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같은 걱정 한입씩 먹어치우자 - 인생의 단계마다 찾아오는 불안한 마음 분석과 감정 치유법
장신웨 지음, 고보혜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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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면 제대로 사는 게 아니라는 저자. 심리치료사가 쓴 ‘코끼리 같은 걱정 한입씩 먹어치우자’는 불안에 대해 논한 책, 나아가 그 해결책으로 글쓰기에 대해 논한 책이다. 저자는 불안보다 더 무서운 것은 미래에 대한 끔찍한 상상이라 말한다. 불확실성이 불안을 가져오지만 불안을 부풀리는 진짜 주범은 미래에 대한 부정적 예측이다.

 

인간은 부정적 소식에 민감하다. 이는 진화적 원인을 갖는 문제다. 인간은 진화를 거치면서 강력한 위험 감지 능력으로 적자생존을 터득했다. 부정적 마음은 편협한 사고를 낳는다. 저자는 글쓰기를 처방으로 제시한다. 저자는 분노, 눈물, 상심, 무기력 등으로부터 평정심을 되찾을 때까지 글을 썼다고 한다. 수많은 노력 뒤에 불안감이 자리한다.

 

노력이 진정한 효과를 얻으려면 자신을 잃지 않았는지, 노력이 자의적인지 타의에 의한 것인지 알아야 한다는 말을 전한다. 이는 한 심리연구가의 말이다. SNS의 부정적 영향력은 어떤가? 매체는 파편화된 글을 쏟아낸다. 저자에 의하면 파편화된 정보는 감각을 흐트러지게 한다. 자극 후 상당한 공허감이 밀려오고 결국 불안과 자기 역량 결핍을 낳는다.

 

자아 역량이 부족해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면 불안감에 휩싸이고 경솔한 생각에 빠진다. 그 결과 자아가 견고하게 세워지지 못하고 파편적인 인지로 기울어진 자아가 세워진다. 악순환 또는 늪에 빠지는 것이다. 저자는 존재감은 고독함 속에서 완성되는 자아 훈련이라 말한다. 가장 좋아하는 일, 가장 끌리고 가장 잘하는 일을 선택해 독립적으로 행함으로써 존재감을 높일 수 있다. 손으로 만드는 것, 창작 작품을 쓰거나 책을 낭독해 인터넷에 올리는 일로도 가능하다.

 

저자는 스스로 하는 글쓰기를 예로 들며 문자의 축적으로 자기 감각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덧붙인다. 물론 글쓰기에 몰입하기는 쉽지 않다. 저자는 누구나 잘 쓰고 싶어 하지만 글쓰기 연습에는 ‘잘 썼다‘라는 기준은 없다고 말한다. 머리를 쥐어짜 무엇을 쓸지 계획할 필요가 없고 일단 펜을 들고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삶을 멀리 보고 오늘을 살아야 욕망을 다스리는 자기 통제력이 실행될 수 있다. 불안 극복의 단초를 말하는 대목이다.

 

저자는 글쓰기에 대해 몇 가지 ’하지 말라‘는 말을 한다. 1. 글쓰기를 행동의 대안으로 생각하지 말라. 2. 자기애를 글로 만족시키지 말라. 3. 글쓰기에 지나치게 분출하지 말라. 4. 글쓰기를 유일한 친구로 삼지 말라. 5. 글쓰기를 지나친 반성문으로 삼지 말라 등이다.

 

몸을 황폐하게 만든 결과 얻는 것은 끝없는 공허감과 허망함, 불안 등이다. 삶은 그로 인해 생동감을 잃는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남보다 더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두뇌에 자신을 둘러싼 감각적 에너지를 받아들이자. 자아도취가 아닌 자아발견에 도전하자. SNS는 나르시시즘을 조장한다. 저자는 최첨단 과학, 느슨한 대출정책 등이 부추기는 전능감에 대해 비판한다.

 

나르시시즘에 바진 이들의 자존감은 외부 조건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자기애가 높아지고 외부 조건이 좋을 때는 자기애에 상처를 입는다. 자신의 우월감을 유지하기 위해 현실 검증을 차단한다. 진실한 모습이 밝혀지는 것에 공포와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신에게 꽃과 박수를 안겨주는 세계에만 머물고 싶어 한다.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은 수없는 좌절에서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배워가는 것이다.

 

배우겠다는 자세로 차곡차곡 쌓은 노력만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다. 삶에 대한 경외심은 자신을 위한 최선의 방패다. 저자는 어릴 때부터 타인의 희망이 되고 기대를 한 몸에 받다가 정작 성공을 거둔 뒤 내면의 공허함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을 예로 든다. 성공의 출발 자체가 자신이 간절히 원하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글쓰기 연습의 집단 형식이다. 치료 목적의 글쓰기 모임과 비치료 목적의 모임이 있다. 치료 목적의 모임에는 전문성이 요구된다. 내면의 세계를 깊이 탐구하려는 욕구가 있고 심리적 상처를 치료하고 싶은 사람에게 적합하다. 우리는 어린 시절 어떤 상황에 처했었는지 알 수 있다. 관건은 어린 시절은 이미 지나온 시절이므로 자신이 상처 입은 아이라고 한탄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뇌과학자들은 출생 후 첫 기억이 편도체에 남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구체화되지 않는 비언어적 기억이 새겨지는 것이다. 어린 시절 부모가 격렬히 싸우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면 그 긴장된 분위기와 초조함이 기본 정서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심각한 충돌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사람은 당시의 상처를 평생 잊지 못한다. 이런 정서와 신체의 직감은 모두 암묵 기억이 되어 대뇌의 편도체에 저장된다.

 

암묵 기억 중 불안과 공포는 어느 순간 은밀하게 드러난다. 상대와 충돌이 일어날 때마다 과장되게 당황하게 되거나 친밀한 관계를 대할 때 감정이 제어되지 않고 사소한 일로 배우자와 싸우게 되는 일 등이다. 그 원인은 마음 깊은 속에 싸우는 소리가 떠나지 않고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애착이 중요하다. 안정 애착, 회피적 애착, 양가적 애착 등이 있다.

 

개인의 독특한 경험 구조를 스키마라 한다. 이는 세상이 뒤바뀔 정도의 영향력이 아니면 바뀌지 않는다. 저자는 상처 받은 어린 자신에게 글을 쓸 것을 권한다. 어린 시절 아름다웠던 추억을 써라. 자신에게 쌓인 원망을 어떻게 처리하고 표현하는지가 중요하다. 위기의 순간에 가정은 중요한 정서적 가치를 제공하지만 현대 가정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젊은이들은 결혼에 앞서 자신의 기회비용을 따진다. 결혼에 상응하는 항목으로 자기 계발, 커리어 손실, 자유를 꼽는다. 기회비용이란 하나의 재화를 선택했을 때 그로 인해 포기한 것들 중 가장 큰 것의 가치를 말한다. 결혼 대가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면 결혼 문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미성숙한 방어기제 중 가장 흔한 것이 투사(投射)다.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원시적 방어기제를 쓴다. 분열, 부정, 폄하 등 본능적이며 낮은 수준의 반응 상태를 보인다. 트라우마는 올가미가 아니다. 아들러는 트라우마의 관점을 지지하지 않았으며 트라우마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트라우마를 겪은 후 이전과 똑같이 선택할 수 있고 새로운 방식을 택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자신에게 달려 있다.

 

상황에 대한 통제력 상실은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핵심 요소다. 위험은 지나갔지만 뇌리에 박힌 장면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그 일이 반복해서 상기된다. 비슷한 일에서도 그때를 떠올리며 두려워 한다. 그의 시간은 사건이 일어난 시점에 멈춰 있다. 그 일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강렬한 감정만 재현된다.

 

엄청난 재난과 위험에서 평온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간과되기 쉬운 피해자다. 그들은 이상하리만치 침착하다. 공포, 분노,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충격이 너무 강렬하면 마음을 설명할 수 없고 강렬한 감정이 순간적으로 굳어져 언어 기능을 상실하게 만든다. 이런 피해자는 시간 감각을 잃고 해리 상태가 되거나 긴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트라우마는 사람을 과거의 거센 물결에 좌초시키고 그의 정신 세계를 연옥으로 떨어뜨린다. 트라우마는 우리의 정신세계를 망가뜨려 우리를 생명의 폐허에 가두지만 사랑과 상상력은 이 폐허 위에서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도록 돕는다. 아동기의 트라우마는 무의식에 깊게 뿌리내려 심리적 강박으로 좌절을 불러오고 발달을 후퇴시킨다.

 

현실에서는 어린 시절과 유사한 고통과 콤플렉스를 반복한다. 하지만 이는 다른 각도에서 보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는 본능적 노력이다. 왜 심각하고 강렬한 경험을 만드는 사람과 만나고 비슷한 상황에 매료되어 자신도 모르게 애증의 관계를 맺는 것일까? 트라우마의 기억이 즐거움이나 고통의 깊은 감정이 교차하는 과정에서 옛 원한을 달래고 보상을 얻어 통제감을 회복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 실패는 또 한 번 자신을 자극하고 계속 반복하도록 채근한다. 아버지에 대한 양가감정을 가진 소녀는 아버지는 원래 착한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술주정과 폭력에 의존한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좀 더 잘했다면, 아버지를 더 사랑했다면 아버지는 분명 좋아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무의식에서 아버지를 구할 수 있기를 갈망했다. 그 감정이 아버지와 아주 닮은 남자 친구에게 이입되었다.

 

저자는 글쓰기는 안전한 자아 표현 방식으로 치유의 가능성을 높여준다고 말한다. 감정을 글로 쓴다고 당장 정서적 이완이나 쾌락으로 전환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심리적 불안정 문제로 건강센터를 찾는 비율이 낮아졌다. 저자는 글쓰기 과정에서 감정 상태를 조절하기 어렵다면 멈추라고 조언한다. 준비가 덜 되었다면 억지로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 심각한 트라우마 사건을 겪었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트라우마를 보는 것은 생며에 대한 자각이고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것은 인생에 대한 무거운 수용이다. 트라우마를 남긴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위대한 자비다. 트라우마에서 자신을 구하는 것이 불안감을 해소하는 근본적 해결책이다. 저자는 친밀한 관계, 신뢰 관계, 사회적 관계를 논한다. 친밀한 관계는 사적으로 연결된 밀접 관계다. 신뢰 관계는 안정에 기반을 둔 관계로 서로 지지하고 협력해서 목표를 달성한다.

 

사회적 관계는 상호 우호적, 호혜적이어야 한다. 척도가 필요하다. 경계가 너무 경직되면 간격이 벌어지고 모호하면 독립된 공간을 잃고 서로 침해하고 피해를 주게 된다. 스스로 하는 글쓰기 연습은 1) 프리라이팅, 2) 자아 관심, 3) 자체 창작 등의 단계를 갖는다.

 

삶의 질을 추구하는 사람은 에너지가 넘친다. 자연을 숭상하며 자율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한다. 어떤 이들은 하루 하루 퇴화한다. 의존적이면서 독립된 인격 없이 정신세계가 공허하면 삶이 불안해진다. 타인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고 조금씩 관계의 울타리를 좁혀가며 삶이 허투루 소모되지 않도록 불필요한 관계는 정리해야 한다. 세상이 정한 행복 모델은 내 삶의 의미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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