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 뇌가 당신에 관해 말할 수 있는 7과 1/2가지 진실
리사 펠드먼 배럿 지음, 변지영 옮김, 정재승 감수 / 더퀘스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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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은 쉼없이 발전하는 학문 분야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그뿐 아니라 이렇게 과학적이고 유려하게, 어느 면에서는 수행자처럼 뇌과학을 설명할 수 있는가, 하고 놀라게 하는 책이다. 저자는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로 우리에게 알려진 신경과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기존 학설과 다른 부분을 많이 주장한다. 가령 인간 뇌는 생각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라 점차 크게 진화하는 몸을 유지하기 위한 과정에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던 몇 개의 세포가 점점 더 복잡해져 뇌로 진화했다.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는 것을 신체 예산이라 하고 영어로는 allostasis라 한다. 

 

이는 항상성 즉 homeostasis를 더욱 발전시킨 개념이다. 항상성이 국소적인 메커니즘에 따라 특정 피드백 사이클 내에서의 음성(陰性) 또는 양성(陽性) 피드백에 의한 균형 회복만을 의미했다면 알로스타시스는 자극에 대해 자율신경계, 시상하부 뇌하수체 부신 축, 심혈관계, 신진대사, 면역계 등을 포함한 전신의 모든 체계가 협응하여 자극에 대한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가는 역동적인 조절과정을 말한다.

 

정리하면 뇌의 가장 중요한 일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벌레에서 진화해 아주아주 복잡해진 신체를 운영하는 것이다. 인간의 사고(思考)는 커진 몸의 결과물이다.(31 페이지) 이 말을 들으며 베르그송의 말을 생각하게 된다. 그는 커진 육체는 영혼의 보충을 기다린다는 말을 했다.

 

어떻든 동물들의 몸이 커지기 시작한 것은 사냥 즉 포식 행위가 등장한 캄브리아기다. 이전에도 동물들은 서로 먹었지만 캄브리아기에 목적의식을 가지고 먹게 된 것이다. 기존 학설과 다른 또 하나의 주장은 뇌는 생존본능을 담당하는 파충류의 뇌, 감정을 주관하는 포유류의 뇌 즉 변연계, 이성(理性) 활동을 담당하는 신피질 등 삼위일체 구조가 아니라 하나라는 말이다.

 

저자는 신피질은 사실 말이 신(新)자가 들어갈뿐 새롭지 않다고 말한다.(‘초신성; 超新星’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별이 아니라 폭발해 소멸하는 별이듯.) 뇌의 3 구조설은 20세기 중반 내과 의사 폴 매클린이 공식화했는데 이는 다윈의 진화에 대한 생각과도 일맥상통한 생각으로 후에 칼 세이건에 의해 널리 유포되었다.(플라톤은 인간 마음을 파충류의 뇌, 변연계, 대뇌피질이 싸움을 벌이는 전쟁터로 비유했다.)

 

과학자들은 최근 모든 포유류의 뇌가 단 하나의 제조계획에 따라 만들어졌으며 파충류와 다른 척추동물들도 같은 계획대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46 페이지) 인간 뇌에 새로운 부분은 없다. 우리 뇌에 있는 신경세포들은 다른 포유류의 뇌에도 들어 있고 다른 척추동물들에서도 찾아낼 수 있다. 신피질은 없다는 의미다.(49 페이지)

 

저자의 서술을 통해 감정은 비합리적이고 이성은 합리적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관념임을 알게 된다. 인간 뇌는 복잡성이 높다. 이런 점 때문에 우리는 많은 것을 기억할 수 있다. 뇌는 컴퓨터에 파일을 저장하는 식으로 기억을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와 소용돌이치는 화학물질을 사용해 필요할 때마다 재구성한다. 우리는 이 과정을 기억이라 부르지만 사실 조합하는 것이다.

 

우리가 기억을 불러올 때마다 매번 다른 신경세포 덩어리들이 그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다. 이를 축중(縮重; degeneracy)이라 한다. 이는 타락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다른 요소들이 같은 기능을 하거나 같은 결과를 내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 뇌는 고도로 복잡하지만 진화의 정점은 아니다. 우리 뇌는 우리가 거주하는 환경에 잘 적응했을 뿐이다.(75 페이지)

 

구석기 시대의 우리 조상들이 바윗덩어리를 집어들고 거기서 미래의 손도끼를 상상해내기 위해서는 복잡한 뇌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과학자들이 뇌와 그 상호작용에 관해 더 많이 알아낼수록 우리는 뇌의 구조와 기능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다. 뇌를 복잡한 네트워크로 이해하면 이성적인 특대형 신피질 같은 것 없이도 우리 뇌가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만드는지 숙고할 수 있다.

 

저자는 유전자와 환경은 격렬하게 탱고를 추는 연인처럼 서로 너무 깊게 얽혀 있어 본성이나 양육 같은 별개의 이름으로 불러봐야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 아기에게는 세심하게 돕는 양육자와 충분히 풍족한 환경이 필요하다. 시각에 가장 중요하게 관여하는 뇌 영역은 아기의 망막이 정기적으로 빛에 노출될 때만 정상적으로 발달한다.

 

어린 뇌에게 역경과 빈곤은 극복하기 힘든 고통이다. 아기에게는 눈을 맞추고 말을 걸고 수면시간을 일정하게 설정해주고 체온을 유지해주는 양육자들로 채워진 적소(適所; niche)가 필요하다. 우리의 뇌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몸을 제어해 잘 살아 있게 하는 것이다. 뇌는 모호한 감각 데이터 조각들을 맞닥뜨리면 어떻게 해서든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기억은 뇌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추가 정보원이다.

 

마르셀 뒤상은 예술가는 창작의 절반만 수행할뿐이라 말했다. 절반은 보는 사람의 뇌 안에 있다. 우리가 보는 것(듣는 것, 다른 감각, 신체 내부의 현상)은 세상에 있는 것과 우리 뇌가 구성한 것의 조합이다. 우리의 일상적 경험이란 외부 세계와 우리의 신체가 주는 제약을 받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뇌가 구성하는 주의 깊게 제어된 환각이다.

 

저자는 파블로프의 개가 소리에 반응해 침을 흘린 것이 아니라 개들의 뇌가 먹이를 먹은 경험을 예측(자신과 대화)하고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미리 몸을 준비시키는 것이라 설명한다. 뇌는 정확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배선되었다. 뇌는 우리가 인식하기 전에 행동들을 개시하도록 배선되어 있다. 뇌는 예측기관이다.

 

신의 행동은 당신의 기억과 환경의 제어를 받는다. 저자는 자유의지 논쟁을 이야기하며 당신은 생각보다 더 많은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행동을 개시하게 하는 예측들은 난데 없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콤달콤한 맛에 길들여지지 않았다면 트위즐리를 그렇게 먹어치우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지금 당장 수고를 들이면 앞으로 뇌가 예측하는 방식은 바꿀 수 있다.

 

오래전부터 자유의지가 없다는 논의에 고개를 끄덕였으나 저자의 설명을 들으니 참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크다고 느끼게 된다. 뇌는 스스로 신경세포를 세부조정하고 가지치기한다. 우리는 무엇에 자신을 노출시킬지 선택할 수 있다. 당신의 뇌가 단순히 세상에 반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세상을 예측하고 배선까지 바꿀 수 있다면 나쁜 행동을 했을 때 책임 당사자는 당신이다.

 

당신이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바꿀 유일한 사람이 당신이기에 당신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오늘의 행동은 내일 뇌가 내놓을 예측이 되며 그것들은 자동으로 당신이 앞으로 할 행동을 이끌어낸다. 당신에게는 새로운 방향으로 예측하는 뇌를 길러낼 자유가 있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당신이 져야 한다.

 

앞에서 말했듯 이 책은 이렇게 과학적이고도 문학적으로, 종교 차원의 무진 연기를 가르치는 수행자처럼 뇌과학을 유려하고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하고 놀라게 하는 책이다. 가령 이런 구절. “뇌의 안무에 따라 우리는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춤을 추면서 상대방의 움직임을 반영한다. 우리 중 하나는 이끌고 다른 사람은 따라 한다. 그리고 때때로 그 역할이 바뀐다. 반대로 좋아하지 않거나 믿지 않는 사람과 함께 할 때 우리 뇌는 상대방의 발을 밟는 댄스 파트너와 같다.”

 

인간의 말은 물리적 힘이 되어 몸에 영향으로 작용한다. 지속적인 자극을 받을 경우. 뇌에서 언어를 처리하는 많은 영역이 몸 내부도 제어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경계는 좋든 나쁘든 타인의 행동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인상적인 말을 들어보자.

 

"당신의 마음은 당신의 뇌와 몸 간의 거래로부터 생겨난다. 그리고 당신의 뇌와 몸은 물리적 세계에 몰두하는 동시에 사회적 세계를 구축하는 다른 몸에든 뇌들에 들러싸여 있다."(149 페이지) 저자는 정동(情動) 이야기를 한다. 이는 몸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다. 정동은 감정이 아니다.

 

당신의 뇌는 당신이 감정적이든 아니든, 당신이 알아차리든 아니든 항상 정동을 만들어낸다. 정동은 당신의 모든 기쁨과 슬픔의 근원이다. 정동은 어떤 것을 심오하게 또는 신성하게 만들고 또 어떤 것들은 사소하거나 사악한 것으로 만든다. 당신이 종교적인 사람이라면 정동은 당신이 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당신의 뇌가 매 순간 당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요약하는 것을 당신은 정동으로 느낀다.

 

신체 신호가 정신적 느낌으로 전환되는 것은 의식의 위대한 미스테리다. 어떤 마음도 그 자체로 더 낫거나 나쁘지 않다. 환경에 더 잘 적응한 변이가 있을 뿐이다. 필요한 것은 물리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에 스스로를 연결시키는 매우 복잡한 두뇌뿐이다. 저자의 시각은 넓고 유연하다. 가령 다섯 개의 C가 필요하다고 설명하며 그 중 하나인 copying 즉 모방에 대해 저자가 모든 사람이 모방 없이 스스로 알아내야만 했다면 인간이라는 종은 이미 멸종했을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라.

 

저자가 드는 마지막 C는 압축(Compressing)이다. 이는 다른 동물 뇌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복잡한 능력이다. 압축이란 중복되는 것을 줄이고 요약하는 능력을 말한다. 언급 안된 세 개의 C는 창의성(Creativity), 의사소통(Communication), 협력(Cooperation) 등이다.

 

저자가 2장에서 말한 복잡한 두뇌와 함께 필요한 것은 추상화 능력이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난생처음 보는 것을 인식하게 해준다. 대뇌피질의 배선은 압축을 가능하게 한다. 압축은 감각통합을 가능하게 한다. 감각통합은 추상화를 가능하게 한다. 추상화는 유연한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이 창의성이다.

 

저자의 결론은 5C에서 드러난다. 우리가 설정해놓고 자연적인 것으로 착각해 차별을 정당화하는 현실에 대해 우려하는 저자의 시선은 참 바람직하고 따뜻하다. 우리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 상생의 현실을 만드는 것이 책임감 있는 행동이다.

 

앞에서 뇌과학은 쉼 없이 발전하는 학문이라고 했다. 이는 아직 알아야 할 것이 많은 분야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뇌에 관해 배워야 할 것이 여전히 너무 많지만 최소한 우리 뇌의 환상적인 진화 여정의 개요를 설명하고 이것이 우리 삶의 가장 중심적이고 도전적인 측면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숙고할 수 있을 정도로는 충분히 알게 되었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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