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1만 년 나이테에 켜켜이 새겨진 나무의 기쁨과 슬픔
발레리 트루에 지음, 조은영 옮김 / 부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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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륜(年輪)이란 나이테를 이르는 말로 이 의미에서 여러 해 쌓은 경력이라는 확대된 의미가 파생했다. 나이테는 영어로 ‘tree ring’이라 한다. 벨지움 출신의 세계적인 연륜연대학자로 현재 미국 애리조나 대학교 나이테 연구소 교수인 발레리 트루에(Valerie Trouet)의 ‘나무는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나이테에 새겨진 기후와 생태, 나아가 나무의 기쁨과 슬픔 등을 만날 수 있는 책으로 우리에게 아직 생소한 연륜연대학의 전반적 상황을 알게 해줄 귀한 자료다.

 

원제는 나무 이야기(‘Tree Story: The History of the World Written in Rings’)다. 나무는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말은 본문에 나온다. “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무가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해석하려면 합당한 주의를 기울여 정확하게 나이테를 읽어야 한다. 그러자면 패턴을 인지하는 약간의 재능, 그리고 아주 많은 훈련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또 나무를 괴롭고 아프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아야 한다.

 

연륜연대학자들에게는 천만다행이게도 나무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생물이다. 나무는 인간이 생겨나기 훨씬 전, 생명이 아주 단순하던 지질시대에 기원했다. 인간과 비교하면 나무는 움직이는 부위도, 여분의 기관도 훨씬 적은 편이다. 나무에는 꼬리뼈도 수컷의 젖꼭지도 없다. 그러므로 나무가 공유하는 풍부한 정보를 찾아내려면 그저 잘 보기만 하면 된다.”(75 페이지)

 

연륜연대학을 영어로 dendrochronology라 한다. 나이테 과학이 출범한 것은 약 100년 전이다. 애리조나대학교 나이테 연구소가 멕시코 국경에서 북쪽으로 약 160km 떨어진 애리조나주 투손의 소노란 사막에 자리를 잡은 것에는 사연이 있다. 연구소를 세운 앤드루 엘리콧 더글러스는 원래 천문학자였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보는 데 최적지가 사막인데 천문학 후원자인 퍼시벌 로웰 팀에서 근무하던 더글러스는 그 유명한 화성인 논쟁으로 로웰과 갈라선 뒤 연륜연대학을 개척했다.

 

더글러스가 나이테를 수집한 이유는 나무의 나이테를 이용해 과거 태양의 활동 주기를 추적할 수 있다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그런 관심을 보인 것은 태양활동 주기가 지구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지구 기후에 대한 관심이 태양활동 주기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가 천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더 나아가 연륜연대학으로 이어진 것이다. 발레리 트루에는 자신을 연륜기후학자로 소개하며 나이테를 이용해 과거의 기후를 연구하고 기후가 생태계와 인간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다고 말한다.(18, 19 페이지)

 

연륜기후학자들의 목표는 과거의 기후를 최대한 신뢰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53 페이지) 기후 재구성이란 기온이나 강수량 등 기상 관측이 이루어지지 않은 과거의 기후 상태를 대체 자료로 추정하여 정량적으로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50 페이지) 연륜연대학은 생태학, 기후학, 인류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간과 환경의 역사 사이의 상호 작용을 밝힐 수 있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20 페이지)

 

나무에서 부피 생장이 일어나는 곳은 나무껍질과 목질부 사이의 부름켜(cambium; 형성층)라는 섬세한 부위다. 새로운 나무 세포는 부름켜에서 만들어진 뒤 먼저 형성된 더 오래된 세포 바깥에 축적된다. 한 나무의 줄기를 통틀어 나무껍질 바로 안쪽의 이 얇은 부름켜만이 실질적으로 살아 있는 부위다. 그 외의 목질부와 나무껍질은 죽은 물질로서 일차적으로는 나무에 안정성을 제공하고 보호하며 지하의 뿌리와 위쪽의 나뭇잎 사이에서 물과 영양분을 수송한다.

 

목질부는 크게 변재(邊材)와 심재(心材)로 나뉜다. 물은 줄기의 바깥쪽 부분인 변재에서만 이동하고 안쪽의 심재나 나이테의 정중앙인 수심(樹心)에서는 이동하지 않으며 목편을 추출해도 그 영향력은 미미하다.(51 페이지) 나무도 사람처럼 어릴 때만 키가 자라고 커서는 둘레만 늘어난다. 혹독한 환경에서 서식하는 나무들은 생장에 심한 제약을 받아 천천히 자란다. 그 결과 나이테는 아주 좁고 목질은 치밀하다. 이 나무들은 상대적으로 온화한 환경에서 서식하는 나무들에 비해 아주 오래 산다.

 

석회암 지대에서는 나무를 썩게 하는 균류나 곤충이 살 만한 환경이 아니어서 나뭇진이 들어 있는 목재는 죽은 후에도 수천년 동안 풍경의 일부로 남게 된다.(68 페이지) 나무는 식량과 물이 풍부하고 남과 경쟁하거나 공격받지 않는 행복한 시기에 무럭무럭 자라 넓은 나이테를 만들고 가뭄, 한파, 태풍 등을 겪는 불행한 시기에는 생장에 투자할 에너지가 많지 않아 좁은 나이테를 만든다. 더글러스는 나이테 열(列) 중에서도 패턴이 독특한 특정 구간을 나이테 서명이라 칭했다.

 

완전히 똑같은 나이테 열은 없다. 심지어 한 나무에서 채취한 두 개의 표본도 서로 다르다. 그러나 같은 지역에서 수집한 표본이라면 적어도 몇 개의 공통된 이상 생장 연도가 있다.(85 페이지) 반화석(半化石; subfossil)은 호수 바닥에서 발견되는 나무처럼 미처 완전히 화석화되지 않은 나무를 말한다. 나무가 물이나 토탄층(土炭層)에 쓰러지면 그 목질부는 무산소 환경에서 보존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나무를 썩게 하는 생물이 호흡하지 못해 살지 못한다. 이로 인해 나무는 퇴적층에 묻혀 1만년이 넘는 과거를 비교할 수 있는 잔해를 선물로 준다.

 

현재 우리는 11, 650년전에 시작된 홀로세의 간빙기를 살고 있다. 소빙하기는 대부분 지역에 추위를 불러왔지만 일부 지역에는 추위보다 습기로 정의되었다.(128 페이지) 초기 사회기후학 역사가들은 기후사와 인류사를 결정론적으로 결합했다. 이들은 과거 문명의 흥망성쇠는 오직 기후 변화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후사와 인간사는 복잡한 상호 작용을 한다.(147 페이지) 나이테가 우리에게 놀라운 것들을 말해주지만 기후의 대체 자료로서 한계와 결점도 있다.(154 페이지)

 

나이테 기록은 가뭄, 극단적 기온 변화 등은 물론 홍수나 폭풍 같은 다른 극한 기후를 재구성하는 데도 활용된다.(161 페이지) 가뭄과 허리케인을 보자. 가뭄(이 일으킨 파괴력)은 나이테에 새겨진다.(155 페이지) 허리케인은 선박을 침몰시키고 나무의 생장을 억제한다.(166 페이지) 저자는 선박 침몰 사건이 (직접적으로는) 그것과는 전혀 무관한 나무의 생장 시기와 잘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한다.

 

지진도 나무에 손상을 가하고 생장에 영향을 준다.(172 페이지)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핵 발전소 참사로 인해 붉은 숲(red forest)이 만들어졌다. 붉은 숲이란 소나무가 죽으면 적갈색을 띄는 데에서 비롯된 말이다. 체르노빌 핵 발전소 참사는 나이테를 아주 이상한 모습으로 만들었다. 이는 부름켜가 방사선으로 인해 손상되었음을 의미한다. 생장철의 한창때 나뭇잎이 사라지면 생장 호르몬이 부름켜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러면 나무는 에너지가 고갈되고 새로운 목재를 형성할 의욕은 물론 나뭇잎이 떨어지기 전에 시작한 세포 형성을 제대로 마무리할 동기도 잃는다.(180, 181 페이지)

 

저자는 기후가 로마 제국의 해체에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물론 기후사와 인류사의 연관성을 연구할 때 상관 관계가 반드시 인과 관계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꼭 염두에 두어야 한다.(196 페이지) 저자는 기후 불안정은 사회적 변화와 연관이 있다고 해도 여러 요인이 맞물린 그물망의 한 부분을 구성할뿐이라 말한다.(210 페이지)

 

중세 시대의 고온은 최근 수십 년간 인간이 초래한 기후 변화에 추월당했다.(235 페이지) 저자는 글로벌 워밍(warming)이 아니라 글로벌 위어딩(weirding)이 정확한 말이라 말한다. 지구 날씨가 정신 나간 것처럼 요상하게 행동한다는 의미다.(241 페이지) 저자의 책은 나무에 대한 책이자 기후에 대한 책이다. 저자가 하는 작업이 연륜기후학이라는 사실은 물론 책 내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바이다.

 

저자의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것들 중 산불의 메커니즘을 빼놓을 수 없다. 나이 든 나무들은 지표화(地表火) 발생 이후 더 잘 자란다. 물과 영양분을 두고 벌이는 경쟁이 제거되고 불이 숲 바닥에서 상층부까지 타고 오르게 만드는 하층부 식생 발달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물론 불이 상층부까지 번지면 큰 나무들도 큰 피해를 입는다.(264 페이지)

 

인간과 달리 나무에게는 상처를 치유할 메커니즘이 없다. 나무가 상처를 입으면 할 수 있는 최선의 치료는 새로운 목재 세포를 키워 상처 부위 양쪽에서부터 흉터를 덮고 자라 마침내 닫아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불이 자주(5 - 10년만에 한 번씩) 일어나면 대개는 상처가 밀봉되기 전에 다음 불에 노출되는 것이기에 상처 부위는 나무를 보호하는 껍질도 벗겨진 상태고 상처 조직에는 나뭇진 함량이 높아서 연속적인 화상에 추가로 손상되기 쉽다. 한 나무가 계속해서 불에 델 때마다 나이테로 화재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새로운 상처가 추가되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산에 불이 났다고 무조건 물을 뿌려야 하는 것이 아님에도 지난 한 세기 동안 지나치게 열심히 불과의 사투를 벌여 온 위험한 결과를 이제 체감하고 있다고 말한다. 원래보다 자주 발생했어야 하는 지표화를 지나치게 열심히 끈 탓이다. 나무는 사냥과 전쟁에 들고 나갈 무기 재료가 되었고 도구, 가스, 스포츠 용품, 인쇄용 목판, 종이를 만드는 데도 사용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류 문명은 나무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는 화석 연료를 태움으로써 자연적인 탄소 순환의 한 단계를 드라마틱하게 가속시키고 균형을 깨뜨렸다. 현 지질 시대는 인류세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 시기의 인간은 지구 시스템에 일어나는 가장 강력한 변화의 원동력이 되어 지질 기록에 영구적인 흔적을 남겼다.(294 페이지) 만약 인간이 오늘 당장 지구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우리가 지구의 대기권, 생물권, 수권, 지권에 만든 변화는 수천 년이 지나도 감지될 것이다.(295 페이지)

 

큰 재앙이나 전염병 등으로 많은 인구가 죽었을 때 숲의 형편이 나아졌다는 지적은 충격이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숲은 세상을 오염시키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인간이 만든 기후 변화 문제는 나무를 많이 심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화석 연료에 들어 있던 수백만년 분량의 탄소를 한꺼번에 투척하고는 현재와 미래의 숲이 알아서 해결해주리라 믿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도박이다. 게다가 숲을 가꾸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숲이 자라려면 탄소 이상으로 많은 것이 필요하다. 공간, 물, 질소, 인 등의 영양소도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관심은 나무를 넘어 기후, 더 나아가 지구에서의 평화롭고 안락한 공존에 가 닿아 있다. 연륜연대학자들에게 나이테 개수보다 나이테 간격과 순열이 더 중요한 것처럼. 또한 과거의 기후를 재구성하는 것보다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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