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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21년 10월
평점 :
앤드루 놀의 ‘지구의 짧은 역사’는 여덟 가지 지구를 소개한 책이다. 1) 화학적 지구. 2) 물리적 지구. 3) 생물학적 지구. 4) 산소 지구. 5) 동물 지구. 6) 초록 지구. 7) 격변의 지구. 8) 인간 지구 등이다. 이 책의 주지(主旨)는 셋이다. 1) “지구의 모든 것은 역동적이다.” 2) “대산소화 과정 및 흙은 물리적 과정과 생물학적 과정의 상호작용의 결과다.”. 3) ‘인간이 멸종으로 치닫는 현 상황의 책임자다.’ 등이다.
화학적 지구편에서는 우주와 그 역사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가장 덧없이 사라지는 빛이라는 원천에서 나온다는 말이 관심을 끈다. 반면 우주의 건축자는 중력(重力)이다. 별빛의 시대가 시작되었을 때 우주는 주로 수소 원자들이 퍼져 있는 차가운 곳이었다. 우리 행성을 이루는 철, 규소, 산소, 우리 몸을 이루는 탄소, 질소, 인 같은 원소들은 후대의 별에서 기원했다. 빛이 우주의 역사를 말해준다면 암석은 우리 행성의 역사를 말해준다.(30 페이지)
이런 점에서 보면 별이 바위에 스며들어 꽃이 되었다는 오규원 시인의 시가 얼마나 의미심장한지 알 수 있다. 지구는 한 손으로 자신의 역사를 쓰면서 다른 손으로는 지워버린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지우는 손이 더 바쁘게 움직였다.(32 페이지) 고요하게만 보이는 달도 시적 영감의 대상이기 이전에 격변의 산물이다.(35 페이지) 지구는 짙은 대기로 감싸여 있었지만 그 공기에는 산소가 없었다. 시간 여행자인 사람이 그 원시 지구로 간다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51 페이지)
물리적 지구편에서는 지구 환경의 항상성은 융기와 침식의 균형을 통해 역동적으로 유지된다는 말이 핵심이다. 단층과 습곡은 지층이 수직 운동뿐 아니라 수평 운동으로도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60 페이지) 지각의 무덤은 섭입대다. 섭입대는 한 지각판이 다른 지각판 밑으로 가라앉으면서 지각의 암석을 원래 기원했던 맨틀로 돌려보내는 곳으로 지각판의 가장자리를 따라 뻗어있다.(65 페이지)
생물학적 지구편에서는 단백질을 만들려면 DNA 명령문이 있어야 하고 거꾸로 DNA를 복제하려면 단백질이 필요하다는 글이 눈길을 끈다.(91 페이지) 지구는 기나긴 역사의 대부분에 걸쳐서 생명의 행성이었다. 별의 진화 모형은 40억년전 태양의 밝기는 지금의 약 40퍼센트에 불과했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구가 얼음덩어리가 되지 않은 것은 온실가스 때문이다.
온실가스는 21세기인 지금 지구 온난화의 원인으로 취급받지만 더 정기적으로는 지구의 서식 가능한 기후를 유지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대기의 이산화탄소는 지금보다 농도가 100배 이상 높았을 것이다. 그래서 어린 지구의 표면에 액체 물이 유지될 만큼 지구를 따뜻하게 유지했을 것이다.(107 페이지) 무수한 실험을 통해 우리가 배운 것 중 하나는 생명의 기원으로 이어질 화학반응은 산소가 존재했을 때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명은 현대인의 눈으로 볼 때 지구임을 거의 알아보기 어려운 환경에서 출현했다. 물로 뒤덮여 있었고 육지는 거의 없었으며 대기에 이산화탄소가 많은 데 비해 산소는 거의 없었고 수소를 비롯한 기체들이 여기저기 널려 펴져 있는, 온천처럼 부글거리며 솟아오르는 세계였다. 시작은 이렇게 초라했지만 생명은 불어나고 다양해지면서 지구를 세균, 돌말, 세쿼이아, 우리로 가득 채웠다.(108 페이지)
산소 지구편에서는 남극의 얼음에 갇힌 물방울 가운데 200만년 이상 된 것이 없어 암석 기록에 새겨진 화학적 흔적을 토대로 원시 대기에 대해 추론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암석과 광물의 조성은 형성될 때 공기와 물에 어떤 식으로 접촉했는지를 보여준다. 지구 역사의 거의 전반기에 해당하는 기간에 지구의 대기와 대양에는 본질적으로 산소 기체가 없었다. 이런 곳에서는 인간은 생존할 수 없었다. 물론 무산소 지구에서도 생명(미생물)은 있었다.
오래 유지되던 지표면의 상태가 바뀐 것은 24억년전이다.(122 페이지) 햇빛이 들지만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 탄소 순환이 일어났다. 지구의 유년기는 철기시대였다.(125 페이지) 지구 대기에 산소를 불어넣을 수 있는 과정은 오로지 산소를 생성하는 광합성뿐이다.(127 페이지) 지구 대산소화 사건은 대변혁이었고 이 혁명을 일으킨 주인공은 남세균(藍細菌; 시아노박테리아)이었다. 남세균은 산소성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세균이다.
인은 암석이 자연력에 풍화될 때 흘러나와 강물에 실려 바다로 유입된다. 광합성 생물은 이 인을 흡수하여 생명 분자를 만드는 데 쓴다. (130 페이지) 지구가 성숙함에 따라 크고 안정적인 대륙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침식되어서 바다로 유입되는 인의 양도 늘어났다. 이 결과 남세균이 생태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올라섰다. 남세균이 진화함에 따라 대산소화사건이 일어났다. 대산소화 사건은 단순히 지구의 물리적 발달의 산물이 아니라 지구와 생명의 상호작용의 결과다.(131 페이지)
동물지구편에서는 에디아카라 화석군이 나온다. 선캄브리아기 시대 말에 형성된 세계 각지의 해성층에서 발견되는 화석군이다. 에디아카라는 그 화석군이 최초로 발견된 오스트레일리아 남부의 지명이다. 에디아카라기는 2004년에야 국제 지질연대표에 추가된 시대다.(149 페이지) 저자는 “에디아카라 화석과 캄브리아기 화석은 종류가 놀라울 만큼 다르지만 관찰된 생물학적 차이가 진화가 아니라 보존 양상과 환경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말한다.(159 페이지)
캄브리아기의 기후가 지금보다 따뜻했다는 증거는 몇 가지 방면에서 나온다. 눈덩이 지구의 꽁꽁 언 기후에서 벗어난 뒤 진정한 온실이 된 셈이었다.(164 페이지)
초록 지구편에서는 육상식물에 대해 알 수 있다. 오늘날 약 40만종의 육상식물은 지구 광합성의 절반과 지구 총 생물량의 80퍼센트를 차지한다. 지구를 초록으로 뒤덮은 식물은 우주에서도 보이는 우리 행성의 주된 특징 중 하나다.(171 페이지) 저자는 많은 세포학적 특징들과 분자생물학적 특징을 볼 때 육상식물은 민물에 사는 녹조로부터 진화한 것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물론 강과 연못에서 마른 땅으로 진화 여행을 하려면 건조 방지, 기계적 지지, 자원 획득 등 실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다.
물에 에워싸여 있을 때 광합성 생물은 마를 위험이 없지만 육지에 있을 때는 세포에서 계속 수증기가 증발한다. 그래서 민물을 계속 빨아들이지 않는다면 금방 시들어 죽을 것이다. 수생 조류에게 물은 몸을 받쳐주는 지지대 역할을 하지만 육상식물에게 공기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없다. 육지의 광합성이 필연적으로 물 손실을 수반하므로 식물은 주변에서 물을 흡수하여 몸 전체로 수송하는 메커니즘이 필요하다.(175 페이지)
대다수 식물에서는 영양소 흡수의 상당 부분을 뿌리와 긴밀한 협력을 맺고 살아가는 균류가 맡는다. 식물은 물과 영양소를 위쪽으로 운반하고 광합성을 통해 생산한 먹이를 온몸으로 보내야 한다. 이 일을 관다발이 수행한다.(177 페이지) 관다발에서 물을 운반하는 세포는 벽이 두껍다. 이 두꺼운 벽은 식물이 서 있도록 지탱하는 기계적 강도를 제공한다.
저자는 책 허파(book lung)를 말한다. 절지동물문 거미류의 호흡 기관을 책 허파라고 한다. 배의 아래쪽 앞에 몸 표면이 푹 패어서 생긴 주머니 속에 많은 얇은 주름이 책장이 겹쳐진 것처럼 쌓여 있다고 해서 책 허파라고 한다. 다른 말로 서폐(書肺), 폐서(肺書)라고도 한다. 책 허파 안에는 공기와 접촉하는 표면적을 최대로 늘리기 위해 책장이 접혀 있는 것처럼 복잡하게 접혀 있는 조직이 있다. 책 허파는 수생 조상의 아가미에서 진화한 듯 하다.
저자는 실러캔스와 틱타알릭을 언급한다. 흙은 생물의 육지 정복의 산물이다. 우리는 흙이 지구 표면이 물리적으로 변형된 형태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물리적 과정과 생물학적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다. 육상 생태계가 발달할 때 기름진 토양도 함께 발달한다.(185 페이지) 저자는 공룡은 멸종한 것이 아니라 참새, 지빠귀, 비둘기 등 살아 있는 조류들로 이어졌다고 말한다.(195 페이지) 조류가 공룡의 후손이라는 개념은 토마스 헉슬리에게서 유래한다.
격변의 지구편에서는 충격 석영이 관심을 끈다. 충격 석영은 일시적으로 온도와 압력이 높아질 때 만들어진다. 거대한 운석이 충돌할 때 생긴다는 의미다. 지름 200미터의 거대한 운석 크레이터가 퇴적층 아래에서 발견되었다.(207 페이지) 현재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생물 다양성은 모든 면에서 집단유전학 못지않게 대멸종과 환경 변화의 산물이다.(209 페이지)
지질학계에서 트랩은 현무암이나 다른 검은 화산암이 대규모로 쌓여 있는 용암대지를 가리킨다. 대개 마치 계단처럼 층층히 겹쳐 올라가면서 쌓여 있다. 계단(trappa)이라는 스웨덴어에서 유래했다.(214, 215 페이지) 철원 한탄강을 옛날에 체천이라 부른 것이 생각난다. 체는 계단을 의미한다. 시베리아 트랩 화산 활동은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대기로 방출해 온실효과를 일으켰다. 그 결과 지구 온난화가 일어났다.(217 페이지)
대멸종은 고생대를 끝장내고 중생대를 열었다. 마찬가지로 백악기 말 격변은 중생대라는 책을 덮고서 우리의 신생대 책을 펼쳤다.(219 페이지) 2억 2천 5백만년전에 생성된 시베리아 트랩(페름기 말 대멸종을 낳은 화산 폭발의 결과물)은 종말을 떠올리게 하지만 지질학적으로 볼 때 유일무이한 것은 아니다.
저자는 저마다 다른 양상을 보이면서 반복되는 대멸종 사건들을 일반화할 수 없지만 환경 교란이 빠르게 일어났다는 점은 공통점이라고 말한다.(225 페이지) 대멸종은 지구 내에서 또는 태양계의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메커니즘을 통해 추진되는 일시적이지만 심각한 환경 교란을 반영한다. 대멸종은 진화 역사를 빚어내는 데 분명히 주된 역할을 했다. 현대 세계가 포유류로 가득한 것은 어느 정도는 공룡이 멸종했기 때문이다. 어류는 백악기 말 대멸종으로 암모나이트가 사라진 뒤에야 다양해졌다.
인간 지구편에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루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오래 씹는 데 알맞은 커다란 어금니가 있었다. 호모 에렉투스는 아프리카뿐 아니라 유라시아 전역에서 번성했다.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오래된 화석은 모로코의 30만년 된 지층에서 나왔다.(239 페이지) 빙하기 지구에서 우리의 직계 조상이 살고 있을 때 사람속은 적어도 세 종이 더 있었다. 네안데르탈인, 호모 플로렌시엔시스, 데니소바인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신들이 동물을 창조했을 때 각 동물에 능력을 부여하는 일을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에게 맡겼다. 에피메테우스가 치타에게는 빨리 달리는 능력을, 개에게는 갑옷을, 코끼리에게는 커다란 몸집을 부여했다. 사람은 불행히도 가장 나중에 서 있었기에 가질 만한 것이 없었다. 이에 프로메테우스가 신에게서 언어, 불, 기술의 능력을 훔쳐서 사람에게 부여했다.(243 페이지) 언어, 불 제어 능력, 도구 제작 능력을 갖춤으로써 인류는 동물계의 다른 종들과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인류는 식량이나 거래를 위해 동식물을 선택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종을 본래의 서식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김으로써 생물 다양성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있다.(250 페이지) 무엇보다 남획(濫獲)이 심각하다. 광합성과 호흡은 서로 거의 균형을 이룬다. 완전히는 아니다. 호흡 및 관련 과정을 피해서 퇴적물이 되는 유기물이 있기 때문이다. 이 유기물 중 일부는 변형되어 석유, 석탄, 천연가스를 형성한다.(252, 253 페이지)
이런 화석 연료들은 수백만년에 걸쳐서 아주 천천히 지표면의 탄소 순환 과정으로 복귀할 것이다. 이산화탄소는 화산 분출을 통해 대기로 추가되고 화학적 풍화를 통해 제거된다. 제거된 탄소는 석회암으로 쌓인다. 기후 변화는 많은 종의 분포 양상을 바꿀 것이다. 예전에 서로 만날 일이 없었던 종들이 한곳에 모이게 될 것이고 그런 일이 일어날 때 종간 경쟁과 생태계 복원력에 어떤 결과가 빚어질지 우리는 거의 알지 못한다.(261 페이지) 해수면 상승이 큰 문제다. 대기 이산화탄소가 증가하면 바다도 따뜻해진다.
바닷물은 따뜻해질수록 물에 덜 녹게 된다. 바다에서 산소가 사라질 것이다. 산성화가 진행될 것이다. 인류가 일으킨 세계적 변화와 연관된 모든 현상 중에서 아마 가장 놀라운 점은 인류의 반응일 것이다. 현재까지 인류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264 페이지) 저자는 전 세계가 힘을 모은다면 우리는 안전하고 온전한 세계를 물려줄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물려받은 세계는 우리의 것임과 동시에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268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