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박 팀장님과 함께 광진구 향토사학자 김민수(金玟秀) 선생님을 만나 대화 시간을 가졌다. 광진구 인물을 소재로 한 동화 기획에 필요한 절차였다. 나는 ’호모 루덴스‘의 저자 요한 하위징아가 ’문화사의 과제‘란 책에서 한 말을 전했다. "아마추어 향토사가 중에도 역사에 대한 현자가 있는가 하면 대학의 저명한 교수들 중에도 둔감한 지식의 소매상들도 있는 법이다"란 말이다.

 

우리는 김 선생님에게서 광진구 화양정 느티마당의 안내판에 모윤숙 시인의 시가 게재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 느티나무는 모윤숙 시인의 옛집터에 자리한 나무다. 모윤숙 시인은 ‘렌의 애가(哀歌)‘라는 제목의 산문 작가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렌은 wren인데 무심코 지나칠 법하지만 굴뚝새를 이르는 말이다.

 

박 팀장님께 유명 건축물도, 인물도, 역사적 사건도 종로, 중구, 성북 등에 편중된 현실이 안타깝다는 말씀을 드렸다. 하지만 여지는 크지 않아도 새 인물을 찾아보겠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다음 만날 날을 9월 17일로 잡고 헤어졌다. 상황을 보아서 광진구의 나무를 대상으로 동화를 만드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건의할 생각이다. 요즘 나무나 꽃을 세밀화로 그리는 것이 인기를 얻고 있으니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이 경우 동화화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역사적 인물은 이미 충분한 이야기가 축적되어 있으니 다듬고 각색하면 되는 데 비해 나무는 단순히 세밀화로 구성하지 않는 한 작품화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대망(待望)의 9월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사실 대망이라 했지만 이것 저것 하느라 더 바빠지는 것일 수도 있다. 글도 쓰고 답사도 갈 것이라 계획한 달이다.

 

앞에서 말한 부분과 관련해 “모든 정상적인 사람은 나이가 들면 향토사학자가 된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이 말은 한 건축가가 스쳐 지나가듯 들은 출처와 기억이 불분명한 말이지만 그 건축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설득력이 있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는 말을 했다. 모두라고 할 수 없지만 젊어서 역사, 문화, 유적 등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나이가 들면 그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따로 시간을 내어 관련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는 것 같다. 심지어 해설을 하는 사람들도 젊어서 관심이 거의 없던 경우가 많다.

 

박 팀장님께 고향이 어디냐고 여쭈어 궁궐해설사 동기 이 선생님과 동향(同鄕)이라는 답을 들었다. 어제는 평소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해 6월 혜화 해설 전에 대학로 학림(學林) 다방에서 박 팀장님을 만나 업무 이야기를 하고 인근 음식점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이 만남 후 나는 7월(어린이 대공원)과 11월(광나루) 해설을 했다.

 

박 팀장님께서 내 해설에 참여하신 것은 2020년 4월(청계천), 5월(올림픽공원), 6월(혜화)이었다. 그러니 내가 박 팀장님 앞에서 행한 세 차례의 해설은 테스트를 받은 시간이었다 할 수 있다. 어떻든 내가 기억하기로 학림은 원래 학림(鶴林)이었다.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에 들자 사라쌍수 숲이 학처럼 하얗게 변해 학림(鶴林)으로 불렸었다.

 

어제 김 선생님을 뵙기 전에 박 팀장님과 점심 식사를 한 곳은 가온(家溫)이었고 일 이야기를 나눈 곳은 카페 피아트(Cafe Fiat)였다. 만남 후 교보에 들러 김혜나 작가의 장편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을 샀다. 요가 수련을 위해 인도에 간 주인공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본문에 나오는 아쉬탕가 요가 이야기를 듣고 생각한 것이 있다.

 

여덟을 의미하는 아쉬토(astau)와 나뭇가지를 의미하는 앙가(anga)를 합한 말이다. 요가 수행의 여덟 가지 측면을 나뭇가지에 비유한 말이다. 아쉬탕가라는 말만을 아는 사람이 그 개념의 근원인 아쉬토 플러스 앙가라는 말을 하는 사람을 틀렸다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도 요가 수행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읽는 것은 혹시 만날 수도 있는 분과의 대화를 위해 준비하는 차원이다.

 

이 준비(책 사기, 읽기, 기억하기)는 무용(無用)한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한 지인분께서는 내게 그 사람을 만나 말하기보다 듣고, 답하기보다 답을 들을 수 있도록 유도하라고 조언했다. 유도하더라도 알고 해야 하리라. 우선 읽자. 소설을, 광진구 자료를, 연천 자료를, 기타 필요한 과학과 인문 책들을. 내일부터 3일 정도는 나도 몸 쓰는 보조 일을 해야 하니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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