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내가 사는 경기도 최북단 연천군의 주요 마을인 전곡읍 전곡리에서 주한 미군 병사 그렉 보웬이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를 발견했다. 이 일로 인도 동쪽은 양면을 가공한 발달한 주먹도끼가 사용되던 곳이 아니라는 모비우스 이론의 오류가 드러나 구석기 역사가 새로 쓰였다.

 

비만 오면 땅이 질어 진 골짜기로 부르다가 한자로 전곡이라 이름지은 이 마을은 충무로 진고개를 한자로 이현(泥峴)이라 부르고 함경남도 북청군의 한 면을 이곡면(泥谷面)이라 부르는 것처럼 이곡(泥谷)이라 할 만했다.

 

하지만 질다는 뜻과 상관없는 글자 중 질다를 의미하는 진과 발음이 비슷하고 뜻도 반듯한 온전 전(全)자를 택해 전곡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 안데스산맥의 돌이라는 뜻의 안데사이트를 편안할 안자를 택해 안산암(安山巖)이라 번역한 것도 그 중 하나다.

 

나는 한탄강 지질해설사 1년차인 지난해 100이란 수의 옛말이자 온전하다는 뜻이 있는 온이라는 단어로 임진강 주상절리를 설명했다. 온전할 전(全)과 온은 통하는 말이다. 요즘 나는 주상절리는 온전한가, 란 화두를 매만지고 있다. 한 시도 쉬지 않고 변해가는 자연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다만 수많은 개별 요소들의 어우러짐으로 스스로 그러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온전한 존재라 할 수 있다.

 

'문경수의 제주 과학 탐험'이란 책에 제주 오름을 우주를 보는 천문대 같은 것으로 해석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 부분읃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의미 있는 대목이다. 팩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해석이고 스토리텔링이다. 온전함이란 이렇게 각자 처한 곳에 맞는 최적의 눈으로 자연을 인식하는 과정을 통해 얻는 성과물이다.

 

문경수의 책에는 50년 세월 해녀 일을 한 뒤 지질해설사가 된 장순덕 님 사연도 나온다. 장순덕 님은 오랜 세월 물질 하며 본 해저지형 이야기로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해설사가 된 분이다. 자기만의 이야기는 이렇듯 힘이 세다. 이 역시 온전함을 만드는 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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