바닷물에 담갔다가 소금물에 찌고 오랜 시간 그늘에 말려 일정 크기로 만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수분 분포가 일정해지고 나뭇결이 부드러워진다. 궁금한 것은 조상들은 그런 방법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다. 신라의 대형 고분들이 도굴되지 않은 것은 돌무지덧널무덤 구조 덕이다. 도굴을 시도하는 순간 돌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천마총은 다른 유적에서는 볼 수 없는 천마도가 출토된 것으로 유명하다. 천마도의 정식 명칭은 백화 수피제 천마문 말다래다. 말다래는 말을 타는 사람에게 진흙이 튀지 않게 해주는 마구(馬具)다. 백화 수피는 백화 나무 껍질이라는 의미다. 자작나무를 백화나무라 한다. 종이나 직물이 아닌 자작나무 수피에 그린 그림이다. 천마총은 능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무덤이다. 종이는 중국 후한 시기의 환관 채륜이 만들었다. 뽕나무 껍질, 삼베 등을 두드려 만든 채후지(蔡侯紙)에서 시작되었다.(채륜의 종이보다 앞선 삼으로 만든 종이가 발견되었다.)

 

과거 시험은 보통 합격자에게는 답안지를 돌려주었고 불합격자의 것은 되돌려주지 않고 재활용했다. 불합격자의 답안지를 낙폭지(落幅紙)라 한다. 공정한 평가를 위해 채점자가 특정인의 필체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응시자의 답안을 서리가 베껴 썼다.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의 전통 종이 명칭은 다르다. 중국은 선지(宣紙), 일본은 화지(和紙), 우리는 한지(韓紙)라 한다. 조선 태조는 청색 곤룡포를 입었다. 명나라 황제 홍무제가 권지고려국사(權知高麗國事)라는 직책만 내렸기 때문이다. 권(權)은 임시란 의미, 지(知)는 (나랏일을) 맡았다는 의미다.

 

영조는 우리나라는 동쪽에 있으니 마땅히 청색을 입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모두 흰옷을 입으니 문제라고 말했다. 종이(宗彛)는 종묘 제례용 술잔이다.(彛는 떳떳할 이, 술잔 이라는 글자다.) 구장복(九章服)에 놓는 수(繡)는 보, 불이라고 한다. 보는 도끼를 상징하고 불은 신하와 군신의 도리를 상징한다. 구장문에 쓰인 채색 안료를 에너지 분산형 형광 분석기로 분석한 결과 황, 적, 녹, 청으로 크게 구분되었다.

 

문화재의 보본 처리는 재료가 시간과 환경적 요인에 의해 기능과 상태가 변하는 열화(劣化) 현상이 일어나기 쉽다. 보존과학에 X선이 있다면 고고학에는 지하 투과 레이더가 있다. 2013년 네덜란드의 반고흐 미술관에서 황색 안료가 LED 램프에 의해 변색된 사례가 있었다. 구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돌은 주먹도끼(전기), 흑요석(후기)이다. 전기 구석기 시대는 주먹도끼나 찍개 같은 크고 무거운 돌을 쓰던 시대였다. 빙하기가 끝나고 시작된 후기 구석기 시대의 흑요석은 날쌘 동물들을 잡기 위해 돌날, 찌르개 등의 작고 날렵한 석기들을 제작하게 되는 과정에서 탄생한 신소재였다.

 

유물은 외부 공기와의 노출을 최대한 피하고 보존처리실로 옮기는 것이 급선무이지만 봉안 순서 자체는 학술자료이기 때문에 그 어느(보존, 순서) 쪽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문화유산에 대한 보수와 복원은 유물이 제작되었을 때와 동일한 재질과 기법으로 시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암석의 종류와 원산지를 찾는 연구가 그 시작이다. 첨성대를 두고 지진 시뮬레이션을 하는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한반도는 유라시아 판 내부에 있어 일본 등 판 경계에 위치한 나라의 비해 상대적으로 지진 발생 빈도가 낮고 규모도 작지만 주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두 번의 큰 지진에도 흔들림이 없었던 첨성대도 시간을 거스르는 재주는 없다. 정밀한 조사와 분석을 통해 손상의 원인과 정도를 파악하여 향후 보존 처리가 필요한 시점을 준비하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는 면 새김 기법, 손 새김 기법, 면 새김과 손 새김 기법이 혼합된 기법이 사용되었다.

 

신석기 말기부터 청동기시대까지 오랜 시간 차례로 새겨진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반구대 암각화가 그려진 암벽은 중생대 백악기의 암갈색의 역암, 셰일 또는 이암으로 퇴적암이 주를 이루고 있다. 체질적 특성을 분석하기 위해 시료를 수습하여 편광현미경으로 관찰했더니 미정질의 석영, 정장석, 사장석, 방해석, 녹니석 운모류 및 불투명 광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풍화된 면과 신선한 면이 뚜렷한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주사 전자 현미경을 이용하여 미세조직의 변화를 관찰한 결과 신선한 면에는 석영, 장석, 방해석 등이 치밀한 조직을 보이나 풍화된 면에서는 방해석이 빠져나가 토양 입자 사이에 틈이 생긴 공극이 남아 있었다. 이는 풍화작용으로 방해석이 수분과 반응하고 용출되면서 풍화층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재 방재의 핵심은 철저한 예방 중심의 시스템이다. 문화재 복원에 기술과 성능이 좋은 신소재보다 전통 재료를 적용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유산의 보존 ,복원에 가장 적합한 것은 당시 사용했던 재료이다. 하지만 한국은 1960년대 이후 급격한 산업발전으로 전통적인 재료를 제작하는 장인들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현재 전통 장인 몇몇에 의해 우리나라의 문화재 보본, 복원이 간신히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현장에서는 전통 재료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현대 재료도 쓸 수 있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오늘날 수 많은 현장에서 쓰이는 에폭시 접착제도 전통 재료가 아니다. 과거에 썼던 접착제로 손상이 심한 문화재의 원형을 지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원형을 보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현대 재료를 적용해야 할 경우 이에 대한 철학적 고민과 이유를 담아내는 것도 보존처리의 역할이다. 주기율표에서 원자번호 6번 탄소와 14번 규소는 위아래에 있다. 이는 비슷한 화학적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탄소와 규소가 쓰이는 것은 전혀 다르다. 탄소는 생명체의 가장 중요한 원소로, 규소는 생물과는 거의 상관없는 암석으로 존재한다. 이 두 원소의 만남으로 만들어진 것이 실리콘이다. 현대 반도체 시대라고 불러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지금을 규소의 규자를 붙여 규석기 시대라 부르는 것은 그만큼 반도체로 만든 도구를 많이 사용하는 시대라는 뜻이다. 여담이지만 플라스틱으로 만든 최초의 물질은 당구공이라고 한다.

 

저자는 보존 과학은 현재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으며 과학기술과 함께 진일보하기에 미래의 학문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더 나은 기술이 나오면 나올수록 더욱 안전한 방법으로 조사하고 분석할 수 있어 우선 최소한의 조치만을 취하고 나중을 기약하는 경우도 있다. 역사에서 보존 과학의 역할은 문화유산의 제작 기술과 그 속에 담긴 가치를 조명하여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다. 과학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라져 버린 시간과 공간을 우리 앞에 생생하게 보여 줄 수 있다. 그 역사를 통해 나를 이해하고 우리를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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