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인간의 탄생 - 체온의 진화사
한스 이저맨 지음, 이경식 옮김, 박한선 해제 / 머스트리드북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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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이저맨의 ‘따뜻한 인간의 탄생’은 체온의 진화사에 대한 흥미로운 책이다. 몇몇 유의미한 실험들을 바탕으로 사회심리학자로서의 지론을 펼쳐나간 책이다. 저자의 지론이란 언어가 공유되는 폭에 의해 규정되는 사회적 동물인 우리에게 물리적 온도와 신뢰, 사랑과 우정이라는 사회적 개념들 사이에는 총쳬적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강조점을 두는 부분은 우리의 뇌는 사회적 체온을 예측하는 기상 예측 기계(43 페이지)라는 점이다.

 

중요하게 보어야 할 점은 뇌뿐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고 경험하는 감각이 인지의 일부분을 이루는 것을 의미하는 체화된 인지라는 개념이다. 펭귄 무리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한덩어리로 뭉쳐 있는 행동을 의미하는 허들링도 언급되어 있다.

 

허들링을 하는 동물들은 차별을 막기라도 하려는 듯 주기적으로 서로 자리를 바꾼다.(114 페이지) 허들링은 몸 떨기보다 체온을 끌어올리는 데 훨씬 효과적인 수단으로 사람에게는 문화로 넘어가는 다리이자 난방장치와 같은 신뢰할 수 있는 여러 체온 조절 방식으로 넘어가는 다리이기도 하다,(242 페이지) 사이클링을 하는 사람들이 몰려다니는 행동을 의미하는 펠로톤도 같은 차원으로 논할 수 있다.

 

동면 및 휴면만이 아니라 허들링을 하는 상태에서 동면을 하는 것도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한 방편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이 사회적 연결이 돈독한 개체일수록 겨울을 무사히 나는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다.(110 페이지) 우리는 펭귄과 유사하다. 저자에 의하면 펭귄이 우리를 닮은 것은 외모만이 아니다. 인간과 펭귄은 모두 유기체로서 각자의 기능을 최적화하고 궁극적으로 생명을 이어가는 데 필수적인 체온 조절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같다.(126 페이지)

 

혈관을 수축시키는 것과 갈색지방조직을 활용하는 것도 인간과 펭귄이 공히 가지고 있는 체온조절 수단이다.(133 페이지) 체온 조절은 숨쉬는 것 다음으로 긴급한 문제다. 물론 인간은 인지 능력이 뛰어난 인간은 문화적으로 한층 진화한 수단인 열 생산의 외주화를 이루었다. 불을 발견하고 피우는 것, 쉼터를 발견하고 만드는 것, 쉼터를 따뜻하게 데우는 한층 정교한 기술이 이에 속한다.(168 페이지)

 

외주화라고 했지만 인류의 두뇌 용량이 3000년전부터 급속히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이는 집단지성에 의존한 것 즉 지식을 외부에 저장한 것 즉 외장화란 말과 함께 논의할 만한 개념이다.(2021년 10월 25일 한겨레신문 기사 ‘인류, 3천년전부터 정보의 외장화로 뇌 용량 줄였다’ 참고) 저자는 인간의 뇌 크기는 대략 320만년전에 지구 전체가 차가워지면서 진화적으로 한층 더 커졌을 것이라 말한다.(256 페이지)

 

호모 딕티우스라는 개념도 있다. 관계망 인간을 의미하는 말이다. 인간은 고도로 발달한 인지 능력에 의존해 사회적 체온 조절을 한다.(141 페이지) 저자는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에 대해서도 논의한다. 시상하부가 유기체를 제어하지만 유기체와 연결되어 있을뿐 유기체의 한 부분이 아니라는 것이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의 기본 발상이라는 것이다.(156 페이지)

 

물론 시상하부가 단일한 온도조절장치라는 발상은 데카르트 심신이원론의 패러다임에 한층 더 잘 들어맞지만 현대 생리심리학이 발전함에 따라 인지(認知; cognition)에 대한 인식은 신체와 사회적 세상 속으로 확장되었으며 이런 인식에서는 정신과 육체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른 사람들까지도 모두 철저하게 하나로 통합된다.(166 페이지)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뇌의 핵심기관인 시상하부는 자율신경계와 호르몬 분비 등을 조절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따뜻한 사람과 함께 있고 싶다는 열망은 중요하다. 따돌림을 당해 혼자 쓸쓸하게 버림받는 상황을 피하겠다는 인간의 열망으로부터 사회적 생각과 정서의 한층 추상적인 패턴이 만들어진다.(163 페이지) 감정이란 다른 사람들과 자기 자신 사이의 관계를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장치다.

 

감정에는 상당한 수준의 사회적 차원의 의미가 녹아들어 있고 이런 사회적 의미는 우리가 애착 대상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178 페이지) 저자는 두 가지 진화를 이야기한다. 생물학적 진화는 예측하고 계획하게 해주는 인지 플랫폼을 제공하고 문화적 진화는 예측 범위를 확장하고 정확성을 한층 높여주었다.(169 페이지)

 

생물학적 진화가 멈춘 곳에서 사회적 진화는 한층 더 강력하게 전개된다.(186 페이지) 가장 최신의 디지털 장치와 인공지능 장치를 갖춘 중앙난방장치를 발명한 우리 인간의 문화적 실천은 생물학적 진화에 뿌리를 두고 있을뿐만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인 진화과정에서 우리의 유전자 구성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259 페이지)

 

인간에게 사회관계망의 다양성이 사회관계망의 크기보다 체온 조절에 훨씬 더 중요하고 신뢰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간의 사회적 체온 조절 연구는 한층 흥미로운 동시에 복잡하다.(186 페이지) 인간은 다양한 이유로 여러 가지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며 살아간다. 그 이유들 가운데 하나가 사회적 체온조절이다.(197 페이지) 집은 자기와 가족, 손님을 위한 사회적 체온 조절 도구다.(273 페이지)

 

사회적으로 체온을 조절하겠다는 욕망은 자기가 가진 정보를 동반자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을 때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마음이 편안한지 여부에 따라 갈린다.(243 페이지) 사회적 체온 조절은 우리가 다양한 관계망에 관여하고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문화와 사회와 문명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다.(282 페이지)

 

저자는 사회적 체온 조절과 감정, 문화를 매개하는 많은 메커니즘이 아직 선명하게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매우 주관적이긴 하지만 흥미진진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다고 말한다.(244 페이지) 추운 날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게젤하이드(아늑함) 분위기를 즐겨보라는 것이다. 핀란드는 겨울이 많이 추운 나라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봄철이 시작될 무렵에 자살률이 크게 증가한다. 자살률 증가와 상관성이 있는 것은 내려가는 기온이 아니라 올라가는 일조량이다. 길고 추운 겨울이 지나고 갑자기 기온이 올라가 따뜻해진 상황에서 갈색지방조직의 활성화가 체온 조절 메커니즘을 깨뜨리는 바람에 자살 위험이 커진 것이라 할 수 있다.(362 페이지) 중요한 사실은 온도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거나 슬프게 하거나 부유하게 하거나 가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온도는 우리로 하여금 그런 사회적 수단이나 장치를 극복하고 적응하고 발명하라고 재촉할 뿐이다.(368 페이지) 체온 조절이 신체 전체에 총괄적으로 작동하는 원시적이고 근원적인 체계들에 의존한다는 것, 시상하부와 같은 한층 고차원적인 신경 체계들에 의해 연속적으로 조정된다는 것 그리고 대뇌피질의 가장 높은 수준들까지 올라간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385 페이지)

 

저자는 인간이 은유를 만들 수 있다고 해서 우리가 하는 세상의 모든 경험이 우리가 만드는 은유에 의해 조정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말한다.(396 페이지) 가령 사회적 체온이란 말 자체가 영감에 찬 은유다. 이제 마지막 문장을 보자. “사회적 체온 조절은 개인들이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자 최종적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렌즈이기도 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로서 우리 모습, 또 이런 필요성을 이웃과 국가 그리고 사회와 문명으로 전환해왔던 주체로서의 우리 모습을 말이다.”(408 페이지)

 

이 두 문장은 자크 모노가 일갈한 “왕국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 자신에게 달려 있다.”라는 ‘우연과 필연’의 마지막 문장을 연상하게 한다기보다 이어 읽게 한다고 할 수 있다. 이상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저자가 사회심리학자인 이유다. 우리는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왕국은 아니더라도 아름다운 세상은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진정한 출발은 사회적 협력과 나눔, 그리고 따뜻한 관계로부터 비롯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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