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만든 세계
션 B. 캐럴 지음, 장호연 옮김 / 코쿤북스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진화론과 창조론을 가르는 가장 핵심적인 단어는 우연(을 인정하는가 아닌가)이다. 이를 뒷받침할 말이 “그저 우연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신을 우주의 권좌에서 끌어내리기에 충분”하다는 말이다. 저자 션 캐럴은 ‘우연과 필연’의 저자 자크 모노가 말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자크 모노는 인간은 셀 수 없이 많은 우발적 사건들이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말을 한 분자생물학자다.

 

저자는 6600만년전 소행성 충돌로 지구에 살았던 종의 3/4이 멸종한 사건을 예로 들며 그 사건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기에 있기 어려웠을 것이라 말한다. 소행성 충돌로 공룡이 멸종했는데 그 사건 이후 포유류 몸집의 평균 및 최대치가 가파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승자와 패자는 우연이 판가름했다. 이 사건을 K - Pg(Cretaceous - Paleogene; 백악기 - 고제삼기; 古第三期) 멸종이라 부른다.

 

우주에서 날아온 거대한 돌이 마지막 1초 동안 5만 피트의 대기를 가르고 지구(멕시코 칙슬루브 총돌구)에 떨어졌다. 이 충돌로 진도 11이 넘는 지진(역사상 기록된 최악의 지진보다 100배 이상 강력한 지진)이 일어났고 유카탄 대륙붕이 내려앉았으며 높이 200미터 이상의 초대형 쓰나미가 멕시코만과 카리브해를 휩쓸었다. 화재로 인해 다량의 그을음이 생겨났고 여기에 충돌로 발생한 먼지, 엄청난 양의 유황 수증기까지 더해지면서 지표면에 도달하는 태양빛이 여러 해 동안 대거 감소했다.

 

그 결과 육지와 바다에서 광합성과 식량 생산이 끊어졌다. 육지의 기온은 금세 영하 7도까지 곤두박질쳤고 최소 수십년 동안 그런 수준이 이어졌다. 탄산염이 풍부한 충돌지에서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가 대기로 방출되는 바람에 바다는 급격하게 산성화되었다. 생명은 뜨겁게 구워졌다가 차갑게 얼고 굶주림에 허덕였다.

 

세(世)와 세(世)의 경계는 일반적으로 암석을 살펴서 바다와 육지에서 생명의 조건이 바뀐 것을 반영하는 변화가 있는지를 보고 정한다.(56 페이지) 중요한 점은 지구 자전 속도(시속 1000마일)를 고려하면 소행성이 30분만 일찍 왔다면 대서양에 떨어졌고 30분 늦게 왔다면 태평양에 떨어져 공룡은 살아 남았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사람과(호미니드)는 80만년전에서 100만년전 사이에 불을 통제하는 법을 익혀서 그것으로 사냥하고 요리하고 몸을 따뜻하게 했다.(78 페이지) 누구보다 먼저 신의 섭리를 우연으로 대체한 사람이 다윈이다. 비판자들은 우발적 변이가 담고 있는 의미를 물고 늘어졌다. 조물주나 지성이 행하는 역할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다윈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였다.(109 페이지)

 

대부분의 돌연변이는 여러 이유에서 아무런 영향이 없다. 동물과 식물의 유전체에는 실질적 기능이 전혀 없는 DNA 서열이 많다.(인간의 경우 95퍼센트) 이런 부위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대체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같은 아미노산을 생산하도록 하는 유전 암호가 여러 개 존재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중복성은 유전자 돌연변이가 일어난다고 해서 단백질 서열이 바뀌는 것이 아닌 이유다. 단백질 서열을 바꾸는 돌연변이가 일어난다 해도 기능에 아무런 영향이 없을 수도 있다.

 

창조적 돌연변이는 소수이며 희귀하다. 우연은 창조하고 자연선택은 발명품을 확산시킨다. 포유류와 조류 같은 동물들 사이에서 완전하게 종분화가 일어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 200만년으로 놀랄 만큼 일정하다. 생명의 나무에서 가지가 갈라지는 것은 개체군에서 무작위적 돌연변이가 꾸준하게 축적되어 나타나는 불가피한 결과다.(160 페이지) 모든 유기체, 모든 세포에서 DNA(이중나선 구조로 되어있는 고분자화합물)가 복제될 때마다 변화(치환, 삽입, ‘결실; 缺失‘)가 일어난다.

 

돌연변이는 피할 수 없는 필연의 현상이다. 저자는 우연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점은 심오한 깨달음이라고 말한다. “맹목적 우연이 생물권에서 일어나는 모든 새로움, 다양성, 아름다움의 원천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212 페이지) 저자는 우리가 신의 뜻이 아니라 우연에 의해 여기 있는 것이라면 무엇을 해야 할까? 묻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